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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일기

경주 여행 첫날 - 불국사와 석굴암, 물레방아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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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틀동안 아내와 경주여행을 다녀 왔습니다.

전국을 강타한 메르스의 영향으로 현충일과 일요일을 잇는 이틀동안의 연휴인데도 경주는 한산하였습니다. 특히나 단체로 이동하는 관광버스가 눈에 띄게 줄어 들었구요. 마스크를 끼고 다니는 이들도 제법 많았습니다. 메르스니 뭐니 이런거 상관없이 그냥 여행에 집중 한다면 오히려 여행지가 한가해진 요즘이 더 낫다는 역발상적 생각도 하여 봤습니다.

 

첫날은 불국사와 석굴암을 둘러보는 문화관광을 하였고 둘째날은 경주세계문화엑스포공원과 신라밀레니엄파크를 둘러보는 눈요기 관광을 하였습니다. 숙소가 보문호에 있어 경주까지 나가지 않고 주변만 뱅뱅 돌아 다닌 것입니다.

 

 

 

 

첫날 일정으로 대구에서 경주에 도착하여 먼저 들린 곳은 불국사입니다.

유네스코문화유산으로 등록되어 있는 사찰이니 그만큼 문화적인 가치도 대단한 절이라고 생각하면 될 것 같습니다.

 

그러나 사실 저도 불국사가 고도 경주의 대표적인 사찰인데다가 경주의 랜드마크인데도 이곳에 그리 자주 와 보는 편은 아닙니다.

그리고 불국사는 알려진 명성만큼 대다난 규모의 사찰은 아니지만 딱 두가지는 늘 관심있게 보는 편입니다.

 하나는 청운교 백운교가 있는 불국사 입구쪽의 풍경이고 또 하나는 석가탑과 다보탑입니다.

 

 

 

 

 불국사를 표현할때 가장 대표적인 풍경입니다.

청운교 백운교가 있고 연화교 칠보교도 보여 집니다.

앞쪽이 연화교와 칠보교이고 뒷쪽으로 보이는 계단처럼 보이는 다리가 청운교 백운교입니다.

 

이곳에 관한 설명글을 인용하면,

 

1962년 12월 20일 국보 제23호로 지정되었다. 청운교 높이 3.82m·너비 5.11m, 백운교 높이 3.15m·너비 5.09m이다. 토함산(吐含山) 줄기를 잘라 남향으로 석단(石壇)을 만들어 고대(高臺)를 이루었는데, 이 석단 전면(前面) 두 군데에 석계(石階)를 가설하여 당탑(堂塔)에 오르도록 하였다. 동쪽에 있는 2단의 석계가 바로 이것이며 위의 것을 청운교, 밑의 것을 백운교라 한다. 18단의 백운교는 등형(登桁)에 의해 좌우로 구분되었으며, 좌우단(左右端)의 등형에는 원래 난간이 가설되었던 듯하다. 지금은 상하에 석주만 남아 있다. 다리 아래는 작은 석재를 가구(架構)하여 궁륭형(穹窿形)을 만들어 통행이 가능케 하였다.

 

청운교를 올라서 보도(步道)를 따라 서쪽의 환상적인 범영루(泛影樓) 석주(石柱)를 지나면 극락전 앞에 이른다. 백운교 위의 청운교는 16단으로, 규모가 작을 뿐 구성양식은 청운교와 같다. 이 다리 밑에도 작은 궁륭형 통로가 마련되었고, 그 양쪽에서 옆으로 길게 뻗은 얇고 넓은 갑석(甲石)의 수법 역시 청운교와 같다. 세부양식 또한 서쪽의 석계나 그 밖의 당탑(堂塔)과 조화를 이루고 있다. 불국사의 중창이 경덕왕 때 김대성(金大城)의 발원으로 이루어졌다고 전해지므로, 이 석계의 건치(建置) 연대도 그 당시로 추정된다.

 

 

 이건 사진을 유심히 보셔야만 합니다.

석가모니불을 모신 대웅전 마당의 기단인데 인공석을 자연석에 맞물리게 깎아서 쌓았습니다.

