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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 이야기

세계 보도 사진전 대상작품 모음 (1955년부터 ~ 2011년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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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스테르담에 본부가 있는 세계보도사진재단(WPPF. World Press Photo foundation)에서는 해마다 세계보도사진을 수상하고 있습니다.
이 재단은 비영리단체로서 1955년 네덜란드 왕실의 후원으로 사진작가협회에 의해 설립되었지요.
이 재단은 매년 전세계 사진기자를 대상으로 세계보도사진전을 열고 수상작을 모아서 6개국어로 된 책자를 발행합니다.
보도사진에서는 가장 권위있고 인정을 받는 사진전입니다.
아래는 이 단체에서 해마다 실시한 사진응모에서 최고의 영예로 수상한 작품들을 모은 것입니다.
1955년 부터 작년 2011년까지인데 그 중 세번은 수상작이 없어 빠졌습니다.
이런 보도사진들은 그 배경과 내용을 모두 알아야 완전한 이해를 얻을 수 있는데 내용이 좀 미흡합니다.
출처는 http://www.buzzfeed.com 이곳입니다.
내용 중에 아주 참흑한 사진이 있습니다. 추려낼까 하다가 수상작이라는 타이틀을 숨기는 것도 그렇고 하여 원본대로 모두 올려 놓았습니다.
각별한 이해와 참고를 바랍니다.

덴마크의 Volk Møll 레이스 코스에서 열린  Motorcross World Championship의 오토바이 경기에서 사고가 발생하였습니다.(Mogens von Haven)



1956년

2차대전시 독일과 소련의 전투에서 소련에 포로가 된 독일아버지와 그의 딸이 재회하고 있습니다.
전쟁이 끝나고 10년만의 재회에서 그의 딸은 1살 이후 아버지를 처음 보고 있습니다. (Helmuth Pirath)



1957년

도로시 가운츠(Dorothy Counts)란 여학생이 흑인 최초로 일반고등학교인 해리 하딩(Harry Harding) 고등학교에 입학하여 등교하는 장면입니다.
옆과 뒤로 백인 아이들이 조롱하는 모습이 보여집니다.(Douglas Martin)



1958년

National Football Championship에서 체코의 프라하(Prague) 와 슬로바키아의 브라티슬라바(Bratislava)팀이
악천후 속에서 경기하는 장면입니다.(Stanislav Tereba)



1959년에는 수상작이 없습니다.



1960년

일본의 극우파 학생인 야마구치 오토야(山口 二矢)가 도쿄 히비야공회당(Hibiya Hall)에서 단상으로 뛰어올라
당시 야당이었던 일본사회당 아사누마 이네지로(浅沼稲次郎) 위원장을 칼로 찔러 암살하는 장면입니다.(Yasushi Nagao)



1961년에는 수상작이 없습니다.



1962년

베네주엘라의 Puerto Cabello해군기지에서 베탄코트(Bétancourt)대통령 규탄시위로 총을 맞은 병사가 Luis Padillo신부님에게 마지막으로 매달리고 있습니다.
총알이 날아 온 방향을 쳐다보는 신부님의 원망어린 표정이 인상적입니다.(Héctor Rondón Lovera)



1963년

63년 6월 11일 남베트남에서 불교 승려인 Thich Quang Duc이 베트남 정부의 종교 탄압에 항의하기 위해 스스스로 분신하고 있습니다.(Malcolm W. Browne)



1964년

지중해 사이프러스 섬에서 발생한 그리스계의 주민과 터키계 주민들 사이의 종교분쟁으로 남편을 잃은 터키여성이 슬퍼하고 있는 장면입니다.(Don McCullin)



1965년

월남전에서 미군의 폭격을 피하여 엄마가 이이들을 데리고 강물을 따라 피난하고 있는 모습입니다.
마을은 베트콩(Vietcong)의 은신처나 베이스 캠프로 이용되기 때문에 미공군이 무차별 폭격을 하였다고 합니다.(Kyoichi Sawada)



1966년

베트남전에서 죽은 베트콩의 시신을 매장하기 위하여 기갑전차에 매달아 끌고 가고 있습니다.(Kyoichi Sawada)



1967년

베트남의 철의 삼각지(Iron Triangle)라는 지역에서 M48 탱크의 사수병이 전방을 주시하고 있습니다.(Co Rentmeester)



