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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일기

보물 제539호, 달성 용연사의 금강계단(龍淵寺 金剛戒壇)

달성군 옥포면 반송리에서 계곡을 따라 차량으로 약 20여분 오르면 용연사란 사찰이 나타납니다.
그리 크지 않는 절이지만 이곳에는 1971년 7월 7일 보물 제 539호로 지정된 금강계단(金剛戒壇)이 있는 곳입니다. 본절에서 계곡에 놓인 극락교를 건너 맞은편 언덕으로 100여m만 가면 나타나는 금강계단은 부처님의 진신사리를 모신 곳으로서 우리나라 8곳의 적멸보궁 중 하나에 속하는 곳입니다. 영남지방에서는 꽤 알아주는, 영험빨이 강한 기도처이기도 한 곳입니다.

8대 적멸보궁이라 함은 경남 양산 통도사(通度寺), 강원도 설악산 봉정암(鳳程庵), 강원도 오대산 상원사(上院寺), 강원도 영월 사자산 법흥사(法興寺) 강원도 태백산 정암사(淨岩寺), 강원 고성 금강산 건봉사(乾鳳寺), 경북 구미 태조산 도리사(桃李寺), 그리고 이곳 달성의 용연사(龍淵寺)입니다.
이곳 외에도 비공식적으로 부처님의 진신사리를 모신 곳이 몇 곳 더 있는데 주로 주지스님들이 외국여행에서 모셔온 것이라고 소개하고 있습니다. 연화도에 있는 연화사나 일전에 한번 가본 밀양 무안의 영취산 기슭에 있는 영산정사(靈山精舍)에도 진신사리가 모셔져 있습니다.(포스트 보기 : 이곳)

'사리'라는 말은 범어[고대 인도어]의 사리라(Sarira)를 소리나는 대로 한자[舍利]로 옮겨 적은 것으로서 통상적으로 고승들의 다비[火葬] 후 나오는 구슬모양의 유골을 의미합니다. 부처님의 사리라 함은 부처의 유골을 뜻하는 진신사리와 부처의 가르침과 정신이 깃든 불경을 이르는 법신사리로 구분하고 있습니다. (사리에 대한 자세한 내용은 이곳 참고).
이곳 용연사에 모셔진 진신사리는 원래 통도사에 있던 것인데 임진왜란때 왜놈들의 침략으로 통도사의 사리탑이 훼손되자 이곳에 있던 사리가 우여곡절끝에 분산 안치된 것입니다. 자세한 내용은 아래 본문에서 사진과 함께 상세히 소개하여 드리겠습니다.



 




 


금강계단이 있는 용연사의 위치입니다. 위 지도에는 차도가 나타나 있지 않는데 절 앞까지 승용차로 쉽게 접근이 가능합니다.
대구에서는 옥포면 소재지에서 오를수도 있고 화원의 명곡리에서 반송리로 넘어가는 차도를 이용하여도 됩니다.
금강계단이 있는 적멸보궁도 바로 앞에 주차장에 있어 노약자도 차량으로 쉽게 접근이 가능하구요.




 


용연사 일주문(一柱門)인 자운문(慈雲門)입니다. 정면 방향이 아니고 뒷편에서 본 모습입니다.
일주문이란 말 그대로 하나의 기둥으로 만든 문이라는 말로서 사찰의 경계를 표시하는 것이기도 합니다. 불가에서는 일심(一心)으로 진리에 귀의하는 의미를 두고 있지요.

이곳 용연사의 일주문은 제가 아주 관심있게 보는 걸작입니다. 자세히 보면 볼수록 아름다운 문입니다.
커다란 기둥위에 창방(昌枋)과 평방(平枋)을 짜서 올리고 기둥머리에는 화례하게 공포(栱包)로 짜 맞춰져 있습니다. 창방과 대들보의 이음새에도 꽃우로 장식하였고 쇠서(牛舌) 끝에는 연꽃 조각을 하여 참으로 화려하고 아름답다는 느낌을 주는 일주문 중의 명작입니다.

