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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행 일기

구수천 팔탄(龜水川 八灘) 트래킹

구수천(龜水川)이란 백화산 자락에 흐르는 내(川)의 이름으로서 금강의 상류에 해당하는 곳입니다.  팔탄(八灘)이란 여덟 여울을 뜻하는 것으로 '탄(灘)'이란 바닥에 돌이 많고 물살이 비교적 빠른 곳을 의미하는 말로서 우리말로 '여울'이라는 뜻입니다.

 

팔탄(八灘), 즉 여덟 여울이란 구수천을 거쳐 내려가면서 구비구비로 변화가 생기는 내의 모양새에 따라 지어진 이름으로서 경북 상주군 모동면의 황희정승의 영정을 모신 옥동서원에서 출발하여 영동 황간면의 반야사까지 이르는 옛길로 약 7km 정도 되는 비교적 가벼운 트래킹 구간을 구수천을 따라 걸어 내려가는데 이곳 곳곳에 각각의 구간별로 1탄~8탄으로 구분하여 놓은 것이 구수천 팔탄(龜水川 八灘)입니다.

 

구수천 팔탄길은 상주쪽에는 호국의 천년옛길이라 하고 영동쪽에서는 백화산 둘레길이라하는데 이 구역이 지자체의 경계가 있는 곳이라서 두가지 이름으로 불리워지나 본데 조금 아쉬운 면이 있네요. 올해 4월 봄, 이곳 구수천 자락이 내려다 보이는 백화산에서 주행봉을 산행하면서 아래쪽 여물돌이 풍경이 너무나 아름답다고 생각했는데 그곳이 바로 구수천 팔탄이었습니다.

 

백화산 주행봉 산행기 :http://duga.tistory.com/1978

 

아래 사진은 지난 번 백화산 ~ 주행봉 산행시 내려다 본 구수천 계곡의 풍경입니다.

반야교가 내려다 보이고 그 위(좌측)가 이번에 트래킹 한 구간입니다. 오른편 중간 부분에 반야사가 보여 집니다.

 

아래 사진은 클릭하면 크게 보여 집니다.

 

 

올 4월 백화산에서 주행봉을 거쳐 오면서 내려다 본 구수천 풍경

 

 

이제부터 구수천 팔탄 트래킹을 시작 합니다.

약 7km 밖에 되지않고 오르내림은 항개(?)도 없는 길이라 누구나 쉽게 다녀 올 수 있는 곳입니다. 거의 내(川)의 갓길을 따라 걷는 길로서 그늘이 이어져 여름에도 햇살을 피할 수 있는 곳입니다. 내 옆에는 숲처럼 우거진 갈대밭들이 이곳저곳으로 산재해 있어 가을철에 이곳을 거닐면 정말 운치 있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이곳 구수천 팔탄 천년 옛길은 고려 때 몽골제국의 6차 침입 시(1254년) 차라다이 군대를 고려 승병들이 저승골(아래 사진)로 유인하여 대승을 거둔 장소이고 임진왜란때 의병 상의군들이 활동한 곳이기도 합니다. 또한 고려의 악공 임천석의 불사이군의 충절을 전해주는 임천석대가 있어 옛 선인들의 맑은 정신이 서린 곳이기도 합니다. 임천석에 대하여는 아래 사진 설명에서 따로 설명을 드립니다.

 

 

트래킹 길에서 처음 만나는 옥동서원입니다.

황희정승의 영정을 모시고 있는 곳인데 이 분은 우리나라 역사적인 공직자 중에서 가장 많이 알려진 분이기도 하지요.

니 말도 옳고 ..

네 말도 옳고 ...

그래 당신말도 옳다.. 고 한 분이기도 합니다.

 

 

 

 

서원의 본관 건물 입니다.

뭔 행사가 있는지 복장을 갖춘 분들이 보이기도 합니다.