1968년

베트남전을 종식시킨것으로 너무나 유명한 사진입니다.
남 베트남의 경찰서장인 Nguyen Ngoc Loan이 베트콩을 길거리에서 즉결처형하는 장면입니다.
이 사진 한장으로 미국내에서는 반전여론이 불같이 일어났지요.
결국은 베트남에서 미국이 철수하는 결과를 만들었구요.
위 사진에서 처형된 베트콩은 저격수로서 베트남 군인들을 조준사격하여 몇 명 죽인 후 포위망이 좁혀오자 항복하여 잡힌 것이라 합니다.(Eddie Adams)



1969년

방독면을 쓴 가톨릭계의 젊은이가 영국군인과 충돌 후 도피하고 있습니다.
영국은 북아일랜드와 종교적인 문제로 마찰이 많습니다.
서로 테러와 보복을 일삼고 있지요.
북아일랜드는 주로 가톨릭계이고 영국은 성공회라는 기독교계입니다.(Hanns-Jörg Anders)



1970년에는 수상작이 없습니다.



1971년

독일 자아르브뤼켄(Saarbrücken)에서 발생한 은행강도 사건입니다.
인질을 잡고 있는 강도와 협상 중에 경찰서장이 갱단의 리더한테 먼저 총격을 가하고 이어 서로 총격전이 벌어졌습니다.(Wolfgang Peter Geller)



1972년

이 사진도 전세계인들을 놀라게 만든 베트남전 사진입니다.
남베트남에서 전투가 한대가 실수로 민간인에게 네이팜(napalm)탄을 투하하여 아이들이 놀라 도망가는 장면인데,
가운데 온 몸에 화상과 상처를 입은 아이가 그 당시 9살의 Phan Thi Kim Phuc라는 소녀입니다.(Nick Ut)



1973년

칠레의 살바도르 알렌데 대통령이(Salvador Allende) 군부쿠테타를 피하여 경호원들과 함께 대통령궁을 빠져나오다 저격을 당하게 됩니다.
사진은 저격을 당하기 전입니다.(Orlando Lagos)



1974년

1974년 나이지리아의 가뭄으로 고통에 시달리는 엄마와 아이의 모습입니다.(Ovie Carter)



1975년

미국 보스턴에 있는 아파트의 화재에서 구조 사다리가 부서지는 바람에 엄마와 딸이 떨어지고 있습니다.(Stanley Forman)



1976년

La Quarantaine지구에서 히잡을 쓴 팔레스타인 난민이 무엇인가 하소연을 하고 있습니다.(Françoise Demulder)



1977년

남아공 케이프타운(Cape Town)에서 철거민들이 시위중 최류탄이 터져 달아나고 있습니다.(Leslie Hammond)



1978년

1966년에 발표된 일본 나리타국제공항의 건설계획은 철거자들의 시위로 결국은 1978년 5월에야 문을 열었습니다.
이 과정에서 경찰 5명등 13명이 사망하였습니다.
사진은 시위자가 던진 화염병으로 경찰 한명이 불길에 휩싸였습니다.(Sadayuki Mikami)



1979년

캄보디아 여성이 태국의 난민캠프에서 배급을 기다리고 있습니다.(David Burnett)



1980년

굶주린 우간다 아이의 손과 선교사의 손입니다.(Mike Wells)



1981년

스페인의 치안경비대원 2백여명이 쿠데타를 일으켜 국회의사당을 기습했습니다. 
Antonio Tejero Molina 대령이 이끄는 병사들이 3백50명의 국회의원을 인질로 잡고 정당성을 내세우며
국민의 지원을 호소했지만 실패하고 17시간이 지난 다음날 모두 투항하였습니다. (Manuel Pérez Barriopedro)



1982년

Shatila난민캠프에서 기독교 Phalangists들에 의하여 자행된 팔레스타인계의 학살장면.(Robin Moyer)



1983년

터키동부에 있는 Koyunoren라는 지방에 리히터 규모 7.1의 강진이 발생하여 1,336명이 사망하였습니다.
Kezban Özer(37)라는 여성과 그의 남편은 우유를 짜러 새벽 5시에 일어나 나가는 바람에 살았는데
집안에 있던 그의 아이 다섯명은 모두 희생되었습니다.(Mustafa Bozdemir)