근데 제가 이곳에 올때마다 이곳을 보면서 안타까움을 느끼는 것이 있는데 혹시 이글을 관계자가 본다면 꼭 적절한 조치를 취하여 주시길 바랍니다.
이곳 용연사 일주문은 절 밖 주차장으로 사용하는 널찍한 공터 가장자리에 자리하고 있는데 차량이 붐빌때는 일주문 바로 곁까지 주차를 하게 됩니다. 전혀 안전시설이 없어 차량의 후진이나 운전미숙으로 일주문과 충돌할 우려가 다분히 있습니다. 귀중한 문화재가 한순간에 파손될 우려가 있는 곳입니다. 일주문 주위로 울타리를 설치하거나 일주문의 위치를 옮겨 혹시 모를 불상사를 예방하여야 겠습니다. 단청의 채색이 많이 훼손되어 가는 것도 안타깝습니다. 보수의 손길도 조금 있어야 겠구요.




 


이 일주문은 창건연대가 알려져 있지 않습니다.
하지만 위와 같이 단청이 아주 아름답게 입혀져 있고 세세하게 정성으로 만든 것임에는 틀림이 없는데 관리는 조금 소흘합니다.
정면에는 비슬산용연사자운문(琵瑟山龍淵寺慈雲門)이라는 현판이 달려 있습니다. 절 근처에 신룡(神龍)이 사는 굴이 있어 용연사라는 이름이 지어 졌다 합니다.




 

적멸보궁으로 가려면 극락전이 있는 본절의 반대편 돌계단을 올라서 조금만 가면 됩니다.


 

금강계단(金剛戒壇)으로 들어가는 입구에는 같은 이름이 붙은 누각이 있습니다. 외부에서 보면 2층 구조로 보이나 내부는 단층으로 되어 있습니다.


 

입구에 들어서면 사천왕상이 양면에 그려져 있습니다. 본절과 이곳 모두 상(像)으로 되어 있지않고 그림으로 되어 있네요.
절에 들어오는 잡귀를 막아내며 절에 들어와 있는 불법(佛法)과 불자를 수호하는 역활을 합니다.


 


위에서부터 시계방향으로..

북방 다문천왕 : 수미산의 동, 서, 남, 북에서 불법을 수호하고 인간의 선악을 관찰하는 사천왕 중 북방 다문천왕으로 검은빛을 띠며 비파를 들고 줄을 튕기는 모습을 하고 있다.

서방 광목천왕 : 수미산의 동, 서, 남, 북에서 불법을 수호하고 인간의 선악을 관찰하는 사천왕 중 서방 광목천왕으로 몸이 흰빛이며 웅변으로 나쁜 이야기를 물리친다는 것을 나타내기 위하여 입을 벌리고 있다. 붉은 관을 쓰고 갑옷을 입었으며 삼지창과 보탑을 들고 있다.

동방 지국천왕 : 수미산의 동서남북에서 불법을 수호하고 인간의 선악을 관찰하는 사천왕 중 동방 지국천왕으로 온몸에 동방을 나타내는 오행색인 청색을 띠고 있으며, 칼을 쥐고 있다.

남방 증장천왕 : 수미산의 동, 서, 남, 북에서 불법을 수호하고 인간의 선악을 관찰하는 사천왕 중 남방 증장천왕으로 붉은 색을 띄며, 화난 듯한 눈을 가지고 있다. 오른손에는 용을 움켜쥐고 있으며 왼손에는 용의 입에서 빼낸 여의주를 쥐고 있다.




 

누각에서 적멸보궁으로 오르는 길엔 다시 돌계단이 있습니다.
부처님을 만나는 일은 늘 이렇게 여러곳의 계단을 오르면서 자기수행의 과정을 거쳐야 합니다.


 


금강계단 앞에 있는 적멸보궁입니다.
예쁘게 잘 다듬어진 축대위에 세워진 이 건물은 정면으론 3칸, 측면에서는 2칸으로 되어 있습니다. 공포는 다포식으로 화려하고둥근 서까래와 네모 진 서까래를 덧댄 겹처마로 만들어져 있고 지붕은 팔작지붕을 올렸습니다.




 


