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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과 그림

러시아 대표 여류화가였던 세레브리아코바의 작품 - 연인처럼 다가오는 그녀의 그림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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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이 맑고 영혼이 아름다운 러시아의 여류화가 지나이다 예브게니에바 세레브리아코바(Zinaida Yevgenyevna serebriakova 1884-1967)를 소개 합니다.


우리 이름을 영어로 바꾸면 바꾼 사람마다 철자가 다를수 있듯이 이 멋진 화가의 이름도 러시아어에서 영어로 바뀌고 다시 우리말로 바꾸다 보니 약간 원어 발음과 다를수도 있겠습니다..
세레브리아코바..세레브랴코바... 이렇게 읽혀질수 있겠는데 저는 세레브리아코바라는단어가 더 부드럽게 느껴져 이걸로 사용하겠습니다.


세레브리아코바는 20세기 러시아를 대표하는 여류화가였습니다.
그녀의 집안은 부계나 모계 모두 예술가 집안이었습니다. 이런 예술적인 분위기가 맘껏 흐르는 집안에서 자라나 1902년부터 프랑스와 이태리에서 미술공부를 한 다음 1905년고국에 돌아온 그해 21살때 고종사촌이었던 보리스 세레브리아코바와 결혼을 하게 됩니다.


어느 모델 못지 않게 아름다운 미모를 지녔던 그녀는 스스로의 자화상을 많이 그리게 되었고 이때 그린 그녀의 자화상들은 곧 큰 인기를 얻게 됩니다. 이때가 그녀의 전성기에 해당될것 같습니다. 이때는 이미 두명의 아들과 두명의 예쁜 딸을 낳고 가장 행복하게 살아 가고 있던 때였습니다. 아래 그림들에서도 모델들의 모습이 비슷하게 보여지는 것은 모두 세레브리아코바의 자화상이라고 여겨집니다.


그러나 1917년 10월 볼셰비키 혁명이 발발했고 불행하게도 그녀의 남편은 교도소에서 사망하게 됩니다. 이때부터 그녀의 고행은 시작되었습니다. 네 아이와 가정을 책임진 그녀는 이때부터 주로 아이들과 스스로를 모델로 하여 많은 그림을 그리게 되는데 너무나 궁핍하여 유화를 그리지 못하고 연필이나 목탄화를 많이 그렸지요. 아래의 일부 그림도 이때의 작품입니다.


너무나 영혼이 맑고 아름다운 화가 세레브리아코바..
아름다운 누드화와 그녀의 자화상을 보고 있노라면 익숙한 연인처럼 그렇게..
사랑스러움이 가득 다가옵니다.



그녀와..
그녀가 그린 자화상



1923년 종이에 파스텔로 그린 에카테리나 헤이덴레이체의 초상화
1921년 그린 그녀의 자화상입니다.

 





그녀의 아이들의 아침식사 장면을 그린 작품  1914년작









1911년 27세때 그린 삐에로 옷을 입은 그녀의 자화상입니다.
 











 



1923년작 주방에서의 카챠라는 제목입니다. 카챠는 그녀의 딸 이름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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