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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과 그림

배운성의 그림 '가족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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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운성(1900~1978)이란 화가가 있었습니다.

보통학교도 졸업하지 못한 가난한 집 출신이었지만 뜻밖의 행운으로 부잣집에 얹혀사는 집사 노릇을 하게 되고 일본 와세다 대학을 졸업 후 최초로 유럽에서 유학한 우리나라 미술가 1호의 인물입니다.

독일에서 미술에 심취해 있던 중 2차 대전이 발발.

그동안 그린 작품들을 그냥 놔두고 귀국을 했는데 당시 일제 말기였던 시절 친일 행적을 하기도 하였습니다.

그 뒤 해방 후 한국전쟁때는 월북을 하여 북쪽에서 작품 활동을 했는데 신의주에서 마지막 여생을 보냈다고 합니다.

 

친일에다가 월북 화가라 그동안 언급이 금지된 인물로 존재 되다가,

88년 월북문예인에 대한 해금 조치가 이뤄지고 그가 남기고 온 유럽의 작품들이 우연히 파리의 벼룩시장에서 유학 중이던 불문학자의 눈의 띄어 국내로 들어오게 되어 그의 이름이 다시 회자되기 시작했답니다.

 

그의 작품 중 단연 돋보이는 건 '가족도'라는 제목의 그림.

그가 식객으로 있던 부잣집의 가족을 그린 이야기도 있고 또 다른 해석으로는 그의 가족들을 그렸다는 해석도 있는데 암튼 이 그림에서 맨 왼쪽 두루마기에 진한 고동색 구두를 신은 이는 화가 자신입니다.

 

우리나라 근대기에 그려진 대가족의 초상화형 그림으로는 유일한 이 작품은 당대의 주거형태나 복식 형태를 연구하는 귀중한 자료가 되기도 한답니다.

 

 

 

배운성의 '가족도'

(문화재청 설명 글 : 이곳 )

 

배운성의 대표작인 가족도를 가만히 쳐다보고 있으면 여러가지 추억들을 주어 오게 됩니다.

옛날 어느 시골 집이든 대청마루 위에 주욱 걸려있던 사진들..

파리똥 묻은 캐캐한 왁꾸에 들어있던 어릴 적 내 모습이 주인공이 되어 있던 그 사진과 아버지 어머니 해인사 나들이 가셔서 찍은, 지금의 내 나이보다 휠씬 낮은 나이의 사진. 그 속에 아버지는 살풋 엄마의 손을 잡고 있었지요. 

가장 왼편 옆에는 할아버지와 할머니의 사진관 수정본인 흑백 사진이 걸려 있었구요.

 

 

 

한국의 아기(1933년)

 

 

 

 

성모자상(1930년대)

 

 

 

 

자화상(1930년대)

 

 

 

 

자화상(1930년대)

 

 

 

 

제기차기(1930년대)

 

 

 

 

팔레트를 든 자화상(1933년)

 

 

 

 

화가의 아내(1938)

 

 

 

 

노는 아이들, 팽이치기(1930년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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