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전 산청 원지에 있는 적벽산 산행을 하다가 문든 생각이 난 ..
아주 오래전 MBC 수사반장이란 프로그램에서 연말 특집으로 '내리막길'이란 제목의 범죄물을 방송한 일이 있습니다.
검색으로 확인을 하여보니 1979년 12월에 방송을 했네요.
이종대 문도석의 카빈난동사건을 각색하여 만든것인데 이종대역으로는 당시 꽃미남인 박근형이 맡았고 문도석 역은 임채무가 맡았습니다.
어찌나 인상적이든지 지금도 방송의 일부 장면이 생생하네요.
이 사건은 워낙에 세간의 이목을 집중시킨 것이라 TV방송뿐만 아이라 영화(그들은 태양을 쏘았다)롣고 나왔고 소설(최인호의 지구인)과 연극으로도 많이 올랐던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이들이 전국을 누비며 도망 다니다가 이곳 원지삼거리에서 검문에 결렸는데 그때 카빈총을 들고 창밖으로 내다보던 이종대역을 맡았던 박근형의 눈빛이 아직도 생생하게 떠 오릅니다.(솔직히 원지삼거리라고 제가 기억만 하고 있다 뿐이지 확실치는 않습니다.)
전체적인 내용은 잘 생각이 나지 않지만 두 사람인 연기한 내용과 인간적이지 않지만 인간적인 범죄자의 말로가 안타깝게 여겨진 사건으로 기억됩니다.
이종대 문도석의 인생사는 다음과 같습니다.(내용은 인용하였습니다.)
이종대와 문도석 1974년 7월 26일
이종대라는 사람이 있었다.
그는 전문범죄꾼이었다. 강도부터 불법무기소지에 절도 등 온갖 범죄백화점을 꾸리던 그는 10년 징역을 받고 복역하다가 작업 중 교도관의 눈에 고춧가루를 뿌리고 탈출하는 영화같은 스토리의 주인공이 된다. 그러나 그 탈옥은 영화 한 편의 시간으로 끝난다.
두 시간만에 경찰에 잡힌 것이다. 탈옥죄로 또 3년을 더 썩고서야 사회에 나왔던 그는 역시 온갖 일을 다 하며 생계를 꾸린다. 결혼해서 아이들도 두었다. 그는 미술에 천재적인 소질이 있었다. 군대에서도 상관들의 초상화를 그려주어 환심을 사기도 했고 감옥내 미술전시회에서도 상을 여러 번 받았다고 한다. 그래서였을까. 그는 자신의 아이들에게 근사한 이름을 지어 주었다. 태양이 큰별이.
그의 감방 동료 가운데 문도석이라는 사람이 있었다.
이 사람도 둘째 가라면 서러워할 범죄꾼이었다. 폭행부터 횡령까지 다양한 분야에서 별을 달았다. 이 사람은 음악에 비범한 소질이 있었다. 바이올린부터 트럼펫까지 다루지 못하는 악기가 없었다고 한다. 하지만 이 둘의 예술적 끼는 그들의 범죄적 욕망에 가려 발휘되지 못한다.
문도석이 악사로 일하던 허름한 술집의 골방에서 둘은 한탕을 위한 강도를 모의했다. 월급날 월급을 받아 오는 사무직원을 납치해 봤으나 큰 재미가 없다고 생각한 그들에게 하나의 멋진(?) 아이디어가 떠오른다. "총을 훔치자."
총의 무서움을 아는 군부독재가 총기 관리 하나만큼은 확실하게 해 왔던 시절, 총을 가진다는 것은 무소불위의 힘과 무한대의 가능성(?)을 의미했다.
그들은 노력 끝에 카빈총 3정과 실탄 수백발을 훔쳐 내는데 성공한다. 대한민국 범죄사에 드문 2인조 총기 무장 강도가 탄생하는 순간이었다. <내일을 향해 쏴라>의 부치와 캐서디처럼, 둘은 제멋대로 돌아다니며 범죄를 저지른다. 그들은 매우 대담했다. 돈을 턴 뒤 차를 타고 도망가다가 피해자들이 강도야 하고 소리를 지르자 차를 후진시켜서 내린 뒤 총을 휘두르면서 "목숨이 둘인 줄 알아?"라고 으름장을 놓은 적도 있었고, 범행에 사용된 차를 버리면서 "지문 실컷 찾아보슈" 하는 쪽지를 남겨 경찰의 약을 바작바작 올리기도 했다. 가히 간이 배밖에 나온 이들이었다.
