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령 옛길과 무섬마을 여행

Posted by 두가 여행 일기 : 2009.07.03 09:50


1800년 전에 만든 죽령 옛길을 아시나요?
 
오대산 상원사 범종각안에는 국보 36호인 동종이 있는데 높이는 사람 키정도 밖에 안되지만 그 무게가 2톤이나 됩니다.
이 종은 에밀레종보다 100년 전에 만들어져서 안동의 어떤 절에 걸려 있다가 조선초기 억불 정책으로 절이 엉망이 되는 바람에 안동 남문루에 옮겨 걸어 놓고 때 맞춰 시간을 알려주는 종이 되어 버렸지요. 그 뒤 세조가 등극하여 오대산 월정사와 상원사를 넓히면서 왕이 죽어면 그 화상을 보관하는 원당사찰로 지정하면서 소리 좋은 종을 하나 구해 이곳으로 옮기라는 어명을 내렸습니다.

어명을 받들고 전국을 다니며 종소리를 검사하던 신하(운종도감)가 이 별 볼일 없이 시간종으로 땡땡 거리던 안동 남문루의 종을 보게 되었고 그 종소리가 너무나 청아하고 맑아서 ..바로 이것.. 하고 지적을 하면서 800년 묵은 이 종이 졸지에 안동에서 강원도 상원사로 옮겨 지게 된것입니다.


요즘 세상이라면 지게차로 떠서 5톤 화물차에 실고 내달리면 한나절밖에 안걸리겠지만 그때는 500명의 인부와 100필의 말로 몇달의 시간이 걸리는 대단한 노역이었습니다. 이렇게 어렵게 옮겨지던 종이 소백산 죽령 고개를 넘게 되었는데 거의 고갯마루를 다 오르던 종이 그만 꼼짝을 하지 않는 것이었습니다. 인부들이 힘이 빠져 그러려니 하고 하루 쉬고 다음날 용을 쓰도 역시 제자리에서 전혀 움직이질 않는 것이었죠. 이러기를 5일째..


운반을 책임지던 운종도감은 제사도 지내고 향도 피우고 하다가 문득 뭔가가 느껴지는 것이 있었습니다. 100년도 못 사는 사람도 제 고향을 떠나면 아쉬워 뒤를 돌아 보게 되는데 800년이나 된 종이 오죽 하겠느냐는 생각을 하게 된것입니다. 그리하여 종이 이곳 고향 땅에 뭔가 남겨 놀 정붙이가 없을까 하다가 종에 달린 36개의 젖꼭지 중 한개를 잘라서 안동 남문루 밑에 뭍고 정성껏 제를 지낸 다음 다시 돌아와 ..이제 그만 가시지요.. 하니 그때서야 종이 움직여 무사히 상원사까지 옮겼다고 합니다.

이때 그 동종이 넘던 고개가 바로 신라 아사달 5년(158년) 죽죽에 의하여 개통한 죽령옛길인 것입니다.


현재 소백산 죽령을 넘어가는 방법은 우리나라에서 가장 긴 터널인 죽령터널을 통과하는 중앙 고속도로를 이용하는 방법, 그리고 철도를 이용하여 통과하거나 5번 일반국도를 이용하여 꼬불꼬불 죽령을 넘어가는 방법이 있습니다.


그리고 또 하나의 길.아는 사람만 아는 길..
개통된지 1800년이 넘는 길이자 상원사 동종이 넘어가고 퇴계의 연인 두향이가 도산서원에 있던 퇴계의 죽음을 알고 소복으로 한달음에 넘던 고개..  바로 그길이 죽령 옛길입니다. 아마 죽령을 많이 넘어 다녀보신 분도 이 죽령에 그렇게 오래된 옛길이 있다는 것을 아시는 분은 그리 많지 않을 것입니다. 이 죽령 옛길은 아주 오래전 영남 지방에서 경기 충청의 호서지방을 잇는 세군데 길인 추풍령과 조령(문경새재)와 함께 영남의 양반, 진사, 대감의 행차 길이었고 지방에서 생산되는 곡물과 진상품을 수송하는 대로였으며 과거 보러 가는 선비는 대나무 같이 미끄러져 낙방 한다하여 나름 공부꽤나 하여 자신이 있는 선비만 이곳을  지났다고 합니다.


현재 남아 있는 옛길은 소백산역(구 희방사역)에서 고갯마루까지만 연결되어 있고 반대편에는 아쉽게도 보존되어 있지 않습니다.
등산에 전혀 취미가 없으신 분도 이 옛길은 수월하게 오르내릴수 있으며 탐방에 소요되는 시간은 소백산 역에서 죽령 고갯마루 주막까지 넉넉잡고 1시간이면 됩니다. 다시 되돌아 내려 오는 시간은 그보다 적게 걸리겠지요.


