넋두리

영농 일기

두가 2022. 7. 27. 21:44

 

2021년 봄 어느 날.

 

밭을 부치고 있던 어르신이 힘이 딸려 못하겠단다.

동네 아재한테 부탁을 했다.

"아재 우리 밭 좀 부치 주이소"

돌아오는 대답이,

"내 밭 니 부치 묵으이소. 비료 다 대 줄께."

이전에는 남의 밭 부쳐 먹으려면 수확 농작물의 반 정도는 도지로 지불하곤 했는데 세상이 변하여 요즘은 그냥 공짜로 맘대로 부쳐 드시라고 하여도 할 사람이 없다.

 

할 수 없이 거금을 들여 골을 타고 시커믄 비닐을 사다가 덮었다.

그리고 합천 장에 가서 고구마 모종을 사다가  길게 다섯 골을 심었다.

 

2021년 초가을 어느 날.

 

빈  박스 20개와 온 식구 총동원하여 고구마 수확에 나섰다.

너무 깊게 박혀 있는 고구마를 빼 올린다고 김여사 외 두 사람이 손에 물집이 생겼다.

수확한 고구마는 두 박스..

 

 

새알만 한 고구마 하나까지 아까워서 모두 캤다.

아이들은 모처럼 농장 놀이에 즐거워했다.

집에 와서 김여사는 몸살이 났다.

수확한 두 박스의 고구마를 차에 싣고 집으로 왔다.

한번 삶아 먹고 다시는 먹지 않았다.

 

 

2022년 새 봄

 

올해는 김여사가 결심을 하였다.

이곳에다 배추와 마늘, 그리고 고추 등을 심어서 올해 김장은 무공해로 100% 공짜로(?) 함 해 묵어 보자는 프로젝트.

 

1차로 동네 아재를 불러서 20만 원 주고 트랙터로 밭을 갈아엎었다.

겨울 동안 지저분하게 보이던 밭이 그야말로 꿈의 밭이 되었다.

 

근데..

근데..

하루 다르게 계산이 달라진다.

관리기 사야 되고

관리기 보관할 농막 지어야 되고 

농막 있으믄 전기 넣어야 되고

똥 싸야 되니 간이 화장실 있어야 되고 지하수 올려야 되고 트럭도 한대 있어야 되고 약 쳐야 되고 잡초 뽑아야 되고 일주일에 한 번씩 와야 되고... 으아.

 

그냥 우리 해남 배추 사 먹고 남해 마늘로 김장 담자.

 

 

거창한 김장 프로젝트를 그냥 포기할려니 갈아 둔 밭이 아까워서.

한쪽 옆으로 호박을 25 구뎅이 심었다.

가을에 누런 호박을 수백 개 수확하여 이웃들 나눠주는 꿈을 꾸면서..

 

 

그리고 한쪽 가장자리에는 과실수 묘목을 대략 30여 그루 심었다.

믿을 수 있는 산림조합에서 묘목을 샀는데 종류별로 두 그루씩 모조리 구입.

뭐가 뭔지 몰라 나무에다가 스티커를 붙여서 묘목 이름을 적어 두었는데 스티커의 소중함을 모르는 동생들이 함부로 묘목을 취급하는 바람에 나무에 붙여둔 스티커가 달아나 버렸다.

열매가 열려 봐야 먼 나무인지 알 수 있다.

 

아마도 5,6년 후에는 과일 먹어 치우기 감당을 못할 것 같다는 생각이...

더욱더 기발한 생각은 나무 옆에 돋아나는 잡초를 일거에 방지하기 위하여 그 위에다 건축용 보호망으로 모조리 덮었다.

들리는 이야기로는 이렇게 하여 두면 뱀들의 천국이 되어 보호망 밑으로 엄청난 뱀들이 돌아 댕긴다고 하는데 그건 차후 문제..

 

 

나무를 심고 나니 가끔씩 와서 물을 공급해야 하는데.

