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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과 그림

모항으로 가는 길 - 안도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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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산은 여러번 가 봤습니다.

그곳 주위 바닷가도 많이 둘러보고 내변산도 여러번 가 보고 고사포, 격포, 궁항, 채석강까지도 가 봤습니다.

내소사 큰법당 꽃문살은 늘 정겨웠지요.

곰소항에서 젓갈 밥도 먹고 썰물 바닷가를 거닐어 보기도 했습니다.

소금빛이 반짝이는 염전가에 앉아 노래도 불러 봤구요.


곰소만 건너 선운사 여름 백일홍은 얼마나 예쁜지 아세요?

쨍쨍 여름 한 낮 송글송글 땀을 흘리면서도 붉은 그 꽃 보며 한나절 쉬이 머물렀지요.

20대 장발터벅이로 처음 이곳 변산을 찾아 작은 동네 구장노릇하는 까망딱지랑 셋이 밤새 풍천장어 복분자를 배 터지게 마셨던 곳. 그때 나는 철 없는 연애를 하고 있을때였구요. 


털털거리던 시골버스를 타고 찾아 갔던 그 곳 변산과 고창.

그 뒤 숱하게 자주 찾았던 이곳 바다가에 아주 조그만 비밀장소 하나를 묻어두고 있답니다.


아직 가 보지 못한 모항.

가 보지 않아서 더욱 애가 탈 것도 갔지만 오래 숨겨두니 더욱 값진 장소가 될것만 같은 그 곳..


겉 언저리 빙빙 다닌것이 부러 그런것이 아니었는데,

어쩌면 긴 시간이 이만큼 흘렀습니다.

이제 그 모항을 가 봐야 할 것 같습니다.


아껴 놔 두었던 그 곳

이번 여름

애타는 그리움을 가지고 모항을 찾아 갈 것입니다.







모항으로 가는 길


 안 도 현





너, 문득 떠나고 싶을 때 있지?
마른 코딱지 같은 생활 따위 눈 딱 감고 떼어내고 말이야
비로소 여행이란,
인생의 쓴맛 본 자들이 떠나는 것이니까
세상이 우리를 내버렸다는 생각이 들 때
우리 스스로 세상을 한번쯤 내동댕이쳐 보는 거야
오른쪽 옆구리에 변산 앞바다를 끼고 모항에 가는 거야


부안읍에서 버스로 삼십 분쯤 달리면
객지밥 먹다가 석삼 년만에 제 집에 드는 한량처럼
거드럭거리는 바다가 보일 거야
먼데서 오신 것 같은데 통성명이나 하자고,
조용하고 깨끗한 방도 있다고,
바다는 너의 옷자락을 잡고 놓아주지 않을지도 모르지
그러면 대수롭지 않은 듯 한 마디 던지면 돼
모항에 가는 길이라고 말이야
모항을 아는 것은
변산의 똥구멍까지 속속들이 다 안다는 뜻이거든


모항 가는 길은 우리들 생이 그래왔듯이
구불구불하지, 이 길은 말하자면
좌편향과 우편향을 극복하는 길이기도 한데
이 세상에 없는 길을 만드는 싸움에 나섰다가 지친 너는,
너는 비록 지쳤으나
승리하지 못했으나 그러나, 지지는 않았지
저 잘난 세상쯤이야 수평선 위에 하늘 한 폭으로 걸어두고
가는 길에 변산 해수욕장이나 채석강 쪽에서 잠시
바람 속에 마음을 말려도 좋을 거야
그러나 지체하지는 말아야 해
모항에 도착하기 전에 풍경에 취하는 것은
그야말로 촌스러우니까
조금만 더 가면 훌륭한 게 나올 거라는
믿기 싫지만, 그래도 던져버릴 수 없는 희망이
여기까지 우리를 데리고 온 것처럼
모항도 그렇게 가는 거야


모항에 도착하면
바다를 껴안고 하룻밤 잘 수 있을 거야
어떻게 그런 일이 가능하냐고 너는 물어오겠지
아니, 몸에다 마음을 비벼 넣어 섞는 그런 것을
꼭 누가 시시콜콜 가르쳐 줘야 아나?
걱정하지마, 모항이 보이는 길 위에 서기만 하면
이미 모항이 네 몸 속에 들어와 있을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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