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촌 후 처음으로 제가 직접 키운 고추를 들고 방앗간에 갔습니다.
나름 일찍 출발했다고 생각을 했는데 벌써 많은 분들이 고추를 빻으러 오셨더군요.
제가 들고 있는 자그마한 비닐봉지를 보시더니 모든 분들이 슬며시 웃으십니다.
한 아주머니 께서..."사장님! 저 아저씨 고추부터 해주셔요"..
뭐.. 그래도 작년에는 1.5Kg.. 올해는 5Kg.. 이 정도면 올 김장도 충분하고
딸들에게 찌개나 반찬용으로 넉넉하게 챙겨 줄 수 있으니 저는 만족합니다.
아주머님들 양보 덕분에 일찍 빻고 귀가를 했습니다.
요즘은 비닐 포장까지 해줍니다.
거실에서 빻아 온 고춧가루를 바라보니.. 흐뭇합니다.
모종을 사다가 심고, 지주대를 세워서 묶고..
장마철에는 가슴을 졸이고.. 수확이 형편없더라도 농약을 안 쳤습니다.
문제는 건조 작업이 제일 힘이 들었습니다.
수확량이 어설퍼서 건조기를 빌리기도 그렇고..
화창한 날씨에는 아침 일찍 돗자리에 널고, 중간중간 뒤집어 주고.. 저녁이면 걷어 들이고..
비 오는 날이면 거실에 널고 선풍기를 틀어 놓으면.. 콧물 눈물.. 창문도 못 열고..
날씨가 어설픈 날에는 비가 올까 봐 멀리 외출도 못 했습니다.
물론 딸들에게 제일 먼저 자랑을 했습니다.
큰 딸.."아빠! 수고 많으셨어요~"..
막둥이.."아빠! 매운 고춧가루 좋아하는데.. 빨리 받고 싶다 ㅎ"
귀촌 전..
거울을 보면 하루하루 말라가는 제 모습에 낙담을 했습니다.
그리곤 나는 정말 아무것도 이룬 게 없는 하찮은 인간이구나.. 그런 생각을 했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나 자신 스스로 만족할 만한 삶으로 이끌어 가고 있다는 생각을 합니다.
예전의 고단했던 삶도 긍정적으로 여겨집니다.
누군가에게는 마치 작은 섬의 등대지기로 발령받은 삶으로 보이기도 할 겁니다.
그러나 저는 그 작은 섬에서 나름 즐겁게 산다는 의미를 알아 가고 있는 중입니다.
지금의 제 모습이 누군가의 눈에 어떻게 비칠까..?? 그런 하찮은 걱정은 접고 사는 요즘입니다.
이제는 제가 살아온 결과에 대하여 무딘 셈을 하고 싶은 솔직한 마음입니다.
하여.. 오늘은 저 스스로를 위하여 막걸리 한 잔 하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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