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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일기

남한강 유유한 강변, 고찰 신륵사를 찾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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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주(驪州), 청주(淸州), 파주(坡州)는 제가 가진 성〔慶〕씨가 많이 살고 있는 고장입니다.

많다고 해봐야 우리나라 성씨 중 105번째에 해당되고 전국에 대략 3,000여 가구가 있답니다.

조상님 중 가장 유명 인사로는 慶大升입니다.

역사는 가정을 할 수 없지만 이 분 건강이 좋아 좀 더 오래 살았다면 우리 역사는 달라 질수도 있었답니다.

 

낯선 도시지만 일가(一家)들이 많이 살고 있어 누군가 반겨 줄 것 같은 곳.

여주...^^

남한강이 도심 가운데를 지나가는 여주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최근에 시로 승격한 곳입니다.

이곳 여주에서 가장 많이 알려진 관광지가 신륵사(神勒寺)인데 이전부터 꼭 한번 가 보고 싶었답니다.

도심 속 사찰이라 접근성이 참 좋아 보이구요.

특이하게도 강가에 자리한 사찰입니다.

가을 신륵사를 찾아가기 몇 년을 벼루다가 이제야 그 원을 풀었네요.

 

신륵사는 창건연대나 유래등에 관하여는 확실한 고증이 없지만 천년 역사는 지닌 절집니다.

고려 공민왕 왕사였던 나옹선사가 입적한 곳이라 더욱 의미 있구요.

나옹선사는 요즘 니나내나 다 알고 있는,

'청산은 나를 보고 말없이 살라하고(靑山兮要我以無語)'를 지었는데 전체 내용은 이곳 참고 하시면 됩니다. 

 

주변은 가을이 짙어 온통 단풍으로 물들어 있었답니다.

일부러 평일을 택해 찾아간 절집은 한적하지만 Loneliness(쩌는 고독)가 아닌 Solitude(피는 고독)를 즐기는 이들이 제법 찾아 오고 있네요. 

그런 센티한 이들 속에서 오늘 하루 나도..

자유로운 영혼이 되어 퇴화된 날개로,

허공을 향해 날개짓을 해 보았답니다.

 

 

 

 

 

 

신륵사에는 고찰답게 아주 많은 문화재가 있습니다.

 

보물
조사당 - 보물 제180호
다층석탑 - 보물 제225호
다층전탑 - 보물 제226호
보제존자석종 - 보물 제228호
보제존자석종비 - 보물 제229호
대장각기비 - 보물 제230호
보제존자석종 앞 석등 - 보물 제231호
목조아미타여래삼존상 - 보물 제1791호


경기도 유형문화재
극락보전 - 경기도 유형문화재 제128호
극락전 - 경기도 유형문화재 제132호
팔각원당형석조부도 - 경기도 유형문화재 제195호
건륭삼십팔년명 동종 - 경기도 유형문화재 제277호
극락보전 삼장보살도 - 경기도 유형문화재 제278호

 

경기도 문화재자료

삼층석탑 - 경기도 문화재자료 제133호
원구형석조부도 - 경기도 문화재자료 제134호
삼화상진영 - 경기도 문화재자료 제167호

 

 

짙은 가을이네요.

이제 곧 이파리들이 떨어져 가을 바람에 흩날릴것 같구요.

 

 

일주문에서 불이문이란 이름의 천왕문까지 걸어가는 길이 참 좋습니다.

산자락의 오르막길도 아니고 꼬불꼬불 좁은 길도 아니지만 빨리 걷기가 힘드네요.

살짝 불어오는 바람결에 대지로 낙하하던 낙엽 하나 솟구쳐 다가와 슬쩍 가을 소식을 전합니다.

 

 

보제루 앞에서 시커먼 물체가 움직이길래 다가가 봤네요.

 

 

커다란 산(집)토끼 두 마리가 천연덕스럽게 놀고 있는데 다가가도 본체만체...

 

 

우측으로는 남한강이 유유하여 운치가 아주 있네요.

 

 

주법당이 극락보전을 마주하는 구룡루.

대개 강당으로 많이 사용되는 곳입니다.

다행히 올라갈 수 있게 허락을 해 두었네요.

그 아래 국화로 만든 잉어 두마리가 유희하는 모습을 한참이나 내려 봅니다.

