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월초파일, 산불 화마로 잿더미가 된 고운사에 가다.
사월초파일, 부처님의 생일날 절에 찾아오시는 분들은 대개 즐거운 얼굴인데 오늘 의성 고운사를 찾은 분들은 모두 얼굴이 일그러집니다.
주변 풍경이 참담하네요.
아름답고 예쁜 절집이었던 고운사가 이번 의성의 산불로 큰 피해를 입었습니다.
이번 화재로 보물인 연수전과 가운루를 비롯해 연지암, 해우소, 정묵당, 아거각, 약사전, 연수전, 고운대암, 극락전, 만덕당, 종무소와 종각, 우화루, 행사채, 수월암, 백련암 공양간, 일주문, 숭가대, 템플관 등이 소실되었습니다.
다행히 주전인 대웅보전이 화마를 피했고 삼성각, 명부전, 나한전, 조실채, 고금당선원, 고불전, 사천왕문, 해우소, 승가대 등은 불길 속에서 살아남았네요.
화재 당시 사찰내의 열기가 1000˚C가 넘었다고 하는데 이곳에서 고운사를 지키기 위해 마지막까지 사투를 벌인 10명의 소방관 이야기가 화제가 되기도 했답니다.(내용 보기)
(고운사 화재 당시 소방관 활동 장면 - 보기)
대한불교조계종 제16교구본사로서 신라의 의상대사가 창건한 고운사는 1300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곳이지요.
절집으로 들어가는 입구가 비포장으로 되어있고 커다란 노송들이 도열되어 있어 얼마나 운치가 있는지 모른답니다.
작년 초파일에 찾아가서 기분 좋게 둘러봤는데 오늘은 마음도 몸도 가라앉아 버리네요.
작년 초파일 둘러 본 고운사 보기
2013년 초파일 무렵 둘러본 고운사 보기

요즘은 절이 관광지 비슷하게 되어 일반인들이 소풍삼아 찾아가곤 하여 쉽사리 드나들게 되어 있지만 아직까지 오직 수행만을 위해 산문을 굳게 닫아걸고 있는 곳도 많답니다.
그런 곳들도 부처님의 탄생일인 사월초파일만은 산문을 개방하여 일반인들의 방문을 허용하고 있지요.
가장 대표적인 곳이 문경의 봉암사이구요. (보기 1, 2)
팔공산 은해사의 비구니 수행암자인 백흥암도 일 년에 단 하루 초파일만 산문을 열어 두지요.
오늘 그곳에 가려다가 방향을 바꾸어 고운사로 향했네요.

고운사 들러가는 길은 포장이 되지 않아 아주 걷기 좋습니다.
커다란 노송들이 반기는 곳인데 일부는 이번 화마를 피하지 못했네요.

초파일을 맞아 이곳 고운사를 많은 분들이 찾아오고 있네요.
주변의 풍경이 아무말을 할 수 없게 만듭니다.


살아있는 나무들은 온통 초록빛으로 물들고 있는데 화마로 타버린 나무들은 잿빛으로 변해버렸습니다.

타지 않고 남아있는 일주문이 반갑네요.
그 옆에는 오늘 점심공양을 위해 긴 탁자가 마련이 되었습니다.

저 멀리 대웅전이 보여 우선 반가움이 앞서네요.

무심한 꽃들은 마구 피어있구요.

하지만 조금 더 진행하니 가슴이 탁 막힙니다.

예쁜 건물이었던 2층 누각 가운루가 흔적도 없습니다.
그 앞의 맛난 차를 끓여주던 곳도..
(이전 사진 보기)

가운루 기둥을 받치고 있던 돌기둥이 이렇게 되어 있네요.
엄청난 열기 때문이었겠지요.

모두 타 버리고 기왓장만 가득합니다.

우화루와 종각도 흔적이 없고요.
다만 범종만 떨어져서 바닥에 놓여져 있는데 이것도 엄청난 열기로 갈라져 있습니다.
그날 이곳이 불에 타고 있을 때 열기가 1000도에서 1500도였다고 하네요.

우선 대웅전에 들어가서 부처님께 인사를 드렸습니다.
평소에는 지갑에서 조금 짜게 꺼내는데 오늘은 조금 더 썼네요.
저는 불자는 아니지만 산에 다니다 보니 친근감이 많이 느껴지는 부처님이네요.

오늘 부처님 오신 날 법요식을 위한 행사가 있구요.
아기부처님 관욕을 위한 관불의식이 준비되었습니다.