적멸보궁(寂滅寶宮)의 의미를 불교용어사전에서 인용하면,
"우리나라 절 가운데는 불상(佛像)을 전혀 모셔놓지 않은 데가 있다. 법당 안에는 단(壇, 戒壇)만 있고 속이 텅 비었으며 법당 밖 뒤편에는 사리탑을 봉안하여 놓은 곳이다. 이러한 곳을 적멸보궁, 또는 보궁이라 하는데 이는 사리탑에 부처님의 진신(眞身) 사리를 모신 보배로운 곳이란 뜻이다. 신라 진덕왕 때 자장(慈藏) 스님이 중국 오대산에 가서 문수 보살을 친견하고 부처님 가사와 사리를 받아와 우리나라의 가장 수승한 땅에 부처님 사리를 봉안하여 모셨는데 경남 양산 통도사(通度寺)에 부처님 가사와 사리를 모시고 금강 계단을 세웠다. 그리고 강원도 설악산 봉정암(鳳程庵), 오대산 상원사(上院寺)에 각기 사리를 모시고 적멸보궁을 지었다 한다. 또 강원도 영월 사자산 법흥사(法興寺)와 태백산 정암사(淨岩寺)에도 부처님사리를 봉안하고 적멸보궁을 세웠다. 이로써 이곳을 3대 적멸보궁, 5대 적멸보궁이라 통칭한다." 고 되어 있습니다.




 

즉, 적멸보궁(寂滅寶宮)은 진신사리(眞身舍利)를 모신 금강계단을 일반 불상보다 상위의 귀의처로 삼기 때문에 통상 불상을 모셔둔 대웅전보다 더 신성한 장소가 되는 것입니다.


 


적멸보궁 뒷편에 있는 보물 539호 금강계단(金剛戒壇)입니다. 석조계단(石造戒壇)이라고 하기도 합니다.
계단앞에는 배례석과 석등이 있으며 좌우에는 비석 3기가 서 있습니다.

불교용어사전에서 말하는 금강계단의 의미는 다음과 같습니다.

"부처님 사리(舍利)를 모시고 수계의식(授戒儀式) 을 집행하는 장소입니다. 금강은 금강보계(金剛寶戒)에서 유래된 말로, 한 번 계를 얻으면 영원히 잃지 않는 것이 마치 금강을 깨뜨릴 수 없는 것에 비유하며, 또한 열반을 성취함에 있어 삼학의 원만한 획득이 가장 중요한데, 그 계(戒), 정(定), 혜(慧) 삼학(三學) 가운데 계율이 으뜸이라는 뜻에서 흔히 戒檀을 금강계단이라고 합니다."




 

석등안에 부처님이 계시네요.


 




 


금강계단 우측으로는 커다란 비석이 2기 있습니다.
이 중 하나가 '사바교주석가여래부도비명(娑婆敎主釋迦如來浮屠碑銘)'이란 비석인데 적멸보궁의 금강계단의 조성내역이 적혀 있습니다.

이곳에 적혀있는 내용을 알기쉽게 풀어 엮은 글이 있어 옮겨 봅니다.
이 내용은 시인이자 영남일보 부설 한국스토리텔링연구원 고문이신 이하석님의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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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곳에 봉안된 사리는 원래 자장율사가 중국에서 불법을 구하고 돌아오는 길에 가져와 통도사에 모셔져 있던 것이다. 통도사는 이 진신사리로 인해 불보사찰인 성지로 이름을 드날렸다. 그런데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통도사에 봉안해놓은 진신사리가 위험했다. 사명대사 유정은 왜구가 곧 닥칠 걸 직감, 사리를 옮기는 게 가장 급선무라 생각했다.

“부처님 진신 사리부터 챙겨라.”

승려들은 금강계단의 일부를 해체, 속에서 사리들을 꺼냈다. 과립(顆粒)과 불아(佛牙), 정골(頂骨) 등의 사리를 수습했다. 이들 사리를 대소 두 개의 함에 나누어 담았다.

“이 사리들을 빨리 금강산으로 보내라.”

유정은 금강산에 있는 스승 서산대사 휴정에게 이 사리를 보내기로 했다. 휴정은 임란 당시 승병의 우두머리로서 전국 승려들의 군사조직을 총괄하고 있었다. 사리가 포장되고 이어서 이운식이 거행됐다. 불가피하여 사리를 옮기게 됨에 따른 의식이었다. 전쟁 상황이라 정상적으로 화려한 이운식이 이루어지지 못했지만 정성을 다했다. 그런 다음 불사리는 최대의 안전을 유지한 채 금강산으로 옮겨졌다.

금강산의 휴정은 멀리서 옮겨온 불사리 앞에서 머리를 조아렸다.

“이들 사리를 어디다 봉안해야 하나?”

휴정은 고심을 거듭했다. 그리하여 한 상자는 “잘 간직했다가 전쟁이 끝나 통도사 금강계단에 다시 모셔지는 게 자장율사의 뜻”이라며 돌려보냈다. 나머지 한 상자는 태백산 살나사(현 정암사)에 안치했다.