죽령 옛길을 찾아 가실려면 소백산역(희방사역)을 먼저 찾으시면 됩니다. 소백산역은 죽령고개를 기준으로 남쪽의 안동 영주 방면으로 내려가다가 거의 고개를 다 내려간 지점의 오른쪽에 있습니다. 역에 도착하면 옛길에 대한 안내 간판이 있고 잘 모르시면 역내의 직원 분께(이곳에는 하루 두번만 열차가 서기 때문에 직원 이래야 거의 한분이 근무 중) 문의 하면 친절하게 가르켜 줍니다. 옛길은 초입에 사과 과수원이나 산 기슭을 지나기 때문에 햇볕에 노출이 되나 조금만 올라가면 온통 숲 그늘로 이어진 길이기 때문에 여름에 아이들과 탐방 하여도 아주 좋습니다.


소백산 역에서 죽령옛길을 찾아 조금만 올라가면 이렇게 안내판이 서 있습니다.

옛길의 편도 거리가 2km 이네요.

입구에는이렇게 대장군 장승도 반겨 주지요. 여기까지는 햇살을 받고 가야 합니다.

그리고 바로 이어지는 숲길. 이렇게 햇살을 가리는 숲길은 죽 이어집니다.
참 걷기가 좋은 길입니다. 아마 산길을 싫어 하시는 분도 쉽게 걸어실수 있습니다.

오래 전 주막터가 보입니다. 지금은 숲만 무성하고 그때의 울타리 돌담만 남아 있습니다.

쭉쭉 뻗은 전나무 숲길도 있습니다..그 옛날 이길을 넘던 이들이 이쯤에서 잠시 쉬어 가지 않았을까요.

어름이라고 아세요?
한국 바나나라고 하는데 늦여름이 되면 익습니다. 달고 맛이 굉장히 좋구요.
이 어름나무가 이곳에는 굉장히 많습니다. 자세히 보면 열매가 많이 달려 있습니다..
늦 여름에 오시는분은 잘 익은 어름을 맛볼수 있을듯.


쉬엄쉬엄 올라 드디어 죽령 고갯마루에 도착..

동동주 한잔 안할수가 없지요..^^

경북과 충북의 경계선인 죽령고개.. 늘어선 장승들이 제법 위엄을 보입니다.

다시 되돌아 내려온 처음 출발지 소백산역.. 이전엔 희방사역이라 하였습니다.
하루에 정차하는 열차가 두편밖에 없어 무지 조용합니다.
승용차를 가져 가셨다면 이곳에 주차 하시거나 조금 더 가져 올라가도 됩니다.


소백산역..
지난번에 언제 한번 왔을때 벽에 보이는 그림을 두분이 그리고 있었는데 오늘 보니 아주 잘 그렸네요..
글씨를 쓴 솜씨로 봐서는 아마 역의 직원분들이 외부에 용역주지 않고 직접 칠하고 그렸지 않나 짐작 됩니다.




그리고.. 나에게로 떠나는 여행 영주 무섬마을
 
죽령 옛길을 왕복하는데는 2시간이면 충분합니다. 고갯마루에 있는 죽령주막에 들려 막걸리 한잔하고도 3시간이면 충분하기 때문에 먹거리 좀 준비하고 맥주 몇 병 지참하여 옛길 계곡 속에서 푹 쉬고 올 요량이 아니면 이곳에서 가깝지만 전혀 알려지지 않는 멋진 한 곳을 더 다녀 보실것을 권합니다.


무섬마을이라고 하는 곳인데 이곳 죽령에서 약 30분정도 달리면 도착할수 있는 곳입니다.


이곳을 찾아 가는 방법은 남쪽에서 올라갈때는 예천IC에서 내리면 되고 윗쪽 지방에서 내려 올때는 영주 IC에서 내리면 됩니다. 나머지는 좀 복잡하기 때문에 네비아가씨의 친절한 안내를 받는것이 낳습니다.


무섬마을의 무섬이란 뜻은 물위에 있는 마을이란 뜻으로 물섬이라는 말이 변하여 진것으로서, 공식 명칭은 수도리(水島里)입니다. 우리나라에는 여러곳의 물돌이 마을이 있는데 많이 알려진 곳으로는 예천 회룡포(이곳), 안동 하회마을, 무주 내도리, 그리고 이곳 무섬마을이 있는데 풍광으로 치면 회룡포이고 아늑함으로 치면 이곳 무섬마을이 아닐까 합니다.


이곳에는 반남박씨와 선성김씨의 집성촌이며 옛 선비의 기풍이 물씬 풍기는 아주 양반촌의 형식입니다. 50가구 가까이 되는데 현재 거주 하시는 분은 그리 많지 않습니다. 일부 도회지에 따로 집을 두고 주말에 한번씩 내려와 집을 관리하는 형식으로 지내는 분도 있습니다.


