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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과 그림

미완성을 위한 연가 - 김승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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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의 아름다움이 익어가기 위해서는
하나의 슬픔이
시작되어야 하리
하나의 슬픔이 시작되려는
저물 무렵 단애 위에 서서
이제 우리는 연옥보다 더 아름다운 것을
꿈꾸어서는 안 된다고
서로에게 깊이 말하고 있었네

하나의 손과 손이
어둠 속을 헤매어
서로 만나지 못하고 스치기만 할 때
그 외로운 손목이 할 수 있는 일은
다만 무엇인지 알아?
하나의 밀알이 비로소 썩을 때
별들의 씨앗이
우주의 맥박 가득히 새처럼
깃을 쳐오르는 것을
그대는 알아?

하늘과 강물은 말없이 수천년을 두고
그렇게 서로를 쳐다보고 있었네
쳐다보는 마음이 나무를 만들고
쳐다보는 마음이 별빛을 만들었네
우리는 몹시 빨리 더욱 빨리
재가 되고 싶은 마음뿐이었기에
어디에선가, 분명,
멈추지 않으면 안 되었네,
수갑을 찬 손목들끼리
성좌에 묶인 사람들끼리

하나의 아름다움이 익어가기 위해서는
하나의 그리움이 시작되어야 하리,
하나의 긴 그리움이 시작되려는
깊은 밤 단애 위에 서서
우리는 이제 연옥보다 더 아름다운 것은
필요치가 않다고
각자 제 어둠을 향하여 조용히 헤어지고 있었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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