이와 조금 다른 얘기도 있다. 임란 당시 통도사의 사리가 왜구에 의해 도난당했는데, 백옥거사가 왜구의 포로로 있다가 사리를 다시 찾아왔다는 유명한 얘기가 있다. 또 한 얘기가 건봉사석가치상립탑비에 적혀 있다. 사명대사가 왜구로부터 다시 찾은 통도사의 사리는 금강산 건봉사와 대구 옥포의 용연사 석조계단에 나누어 봉안했다는 게다.

그렇다면 이렇게 이야기가 이루어졌을 수도 있다.

사명대사는 사리함을 모시고 있던 제자 청진에게 은밀하게 말했다.

“청진아, 네가 가진 그 함에서 사리 한 과를 꺼내다오.”

청진은 사리를 꺼냈다. 사명대사는 그 사리에 큰 절을 하고 말했다.

“이 사리는 용연사로 모시자.”

“어찌 그러십니까? 그렇게 분리를 해도 괜찮겠습니까?”

“이번 전란에서도 그랬지만, 사리를 한 곳에 집중해서 모시면 자칫 다 잃을 수도 있을 게 아니냐? 이를 나누어 신성한 곳에 모시면 오히려 보존하기에 더 효과적이 되지 않겠느냐?”

“알겠습니다.”

“특히 용연사의 경우는 통도사 금강계단을 모방하여 조성하도록 하라”하고 사명대사는 당부를 했다.

이런 사실은 용연사가 사명대사와 특별한 관계를 가지고 있었음을 추측하게 하는 일이다. 그 ‘특별한 관계’ 때문에 이곳이 부처의 진신사리를 모신 특별한 성지로 장엄되었을 터이다. 그 ‘특별한 관계’란 무엇일까?

용연사가 있는 비슬산 지역은 임진왜란 당시 승병들의 훈련이 크게 성했다. 특히 밀양 표충사와 대구 팔공산 지역은 사명대사의 승병활동의 거점으로 중시됐다. 사명대사는 승병의 영남도총섭(嶺南都摠攝)이 되어 동화사에 영남치영아문(嶺南緇營牙門)을 설치, 곳곳에서 승병훈련을 하면서 승병들의 전투를 지휘했다. 특히 영남대로와 낙동강을 끼고 있는 비슬산 일대에는 자주 둘러보고, 곳곳에 승병훈련장을 숨겨놓았다. 유가사, 남지장사, 용연사 등지에는 당시의 승병활동에 대한 얘기가 전해온다. 그 중심에는 언제나 사명대사가 존재한다. 그중 용연사에서 승병활동이 특히 활발했음이 한 자료에서 밝혀졌다. 최근 법당에 있는 관세음보살을 개수하다 발견된 복장유물에서 ‘건륭 27년(1764년)인 영조 때에도 246명의 승병이 있었다’는 기록이 발견됐다고 한다.

용연사 경내에는 사명대사를 모신 사명당이 있다. 이 건물은 사명대사가 평소 이곳을 대단히 중시하고 자주 머물렀기 때문에 이를 기려 조성됐을 것이다. 사명대사는 당시 승병활동이 성한 이 곳을 특별히 지목하고, 특히 지세가 좋은데다, 비슬산의 북쪽 기슭의 아주 은밀한 이곳을 부처의 진신사리를 모실 적지로 눈여겨 봐두었을 수도 있다. 그런 만큼 용연사는 호국불교의 확실한 현장이면서 부처의 진신사리를 모신 적멸보궁의 성지로서 뛰어난 위상을 지닌 절이라 할 수 있다.




 

금강계단을 참배하려면 적멸보궁으로 들어가면 됩니다. 몇분이 와 계시네요.


 

적멸보궁 법당은 당연히 불상이 모셔져 있지 않고 뒤쪽 벽을 유리로 하여 사리탑을 바라보면서 참배 할 수 있도록 되어 있습니다.
저도 들어가서 부처님 계신 계단을 향해 삼배인사를 올렸습니다.


 

발소리 내기도 두려운 적막감이 조용한 사찰에 가득하네요.


 

날씨가 추워서인지 스님들은 요사채 안에 가만히 계십니다.


 

담 너머로 견(犬)보살님의 배웅을 받으며 되돌아 나옵니다.


 

아직은 삭막한 풍경이지만 곧 봄이 오겠지요?
보물 제539호, 달성 용연사의 금강계단(龍淵寺 金剛戒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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