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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별 가족의 글

무섭던 아빠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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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삿짐을 줄이려고 이것저것 버리고 이사를 하고 나니..

하루 이틀 지나면서 필요한 게 너무 많았습니다.

인터넷으로 생필품을 구입하고 싶어도 왜 그리도 인증 절차가 복잡한지요?

그러다 보니 근처에서 구입하기 힘든 생필품을 자주 막둥이 딸에게 부탁을 했습니다.

 

네.. 아무리 딸이라고 하지만 아빠 입장에서는 늘 미안합니다.

한 가정의 주부로.. 며느리로.. 직장인으로.. 바쁘고 힘든 딸에게

물품 구입 과정도 그렇고 경제적으로 큰돈이 아니더라도 수시로 부탁을 하면

누적되는 금액이 만만치 않아서 솔직히 부탁을 할 때마다 나름 심사숙고합니다.

 

큰 액수는 아니지만, 송금을 한 후에 부탁을 하고 싶은데.. 말도 안 듣고..

참으로 못난 아비입니다.. 어린 시절 뭐 하나 풍족하게 해 준 것도 없는 아버지인데..

하지만 이제는 한 가정을 꾸미고 잘 사는 딸들이 너무 대견하고 자랑스럽습니다.

 

지난주 잠깐 외출 후 집에 오니 택배 박스가 보입니다.

막둥이가 또 뭘 보냈습니다.

"막둥아! 제발 좀 이런 거 그만 보네~"

"응~ 보리싹이 좋다고 해서 ㅎ ㅎ 잘 챙겨드셩~^^"

 

언젠가 큰 딸이 블로그에..

어린 시절에 아빠가 너무 무서웠다는 글을 읽고 마음 한구석이 허전했습니다.

어두운 거실에서 딸아이의 글을 읽고 또 읽으면서 한참을 생각을 했습니다.

​............

 

"중학교는 무슨 중학교? 기술이나 배워라"..

제가 초등학교 졸업 식 후 아버님 말씀이었습니다.

아버지께 영어로 이름 석 자는 쓸 줄 알아야 기술을 배울 수 있다고 말씀을 드리고..

힘들게 허락을 받고 중학교 입학을 했습니다.

 

어린 나이에 모든 걸 혼자서 결정을 해야 했던 시절..

저는 그 당시 어느 누구와 의논을 할 상대가 없었습니다.

아버님 어머님은 너무 연세가 많으셨고.. 두 분 형님들은 너무나 먼 곳에 살았습니다.

 

한 번 내린 결정으로 잘못될 수 있다는 걸 어렴풋이 알았던 저는 암담했던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습니다.

철부지 나이에 진로를 결정하고, 자제력이 없으면..

이 험한 세상을 헤쳐 나갈 수 없다는 걸 철부지 나이에 어슴프레 알았습니다.

방학이면 친구들은 놀러 다녔지만, 저는 학비를 벌려고 공사장에서 일을 했습니다.

부실하게 설치한 화물용 승강기에서 친구의 사고를 목격 후 그만두었지만..

 

네.. 엄하게 키웠습니다.

제 어린 시절 스스로 모든 걸 헤쳐 나가야 했던 기억 때문에..

딸 들이지만, 강하게 키우고 싶었습니다... 이 험난한 세상에서 살아가려면..

 

 

31개월 외손녀입니다.

엄마가 "김치 맵지? 하고 물으면 도리질을 하는 맹랑한 녀석입니다~^^

 

요즘은 외손녀 사진을 보는 재미로 삽니다.

말괄량이 손녀가 보여주는 생명의 약동과 투명한 천진함으로 자동으로 미소가 지어집니다.

할아버지는 생명의 종착점을 향하여 달려가고.. 손녀는 새로운 세계로 들어오고..

그 무섭던 아빠는..

외손녀 앞에서는 천진난만한 할아버지가 돼가는 요즘입니다...

 

 

어제 비는 추적추적 내리는데.. 갑자기 사람 구경이 하고 싶어서 예당저수지로 향 했습니다.

이사 온 지 처음으로 예당 저수지 한 바퀴 돌았습니다.

코로나 때문인지.. 비가 내려서 그런지..

출렁다리는 한산하여 드라이브만 즐기고 왔습니다.

(사진은 핸드폰 작품입니다~^^)

 

 

드라이브 마무리는 칼국수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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