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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과 그림

한 사람을 사랑했네 - 이정하의 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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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es Larmes du Jacqueline(Offenbach) - Thomas Werner

 



 

 

 

한 사람을 사랑했네


사랑을 얻고 나는 오래도록 슬펐다.
사랑을 얻는다는 건
너를 가질 수 있다는 게 아니었으므로.
너를 체념하고 보내는 것이었으므로.


너를 얻어도, 혹은 너를 잃어도
사라지지 않는 슬픔 같은 것.
아아 나는 당신이 떠나는 길을 막지 못했네.
미치도록 한 사람을 사랑했고,
그 슬픔에 빠져 나는 세상 다 살았네.
세상살이 이제 그만 접고 싶었네.

 

 

 

 

 

한 사람을 사랑했네 1


삶의 길을 걸어가면서
나는, 내 길보다
자꾸만 다른 길을 기웃거리고 있었네.


함꼐한 시간은 얼마 되지 않았지만
그로 인한 슬픔과 그리움은
내 인생 전체를 삼키고도 남게 했던 사람.
만났던 날보다 더 사랑했고
사랑했던 날보다
더 많은 날들을 그리워했던 사람.
뜬눈으로 밤을 지새우다
함께 죽어도 좋다 생각한 사람.
세상의 환희와 종말을 동시에 예감케 했던
한 사람을 사랑했네.


부르면 슬픔으로 다가올 이름.
내게 가장 큰 희망이었다가
가장 큰 아픔으로 저무는 사람.
가까이 다가설 수 없었기에 붙잡지도 못했고
붙잡지 못했기에 보낼 수도 없던 사람.
이미 끝났다 생각하면서도
길을 가다 우연히라도 마주치고 싶은 사람.
바람이 불고 낙엽이 떨어지는 날이면
문득 전화를 걸고 싶어지는
한 사람을 사랑했네.


떠난 이후에는 차마 지울 수 없는 이름.
다 지웠다 하면서도 선명하게 떠오르는 눈빛.
내 죽기 전에는 결코 잊지 못할
한 사람을 사랑했네.
그 흔한 약속도 없이 헤어졌지만
아직도 내 안에 남아
뜨거운 노래로 불려지고 있는 사람.
이 땅 위에 함께 숨쉬고 있다는 이유만으로도
마냥 행복한 사람이여,
나는 당신을 사랑했네.
세상에 태어나 단 한 사람
당신을 사랑했네.

 

 

 

 

 

한 사람을 사랑했네 2


한번 떠난 것은 다시는 돌아오지 않네.
강물이 흐르고 있지만 내 발목을 적시던
그때의 물이 아니듯, 바람이 줄곧 불고 있지만
내 옷깃을 스치던 그때의 바람이 아니듯
한번 떠난 것은 다시는 돌아오지 않네.


네가 내 앞에 서 있지만
그때의 너는 이미 아니다.


내 가슴을 적시던 너는 없다.
네가 보는 나도 그때의 내가 아니다.
그떄의 너와 난 이 지구상 어디에도 없다.
한번 떠난 것은 절대로
다시 돌아오지 않는다.
아아, 내가 사랑했던 모든 것
그 부질없음이여.

 

 

 

 

 

한 사람을 사랑했네 3


오늘 또 그의 집 앞을 서성거리고 말았다.
나는 그를 잊었는데


내 발걸음은···, 그를 잊지 않았나 보다.

 

 

 

 

 

한 사람을 사랑했네 4


차라리 잊어야 하리라, 할 때
당신은 또 내게 오십니다.


한동안 힘들고 외로워도
더 이상 찾지 않으리라, 할 때
당신은 또 이미 저만치 오십니다.


어쩌란 말입니까 그대여,
잊고자 할 때
그대는 내게 더 가득 쌓이는 것을.


너무 깊숙이 내 안에 있어
이제는 꺼낼 수도 없는 그대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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