웬만하면 사람 목숨은 다치지 말자고 다짐했다지만 세상 일이 그렇게 쉽게 굴러가지는 않는 법, 피해자 한 명이 거세게 저항하자 그 목숨을 빼앗았고, 지방 원정을 위해 대절한 차 운전사가 총을 발견하고 의심하는 기색을 보이자 목졸라서 시골 강변에 파묻어 버렸다. 강도 나부랑이에 불과하던 그들은 인정사정 없는 살인마의 수순을 밟아가고 있었다. 하지만 성미가 급하고 행동이 격정적이었던 문도석이 경찰에게 꼬리를 밟혔고, 그들은 마지막을 준비한다.
그들은 자신들이 무슨 짓을 저질렀는지 잘 알고 있었다. 지지리도 못살던 집안에서 자라 일찌감치 범죄에 입문했던 이종대와 전쟁 고아로 자라나 눈칫밥을 먹다가 어느 집에 입양되긴 했으나 범죄의 길로 접어들었던 문도석. 그들은 그들 없이 가족들을 세상에 남겨두고 싶지 않다는 잔인한 배려심을 발휘한다. 먼저 문도석이 아들을 쏘아 죽인 뒤 자살한다. 아내는 남편의 살기를 느끼고 순간 몸을 피해 목숨을 건졌지만 아빠에게 오라는 말에 아빠 팔에 매달린 아들은 문도석과 함께 죽었다. 문도석이 남긴 유서들을 보면 최소한 그가 사이코패스는 아니었음을 알 수 있다.
"우리가 서로 만난 오늘까지 가난하게 살면서 무엇 하나 제대로 해주지 못한 이 못난 남편에게 무던히도 참고 따뜻하게 보살펴준 그 정이 괴로워집니다. 지금껏 거짓과 허세로만 살아온 남편을 그래도 끝내 믿어주고 함께 울어준 당신의 애정이 이 순간 눈물 속에 주마등처럼 스쳐갑니다. 자수하고 싶었지만 이미 때가 늦었어요. 이같은 범행을 저지르고 어찌 살겠다고 발버둥 치겠소. 내가 죽더라도 낙심 말고 좋은 남자와 재혼하여 굳세고 성실하게 살아주기 바라오."
그리고 그는 전쟁고아였던 자신을 거둬 준 부모에게 편지를 남긴다.
"살인을 한 불효자식이 무어라고 변명을 드리겠습니까. 모두가 가난 때문에 이같은 끔찍한 일을 저지른 것 같습니다. 이 불효자식이 저지른 죄 때문에 부모님이 치러야할 멸시와 천대를 생각하면 가슴이 메입니다. 내내 오래도록 행복하게 사시기를 불효자는 두손모아 빕니다."
한편 이종대는 더 끔찍했다.
경찰에 포위된 몇 시간 뒤 그는 아내와 태양이와 큰별이를 죽인다. 장난감을 갖고 놀다가 총을 맞은 듯 아이들은 장남감을 안고 그 주변에 쓰러져 있었다. 아내는 그 아이들을 향해 팔을 벌리고 죽었다. 그로부터 열 일곱 시간이 넘도록 이종대는 경찰과 대치하며 자신의 죄상과 과정을 전부 공개한다. 살인 과정이며 암매장 장소까지. 이종대가 가족을 죽인 뒤 바로 자살해 버렸다면 불행한 피해자 둘은 시신조차 거두지 못했을 것이다. 이종대의 마지막 양심이었다고나 할까. 그는 이런 유서를 남기고 한때 자신의 꿈을 이룰 도구였던 카빈총을 이마에 겨누고 방아쇠를 당긴다.
