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과 그림
2020. 11. 8.
나뭇잎 편지 - 복효근의 시
누가 보낸 엽서인가 떨어져 내 앞에 놓인 나뭇잎 어느 하늘 먼 나라의 소식 누구라도 읽으라고 봉인도 하지 않았다 누군가의 손길이 펼쳐놓은 한 뼘 면적 위에 얼마나 깊은 사연이기에 그 변두리를 가늠할 수 없다 가장 소중한 것들은 이렇게 발음할 수 없다는 듯 가장 깊은 사랑은 다만 침묵으로만 들려줄 수 있다는 듯 글자는 하나도 없어 보낸 이의 숨결처럼 실핏줄만 새겨져 있어 아무나 아무렇게나 읽을 수는 없겠다 누구의 경전인가 종이 한 장의 두께 속에서도 떫은 시간들은 발효되고 죄의 살들이 육탈하여 소멸조차 이렇게 향기로운가 소인 대신 신의 지문이 가득 찍힌 이 엽서는 보내온 그이를 찾아가는 지도인지도 모른다 언젠간 나도 이 모습으로 가야 하겠다 복효근 시인 1962년 남원, 현재 중학교 교사로 재직 중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