현재 180억원을 들여 1차로 문화재 마을로 보수를 하였습니다.
그 중 16채의 가옥은 조선후기의 전형적인 사대부 가옥으로서 툇마루에 서서 여봐라..하고 외치면 곧 어디선가 마당쇠가 달려 올것만 같은 영화 속에나 봄직한 그런 고택들을 집안에 들어가서 자세히 볼수 있습니다.


그 외에 이곳 무섬마을에는 아주 특별한 이벤트성 소재가 있는데 바로 동네 앞을 흐르는 낙동강 지류인 내성천에 놓인 외나무 다리입니다. 마을과 외부를 연결하는 콘크리트 다리가 놓이기 전까지 강에 놓였던 다리를 이 마을에서 옛날 방식 그대로 이어져 놓고 있는 것입니다. 매년 외나무다리 축제를 여는데 올해는 11월에 개최 한다고 하네요. 해마다 축제때는 이 다리를 담기 위해 사진작가만 1,000여명이 찾아 온다고 합니다.


이 외나무 다리는 통나무를 길이 방향으로 적당한 두께로 잘라서 이어놓은 다리로서 겨우 발자국을 놓을 정도의 폭입니다만 넓다란 강폭에 일직선으로 놓지 않고 곡선으로 운치있게 놓은 모습과 흘러가는 강물이 너무나 기막히게 조화가 되어집니다.


두가도 지난 봄에 이곳을 찾았다가 이 외나무 다리에 반하여 한나절을 놀다 왔는데 이번에 다시 가보니 마침 장마철을 앞두어 다리는 철거한 상태였습니다. 매년 장마전에 철거 하였다가 여름 지나면 다시 놓는다고 하니 이번 가을 11월 외나무다리 축제때 가보시면 너무나 멋진 풍광을 만나실 수 있을 것입니다.



무섬마을 앞쪽 산에서 본 물돌이 무섬마을 풍경
(이 사진은 웹에서 빌렸습니다.)

마을 주거 형태는 대략 초가 반 기와 반 정도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김규진가옥.. 주인장이 마침 돌아와서 한참 머물렀던 집입니다.
이집은 경북 문화재 자료 361호로 지정되어 있으며 얼마전  집 서까레만 일부 교체 보수 하는데
비용이 1억이 들었답니다.물론 나라에서 해준 일이지만요.
지붕위에 구멍이 뻥 뚤린것은 까치구멍이라하고 이런 집의 형태를 까치구멍집이라 한답니다.

이 집의 100년이 넘은 마루에 앉아 있어니 참으로 시원 하더이다.
그저 뭔가를 대접할려는 주인의 인심도 좋았구요..^^

다시 다른 옆집으로 자리를 옮겼습니다..
이집 주인이 그 옛날 인근 30리는 모두 자기네 논이라 하였을 정도로 부자였답니다.
김위진의 가옥으로 소개가 되어 있습니다.

어느 집앞을 지나는데 모처럼 사람 사는 모습을 구경한 것 같습니다.
할머니 한분이 소일거리로 시간을 보내시는 것 같습니다.

반듯반듯한 기와집들이 매우 정갈하고 풍채있게 보여집니다.
이곳에는 모든 전선과 관들을 모두 지하로 매설하여 미관을 최대한 살렸습니다.

춘향이가 드나들듯한 별당으로 통하는 예쁜 문이 달려 있습니다..  기둥에 서 있는 것은 토종 벌통 이구요.

이 동네에서는 아마 이 집의 위세가 가장 대단한듯 여겨집니다. 집의 규모가 엄청나게 컸습니다.
고종때 의금부도사를 지낸 해우당 김낙풍의 고택으로 되어 있습니다.
본채 구조가 □ 형태로 되어 있고 그 안쪽으로 다시 마당이 있었습니다.

대강 봐도 위세가 엿보입니다.
 

위의 그림에서도 보여 지지만 사랑채 위에 걸려 있는 이 편액은 고종의 아버지이자
실제 막후 권력자였던 홍선대원군의 친필이라고 합니다.
그 시대에 물론 벼슬을 하여서 홍선의 총애가 있었겠지만 제법 운치있게
날려쓴 홍선의 필체가 시대의 권력을 암시 하는듯 합니다.

외나무다리가 보이지 않아 아쉬웠습니다.
사진에서 우측 강가 나무숲이 터인 곳과 이편 무섬마을을 연결하는 외나무다리는 장마철 외에는 설치됩니다.

이 사진과 아래 사진은 올 봄에 들렸을 때의 외나무 다리의 풍경과 가장 비슷하여 웹에서 빌려 올려 놓았습니다.
외나무 다리 길이는 약 200m는 족히 될듯 하였습니다.
건너 가다가 중심 못잡고 물에 빠져도 전혀 위험하지는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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