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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과 그림

반가사유 - 류근의 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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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가사유
류근

 

 

다시 연애하게 되면 그땐

술집 여자하고나 눈 맞아야지 

함석 간판 아래 쪼그려 앉아 

빗물로 동그라미 그리는 여자와 

어디로도 함부로 팔려 가지 않는 여자와 

애인 생겨도 전화번호 바꾸지 않는 여자와 

나이롱 커튼 같은 헝겊으로 원피스 차려입은 여자와 

현실도 미래도 종말도 아무런 희망 아닌 여자와 

외항선 타고 밀항한 남자 따위 기다리지 않는 여자와 

가끔은 목욕 바구니 들고 조조영화 보러 가는 여자와 

비 오는 날 가면 문 닫아 걸고 

밤새 말없이 술 마셔주는 여자와 

유행가라곤 심수봉밖에 모르는 여자와 

취해도 울지 않는 여자와 

왜냐고 묻지 않는 여자와 

아,

다시 연애하게 되면 그땐 

저문 술집 여자하고나 눈 맞아야지 

사랑 같은 거 믿지 않는 여자와 

그러나 꽃이 피면 꽃 피었다고 

낮술 마시는 여자와 

독하게 눈 맞아서 

저물도록 몸 버려야지 

돌아오지 말아야지 

 

 

 

 

 

여운에 대한 미련은 그리 달갑게 받아들여지지 않습니다.

다시 사랑한다면.

다시 만난다면.

다시 돌아간다면,

무효함을 유효함으로 승화시키고자 하는 몸부림,

하지만 진행에 대한 방향성이 끊어지는 아픔은 어찌하나요.

 

물론 그게 詩이고 그게 연애가 아닐까 합니다.

뜨겁고 아픈 사랑 앞에서 온전히 활활 타 올라 아무것도 남지 않은 빈 가슴이 반가사유가 아닐까 생각하네요.

 

 

반가사유(半跏思惟)란? 

앉은 자세에서 양발을 양쪽 넓적다리 위에 올리는 것을 결가부좌(結跏趺坐)라고 합니다.

그리고 한쪽 발만 다른 쪽 허벅지에 올리는 것을 반가부좌(半跏趺坐)라고 하지요.

말 그대로 결가부좌의 반만 실행하는 것입니다.

주로 불교 수행법으로 응원하는 것인데 우리 일반인들은 반가부좌는 쉽사리 가능 하지만 결가부좌는 되지 않는 분들도 제법 있긴 합니다.

 

불교에서 반가부좌는 의자에 앉아서 오른발을 왼발의 무릎에 얹은 자세를 가리키는 의미로 사용하는데 미륵보살이 이런 자세를 취하는 걸 통상 반가사유상(半跏思惟像)이라고 합니다.

사유(思惟)라는 말은 생각하고 헤아린다는 의미이구요.

 

근데 사실 미륵부처의 반가 자세는 생각한다는 것, 즉 문제에 집착한 다기 보담 무상무념의 무아(無我) 상태라는 표현이 더 가깝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생각을 버리는 생각을 하고 있다는 것.

이게 바로 반가사유이구요.

 

흔히 요즘 말로 멍 때린다는 것과 비슷한 의미입니다.

우리의 '멍 때리기'라는 의미가 서양에서는 '명상에 잠기는 것'이라고 잘못 해석하는 경우도 많은데 이건 분명 오류입니다. 명상에 잠기는 것이 아니고 명상에서 벗어나는 것입니다.

멍 때리기는 고도의 무아(無我)입니다.

 

 

 

 

류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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