지하수 견적을 내니 800만 원을 달라고 한다.

그래서 밭 가운데 저수지 하나를 팠다.

비가 내리면 경사면으로 빗물이 흘러서 고이는 형식이다.

김여사는 대책 없이 밭을 서성이고 있다.,

 

 

두어 달 후.

올해 극심한 가뭄으로 호박 농사가 흉년이 될 것 같다.

생존한 구뎅이가 몇 되지 않는다.

지구별 절친분들한테 나눠 줄 호박 개수가  10개에서 1개로 줄어들었다.

자구책으로 호박 구뎅이 옆에 들깨를 심었다.

귀가 얇은 김여사가 어디서 들었다는데..

"들깨는 아무 데나 심어도 잘 된대...."

 

 

다행히  30여 그루 심은 묘목은 서너 그루 빼고는 모두 생존해 있다.

몇 년 뒤 과일 종류는 모두 먹을 수 있을 것 같다.

근데 잎에 벌레 구멍이 많다.

 

 

몇 시간 걸려 파 둔 저수지에도 물이 고였다.

혹시 산돼지가 내려와서 익사할까 걱정이 된다.

 

 

2022년 새 봄에..

밭 옆 매실이 토실토실 익어간다.

모두 다 따면 200kg도 더 될 것 같다.

누구한테 나눠 줘야 하나 걱정이다.

 

 

2022년 6월 중순.

25구뎅이 심은 호박이 서너 군데 생존해 있다.

블친한테 나눠 줄 호박이 없을 것 같다.

 

매실은 바람도 불지 않았는데 모두 다 떨어졌다.

겨우 반 박스 정도 수확했다.

 

 

저수지 물을 퍼다가 호박 구뎅이도  주고 나무에도 준다.

제발 더 이상은 손실이 없기를...

 

 

2022년 초 여름.

 

깨도 올라오고 잡초도  올라온다.

한켠에 심어 둔 깨를 응원한다.

잡초보다 더 빨리 자라라고..

 

 

2022년 여름

 

뭐가 뭔지 모르겠다.

뭐가 먹는 건지 뭐가 잡초인지..

 

 

구석에 있는 호두나무는 아직 싱싱하다.

 

 

우리가 심지도 않은 강냉이는 어떻게 올라 온 것일까?

정말 궁금하다.

 

 

2022년 7월 23일

 

들깨와 강냉이와 호박이 심어져 있는 구역을 빼고.

예초기로 풀을 날렸다.

 

 

그나마 서너 개 달려 있는 호박 중 가장 잘 생긴 넘을 예초기로 생채기를 내어 버렸다.

강냉이 속이 너무 궁금하여 하나 따서 까 보니 아직 맹탕이다.

괜히 아깝다.

더 아까운 것은 예초기 작업하다가 묘목 네 개를 날려 버린 것이다.

 

 

작년 경험으로는 여름까지는 펄펄하던 호두가 가을 되니 슬슬 떨어져 버리던데 면에 가서 농촌 지도사를 만나 봐야겠다.

 

 

예초기로 널찍한 밭 잡초를 싹 밀고 나니 정말 개운하다.

이웃 보기 민망했는데 이 정도 해 두면 욕은 면할 것 같다.

아이들 데리고 와서 축구 놀이해도 되겠구.

 

 

시골집에 오니 아흔 모친도 이제 기력이 딸리는지 뒷밭에 소홀하신다.

젊은 나도 이런데.

 

 

뒷산 밤나무가 200여 그루였는데 이제는 올라갈 수조차 없다.

엄마의 놀이동산이었는데..

밤 한 톨 주우면 100원.

이걸 하루에 서너 포대기 주워 농협에 전화하면 와서 싣고 가고 돈을 입금시켜 주었다.

지금은 겨우 뒷산으로 오르는 길목으로 굴러 내려온 밤 몇 알을 주어서 아버지 제사상에 올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