 

경북도 기념물 제52호로서 1518년(중종 13)에 창건됐으며, 황맹헌-황효헌-황희의 위패를 모셨습니다. 714년(숙종 40) 전신을 추가 배향하고, 현재의 위치로 옮겼고, 1783년(정조 7)에는 황뉴를 추가 배향했고, 1789년에 사액서원이 되었습니다. 1868년(고종 5) 흥선대원군의 서원 철폐령 때 남아 있던 47개 서원 중 하나로서 더욱 의미가 있는 곳이기도 합니다.

 

 

 

후미 건물인데 아마도 영정이나 위패를 모신 곳 같습니다.

배롱나무가 아직도 꽃을 피우고 있는 풍경이 아름답습니다.

 

 

 

영동카믄 유명한거이..

서과

포도입니다.

 

사과나무 뒤로 백화산 정상이 보여 집니다.

 

 

 

구수천 팔탄길을 가면서 뒤돌아 본 옥동서원.

들녘의 풍경이 하루 다르게 변합니다.

지난 주만 하여도 녹색빛이었던 들녘의 풍경이 완연하게 누렇게 변하여지고 있습니다.

 

 

 

정겨운 징검다리...

이곳 구수천의 냇물은 어디 산골에서 본 계곡물처럼 맑디맑은 물은 아니지만 하늘빛이 내려앉은 풍경은 나름 멋진 운치를 자아내고 있습니다.

 

 

 

옥동서원에서 백옥정 올라가는 데크 계단길

전 구간에서 유일한 오르막입니다.

직진하면 남의 과수원밭으로 들어 갈 수 있으니 주의해야 할 곳입니다.

 

 

 

약 2~3분 오르면 만나는 백옥정이란 정자

지은지 그리 오래 되지는 않은 듯한 정자는 이곳 저곳을 조망하는데 그만인 곳으로서 건너편 마을과 백화산이 한눈에 조망이 됩니다.

 

 

 

 

백옥정에서 조망되는 앞 쪽의 풍경

왼편 윗 쪽으로 백화산 정상이 보여 집니다.

 

위 사진은 클릭하면 크게 보여 집니다.

 

 

 

백옥정에서 능선길(임천석대 방향)로 약 1분 정도 진행을 하면 우측으로 내리막길이 나타나는데 이곳으로 내려가면 됩니다.

 

 

 

발 옆으로 전기 울타리가 설치 된 과수원길을 따라 조금 진행하면 만나는 세심석(洗心石)

 

세심석(洗心石)이란 이름은 상주 중모현 천하리 백화재에 살고 있는 백화재 황익재(白華齋黃翼再)선생을  밀암 이재(密菴 李栽)선생이 1716년 9월에 방문하여 신덕이라는 마을에 머물며 노니다가 두분이 세심석(洗心石)이라 이름 지었다고 합니다.

 

세심석 앞에는 자연석으로 된 돌비석이 하나 놓여져 있고 아래와 같은 시가 새겨져 있습니다.

 

세심석(洗心石)      우평 황인노(黃麟老)

 

頎然一石石中君     품위있는 한 돌 , 돌 가운데 왕이니

雨洗苔心淨絶紛     비로 이끼낀 중심씻어 깨끗한 빛이로구나

爲德眞堪隱士友     덕을 위해 참된 숨은 선비되어

基名盖取繫辭交     그 이름 대개 주역의 계사문에서 취했다

中高拔地三三丈     가운데가 높아 땅에서 9장이나 솟아났고

上廣容人十十群     위가 넓어 20명의 사람을 용납한다

千古江분藏得密     천구의 강물결에 비밀 감추어도

不妨林예晝還훈     숲 그늘 방해 않아도 도리어 낮에도 어둑하네

 

 

 

 

 

 

구수천길은 그냥 걷는 길입니다.

 

뭐..

운동이라든지..

마음을 가다듬는다든지..