“아버지 나 먼저 갑니다. 아버지를 원망합니다. 저세상에 가서 가정을 이루렵니다. 이정수씨는 반항했기 때문에 공범(문도석을 가리킴)이 당황, 저질러 숨진 것입니다. 이로 인해 피해자와 죄없는 시민에게 대단히 죄송합니다. 우리를 사랑해준 모든 분께 정말 면목이 없습니다. 최선을 다해 본 우리는 후회하지 않습니다. 최덕현씨의 시체는 진주에서 산청으로 들어가는 검문소에서 산청쪽으로 약3km쯤 떨어진 강가에 묻었습니다. 태양아, 큰별아 미안하다. 여보! 당신도 용감했소. 너희들 뒤를 따라간다. 황천에 가서 집을 마련해서 호화롭게 살자. 이 냉혹한 세상 미련없다.“
그들의 유서를 다시 읽으면서 드는 생각은 그들의 환경이 조금만 더 좋았더라면, 본의건 본의가 아니건 범죄의 세계에 접어든 후 다시 사회에 나왔을 때 그들에게 갱생의 기회가 진지하게 주어졌더라면, 그렇게까지 악한 범죄를 저지를 사람들 같지는 않다는 것이다. 물론 사람 속이야 누가 알며 죽음 앞에서 순해지지 않는 사람이 누가 있겠냐마는, 황천에서나 희망을 기약할만큼 세상은 그에게 냉혹했던 것은 분명할 것이다. 그리고 그들이 저지른 끔찍한 범죄의 가장 큰 책임은 그들 자신에게 있으되 가난이라는 교사범의 존재도 부인할 수는 없을 것이다.
어떤 기자가 사건을 취재하면서 썼던 글이 기억난다.
이종대는 아이의 스마일 티셔츠에 그려진 웃는 얼굴을 겨냥하고 총을 쏜 것 같다고 했다. 그러면서 그는 치를 떨었다. 어떻게 인간이 제 자식에게 그럴 수가 있을까. 자기가 죽어도 자식만은 살리려는 게 인지상정이거늘 어떻게 그 웃는 얼굴에 대고 카빈총을 갈겨 버릴 수가 있을까. 기자는 그 자체에 분노했다. 그러나 오늘 우리는 안다. 가난이라는 괴물과 싸우다가 제 자식들을 아파트 옥상에서 던져 버리고 자신도 죽음을 택한 숱한 아버지와 어머니들을.
이종대와 문도석은 괴물이었다.
그렇게 치부하면 당장의 속은 편하다.
하지만 악마는 계속해서 자라고 출몰한다는 것이 문제다.
"사람 사는 곳에 범죄는 있고, 엄벌에 처하면 되는 것이다. 법이 물러서 문제."라고 규정하면 그 속은 가래침 내뱉은 듯 편안할 것이다. 그러나 우리가 '사람 사는 곳'에 대한 관심을 먼저 기울이지 않고 '엄벌'에만 목청을 돋울 때 그 시끄러움 속에서 또 다른 독버섯들이 누군가의 발목을 휘감을 수 밖에 없을 게다. "자기만 가난하고 자기만 아버지가 지랄같았나? 왜 다른 놈들은 멀쩡한데 자기만 그래? 다 핑계야!"라고 단언하기는 쉽다. 그러나 같은 환경에서도 누구는 감기에 걸리고 폐렴에 걸리며 어떤 이는 멀쩡하다. 그러니 환경은 문제가 아니랄 수는 없지 않은가.
1974년 7월 26일 겨울 공화국에서 두 명의 강도가 죽었다. 드라마 <수사반장>에서는 이 사건이 특집으로 다뤄진 적이 있다고 한다. 그때 이종대와 문도석 역을 맡은 것은 <추격자>의 회장님 박근형과 젊음날의 임채무였다고 한다. 그들은 어떤 연기를 했을까. 이장호 감독은 이들을 소재로 <그들은 태양을 쏘았다>라는 영화를 만들었고 그 이전에 소설가 최인호는 <지구인>을 썼다. 혹 도서관에서 먼지묻은 옛 소설을 꺼내들 기회가 있으면 읽어 보시라.
(인용 : 뉴스프리존)
이종대와 문도석
수사반장에서 이종대역을 맡은 박근형과 문도석역을 맡은 임채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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