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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일기

원형에 더욱 가깝게 복원된 낙산사의 새로운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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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났다 카더마 마카 거짓말인갑따. 우째 요렇게 고대로 지었제?
 

신라 왕족 신분으로 출가하여 스님이 된 의상이 26살때 원효와 당나라로 유학가다가 간첩으로 오인되어 잡혀서 
유학은 가지고 못하고 되돌아 와 그 뒤 36살때 다시 당나라로 떠납니다.
그때도 원효가 동행을 하였는데 중간에 원효는 해골물을 마시고 깨닳음을 얻어 돌아 오고, 의상은 홀로 당나라에 가서 10년
유학공부를 하고 46세에 돌아 옵니다.


그 뒤 동해 바닷가 어디엔가 관음보살이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 바닷가를 떠돌다 어느 굴에서 기도를 하던 중 홀연히 관음보살이 등장,
 수정으로 만든 염주를 주면서 절을 지을 곳을 알려주어 곧 지은 절이 바로 낙산사입니다.
그때 관음보살께 받은 수정염주는 아래 사진의 원통보전 앞에 있는 7층석탑 내부에 모셔져 있다 합니다.
(의 자세한 일대기와 대사가 창건한 부석사에 관한 내용은 이곳에서 재미있게 보세요.)


지난 2005년 식목일 날, 산불이 번져 모조리 전소한 낙산사를 이번에 다시 들려보고 놀라움을 금할수가 없었습니다.
어쩌면 그렇게 감쪽같이 이전 상태로 지어 놓았는지요.
아직도 산기슭 군데군데 그때의 생채기가 남아 있지만 경내의 모습은 정말 감쪽같이 복원이 되어 있었습니다.
우리나라 장인정신이 우선 놀라웠습니다. 대목장 지위의 능한 솜씨와 또 낙산사를 살려 놓고자 하는 국민들의 열화와 같은 성의가
이렇게 놀라웁도록 잘 복원된 낙산사를 보게 하는 것 같았습니다.
 

낙산사는 서기 671년(신라 문무왕 11년) 의상(義湘)대사가 창건하여 1300년 이상을 버텨온 절인데 화재 기록이 많은 것 같아
이제까지 발생한 화재를 조사하여보니 그 어느 절보다도 화마에 휩싸인 경우가 많은 것 같습니다.
그러나 이런 많은 화재를 당하면서도 끊이없이 다시 짓고 보수한 조상님들의 끈기도 같이 느껴지네요.


이제까지 낙산사 화재 현황입니다.


786년 화재
10세기 초반 화재
1231년 몽고란(고종 18년)으로 완전 소실
임진왜란(1592년)때 일본 침략으로 화재
병자호란(1636년) 청나라 침략으로 화재
1777년 화재
6.25(1950년)동란으로 화재
2005.4월 5일 식목일 오봉산 산불로 화재


낙산사는 지난 2005년 식목일날, 도로가에서 시작된 화재가 강풍을 타고 낙산사로 번져 대웅전인 원통보전과 정취문, 설선당,
홍예문 누각, 심검당, 취숙헌, 일주문, 등 주변의 건물이 모두 전소 되었습니다.
특히나 안타까운 것은 이제는 보물지정이 해제되어버린 보물 제479였던 동종이 엄청난 열기로 완전 녹아 버린것이었습니다.
한국 종을 대표한다고 하는 이 낙산사 범종은 1968년 12월19일 보물로 지정된 것인데 조선 8대 임금인 예종이 집권 원년에
그의 아버지 세조(수양대군)를 위해 낙산사에 보시한 멋진 범종이었습니다.
 

낙산사는 그동안 1,2차 복원 공사를 하여 1차로는 원통보전을 비롯해 홍련암, 범종각 등 12개 전각과 시설등을 2007년 11월에
완료하였고, 나머지는 2차 복구로 지난해(2009년) 10월 12일 완벽하게 마무리 되어 복원 불사를 하였습니다.
한편 이번 복원에는 단원 김홍도가 그린 낙산사도(洛山寺圖)를 바탕으로 하였다 하는데 불타기 전의 낙산사보다 오히려 원형에
더욱 가깝게 복원이 되었다고 합니다.



의상 기념관 앞입니다. 요즘은 문화유적지에 젊은 학생들이나 가족끼리의 여행이 많이진 걸 느낍니다. 보기 좋은 현상입니다.