옛 선조들의 얼을 되새긴다든지(말도 안되는 서리지만 많이 써 먹는 이들도 많구요.)...

 

이런거 말고 ..

그냥 펀안하게 쉬어가면서 천천히 거닐면 되는 길입니다.

빨리 가면 반칙인 곳이기도 합니다.

 

 

 

 

 

 

산 자락에 구름이 딱 걸렸습니다.

맑은 날씨에 아직은 신록의 기운이 남아 있지만 금방 저 구름아래 풍경도 색깔로 변하겠지요.

 

참~~~

세월이 빠릅니다.

 

세월은 나이에 비례하는 속도라지요?

스무살은 20km

40살은 40km

50살은 50km....

흐미...

 

 

 

 

구수천변은 유달리 억새가 많은 곳입니다.

가을날 찾아오면 정말 아름답겠습니다.

억새가 햇살을 받아 반짝이는 풍경...

 

 

 

 

여울의 풍경도 운치가 있습니다만..

어제 내린 비로 약간 탁색입니다.

족대 하나 들고 와서 천엽을 즐겨보면 좋겠다는 생각도 드는 곳입니다.

 

 

 

또 하나의 징검다리를 만났네요.

인위적으로 만든 징검다리인데 아주 거대한 돌을 운반한 현대인의 잔재주가 놀랍습니다.

시간이 남고 남아 ..

건너갔다가 돌아 왔다가..

 

 

 

 

잔 바람이 살살 불어 데칼코마니는 안 되었지만 그래도 멋진 추상화는 만들어 지네요.

 

 

 

 

 

 

 

 

이런 표시판이 구역별로 세워져 있는데 별 의미없이 지나치는 것이 더 의미가 있을 것 같습니다.

 

 

 

 

'이곳은 밤나무 영농단지이므로 불법채취를 금합니다.'

'탐방객 여러분 5년째 수입이 0 제로 입니다. 죄송합니다.' → 우회 하세요.

 

이렇게 적혀 있는데 사실 우회를 할려니 막연합니다.

그리 깊은 개울은 아니지만 개울을 건너 반대편으로 가야 하는데 조금 거시기 하여 그냥 떨어진 밥톨은 절대 손대지 않고 통과를 하였습니다.

 

근데 반대편에서 오는 분들은 이 글을 보지 못했는지 완전 밤 주우려 온 분들같이 온 밤나무 아래를 뒤지며 밤알을 줍고 있습니다.

정말.. 내가 승질이..

농사 짓는 분들의 속을 누가 알까요?

 

 

 

 

 

 

 

출렁다리를 만났습니다.

 

엄청 신나는 곳입니다.

좌우로 흔들흔들..

앞 뒤로 흔들흔들..

 

 

근데 요즘은 이런 출렁다리가 아주 튼튼하게 만들어 신나기는 하지만 그리 위험하지는 않은데 아주 오래 전 우리 시골의 출렁다리는 그렇지 못했습니다.

면 장터에서 강을 건너 건너편 마을로 이어지는 출렁다리가 있었는데 손잡이 높이가 허리띠 아래이고 난간은 공사장에서 쓰는 구멍 송송 뚫린 비계받침대인데 동네 처녀가 이곳 출렁다리를 건너다가 못된 이웃 청년들이 마구 흔드는 바람에 출렁다리가 뒤집어지고 그 처녀는 떨어져 불구자가 되었답니다.

 

 

 

 

 

 

 

 

 

 

 

출렁다리 끝에 붙어져 있는 안내판

이곳 출렁다리에서 난가벽을 지나 임천석대까지의 구간이 하일라일트입니다.

경치도 좋을 뿐더러 쉼자리도 많은 곳입니다.

 

 

 

냇가에는 구절초가 피었습니다.

가을의 풍경으로 변하여지는 내의 가...

물빛도 물 내음도 곳 모두 변하겠지요.

 

 

 

 

저승골 입구

 

이름이 조금 썸뜩 합니다.