1984년

인도 보팔시의 Union Carbide화학공장 폭발사고로 독성가스가 유출되어 사망한 아이.(Pablo Bartholomew)



1985년

콜롬비아의 네바도 델 루이스(Nevado del Ruíz)화산폭발로 건물더미 속에 갇힌 12살의 오마이라 산체스(Omaira Sanchez)라는 소녀입니다.
구조가 되지 않아 60시간 후 의식을 잃고 결국 심장마비로 사망하게 됩니다.
하반신이 큰 바위에 짓눌려 구조대원이 3일간이나 필사적으로 구조를 하였지만 결국 숨지게 만든 이 사진을 가지고 많은 사람들이 안타까워 하였습니다.(Frank Fournier)



1986년

에이즈에 걸려 병원에서 치료를 받고 있는 42세 켄 믹스(Ken Meeks)의 애처로운 모습.(Alon Reininger)



1987년

우리나라 사진도 있네요.
12월 15일 노태우 대통령 당선시 수천명의 대학생들이 부정선거를 규탄하는 시위를 하였는데
잡혀간 학생의 어머니가 진압경찰의 방패에 매달리고 있습니다.(Anthony Suau)



1988년

아르메니아공화국의 지진으로 17살난 아들을 잃은 아버지 Boris Abgarzian이 슬퍼하는 모습입니다.(David Turnley)



1989년

6. 4, 천안문사태로 익히 알고 있는 중국의 인민의 군대가 인민을 죽인 역사적인 사건..
이때 천안문 광장으로 진입하는 수십대의 탱크의 행렬을 저지한 용감한 학생이 있었지요.
미국 타임지가 '세기의 위인'으로 선정한 이 학생은 나중에 정권을 잡은 장쩌민에 의해 비밀리에 살해되었다는 말이 있습니다.(Charlie Cole)



1990년

코소보(Kosovo)의 자치권을 폐지한 유고슬라비아의 방침에 대한 항의시위를 하다가 숨진
Elshani Nashim (27)의 죽음을 동네사람들이 슬퍼하고 있습니다.(Georges Merillon)



1991년

미군상사 Ken Kozakiewicz (23)가 헬기 안에서 그의 동료 Andy Alaniz의 주검을 담은 자루를 보며 울고 있습니다.(David Turnley)



1992년

내전과 가뭄으로 엄청난 희생자를 내고 있는 소말리아.
유엔에서 공수하는 보급물자는 보관센터 직원들이 갈취하고 남은것도 이동 중에 무장갱들에 의해 약탈을 당하여
실제 굶고 있는 이들한테 당도하는 건 얼마되지 않는다고 합니다.
굶어죽은 아이를 천에 감싸고 엄마는 힘든 걸음으로 묘지로 향하고 있는 모습입니다.(James Nachtwey)



1993년

팔레스타인 가자지구에서 아이들이 장난감총을 가지고 사격을 하는 흉내를 내고 있습니다.
물론 상대는 이스라엘이 되겠지요.(Larry Towell)



1994년

아프리카 르완다(Rwanda)는 조그만 나라인데도 후투(Hutu)족과 투치(Tutsi)족이라는 두 종족이 날마다 싸웁니다.
위 사진은 후트족 민병대에 의하여 잔인하게 고문받아 적십자 병원에 입원하고 있는 투치족 청년입니다.(James Nachtwey)



1995년

러시아와 체첸의 전쟁으로 피난을 가는 버스 차량입니다.(Lucian Perkins)



1996년

앙골라는 많은 사람들이 내전으로 사망하거나 부상을 당하였습니다. 퀴토(Kuito)지방의 피해 아이들의 모습입니다.
지뢰로 다리를 잃은 아이의 모습도 보입니다.(Francesco Zizola)



1997년

알제리의 벤탈라 (Bentalha)학살사건 이후 사상자들이 있는 Zmirli병원에서 한 여성이 오열하고 있네요.(Hocine)



1998년

세르비아로부터 해방을 위해 싸운 유고슬라비아 코스보 해방군의 남편이 사망을 했습니다.
장례식에서 친척과 친구들이 그의 아내를 위로하고 있습니다.(Dayna Smith)



1999년

코스보 내전에서 피난을 나온 알바니아인이 부상을 입은 모습으로 집회장소로 가고 있습니다.(Claus Bjørn Larsen)



