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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과 그림

수라(修羅) - 백석(白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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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미새끼 하나 방바닥에 나린 것을 나는 아무 생각 없이 문밖으로 쓸어버린다
차디찬 밤이다

 

언제인가 새끼거미 쓸려나간 곳에 큰 거미가 왔다
나는 가슴이 짜릿한다
나는 또 큰거미를 쓸어 문밖으로 버리며
찬 밖이라도 새끼 있는 데로 가라고 하며 서러워한다

 

이렇게 해서 아린 가슴이 싹기도 전이다
어데서 좁쌀알만한 알에서 가제 깨인 듯한 발이 채 서지도 못한 무척 작은 새끼거미가 이번엔 큰거미 없어진 곳으로 와서 아물거린다
나는 가슴이 메이는 듯하다
내 손에 오르기라도 하라고 나는 손을 내어미나 분명히 울고불고 할 이 작은 것은 나를 무서우이 달아나버리며 나를 서럽게 한다
나는 이 작은 것을 고이 보드라운 종이에 받어 또 문 밖으로 버리며
이것의 엄마와 누나나 형이 가까이 이것의 걱정을 하며 있다가 쉬이 만나기나 했으면 좋으련만 하고 슬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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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라(修羅) : 아수라(阿修羅)는 싸우기를 좋아하는 귀신으로서 이걸 줄여서 수라(修羅)라고도 하는데 아수라왕이 제석천(帝釋天)과 싸우는 장소를 아수라장(阿修羅場)이라 하며 요즘은 큰 혼란에 빠진 장소를 일컷기도 하지요.

위 詩는 거미 가족의 붕괴에 빗대어 당시의 시대상황(1930년대)인 일제 치하에서 가족 공동체가 붕괴된 민족의 현실을 그린 詩입니다.

 

※ 백석(白石) : 1912∼1996. 평안북도 정주(定州) 출신으로 본명은 기행(夔行). ‘白石(백석)’과 ‘白奭(백석)’이라는 아호(雅號)가 있었으나, 작품에서는 거의 ‘白石(백석)’을 쓰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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