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과 그림
2008. 10. 24.
일곱살때 할머니에게서 드른 흰 암여우 이얘기 - 서정주
횅하게 휘영청 밝은 달밤엔 꼬리 아홉개 달린 흰 암여우가 우리집 뒷골 세갈림길에서 재주를 휙하고 한번 넘으면 쉬는 숨결에서도 항시 좋은 향내가 나는 꽃보다도 더 이쁜 여자가 되어 사내들을 호리러 나온다고, 어느 달밤에 할머니가 말씀하셔서, 나도 사내는 사내인지라 이튼날 아침엔 나막신 신꼬 골목길로 나서서 한식경을 기웃거리며 찾어보았지만 영영 그 모양은 보이지 않어서, 언덕에 올라 개(浦) 넘어 山쪽을 건네다 보니 보리밭 위에 흰구름만 둥둥둥 떠가면서 그 구름그늘에 보리 누른빛이 어섬프레 잠기고 있었을 뿐, 여든살이 된 이날 이때까지도 그런 여자를 만나본 일은 없다. 숨결이 늘 향기로운 그런 여자도, 그 아홉개의 흰꼬리가 드디어 드러나는 여자도 아직까지는 본 일이 없다. 아마 이것은 할머니가 못된 여자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