고려때 몽고군이 이곳에서 크게 패하여 많이 죽은 곳이라 하여 이름 붙여진 곳이라 합니다.

이 계곡을 따라 올라가면 저승골폭포가 있다고 하여 한번 올라 가려다가 그냥 통과...

 

 

 

 

 

 

 

 

 

 

 

좌측의 바위대가 임천석대( 林千石臺)입니다.

임천석은 사람 이름입니다.

 

위 사진에 보이는 빨간 동그라미는 부처바위 입니다.

아래 사진에서 설명...

 

 

임천석에 관한 내용은 인용하여 옮겨 놓습니다.

 

임천석은 북과 거문고를 잘 켜는 고려 영관(伶官)으로 고려가 망하자 건너편 높은 절벽 위에 삼단으로 큰 돌을 축조하고 열 명 남짓 앉을 수 있는 평평한 돌을 놓아 그 위에서 거문고를 키며 불사이군의 충절을 지킨 고려 악사(樂士)이다.


태종이 음률을 잘 아는 것을 알고 부르자 거절하고 다시 강압을 하자 두 임금을 섬길 수 없다는 절명사를 남기고 바위 위에서 떨어져 죽었다. (상주의 역사서 商山誌에 전한다.)
왕조실록 정조 편에 김광우가 ‘우주 간에 길이 빛날 충절이니 비를 새겨 남기자.’상소하자 정조 대왕이 윤허했지만 현재 비는 찾을 수 없다.


이 곳 상주 모동 수봉리 마을로 낙향하기 백오십여 년 전 파죽지세로 남하한 몽고의 강적을 만나 적의 과반을 사살하여 대첩을 이룬 건너편의 백화산 저승골, 저승폭포, 저승문을 바라보며 또 몽고군이 방성통곡하며 물러간 방성재의 역사를 되새기면서 임천석대 위에서 북과 거문고로 망국의 한을 달랬을 것이다.


성해응(成海應)의 ‘44명의 신라, 고려인 행적을 담은’ 羅麗遺民傳에도 “임천석대 아래 떨어져 죽으니 수풀 사이로 새들이 슬피 울고 산하가 참담하였다.” 고 임천석을 기린다.

 

 

길 가의 커다란 바위에는 임천석대 노래(林千石臺歌)라는 글씨가 새겨져 있습니다. 강세진이란 분이 지었네요.
 

임천석대 노래(林千石臺歌)

강세진(姜世晋)

 

水瀰瀰石崔崔               물은 세차게 깊게 흐르고 바위는 높디 높으니
人說林君千錫之故臺      사람들이 일컬어 임천석대라고 한다.
林君麗季時伶官            임천석은 고려 말의 악사였는데
桐絲一鷗                     동강에 낚시하며 갈매기 한 마리
能令鳳凰爲徘徊            능히 봉황으로 배회하게 했다.
麗王淫戱自勦絶            고려의 왕 음란을 즐기며 스스로 지쳐 파멸하니
鵠嶺伯氣寒於灰            고려의 흰 기운이 재 같이 싸늘했다.
掛我珠冠飄遠擧            벼슬자리 의관을 벗어 걸고 표류하듯 멀리 가니
一溪禽鳥近無猜            온 시내의 새들이 친근하여 시기하지 않도다.
抱琴時上百尺臺            거문고 품고 때때로 백척의 대에 오르니
蕭蕭黍離悲風來            쓸쓸한 삶에 슬픈 바람만 불어온다.
一彈潛潛亡國淚            한번 거문고를 타니 망국의 눈물 흘러내리고
再彈咽咽孤臣哀            다시 타니 외로운 신하의 비애 목이 멘다.
我是麗朝之遺民            나는 고려 조정의 유민인데
嗟爾使者胡爲乎來哉      슬프다. 임금의 사자가 어이해 멀리서 오는가.
幽絲在彈絶命詞            끊어질 듯 이어지는 절명사를 다시 타니
頭上麗日看看頹            머리 위로 고려의 해 기울여져 보인다.
曲終自投臺下水            곡을 마치고 스스로 대 아래 물에 몸을 던지니
魂逐遊魚去不廻            넋은 노는 고기 따라가 되돌아오지 않네.
水不渴石不泐               물은 마르지 않고 돌은 닳지 않아
林君義烈與之留            임천석의 의로움이 더불어 머물러 있다.
藁萊烈光                     풀이 무성한 곳에 의로움이 빛나니
暖暖山鳥悲                  해맑은 산새소리도 슬퍼진다.
我今發揮歌                  내가 이제 노래로 펼쳐
詩傳八垓                     詩로 온 세상에 전한다.

