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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일기

일본 옛 모습을 그대로 보존하고 있는 곳 - 히다 다카야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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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십년 전 일본에 처음 갔을때 아주 사소한 것 때문에 무척 감명받은 적이 있습니다.
그 사소한 것이란 식사 자리에서 만난 이쑤시개입니다.
이쑤시개도 아마 일본에서 우리나라로 건너 온 것으로 생각되는데, 그때 이 이쑤시개 손잡이에 패인 홈.
세줄로 파 놓은 홈이 있습니다.



이것 뭐 때문에 파 놓은 것인지 알고 계시는지요?
 
아마 요즘도 이 홈을 왜 파 두었는지 모르고 있는 분도 있을 것 같습니다.
몇번의 공정이 더 들어가는 이 홈을 왜 파 두었을까요?
어떤 분은 손으로 잡기 좋게 하기 위해서..라고 할 것 같습니다.


그러나 이 홈은 예사로 파 둔 것이 아닙니다.
철저한 위생관념이 몸에 배인 일본인들의 일상을 그대로 보여주는, 이 홈자국은 이쑤시개 걸이입니다.
똑 부질러 이쑤시개를 얹어 놓는 것입니다.



그렇게 일본인들의 위생관념을 보여주는 이쑤시개는 그대로 우리한테 들어와 멋 모르고 같이 파 놓은 것 같구요.
우리 식당에도 요즘은 수저나 젓가락 받힘을 따로 내어 오는 경우가 있습니다만 일본인들은 이런 위생관념은 거의 병적으로 철저합니다.
아무리 부부간에도 한 그릇 음식을 같이 나눠 먹는 경우는 없는 것이지요.


이것이 과연 그렇게 위생적이고 현명한 방법이냐는 재쳐 두고라도, 뭔가 하나라도 철저하게 하는 이런 사고방식은 본 받을만 하다는 생각을 하여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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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일본인들이 아주 사랑하는 고향같은 도시.. 히다 다카야마(飛"464;高山)를 소개 합니다.
지도는 맨 아래쪽에 올려져 있습니다.
전에 소개해 드린 시라카와고 합장촌(이곳)도 이곳에서 멀지 않습니다.


이전에는 그냥 히다라고 불리워진 곳이고 지금은 다카야마라 하지만 옛 이름과 같이 붙여서 히다다카야마라고 외부적으로 알려진 곳입니다. 다카야마는 기후현에 속한 산중 도시입니다. 도시라 하여 번화한 곳은 아니고 시골 모습이 더 많은 곳입니다.

이 다카야마를 일본인들이 사랑하는 이유가 있습니다.
히다산맥 아래에 있는 이곳은 이차대전때 너무 산중이라 폭격을 피한 곳이라 하는데 그런 만큼 살기도 어려웠던 곳이었습니다.
옛날 에도시대 도쿠가와 막부의 직할령이었던 이곳은 세금을 낼 돈이 없어서 해마다 100명의 목수를 에도로 보내 노역으로 대납을 하였습니다. 조그만 이곳이 직할령이 된 이유는 히다산맥의 목재들을 도쿠가와 막부가 사용하기 위해서였답니다.


이 목수들이 교토와 나라에 세금대신 노역으로 가서 사찰과 건물을 짓고, 그 목수들이 고향으로 돌아와 에도에서 지은 건물 그대로 히다의 거리(지금의 다카야마)를 만든 것입니다. 그리하여 지금도 이곳 다카야마가 리틀 교토(쇼교토,小京都·)라는 이름으로 불리워 지고 있습니다.

그런 향수 같은 도시로서 일본인들이 매우 아끼고 사랑하는 곳이 되었습니다.

세월이 흘러 다카야마의 도시 모습도 조금 변하였지만 아직도 도시 한편 전체가 옛 모습 그대로 보전되어 있습니다.
다카야마 시내에 흐르는 미야가와(宮川)강 동쪽으로 이어진 산마치(三町)의 상업지구 거리는 흡사 영화 셋트장 같은 너무나 정감어린 풍경입니다. 
16세기 도쿠가와시대 사무라이 가문의 통치속에서 지내온 히다는 바깥 격자창과 낮은 처마의 에도시대 건축물이 고스란히 이어져 내려온 것입니다. 가로 세로의 창살 간격이 일정한 연자 격자문과 세로 창살 간격이 좁은 천본 격자문으로 지어진 전통가옥들로 이어진 골목에는 이런저런 가게들이 줄지어 있고 각종 기념품과 산나물등을 판매하고 있어 흡사
우리의 5일장 같은 느낌도 듭니다.