 

 

 

 

 

이곳 신륵사 은행나무도 제법 많이 알려져 있는데 마침 그 앞에 공사를 하고 있어 소음도 있고 느낌도 산만합니다.

그래도 노란 잎으로 변장하는 은행나무는 계절을 고스란히 느끼게 해 줍니다.

 

 

신륵사에는 두그루의 명품 향나무가 있는데 하나는 조사당 앞에 있고 하나는 이곳 극락보전 앞마당에 자리하고 있습니다.

들어가는 입구에서 쳐다보니 향나무 사이로 극락보전 현판이 가늠쇠에 딱 꽂힙니다.

 

 

 

 

 

신륵사의 주법당인 극락보전입니다.

건물 전체가 제법 화려하기 보이는데 근간에 만들어 단듯한 문짝이 조금 거슬리기도 하네요.

네 귀퉁이에는 추녀를 받치는 활주가 있는데 그것도 받침이 낡아 조금 위태하여 보입니다.

세종왕릉의 원찰로 지정이 되어 조선 성종(1472년)때 멋지게 지었으나 임란때 화마로 소실되어 정조(1800년)에 다시 지은 것입니다.

내부에는 나무로 만든 아미타삼존불이 봉안되어 있는데 1977년에 금옷을 새로 입혀 드렸는데 자세히 보니 이곳 저곳 누군가 끍어서 상처를 낸 곳이 많네요.

국가 보물 문화재인데 누가 이런짓을 했는지.. 이런걸 보면 참 답답해집니다.

 

 

극락보전과 그 앞의 다층석탑이 조화를 이룹니다.

 

 

극락보전 앞에 서 있는 자그마한 보물 석탑입니다.

제 눈에는 이곳 신륵사에서 가장 돋보이는 작품(?)이네요.

아주 특이하게 대리석으로 만든 석탑입니다.

층수가 확실치 않아 다층석탑으로 불리는데 지대석 위에 2층으로 된 기단석이 있고 그 위에 탑신을 만들어 두었습니다.

현재 이 탑은 8층까지 남아 있습니다.

각 층별로 아주 멋진 조각을 하여 두었는데 특히 상층기단에 장식되어 있는 용과 구름의 무늬는 정말 놀랍습니다.

신륵사가 세종왕릉의 원찰로서 중창한 점을 비춰볼때 이 탑은 1472년에 만들어진 것으로 추리되고 있습니다.

 

 

 

 

 

극락보전 안에 봉안되어 있는 목조여래삼존불입니다.

아미타불을 주불로 하고 좌우로 대세지보살과 관세음불이 호위를 하고 있습니다.

새로 금칠옷을 입힌지 그리 오래 되지 않았는데 부분적으로 인위적이 끍힌 자국이 있네요. 

 

 

좌측 벽에 붙어있는 도문화재로 지정이 된 삼장보살도입니다.

18세기 중엽 작품으로 소개가 되어 있는데 경기도 소재 삼장보살도 중에서는 가장 오래된 작품입니다.

자세히 보면 정말 작품(?)이네요.

그 앞에 촛불을 계속 켜 두고 있는데 조금 염려스럽기도 하구요.

 

 

뒷편 건물이 조사당이고 앞에는 보호수로 지정이 된 수령 600년의 향나무입니다.

향나무는 절 집 마당에 흔치 않는데 이곳에는 명품 향나무가 조사당과 함께 비슷한 연대끼리 만나서 자리하고 있습니다.

 

조사당은 신륵사에 남아있는 건물 중 가장 오래된 것으로서 조선 초기 지은것으로 보이며 내부에는 중앙에 나옹선사의 독존상이 안치되어 있고 그 뒤로 지공스님과 나옹, 무학대사의 영정이 나란히 세워져 있습니다.

그리 크지 않는 건물로서 네 기둥만으로 만들어 대들보가 없는 것이 특징이기도 합니다.

보물로 지정이 되어 있구요.

 

 

조사당 왼편 옆의 소나무인데..

아마도 소나무 지가 알아서 이렇게 뒤틀리지는 않았을것이고 누군가의 손재주 같은데 부처님이 웃으셨을까?

 

 

명부전과 조사당 사이의 언덕에 있는 2기의 부도비.