 

 

 

부처바위를 조금 당겨서 본 모습

 

부처바위는 길에서 보면 그렇게 눈에 뜨이지 않는데 여울쪽으로 발을 옮겨 바라보면 바로 정면으로 보여 집니다.

멀리서 보면 입석불의 모습인데 카메라로 확 당겨서 보니 그냥 돌이었습니다.

 

 

 

 

 

고추잠자리

어릴때 시골동네의 여름방학때

동산에 누워 있으면 파란 하늘 아래 온통 고추잠자리였는데 그때 그 잠자리들은 지금 다 어디로 갔을까요?

 

 

 

 

 

 

 

 

 

 

 

 

세월교란 돌다리입니다.

홍수가 나면 넘치겠지요?

다리 건너 위험 주의표시가 적혀 있네요.

 

 

 

이제 반야사가 가까워 졌습니다.

여울 건너로 반야사에서 개울로 온 분들이 보여 집니다.

 

 

 

반야가 가기 전 만나는 엄청난 덜 무더기.

일명 너덜이라고 하는데 아주 엄청 납니다.

이 돌무더기가 반야사에서 바라보면 그 유명한 반야사 호랑이가 됩니다.

 

 

 

 

 

 

 

개울 건너 반야사(般若寺)가 보여 집니다.

트래킹 구간의 종점입니다.

 

 

 

 

 

 

 

 

 

 

 

반야사로 건너가기 전의 돌 무더기

 

이게 반야사의 호랑이입니다.

아직까지 뒷다리가 보이지 않습니다.

더욱 자세한 설명은 아래의 반야사 경내에서...

 

 

 

반야사 경내의 호랭이가 아닌 견보살

 

 

 

 

 

 

 

 

 

 

 

반야사 경내에서 조망 되는 반야사 호랑이

이제 뒷다리도 보여 집니다.

우리나라 어느 절에서도 볼 수 없는 특별한 것을 보여주는 곳이 바로 이 반야사인데 절 뒤로 보여지는 호랑이 때문입니다.

반야사에서는 호랭이 모양의 이 돌 무더기를 아주 특별하게 여겨서 절의 이미지와 많이 연관을 시키고 있는 듯 합니다.

 

반야사에 관한 설명 글은 인용을 하면서..

 

반야사는 신라 문무왕 때 원효(元曉)가 창건하였다는 설도 있으나, 720년(성덕왕 19) 의상(義湘)의 십대제자 중 한 사람인 상원(相源)이 창건하였다는 것이 정설로 되어 있다. 그 뒤 수차례의 중수를 거쳐서 1464년(세조 10) 세조의 허락을 얻어 크게 중창하였다. 세조는 속리산 복천사(福泉寺)에 들러 9일 동안의 법회를 끝낸 뒤, 신미(信眉) 등의 청으로 이 절의 중창된 모습을 살피고 대웅전에 참배하였다. 이때 문수동자(文殊童子)가 세조에게 따라오라 하면서 절 뒤쪽 계곡인 망경대(望景臺) 영천(靈泉)으로 인도하여 목욕할 것을 권하였다. 동자는 “왕의 불심(佛心)이 갸륵하여 부처님의 자비가 따른다.”는 말을 남기고 사자를 타고 사라졌다 한다. 세조는 황홀한 기분으로 절에 돌아와서 어필(御筆)을 하사하였는데 지금까지도 보관되어 있다. 이 절의 이름을 반야사라고 한 것도 이 절 주위에 문수보살이 상주한다는 신앙 때문이며, 문수의 반야를 상징하여 절 이름을 붙인 것이다.