2000년

미국의 국세청 통계에 나와 있지 않고 미국인이 되어버린 멕시코 이민자가 수백만명이 된다고 합니다. 그 중 한 가족이네요. (Lara Jo Regan)



2001년

아프가니스탄의 Jalozai난민캠프에서 탈수증으로 숨진 한 아이의 장례식이 이뤄지고 있습니다.
80,000명이 난민캠프에 있다고 합니다.(Erik Refner)



2002년

터키와 접경해 있는 소련의 아르메니아공화국을 대지진이 강타하여 많은 사람들이 희생되었습니다.
군인들과 마을사람들이 사람들을 묻고 있는데 그의 아버지가 묻힌 자리에서 유품이 된 아버지의 바지를 안고 울고 있는 소년.(Eric Grigorian)



2003년

이라크 나자프시에 있는 미군 101공수사단내의 포로수용소.
전쟁포로로 끌려온 아버지가 4살짜리 아들을 위로하고 있습니다.
머리에 쓰고 있는 검은 봉지는 포로의 신분을 보호하기 위함이랍니다.(Jean-Marc Bouju)



2004년

2004년 12월 26일 인도네시아 수마트라 해안에서 진도 9.3의 강진이 발생하였습니다.
해일로 목숨을 잃은 친지 곁에서 한 여성이 오열하고 있습니다.(Arko Datta)



2005년

메뚜가와 전염병으로 니제르 서북부의 한 지방의 긴급이송센터에서 한살된 Alassa Galisou라는 아기가
엄마 Fatou Ousseini의 입술을 찾아 손으로 누르고 있습니다.(Finbarr O'Reilly)



2006년

레바논 베이루트 남쪽의 Haret Hreik 도로가 이스라엘의 폭격으로 파괴되었는데 이 와중에 젊은 레바논 부잣집 아이들이 차를 몰고 드라이브를 하고 있습니다.
코를 막고 사진을 찍는 모습이 지 나라 땅에서 일어난 사건인줄 모르는 듯 정말 한심한 장면입니다.(Spencer Platt)



2007년

미국 503 보병 연대 2대대의 2소대의 한 병사가 하루의 전투를 마치고 아프가니스탄 코렌갈 계곡의 Restrepo벙커의 제방에 걸터 앉아 있습니다.
이 계곡은 미군과 무장 이슬람간의 전투의 진원지이자 아프가니스탄에서 가장 치열한 전투장입니다.(Tim Hetherington)



2008년

미국의 경제위기를 단적으로 보여 주었던 사진으로 오하이오주 법원이 은행에 저당 잡힌 가옥을 압류하기 위해
무장경찰을 보내 빈집으로 보이는 집 내부를 수색하는 장면입니다.(Anthony Suau)



2009년

이란의 테헤란에서 건물 옥상에 여성들이 올라가 대통령 선거 결과에 대하여 항의하고 있습니다.
2009년 6월 이란 대선에서 보수파가 개혁파를 누르고 대통령에 당선되지만 부정선거 의혹을 제기하며
개혁파에서 대규모 시위를 벌이고 이를 무력진압하면서 70여명의 시민이 희생되는 일이 있었습니다.(Pietro Masturzo)



2010년

아프가니스탄의 Oruzgan에 사는 18세의 여성 Bibi Aisha입니다.
18세에 강제로 결혼을 하였고, 남편의 폭력에 견디다 못한 어린 부인은 남편으로부터 도망나와서 자기 집으로 도망왔다가
이내 잡혀서 탈레반의 즉결 심판에 넘겨졌습니다.
평결 결과 시동생은 비비를 누르고 남편은 그녀의 귀와 코를 잘라버렸습니다.
그리고는 여자는 던져져 버렸지요.
이후 미군에 의해 발견된 그녀는 미국으로 이송되어 심리치료와 성형 수술을 받았고 현재 미국에 거주하고 있습니다.
이슬람 여성의 인권이 세계적으로 부각된 사진으로서 현재 그녀는 수술을 하여 인공코를 부착하고 있습니다. (Jodi Bieber)



2011년

예멘의 수도 사나(Sanaa)의 한 모스크에서 알리 압둘라 살레(Ali Abdullah Salih)대통령에 반대하는 시위 가운데서 찍힌 것으로서
한 여성이 부상당한 친척을 팔로 안고 있는 모습입니다.(Samuel Arand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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