아래쪽에 자연석이 있고 그 위에 돌을 다듬어 쌓은 인공석이 있는데 하단의 자연석에 맞춰 조각을 한 다음 쌓았습니다.

돌을 이런 식으로 쌓아두면 어떤지진에도 견디는 견고한 맞물림이 된다고 하는데 이런 형식은 우리나라 밖에 없다고 합니다.

이렇게 쌓는 방식을 그렝이공법이라고 합니다.

 

 

 

 이전에는 청운교와 백운교 계단을 이용하여 바로 올갈 수 있었으나 지금은 이용할 수 없고 우회하여 본당으로 올라 갈 수 있습니다.

 

 

 

옛날 10원짜리 동전의 한면을 장식하였던 다보탑..

이것을 어찌 돌 조각이라고 생각 할 수 있을까?

목조 건축물에나 있을 법한 오밀조밀한 조각을 돌에다가 새긴 신라인의 장인정신...

 

 

 

석가탑은 현재 해체 보수 중입니다.(좌측 유리건물 안)

한국 석탑의 원형이라 할 수있는 석가탑..

어떤 경우라도 석가탑보다 더 완연한 형태의 탑은 없다고 하네요.

 

 

 

관람객들이 해체보수 중인 석가탑을 관심있게 보고 있습니다.

관람객을 위한 배려로 유리창 밖에서 안쪽의 공사현장을 잘 볼 수가 있네요..

 

 

 

 

 

 

 

 

 

 

 

현재 기단을 조립 중입니다.

 

 

 

 

 

 

 

 

 

 

 

 

 

 

 

 

 

 

 

불국사 구경을 느긋하게 마치고 토함산에 있는 석굴암 구경을 하였습니다.

 

석굴암은 불국사에서 걸어서도 올라갈 수도 있습니다. 걸어서 올라 갈 경우 약 50분 정도가 소요 됩니다.

이전에 한 번 걸어 올라 갔는데 석굴암 입구에서 위낙에 많은 인파가 관람을 기다리고 있어 들어 가 보지도 못하고 내려 온 기억이 있습니다.

이번에는 차량을 이용하여 슝~하고 쉽사리 올라 갔습니다.

불국사에서 약 15분 정도가 소요 됩니다.

 

 

 

 

석굴암 입구인 주차장에 도착 하였습니다.

 

이곳에서 석굴암까지는 약 600m

느긋한 도보길로 되어 있습니다.

연휴인데도 메르스의 영향으로 한가 한 편입니다.

불국사보다도 휠씬 인기가 있는 관람지이라 이곳에는 늘 인파로 붐비는 곳인데 이처럼 한가하니...

 

 

 

 

 

 

 

 

석굴암 다람쥐

 

석굴암 주차장에서 석굴암까지 가는 약 600m의 도로에는 다람쥐 천국입니다.

사람들이 걸어가면서 흘린 부스러기들을 주워 먹어면서 이제는 사람과 입맛이 비슷하게 변해버린 다람쥐들이 사람들을 전혀 겁을 내지 않고 다가 옵니다.

 

 

 

제가 손을 내미니 먹을 것이 있는가 하고 다람쥐가 다가 옵니다.

 

 

 

석굴암에 도착 하였습니다.

중앙 위로 보이는 기와집이 석굴암 입구입니다.

 

 

 

 

 

석굴암에 대하여는 제 설명글보다는 인용글로 대신합니다.

 


문화재청에 등록된 정식명칭은 석굴암석굴이며, 《삼국유사》에 나오는 원래 이름은 석불사이다. 임진왜란 이후 불국사에 예속되었고, 1910년경부터 일본인들이 석불사 대신 현재의 석굴암(石窟庵)으로 부르기 시작했다.

 

일연(一然)의 《삼국유사(三國遺事)》를 보면, 석굴암은 8세기 중엽인 통일신라 751년(경덕왕 10)에 대상(大相) 김대성(金大城)이 불국사(佛國寺)를 중창(重刱)할 때, 왕명에 따라 착공한 것으로 되어 있다. 즉, 그는 현세(現世)의 부모를 위하여 불국사를 세우는 한편, 전세(前世)의 부모를 위해서는 석굴암을 세웠다는 것이다.