공식 이름은 원구형석조부도.

연대는 조선 후기로 여겨지지만 다마(?) 주인공은 누구인지 알려져 있지 않습니다.

 

 

보물 3점이 모여져 있는 조사당 뒷편 언덕 위.

 

 

조사당에서 뒷편 숲길을 난 언덕으로 난 계단을 올라가면 한참에 국가 보물을 3점이나 만날 수 있는 장소가 나타납니다.

그중 종 모양으로 만든 돌탑이 하나 있는데 나옹선사 입적 후 만든 사리탑입니다.

이름은 보제존자석종(普濟尊者石鍾).

보제존자(普濟尊者)란 나옹선사의 호이고 석종(石鍾)은 말 그대로 돌로 만든 종입니다.

대개 부도탑은 8각형을 띤 원형으로 되어 있는데 이것과 비교하여 완전한 원형이라고 하여 석종이라고 부릅니다.

그냥 '나옹선사 사리탑'이라고 하면 얼마나 알기 쉬운데 꽤 어렵게 표기를 하여 두었네요.

 

 

입구에 있는 보세존자 석종비.

보세존자는 나옹선사의 호. 석종비란 옆에 있는 석종에 따른 비석으로서 나옹의 일대기를 적어 둔 것입니다.

 

 

보제존자석종앞에는 아주 멋진 석등 하나(맨 우측)가 서 있는데 역시 국가 보물로 지정이 되어 있습니다.

화강암으로 만든 전체 구조와는 달리 석등 부위만 납석으로 만들어 창틀 형식으로 조각을 내고 이곳에 하강하는 형태의 비천(天女. 천사)을 조각해 두었는데 너무나 섬세하여 요즘 조각한게 아닐까 하는 의심이 들 정도입니다.

 

 

석등 조각

정말 섬세하게 조각을 하여 두었습니다.

실제 아주 조그만 조각입니다.

 

 

조사당 앞 수령 600년의 명품 향나무.

우리 어릴땐 향나무를 말려 잘게 쪼개 제사때 향불 피우는 것으로 하였는데 지금은 거의 나무 이름만으로 남아 있네요.

 

 

좌측 조사당과 우측 극락보전.

그리고 향나무.

 

 

발길이 선뜻 닿아지지 않는 장소입니다.

명부전.

저승길 재판정이구요.

이승에서 뭔 짓을 저질렀는지 그걸 가지고 이곳에서 재판을 하여 지옥과 극락을 갈림 하는 것입니다.

재판관은 10명.

그리하여 시왕전(十王殿이라고도 부르기도 하고 지장불이 주불인 관계로 지장전이라고도 합니다.

우리가 가장 두려워 하는 염라대왕은 이곳 재판관 중에서 서열 5위에 해당하여 완전 대빵은 아니랍니다.

암튼 이승에서 업보 잘 지어 다음에 꼴까닥 한 후 이곳 명부전 시왕(十王) 前에서 큰소리 칠 수 있게 되기를 바랍니다.

 

 

좌측이 저승길 재판장격인 자장보살이고 맨 우측이 서열 5위 염라대왕인데 이곳 염라왕은 인상이 꽤 괜찮아 보입니다.

대개 좀 곰살맞게 표현해 두었는데...

 

 

명부전 옆에 있는 조그마한 봉송각이란 전각이 있고 그 안에 모셔져 있는 작은 부처님입니다.

이승을 하직하고 저승길로 떠나는 영가를 배웅하는 곳이고 모두 극락세계로 가기를 빌어주는 곳입니다.

이곳 신륵사에 보시한 동전들을 녹여서 만든 부처라고 합니다.

 

 

 

 

 

전탑으로 올라가는 길 옆.

남한강쪽으로 이런 형태의 나무 한그루가 ..

 

 

신륵사 동남쪽 언덕 위에는 제법 커다란 전탑이 세워져 있는데 높이가 9.4m나 되는 국내 유일의 고려시대 작품입니다.

아래쪽은 화강암으로 만든 7단형태의 기단이 있고 그위로 전탑을 올렸는데 6층으로 만들어져 있습니다.

