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 일기

청도 유천마을의 아날로그 추억 여행

두가 2023. 12. 30. 10: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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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도 가장 남쪽에는 동창천이란 내를 사이에 두고 밀양과 경계를 이루는 제법 큰 마을이 있답니다.

이곳 마을은 이전에는 내호리 유호리등으로 나눠 불렸는데 지금은 거의 유천마을로 부르고 있구요.

하지만 공식 지명으로는 유천이란 곳은 없답니다.

 

예부터 교통의 요지이기도 했는데 강점기 시절에는 경부선 유천역이 있던 곳이었고 하천가의 너른 들판은 주변의 마을들을 풍요롭게 했던 곳이지요.

살기 좋았던 그 시절, 5일마다 열리는 유천장은 청도와 밀양에서는 알아주는 대목장이었습니다.

그 시절에는 밀양장보다, 청도장보다 이곳 유천장의 규모가 더 컸다고 하네요.

사람과 물산의 이동이 활발했던 유천은 이제 그 풍요로움은 주변의 도회지에 넘겨주었지만 그 시절 풍미했던 일부 건물들이 남아있어 추억의 여행 장소로 아주 멋진 곳이 되었답니다.

청도를 제 2의 고향으로 생각하다가 팽 당한 전유성씨가 이곳 유천을 그렇게 탐을 내었다고 하는데...

시간과 추억여행으로 찾아보는 곳이네요.

 

 

유천마을 위치 : 이곳

 

 

 

유천마을은 유호마을과 내호마을 그리고 인근에 있는 몇 개의 마을을 합쳐서 통상 부르는 이름입니다.

가장 중심이 되는 내호리 앞에는 동창천과 청도천이 만나서 개울이 넓어지는 곳이고 마을 안쪽으로는 읍내 못잖은 반듯한 길이 나 있고 그 주변으로는 유천 우체국, 유천 초등학교, 유천농협등 동네 이름과는 무관한 유천이란 지명을 모두 사용하는 가게나 관공서가 모여 있습니다.

유천(楡川) 이란 지명은 행정 구역과는 상관없이 사람들은 이곳에 느릅나무가 우거지고 강이 있어 그렇게 부른다고 합니다.

 

 

남매 시조 시인으로 유명한 이호우와 이영도의 생가 건물을 가장 먼저 구경해 봤습니다.

이호우가 오빠이고 여영도가 여동생입니다.

복원한 생가건물보다는 돌담장이 너무 예쁘고 멋지네요.

마을 앞 천변에는 이 두 사람을 기린 오누이공원이 있구요.

 

 

마을은 이곳저곳에 여러 가지 벽화를 많이 그려 놓았네요.

여성분들이 쌀가마니를 운반하는 모습이 이채롭습니다.

 

 

엿장수..

옛날 우리 시골에서는 리어카도 없어 엿장수가 지게에 엿판을 얹어서 다니곤 했지요.

우리 집에 동네 중앙이라 엿장수 오면 늘 아래채 담벼락에 엿판을 세워  두고 가위질을 했는데 동네 꼬맹이들이 집에 있는 고물들을 모두 들고 나와 엿과 바꿔먹던 아련한 추억이.

엿과 바꿔먹던 품목들은 주로 고무신, 됫병, 쇳조각..

 

 

이곳 유천마을에는 영신정미소가 있습니다.

사진 진사분들이 즐겨 찾는 곳이라고 하구요.

아주 오래된 정미소 시설인데 아직도 현업으로 가동 중이라 합니다.

 

 

얼마 전에 찾았던 함안의 부동정미소보다 더 정겹게 느껴지는 풍경입니다.

정미소는 상시 열려있어 누구나 구경할 수 있게 해 두었네요.

 

 

동력 연결 장치로  V벨트가 아닌 피댓줄이 아직도 남아있다는 게 신기합니다.

다만 원동력은 발동기가 아닌 모터로 시작이 됩니다.