 

이는 불교의 인과응보(因果應報) 설화를 기반으로 한 요소가 엿보이는 전설적인 유래이지만, 대상 김문량(金文亮)의 집에 환생(還生)하였다는 김대성은 《삼국사기(三國史記)》에 나타나듯이 경덕왕대에 중시(中侍)로 있었던 김문량이 실존인물임에 비추어, 그의 아들인 김대정(金大正)이 신라의 기명(記名) 방식에 의해 대성과 동일인물인 것으로 추정할 수도 있다.

 

따라서 김대성은 왕명을 받들어 토함산의 정상을 사이에 두고 동서로 전개하여 불국사와 석굴암이라는 김씨 왕족(金氏王族)을 위한 2대 사찰의 건립에 마지막 생애를 다 바쳤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석굴암은 김대성 생전에 완공을 보지 못하여 그 조영사업은 국가가 마침내 완성시켰다고 한다. 이 점은 분명히 석굴암의 창건이 김대성이라는 개인의 원력(願力)으로 이루어졌다기보다는, 왕실을 비롯한 당시 신라인 모두가 염원한 거족적인 일대 불사(佛事)였음을 알 수 있다.

 

특히, 그것은 석굴암의 방위(方位)가 김씨 왕족의 공동묘역(共同墓域)인 신라의 동해구(東海口)와 일치하고 있음을 보아도 더욱 뚜렷해진다. 동해구란, 삼국통일의 영주(英主)인 문무왕(文武王)의 해중릉(海中陵), 즉 대왕암(大王巖)이 자리잡고 있는 곳을 말한다.

 

문무왕은 욕진왜병(欲鎭倭兵)하고자 동해의 호국대룡(護國大龍)이 되어 저승에서까지 국가수호의 집념을 잃지 않겠다는 군왕이었다. 이 같은 호국사상은 동해구의 유적인 해중릉을 비롯하여 감은사(感恩寺)나 이견대(利見臺), 그리고 석굴암과 동해구와의 관계 등에서 같은 맥락으로 파악될 수 있다. 이 점은 석굴암의 창건주인 경덕왕의 선왕(先王), 즉 효성왕(孝成王) 역시 화장 후 산골(散骨)된 곳이 이 동해구여서, 석굴암 대불의 시각(視角)이 동남동 방향으로 동해구를 향하고 있다는 사실과 연관성이 있다.

 

그것은 곧 신라인의 믿음과 호국정신의 요람으로서 국찰(國刹)도 같았던 석굴암의 존재를 뚜렷이 부각시켜 주는 예라고 하겠다. 이로써 석굴암이 지니고 있는 신앙적인 측면은 물론, 조형적인 면까지 신라미술의 최고 절정을 이룬 민족 최대의 석조미술품으로 꼽아 결코 손색이 없는 위치를 굳히게 되었다. 1995년 유네스코에서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하였다.


석굴암의 구조적 특색은 무엇보다 화강암의 자연석을 다듬어 인공적으로 축조한 석굴사찰이라는 점이다. 즉, 인도·중국 등의 경우와 같이 천연의 암벽을 뚫고 조성한 천연석굴이 아니다.

 

이 같은 토목기술을 바탕으로 이룩된 석굴의 기본적인 평면구조는 전방후원(前方後圓)의 형태를 취하면서 네모진 공간의 전실(前室)과 원형의 주실(主室)로 나뉘어져 있다. 주실에는 단독의 원각(圓刻) 본존상(本尊像)을 비롯하여 보살과 제자상 등이 있으며, 전실에는 인왕상(仁王像)과 사천왕상(四天王像) 등을 부조(浮彫)하여 배치하였다. 이 전실의 기능은 곧 예배와 공양을 위한 장소이다.