고려말에 건립되어 조선 영조때 수리를 한것으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탑을 나옹탑이라고 불리웠다는 기록이 있는데 나옹선사가 입적 전 이곳 신륵사에 머문 기간이 한달정도밖에 되지 않으므로 그 시간에탑을 만든건 아닐것이라 생각되고 오히려 입적 후 여러가지 신기한 현상들이 일어나 그것이 신륵사를 돋보이게 하여 기념으로 이 탑을 건립했을것이라는 추리가 가능합니다.

그냥 멋모르고 보기에는 두어달 전에 미장공 서너명이 붙어서 벽돌로 대충 만든 탑으로 보여지기도 하는데 이 탑이 최소 600~700년의 역사를 가졌다고 생각하니 갑자기 아득하여 집니다.

 

 

전탑에서 내려다보는 남한강

튜브배를 타고 낚시를 하고 있는데 대물이 걸리면 곤두박질 할 듯 ..

 

 

강월헌

전탑 아래 남한강변에 세워져 있는 정자입니다.

나옹선사가 이곳에서 입적한 후 화장을 한 자리 옆에 세워진 정자. 

강월헌이란 나옹의 호입니다.

원래는 옆에 있는 석탑과 같이 있었으나 물난리를 만나 떠내려가서 조금 자리를 띄워 근간에 시멘트로 다시 만든 것입니다.

 

 

정자 옆에는 그리 크지 않는 삼층석탑이 한 기 있습니다.

우선 이 무거운 기단석을 어떻게 이곳에 옮겨 왔을까 궁금한 석탑입니다.

단층으로 된 기단에 삼층석탑 형식인데 아담하고 귀엽게 생겨 누구나 이곳에서 석탑과 같이 사진을 찍게 될것 같습니다.

아마 이 자리가 나옹스님의 다비처가 아닐까 짐작이 되구요.

고려 후기 작품으로 보여지는데 긴 세월 강가에서 무수히 많은 홍수를 겪었을 것인데 떠내려가지 않고 버텨준 것이 고맙기도 합니다.

 

 

 

 

 

전탑에서 산길쪽으로 한계단 오르면 대장각기비라는 돌비석 하나를 만나게 됩니다.

보물로 지정이 되어 있구요.

원래 신륵사 극락보전 옆에 대장각이 있었는데 이 대장각의 내용을 기록한 비석입니다.

비는 훼손이 많이 심하여 내용을 정확히 알 수 없다고 하는데 어느 시기에 이처럼 박살이 났는지는 알려지지 않고 있네요.

 

 

 

 

 

대장각기비 뒷편으로 산으로 올라가는 길이 있길래 잠시 올라가니 수목장 지역입니다.

나무에 고인의 명패를 붙여 둔 곳이나 나무 아래 꽃을 가져다 둔 곳이 보이네요.

 

 

은행나무도 노란 잎으로 바꿔 볼만하지만 전탑 가는 길에 있는 수령 600년의 참나무(사진 중앙)도 완전 특이합니다.

대개 참나무는 조금 자라면 사정없이 베어서 숯불구이용 땔감으로 사용하는데 이게 무슨 용빼는 재주를 부려서 600년을 살아 남았네요.

 사진을 클릭하면 크게 보여 집니다

 

 

남한강을 유람하는 황포돛배인데 평일이라 탑승객이 거의 없네요.

한번 타 볼까 하다가 괜히 선장과 나 둘만 타서 뻘줌하게 될까봐 포기..

 

 

 

 

 

 

 

 

가을은 어느 곳이나 운치있고 사색적이지만,

가을 절집은 더욱 더 그 맛을 진하게 보여 줍니다.

이곳 신륵사는 도심에 자리하고 있지만 이쁜 공원 같기도 하고, 쉽사리 찾을 수 있는 작은 찻집 같기도 합니다.

 

 

 

 

 

 

 

 

스님은 내내 통화 중....

내용이 참 궁금합니다.

 

 

 

 

 

 

 

 

릴케의 시가 생각나는 분위기입니다.

 

남은 과일들이 무르익게 하시고
이틀만 더 햇빛을 주셔서 맛을 내게 하시고
진한 포도주의 마지막 단맛이 스미게 하소서...

 

 

 

 

 

남한강 저편 건너 언덕위에 자 전각은 어디일까요?

햇살 꺼꾸로 비쳐 꼭 알수는 없지만 다정한 이들이 고운 가을 이야기를 나누는것 같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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