 

 

 

 

 

 

 

 

옛날 고향의 발동기 펑펑 소리 내며 돌아가고 온갖 장치들이 움직이며 소음과 함께 곡식들이 정미되면서 품어내는 쿰쿰하고 향긋한 그 내음들이 한순간에 떠 오릅니다.

 

 

 

 

 

 

 

 

30년 전 1992년에는 쌀 20kg 한포대기에 일반미 24,000원. 통일미 14,000원 했네요.

쌀 증산으로 개량한 통일미..

맛이 별로였지요.

 

 

 

 

 

 

 

 

아마 이곳 영신정미소도 그렇게 오래 현업으로 유지가 될 것 같지는 않습니다.

아련한 옛 정미소 추억을 만나보고 싶은 분은 가까운 시간 내에 이곳 찾으셔야 될  것 같구요.

 

 

작은 식당인데 35년 전통이란 글귀가 눈에 확 들어옵니다.

하루에도 수많은 업종이 폐업을 하고 또 생겨나는 와중에 35년이란 시간은 결코 얕은 시간이 아니지요.

우후죽순처럼 생겨난 커피집 폐업이 올해 1만 곳이 넘는다고 하는데...

 

 

청도 밀양보다 더 날렸던 유천극장.

그 시절 인근에서 극장이 있던 곳은 이곳밖에 없었다고 하는데 줄을 서서 관람을 했다고 합니다.

1970년쯤 개관이 되었다고 하네요.

그 뒤 TV의 급격한 보급으로 인하여 1990년대 문을 완전히 닫았다고 하는데...

 

 

현재는 극장을 말끔히 재 정비하여 지역민들한테 무료로 영화를 상영해주고 있습니다.

바로 그저께 재 개관을 했네요.

지역민뿐 아니라 아무나, 누구나 공짜.

 

 

요즘은 디지털로 영화를 상영하는데 주로 지나간 인기작품들을 새로 보여주고 있네요.

 

 

극장 앞 풍경입니다.

우리 학교 때는 단체 관람이란 게 있어서 학교에서 줄을 서서 극장까지 이동하였던 추억도 있네요.

 

 

그때는 청소년 입장이 불가한 영화를 구경하면 학교에서 정학을 당하곤 하던 살벌한 시기였구요.

 

 

극장 앞에 있는 중앙소리사도 이곳에서 50년 넘게 장사를 했다고 합니다.

내부를 들여다보니 가게의 역사를 대변하는 오래된 집기와 물건들이 보입니다.

 

 

옛날에 TV가 처음 나오던 시절..

위와 같은 수상기는 아니고 발 달린 전축처럼 생긴 TV 앞에서 온 가족이 둘러앉아 연속극을 보던 시절..

 

 

옛날에  동네 가스나(?)들 납작한 돌을 들고 놀던 장면들이 떠 오르네요.

 

 

 

 

 

 

 

 

 

 

 

 

 

 

 

 

 

옛날에는 약방이라고 있었답니다.

이건 강점기에 생긴 제도인데 시골에서 약을 구하기 힘든 지역에는 약사 면허가 없어도 약방 허가를 내어서 약국을 운영하게 했답니다.

이건 당대에만 허가가 나는 것이라 지금은 거의 사라졌구요.

 

 

이건 자은도 빠마머리 동백나무를 벤치마킹한 것 같네요. (여행기는 이곳)

벽화와 감나무를 맞춰 두었습니다.

 

 

이것도 화장실 굴뚝과 고구마 굴뚝을 맞춰서...

 

 

소 맥이러 다니던 시절.

소 등에 타고 까불다가 떨어져 다친 부랄 칭구 생각이 납니다.

 

 

 

 

 

 

 

 

토종 갱상도분들은 쉽사리 이해가 가는 사투리인데 타지방에서는 번역이 필요할듯한 내용입니다.

 

새복부터 머구가 아를 물었제 - 새벽부터 모기가 아이를 물었지?

건질지 말라카고 춤이라도 발라줘라 - 긁지 말라고 하고 침이라도 발라 주거라.