법요식은 제법 한참이나 거행이 되었는데 딱 싫은 건..
참석한 중요 내빈의 축사.
이분들의 입발린 축사가 이어지는 동안에는 자리를 피합니다.

시작무렵..
범종이 없어 녹음한 범종의 종소리로 법요식은 시작되었답니다.

산불은 절의 전각들과 수 m 가까이 와 있는 곳이 많습니다.
절을 사수하기 위하여 정말 고생을 많이 했을 것 같네요.

화마에서 천만다행으로 피해 간 나한전.
지금의 대웅전 자리에서 본당 역할을 하다가 이곳으로 옮겨와 나한전으로 변경된 것입니다.

절에 들리면 맘에 드는 곳 한 군데만 들어가서 인사를 하는데 오늘은 나한전의 부처님께도 삼배를 드렸네요.
대개 나한전은 부처님의 제자들을 모신 곳인데 이곳은 주불로 석가모니 부처님이 앉아 있습니다.
그 옆으로 자그마하게 나한들이 자리하고 있고요.

새롭게 채색이 되는 나무들과 불타서 생명을 잃은 나무들이 묘한 대조를 이루네요.




다시 둘러보는 범종의 모습이 참 마음 아프게 하네요.

전각 안에 있는 귀중한 문화재들은 화마가 닥치기 전에 스님들과 관계자들이 모두 힘을 합쳐 안전한 곳으로 피신을 시켰다고 하는데 전각들은 어쩔 수 없이 소실이 되었습니다.

가장 안타까운 장소네요.
임금을 어첩을 봉안했던 연수전이 있던 곳입니다.


약사전도 흔적도 없구요. (보기)

다행히 명부전은 온전합니다.

삼성각 옆으로는 불길이 바로 곁까지 왔었네요.

화장실 건물에 갇혀있던 나비를 날려 보낸 작년의 추억이 있는데 그곳도 다 타버렸습니다.

삼성각에서 내려다본 풍경
이런저런 건물들로 꽉 차 있었는데 훵합니다.

삼성각은 기적이라고밖에 할 수 없네요.
불이 바로 곁에까지 왔는데도 멀쩡합니다.

이번 화마로 큰 피해를 입은 곳이라 매스컴에서도 관심이 많습니다.

주지스님의 법문이 시작되었네요.
말씀을 찬찬히 듣습니다.

고운사 등운 주지스님.
고운사는 이번 산불로 전각 30개 동 중 21개 동이 전소되었다고 합니다.
그중에는 나라의 보물인 연수전과 가운루도 있구요.
그러나 특이하게도 석가여래를 모신 대웅전과 지장보살을 모신 명부전 그리고 칠성신, 독성신, 산신령님을 모신 삼성각은 이번 화마에서 모두 살아남았습니다.
모두가 이곳 고운사에서는 중요하게 여기는 신의 영역인데 그중 지장보살을 모시는 명부전은 지옥에서 고통받는 중생 구제를 위하여 성불을 포기한 지장보살을 모신 곳이지요.
중생들이 죽어서 저승으로 갈 때 지은 죄를 심판받는 장소라고 생각하면 되구요.

아주 여러 곳에서 이번 산불로 큰 피해를 당한 고운사를 응원하고 있었답니다.
원력이라는 것이 부처님의 힘인데 그 힘으로 고운사가 다시 이 세상에서 가장 예쁜 절집으로 거듭나길 바래 봅니다.

오색의 꽃은 고운사의 아픈 상처를 아는지 모르는지 피어납니다.
알고 있겠지요.
그래서 이렇게 피고 있겠지요.

절에서 공양을 하고 나오는 길.
옆눈을 돌리기가 민망스러운...
부처님 오신 날입니다.

고운 최치원 문학관 옆의 잔디밭..
이건 멀쩡한데..

고운사 바로 아래 있는 최치원 문학관은 모두 불타버렸네요.
신식 건물에 외관만 나무로 했는데 그 나무들이 모두 타 버리니 이렇게 속살만 남았습니다. (이전 사진 보기)


되돌아오는 길..
도로 주변의 마을들이 처참합니다.
불타버린 집, 불타버린 축사..
마을 인근의 공공 공원에다 임시 주택을 지을 기초공사를 하는 모습도 보이네요.

어디를 둘러봐도 화마의 자국이 보입니다.
얼마의 시간이 흘러야 이 장면이 치유가 될까요?
정말 사소한 불씨 하나가 엄청난 재난이 된 장면을 보고 있으니 가슴이 답답해지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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