선문답.. 길에서 길을 묻다..

예쁜 연못을 끼고 약간 올려다 보면 보타락입니다.

보타락에서 조금 더 올라가면 보타전. 천만다행으로 화마를 피한 곳입니다. 지붕 밑 단청이 유난히 멋진 곳이구요.

너무나 아름답습니다.. 처마 밑 단청이..

이 천왕문도 소실을 면한 곳입니다. 이곳이나마 옛 멋을 그대로 보여주니 위안이 됩니다.
안쪽 네 곳에 버티고 서 있는 사대천왕이 화마를 물리쳤을까요?

범종각의 불타는 모습이 가장 언론에 많이 소개 된 것 같습니다.

고증과 자료를 참고. 현대기술을 총 동원. 이렇게 복원 되어 있습니다.

경내의 무설전 근행당도 완전 소실되었는데,

이렇게 다시 깔끔하게 지어져 있네요.

눈여겨 보지 않으면 쉽게 지나칠 낙산사의 빼 놓을 수 없는 볼거리인 원통보전을 둘러싸고 있는 담장.
기와와 흙을 차례로 다져 쌓고 군데군데 별무늬가 나타나게 화강석을 규칙적으로 넣어 두었습니다.
약간 멀리, 그리고 가까이서 보면 참 예쁘다는 생각이 드는 곳입니다.

원통보전은 완전히 불타 없어지고 7층 석탑만 덩그러니 남아 있는 모습이었는데..

이렇게 복원 되었습니다. 낙산사의 대웅전이라 할 수 있는 가장 깊숙한 곳인데 앞쪽의 원통보전은 완전히 불타고
사라진 것을 복원 하였고 그 앞에는 보물 499호 7층 석탑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화재시에 상부가 약간 회손되었다 하나
거의 원형을 잘 유지하고 있습니다. 내부에 의상대사가 관음보살께 직접 받았다는 수정염주가 보관되어 있다 합니다.

나이드신 분들이 지나가며 한 말씀 하십니다. '불났다 카더마 마카 거짓말인갑따. 우째 요렇게 고대로 지었제?'
정말 약간 고색적인 느낌조차도 원형을 살려 잘도 복원 하여 두었습니다. 수고한 분들께 감사하다는 마음이 듭니다.

해수관음상으로 가는 오솔길에서 내려다 보는 보타전과 여러 절집들입니다.

낙산사 옆 신선봉에는 단일 불상으로는 동양 최대라 하는 해수관음상이 있습니다.
전북 익산의 돌을 가져와 만들었다 하는데 750톤의 석재가 사용 되었다네요.

해수관음상에서 내려다 보는 의상대가 아름답습니다.





낙산사의 랜드마크라 할 수 있는 홍련암입니다. 의상대와 300m 거리, 낙산사 절 아랫쪽 바닷가에 자리하고 있습니다.
위의 서두 글에서 적어둔 의상이 관음보살을 친견했던 석굴 바로 그 자리로서 낙산사의 근간이 되는 자리라 성지로
여기는 곳입니다. 이곳도 다행히 산불을 모면하였습니다.

이 홍련암 내부에는 밑을 내려다 볼 수 있는 창이 하나 있는데 까마득히 아래로 바닷물이 드나드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이 구멍은 그 동안 숱한 개 보수를 거치면서도 막혀지지 않고 그대로 유지 되어 왔는데 일설에는 동해의 용이
불법을 들을수 있는 통로라고 합니다.

홍련암에서 바라보는 의상대입니다. 의상대사가 낙산사를 짓기 전 기도를 올렸던 곳입니다.
부식으로 붕괴 위험이 있다하여 작년부터 보수공사를 거쳐 올 6월 24일 바로 몇 일 전에 낙성한 곳입니다.

홍련암에서 의상대로 나오는 곳에 있는 관음보살입상. 오른손에 들고 있는 감로수병을 통하여 물줄기가 나오는데
사진이 악간 잘렸습니다. 뒤로 보이는 수국이 너무 아름다웠습니다.

바로 인접한 낙산 해수욕장입니다.

하늘에 웬 비행선이 떠 있길래 자세히 보니.. 글쎄..

노래자랑에 참석하는 초대가수 이름이.. 너훈아, 소리새, 송대광, 밤실이..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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