내 새끼 떠맡긴 죄로 알겠어요. 어머님. - 내 새끼 떠맡긴 죄로 알겠어요. 어머님.

 

 

 

 

 

마을 앞에 흐르는 청도천.

아래쪽으로 동창천과 만나 큰 내를 이루게 됩니다.

건너 쪽은 밀양.

 

 

원래 건너편에 있던 역사인데 이곳으로 옮겨와 세트장으로 만들어 두었네요.

 

유천역에 대한 기록은 다음과 같이 되어 있습니다.

 

말 그대로 유천역은 사람과 함께 물자가 모여서 이동하는 주요 교통의 요지였던 것이다.

2000년 초반까지 경부선 철로는 신도 마을을 지나 유호리를 거쳐 밀양 여수동 쪽으로 연결되는 곡선 주로였던 곳에 자리한 역사였지만, 지금은 직선화되면서 이름이 바뀌고 역은 이설 되었다.

 

일제 강점기 때 유천역에 탄환 폭발 사고로 역사가 모두 전소되는 사건이 발생하였다.

1952년 1월 3일 6·25 전쟁 중 석탄 생산을 위해 개조된 목탄 기관차가 유호 철교를 지나가던 중 추진력이 약해 유천역으로 후진하였다. 이때 탄환을 수송 중인 군용차가 역으로 들어오면서 정면충돌한 것이다.

새벽 5시경 어두운 상태에서 양쪽의 기차를 발견하지 못하여 서로 정면충돌하게 되고, 탄환이 연쇄 폭발되면서 주변으로 화재가 번져 나가 인근 주민들까지 피난을 가게 되는 사건이 발생하였다.

이 사건으로 역사가 모두 전소되고 역무원 수명이 사상되었다.

1956년에 신 역사를 다시 준공하였지만, 이후 오례산 기슭 반원형 철길이 폐쇄되고 직선화되면서 2000년 ‘유천역’이란 이름은 사라지고 상동역으로 역명이 바뀌었다. 그리고 직선화되면서 이설 된 과거 유천역의 역사와 플랫폼에는 민가가 들어서 지금은 그 흔적을 찾기가 쉽지 않다.

하지만 유천역에 대한 기억은 이 지역 사람들에게는 생생한 기억으로 남아 있다. 

 

 

유천마을에서 올려다보이는 산이 오산인데 저곳 좌측이 그 유명한 한재 미내리 재배지역.

요즘 딱 제철인데 휴일 찾으면 완전 붐비는 곳입니다.

 

 

웃을 일 없으시면 청도로 오라이~!!

 

 

추억의 담배포.

 

 

 

아직도 영업 중인 대양철공소.

 

 

이건 철공소 앞집 철물점 안의 풍경

 

 

청춘 미용실

 

 

 

 

 

한때를 지역 주민의 건강을 책임졌던 약방.

그 시절에는 최고의 인텔리 건물이었네요.

 

 

 

 

 

 

 

 

양조장이었던 건물

영신정미소 바로 옆 건물입니다.

 

이곳 유천이 교통의 요지가 되다 보니 같이 번성한 게 앙조장.

강점기인 1910년부터 1940년까지 약 30년 동안 이곳 유천에는 총독부 허가를 받고 영업을 한 양조장이 6개나 있었다고 합니다. 이 외에도 북한 사리원에서 누룩 원료인 밀을 구매하여 이곳에서 중간 공정을 거친 다음 기차를 통해  전국 양조장으로 배급을 하는 유천곡자회사가 있었다고 하구요.

 

 

현대사회의 이기에 물들어 더하기빼기만 골몰하는 분들한테는 전혀 의미 없는 여행지이지만 가끔 옛 추억에 젖는 분들한테는 꽤 멋진 곳입니다.

이곳의 공식명칭은 유천마을 근대문화거리이구요.

위 사진의  '남은 쥐를 모두 잡자!' 라는 플래카드는 달아둔 것일까요? 그린 것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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