천장은 궁륭형(穹窿  形)의 둥근 양식이며, 그 위에 연화문(蓮花紋)의 원판을 두어 천개(天蓋)로 삼고 있다. 조각상의 배치는 전실부터 시작하여 팔부신중(八部神衆) 8구, 인왕(仁王) 2구, 사천왕 4구, 천부(天部) 2구, 보살(菩薩) 3구, 나한(羅漢) 10구, 감불(龕佛) 8구와 본존여래좌상 1구가 있다. 이들 불상의 배치에 있어 두드러진 특징은 무엇보다 좌우가 대칭을 이루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는 고대 조형미술의 기본원칙과 같은 것이기도 하여서 석굴의 안정감을 한층 강조하는 구실도 하고 있다.


조각상 가운데 가장 중심을 이루고 있는 것은 본존여래좌상이다. 이 석굴 자체가 본존상을 봉안하기 위하여 조영되었던 만큼 그 의미가 매우 큰 불상이다. 예배의 주대상이 곧 이 본존상임은 물론, 중앙에 자리잡아 석굴의 내부공간을 구획한 신라 조각미술의 결정이라고 해도 지나치지 않을 뛰어난 작품이다. 본존상은 연화문이 새겨진 대좌(臺座) 위에 결가부좌(結跏趺坐)하고 있다. 광배(光背)는 석굴 후벽의 천장 밑에 둥근 연화판석(蓮花瓣石) 1매로 조성하였다. 이는 전실의 법당에서 본존상에 예배할 때, 동일시각 위에 놓여지는 치밀한 계산에 따라 처음부터 마련된 것이다.


본존상의 양식적 특징은 신라가 삼국을 통일한 직후 7세기 후반부터 유행하여 고려 전기에 이르기까지 계속된 여래좌상의 기본양식이다. 법의(法衣)는 오른쪽 어깨를 벗고 왼쪽 어깨에 가사(袈裟)를 걸친 우견편단(右肩遍袒) 양식을 보이고 있다. 또한 수인(手印)은 악마의 유혹을 물리친다는 항마촉지인(降魔觸地印)을 결(結)하고 있다. 머리 위에는 육계(肉髻  )를 표시했으며 머리는 나발(螺髮)이다. 상호(相好)는 원만한 모습에 자비(慈悲)를 지니고 있다.

 

신부(身部)는 매우 당당할 정도의 거구로서 장부의 상을 보이고 있다. 목에는 삼도(三道)가 있으며 오른손은 무릎에 올려놓고 두 번째 손가락을 다음 손가락 위에 겹쳐 운동감을 주고 있다. 왼손은 두 발 위에 놓아 편안한 자세를 보이고 있다. 어떻든 본존상의 신앙적인 의미와 조형적인 가치가 훌륭히 조화를 이루는 가운데 부드러운 자태와 인자한 표정에서 고도의 조각술을 살필 수 있는데, 이는 궁극적으로 불교의 구원상(久遠像)을 형상화한 것이라고 할 수 있겠다. 

 

 

 

 

 

 

 

멀리 동해바다가 바라다 보입니다.

 

 

 

 

 

 

석굴암 내부의 본존여래좌상은 사진 촬영이 금지되어 있어 옮겨 온 사진들로 대신 합니다.

 

 

 

 

 

 

원형이 훼손되기 전의 석굴암

 

 

 

현재의 석굴암 내부의 본존불

 

 

 

 

 

 

 

석굴암 주차장에서 조망되는 풍경

 

위 사진을 클릭하면 크게 보여 집니다.

 

 

 

경주는 떡갈비 정식이 유명한가 봅니다.

어딜가나 떡갈비 정식...

그래서 한 그릇 먹어 봤는데 맛도 괜찮고 가격도 착하고...

 

 

 

석굴암 구경하고 내려와서 들린 보문단지의 물레방아 광장

잔잔한 바람결에 돌턱에 걸터앉아 바람쐬기에 안성맞춤인 곳입니다.

이곳은 자주 와 본 곳이라 ..

 

늘 커다란 물레방아가 인상적인데 오늘은 한번 돌려 보겠습니다.

 

 

 

365일 쉬지 않고 돌아가는 물레방아...

 

 

 

이곳 물레방아광장의 파노라마 사진입니다.

 

위 사진을 클릭하면 크게 보여 집니다.

 

 

 

요즘 썰렁한 경주를 대변하는 사진 한장입니다.

무료로 보여주는 공연이 한창인데 아주 휭~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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