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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별 가족의 글

낙제 없는 삶을 즐기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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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요일 저녁.. 나름 고민을 했습니다.

삼겹살? 등갈비? 불고기??.. 불고기는 자신이 없고..

어르신들 치아가 부실하실 텐데.. 결국은 요리를 할 필요가 없는 소 생갈비로 결정했습니다.

 

토요일 오전 11시쯤 부슬부슬 비가 내립니다... 참숯도 준비를 했는데..

야외에서 고기 굽는 건.. 아쉽지만 포기했습니다.

 

 

막걸리(6) 맥주 소주(2) 그리고 후식으로 과일도 구입했습니다.

잡곡밥과 취나물 방풍나물 그리고.. 김치 콩나물 국도 준비 완료..

 

 

깜빡했던 열무김치도 준비를 하고, 후식으로는 야채샐러드와 과일을 준비했습니다.

12시에 오시라고 전화를 드렸는데.. 1시에 오셨습니다.

 

 

뭘 이렇게 많이 차렸어~~

생갈비가 녹네~녹아~.. 어르신들 칭찬에 열심히 고기를 굽는데..

수고한다고 하시면서, 구운 고기와 막걸리를 따라 주시는 걸..

넙죽넙죽 받아먹고, 마시다 보니 저도 취기가 슬며시 올라옵니다.

즐거워하시는 모습을 뵈니 진작 이런 자리를 못 만들어 드린 게 죄송했지만..

 

불과 일 년 전만 해도 전혀 모르던 분들과..

이런 훈훈한 술자리는 솔직히 전혀 예상도 못 했습니다...

 

2년 동안 흉가처럼 비었던 집..

하루 종일 쓸고 닦고 청소를 하다가 배가 고프면.. 누룽지 밥에 김치 하나로 식사를 했습니다.

난방 시설도 없어서 집에서 혹시나 하고 챙긴 전기장판 하나에 의지하며 잠을 청했고..

어둠이 깔리면 인적도 없는 마을 불빛을 바라보면서, 막걸리 한 잔에 외로움을 달랬던 기억이 납니다.

 

시간이 어느 정도 흐르자..

산책 삼아 오른 집 뒷산에서 고사리를 보고 신나게 채취를 하고..

민들레 여러 겹에 된장 보리밥 가득 넣어서 꾸역꾸역 먹고..

저절로 자란 호박잎을 삶아서 친구들과 딸들 단톡에 올린 후 스스로 흐뭇해하고..

싱싱하게 열린 청양 고추를 따다가, 맨 밥에 물을 말아 배불리 먹고..

 

너무도 긴 장마에 지치기도 했고.. 집 입구 문턱까지 차오르는 물에 겁도 났습니다.

어영부영하다 보니 1년이라는 세월이 후다닥 지났습니다.

 

장날 장터에 나가실 힘조차 없으신 할머님 마늘 양파도 사드리고..

자식 주고 남은 감자 처분이 어렵다는 분.. 감자도 딸들에게 보내주고..

하지만.. 제가 더 많은 도움..? 아닙니다.. 많은 배려를 받았습니다.

 

잘 띄운 청국장이라고 하시면서 청국장도 주시고..

김장 김치가 맛나다고 김치도 주시고..

명절에는 잡채에 소머리 국밥에.. 출출할 때 먹으라고 시루떡도 주셨습니다.

 

 

혼자 지내니 심심할 테니..

동무를 하라고 귀여운 복돌이 녀석도 안겨 주셨지요.

 

이제는 조금씩 제가 원했던 삶을 찾아가는 듯합니다.

동네 산책을 해도 몸뻬 바지에 모자는 기본.. 곡괭이는 지팡이처럼 들고 다닙니다.

동네 어르신만 뵈면 평소 궁금해했던 나물을 기억을 해서 무엇인지 여쭤봅니다.

 

평소 무심히 보았던 모든 풀(?)들도 이제는 제 공부 거리로 보입니다.

네.. 앞으로 열심히 공부를 하려고 합니다.

 

그러나 점수는 중요치 않습니다..

점수는 빵점 일지라도 낙제가 없는 삶을 즐기면 그뿐이기 때문입니다.

 

게으름도 내 삶의 중요한 부분이라는 걸 알아 가는 저 스스로가 대견한 요즘입니다.

늘 반듯한 삶을 지향했던 예전의 삶보다는..

아직도 어설프지만, 촌부의 흉내를 내는 삶이 더 소중하다는 걸..

늦었지만 이제야.. 이제야.. 조금씩 알아 가는 어설픈 초부 촌부입니다~~~

내년 3월 이면, 제법 촌부 티가 났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

 

잘 먹고 가네~ 하시면서 하시는 말씀이..

"이사 갈 생각 말어~ 이젠 내 고향이다.. 생각 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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