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넋두리

조상님의 산소옆에서 희귀한 연리지(連理枝) 사랑나무를 만났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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긴 가을 장마가 끝나고 날씨가 모처럼 화창한 일요일..
서울과 창원에 있는 동생들과 조상님 산소의 벌초를 하고 왔습니다.

벌초(伐草)라는말은 다른 말로 금초(禁草) 또는 사초(莎草)라고도 합니다. 금초라는 말은 중부지방에서 주로 사용하는 말이나 '처삼촌 뫼에 벌초하듯...' 이라는 말 때문인지 몰라도 벌초라는 말이 격하되는 느낌에 요즈음은 남부 지방에서도 금초라는 말을 많이 쓰고 있습니다.

하지만 금초라는 말이 금화벌초(禁火伐草)의 준말로서, 무덤에 불조심하고 때맞추어 풀을 베어 잔디를 잘 가꾼다는 뜻을 나타내는 말이고 보면 시기적으로 음력 7월이 끝나 산소에 풀을 베는 행사는 벌초가 가장 바른 말이라 생각됩니다.

 

벌초 행사를 위하여  하루전날 일찌감치 형제들끼리 모여 모처럼의 회포도 풀었죠.
막내 동생은 술을 좋아하는 큰 형인 나를 위하여 만날때 마다 나름대로 특별한(?) 술이라며 한병씩 가지고 옵니다.
이날도 안동 어디에서 전통 주조로 만든 것이라며 별나게 생긴 술병을 가지고 와준 덕분에 형제들이 밤이 이슥해 지도록 세월을 거슬러 어릴때 이야기와 서로 자랄때 이야기를 나누며 술병을 비웁니다.

 

조상님들의 산소는 호수가 가득히 내려다 보이는 양지 바른곳에 내리 나란히 윗대부터 정렬이 되어 있습니다.
예초기를 메고 번갈아 교대로 작업을 합니다.
몇일간 연일 내린 비로 인해 풀들이 엄청나게 우거져 있습니다. 

 

벌초 하다가 벌들에 쏘인다는 뉴스를 자주 접하게 되곤 하는데 일단 벌초를 하기전에 그 자리를 한번 빙 둘러 보는 것이 좋습니다.
그러다가 벌이 날라다니는 것을 보게되면 다시 그곳을 잘 확인하여 벌집이 있는지 보고 벌집이 있다면 그 주위의 반경 약 2~3m정도는 벌초를 미루어 두는 것이 좋습니다.
풀이 마르고 날씨가 약간 쌀쌀하면 벌이 집안으로 들어가 버리기 때문에 그때 다시 와서 미루어 둔 곳을 벌초하고 벌집도 메워 버리면 됩니다.

 

벌초를 끝내고 조상님께 간단히 인사를 올리고 산소를 빙 둘러싸고 있는 소나무 숲 밑에서 가지고 온 음식을 나누어 먹고 있는데 바로 앞의 소나무가 눈에 들어 옵니다.
분명히 아래에는 두개의 나무인데 위로 올려보니 하나의 나무로 붙어 버렸습니다. 말로만 듣던 연리목(連理木)입니다.





 

가까이 자라는 두 나무가 맞닿은 채로 오랜 세월이 지나면 서로 합쳐져 한 나무가 되는 현상을 연리(連理)라고 합니다. 두 몸이 한 몸이 된다하여 남녀간의 애틋한 사랑과 흔히 비유하기도 합니다. 알기 쉽게 '사랑나무'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두 나무가 자라면서 나뭇가지가 서로 이어지면 연리지(連理枝), 줄기가 이어지면 연리목(連理木)이라고 합니다.

 

나무의 모양새도 신기하고 더군다나 따로 나서 자란 나무가 서로 합쳐져서 한 나무가 되어 버린 것이 보면 볼수록 경이롭습니다.
간혹 사진에서 연리지를 보면 거의 보면 중간에만 붙어 있거나 가지가 자라 이웃나무에 붙어 버린 경우는 보아 왔어도 이렇게 두개의 나무가 하나로 완전히 합쳐져 버린 것은 썩 드문 경우 같습니다.
사진으로 봐서 혹 뿌리가 서로 같은 것이 아닌가 하고 보입니다만 두나무는 분명 서로 따로 되어 있었습니다. 나무의 아랫둥치 크기는 각각 지름이 약 25~30cm 정도 되는 것 같습니다.
중간에 약간 올라온 줄기 부분입니다. 위낙에 나무들이 많고, 숲인지라 나무가 서로 햇빛을 보려고 위로만 커 올라 하늘로만 굉장히 커 버린 키다리 소나무 입니다.

 

그런데 더욱더 신기하고 이상한 것은 이렇게 연리목을 바로 산소 가까이 두고 이제까지 아무도 보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이곳에 산소를 쓴 지 20년이 넘고 그동안 일년에 수차례에 걸쳐 아주 많은 일가들이 왕래를 하였는데도, 더군다나 성묘나 묘사가 끝나면 항상 앉아 쉬는 자리 바로 옆인데 어떻게 이제까지 보이지 않았는지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불가사이가 있다면 이건 정말로 불가사이 한 일입니다.

 

형제들이 모여 그 나무를 보며 연리지 나무도 물론 신기하지만 바로 옆에 둔 나무를 20년이 넘게 못 보고 있었다는 것을 더 이상해 했습니다.
아마도 조상님 내외분들의 지고지순(至高至順)한 사랑을 후손들에게 본(本)으로 보여주고자 어느날 문득 형상화 되었다고 밖에 이해할수  없을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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