 

 

 

반야사와 돌 무더기의 호랑이 형상

 

 

 

그리고 어떤 외로움...

 

 

 

 

 

 

반야사에서 주차장으로 내려 오면서 치어다 보이는 백화산 정상 풍경

왼편 중앙의 높이 솟은 봉우리가 백화산 정상인 한성봉입니다.

 

 

 

그리고 능선을 이어달려 만나는 주행봉의 풍경

 

 

 

구수천 트래킹을 만나고 잠시 와인코리아를 들려 봤습니다.

 

 

소개글을 인용합니다.

 

 

청풍명월(淸風明月)의 고장 충청북도 영동에 자리한 와인코리아는 현재 한국에서 유일한 와이너리(포도주를 만드는 양조장)로서, 포도 재배에서부터 정통 고급와인(샤토마니, ChateauMani)을 직접 생산하고 있다. 특히, 2006년 11월부터 와인코리아(주)에서 운영하는 "와인트레인"은 서울과 충청북도 영동 간 당일코스로 운행되는 테마열차이다. 서울역에서 출발하는 특별 열차를 타면 카페분위기로 꾸며진 레드/화이트와인, 인삼 등의 테마를 가진 객차에서 영동에서 생산된 포도로 만든 한국산 와인을 무제한으로 즐길 수 있다. 열차 내의 행사를 마치고 영동에 있는 "와인코리아"로 이동하여 와인족욕 체험 및 천연화장품 만들기 체험, 공장 견학 등을 할 수 있다. 와인 뿐만 아니라 금산의 인삼전시관과 약초재래시장 관람까지 하고 나면 낭만적인 와인트레인 이색 테마여행은 끝이 난다. 또한, 와인코리아에서 생산ㆍ개발된 와인을 비롯한 웰빙포도즙, 독일 차, 샤토마니 와인화장품 등의 상품들은 온라인상에서도 구입이 가능하다.

 

 

 

 

 

 

정원 앞의 잔디밭에는 와인병의 모양으로 포도넝쿨이 만들어져 있는데 이채롭습니다.

이곳에서 식사를 하면 와인을 무제한으로 제공한다는 말이 확 와 닿았습니다.

 

 

 

 

1인 5,000원

와인 족욕탕

30여분 담그고 있으니 피로가 슬 ~ 풀리는 듯 했지만..

이건 누군가..

'풀리죠?' '풀리죠" '피로가 확 풀리죠?' 하고 자꾸 강조를 하니 그런갑따하고 자가최면이 걸려 그리 느낄 수도 있다는 생각...

 

 

 

 

일단 마시기에도 아까운 와인을 마구 풀어 족탕을 만들었다니 조금 기분이 떨떠부리하면서도 한 족욕했습니다.

 

 

 

족욕탕 위에는 포도가 잔뜩 달려 있구요.

 

 

 

와인 저장고

 

 

 

 

 

 

 

 

 

이곳 와인코리아에서는 요즘 메스컴에서 한창 인기있는 아로니아를 만들어 판매하고 있는데 가격이 만만찮습니다.

암튼 나는 아즉 그렁거 안 먹어도 될 듯 하여 구입은 보류..

 

공짜로 25,000원짜리 와인 한병은 얻어 왔습니다.

 

 

 

 

가을....

가을 입니다.

 

 

가을이 이제 시작이 되었네요.

이 계절에 난 얼마나 앓이를 하야 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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