이곳에서는 일본의 3대 축제인 교토의 기온 마쯔리와 사이타마의 지치부 요마쯔리.. 그리고 이곳의 유명한 다카야마 축제(高山祭)가 봄 가을로 열립니다. 봄에 열리는 축제를 산노 마쓰리, 가을에 열리는 것을 하치만 마쓰리로 부릅니다. 이걸 합쳐 다카야마 축제라 하구요.
이곳 장인들이 만든 호화스런 수레들로 이곳 다카야마가 가장 붐비는 시기입니다.


다케야마의 오래된 목조 건물들을 둘러 보면서 머리속이 약간 혼란스러움을 느낍니다.
이렇게 문화재를 아끼고 좋아 하는 일본인들.. 그리고 임진란 왜적의 침략속에서 되돌릴수 없이 사라진 우리나라의 숫한 소실 문화재. 정명가도(征明假道)라는 터무지 없는 억지로 도적이 남의 집 물건 훔치러 가는데 길을 비켜 달라는..
명나라 치러 가는데 조선을 지나가야 되니 길을 내어 달라는 억지를 부린 왜군.
그렇게 우리 조선을 쳐 들어와 전국에 있는 목조 사찰이나 문화재를 모조리 불살라 버리고 결국은 노량해전을 끝으로 패전하여 달아나 버렸지만 지금도 우리의 금수강산을 둘러보면 ..임진왜란때 소실..이라는 안내문구를 참으로 많이 접하게 됩니다.


저들의 오래된 목조 문화재는 이렇게 아끼고 잘 보존하여 두면서 우리나라 목조 건물과 문화재는 모조리 불질러 버린..
가슴 속에 저며오는 안타까운 마음이 한없이 쏫아지는 비속에서 먹먹하게 저려 왔습니다.


그 옛날 도쿠가와 막부의 직할도시로서 히다산맥 아래 고요히 몇 백년을 지켜 오는 아름다운 다카야마의 산마치(三町)를 둘러 보면서 아주 사소한 것도 이렇게 공을 들여서 가꾸고 보관하면 훗날 귀한 유산으로 남아 질것이라는 생각을 하여 봅니다.

중심 골목, 여행관광 안내소(맨 아래 사진)에는 여러나라 안내서가 비치되어 있고 우리나라의 글로 표기된 자세한 것도 있어 먼저 이곳에서 이것을 받아들고 둘러보면 도움이 많이 될것 같습니다.


이곳은 다카야마 진야(高山陣屋) 라고 부르는 일종의 관청자리입니다.
에도막부시대 180년 25대에 걸쳐 쇼군이 히다를 직접 통치하였던 일종의 관청이고,
메이지(明治)때에도 지방의 관청으로 사용되었다 합니다.
현재의 건물에는 관리사무실, 부엌, 화장실, 창고 등 여러 개의 방들이 있습니다.
1969년까지 정부가 사용했으며 지금은 박물관으로 일반에 공개하고 있다 합니다.
이런 대관소(代官所) 건물이 남아 있는 것은 일본 전국에서 이곳 다카야마뿐입니다.























미다라시당고(みだらしだんご)는 일종의 경단입니다.
쌀떡이라 생각하면 될 것 같은데 소스에 짝어 먹습니다.
일본에서는 편의점에도 다 팔고 있습니다.
이 할머니 비가 와서 장사 잘 안되는지 졸고 계셨는데 제가 가서 사진 한장 찍었다고 하고 하나 사 먹었습니다. 
배고픈 데다가 비가 와서인지 아주 맛 있더이다.













다카야마 진야 앞의 다리(나카바시다리,中橋)에서 인증샷..

다카야마를 중심으로 본 지도입니다.
더욱 상세한 지도는 아래를 클릭하여 보시면 됩니다.

다카야마시의 위치        Download(PDF) | Google Map
다카야마시 전체 지도     Download(PDF) | Google Map
히다타카야마 시가지도   Download(PDF) | Google Map
 



중심가 안내소(위 안내도의 ? 표 있는 곳이 안내소)에 비치되어 있는 한글판 안내도..
아주 상세하게 잘 되어 있어 들고 다니면서 보면 도움이 많이 될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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