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고향은 합천(陜川)입니다.
이곳이 얼마나 지독한 산골이었으면 한 군(郡)안에 읍(邑)이 하나도 없었답니다.
합천군 안에 면(面)만 17개..
군 소재지가 있는 합천조차도 면이었답니다.
그런 심산 골짜기 합천이 천지개벽을 하여 지금은 힐링의 본고장으로 사람들이 찾아들고 합천호 인근 고속도로가 공사중에 있으며 그리고 몇 년 후에는 고속철도가 지나가고 KTX가 정차하는 곳으로 예정이 되어 있습니다.
미래 예시의 능력이 있었다면 이곳 합천에 딸라 이자를 내어서라도 땅 좀 사 두었을것이고 그랬다면 아마도 이 글 쓸 즈음에 하와이 호놀룰루에서 반바지 차림으로 시원한 코나를 마시며 돌아댕기고 있겠져..
암튼 제 어릴적엔 그런 미래는 꿈에도 생각 못하고 제 할아버지께서 어릴적부터 객지 유학을 시켰는데 저학년 국민학교는 밀양에서 보냈고 5학년 2학기부터 중학교까지는 거창에서 다녔답니다.
그때 제 국민학교는 학 학년이 7개 반으로서 1반부터 4반까지는 머스마, 5반부터 7반까지는 가스나..
이렇게 반이 나눠져 있었고 1학년부터 3학년까지 같이, 4학년부터 6학년까지 한 반으로 계속 같이 지내는 제도였답니다.
내리 3년을 같이 어울리니 친밀감이 엄청났구요.
뜬금없이 5학년 2학기에 전학을 간 저는 똘똘 뭉쳐 지내는 그 무리에 섞여서 뭔 재주를 부렸는지 6학년 올라 급장(지금의 반장)이 되었답니다.
그때는 급장이 되면 1년 임기였구요.
암튼 초등학교 말년에 급장이 되어 신나게 한 해 지낸 후 부모님도 전혀 참석 않은 외톨이 졸업식장에서 제법 큰 상도 받고..
그리고 중학교에 진학.
뺑뺑이라는게 생겨서 무시험으로 중학교를 무사히 입학.
거창에서 제법 쎄다는 사립중학교에 합격(?)을 하였답니다.
중·고교가 한 울타리에 있어 학생들이 바글바글 했는데 중학교 뒷편 동산 아래 커다란 도서관이 있고 보유장서가 약 2만권이 넘었답니다.
객지에서 늘 외톨이었던 저는 도서관 사서로 알바를 하였구요.
아침 일찍 등교하여 도서관으로, 점심시간에 도시락 먹고 도서관으로, 학교 파한 후 도서관으로..
급여는 그때 돈으로 월 200원을 받았답니다.
학교 도서관이 크나큰 낙이었고 그곳에 있던 책들을 좀벌레 먹듯이 읽어 내면서 책과 많이 친해진듯 합니다.
중학교 3학년때는 문예부장과 미술부장을 겸직하면서 철 없는 나이에 로맨티시스트가 되었는데 가난한 부모님을 떠나 객지에 살면서 나름 스스로 익힌 보호색이자 살짝 다가오는 사춘기에 대한 예민한 반응이 아니었을까 생각됩니다.
중학교 2학년.
오매불망 음악 선생님을 사모하고 있었는데...
어느날, 음악 시간.
실기 음악수업에서 제가 노래를 한 곡 부르고 나니 그 선생님께서 한번 더 부르라고 하시네요.
너무나 흥분을 하여 더욱 더 목소리를 가다듬고 한번 더 불렀답니다.
그때 왜 한 번 더 불렀는지 수십년이 지나 그 이유를 알았구요.
그 해 여름방학,
시골에 내려가니 엄마가 딸을 낳았습니다.
소죽솥에 애 씻을 물을 끓이면서 음악 선생님 이름으로 애 이름을 지으라고 졸랐지요.
그 예쁜 여동생은 이태를 살다가 저 세상으로 갔답니다.
국민학교와 중학교,
대략 5년을 지낸 거창.
그때 추억을 살려 찾아 간 학교.
제대로 학교 건물 앞에 서 본 건 수십년 만입니다.
아련한 추억이 묻어 있는 그곳에서 잠시 추춤했습니다.
"시간은 되돌려 질 것이야." 라는 생각이 들었거든요.
다시 그 시절로 되돌아 가고 싶습니다.
내가 가고 싶었던 길.
시간을 이곳쯤까지 되돌려서
그 길을 찾아 다시 가고 싶습니다.
그리고 뭐가 잘못되었는지 어느 갈림길에서 서툰 방향으로 길을 잡았는지...
어느 가시덤불이 내 앞길에 놓여져 있었는지...
흑백의 학교 전경이 칼라로 보여지는 눈 앞에서 발걸음은 되돌아 옮겨지지 않고 서성입니다.
추억은 아직도 흑백으로 보여지구요.
얼마 전 거창에 들려 건흥산 산행하고 건계정 둘러보면서 옛 추억이 생각 나 들렸던 초등학교와 중학교 모교.
실로 오랜만에 찾아 간 학교에서 잠시 타임머신을 타고 그때 그 시절로 돌아 가 봤습니다.
1970년대 초반 거창 시가지 전경
읍이었지만 거의 단층집에 시골 분위기입니다.
국민학교와 초등학교의 차이.
같은 학교인데 50년 시차입니다.
규모는 요즘이 더 적겠지요.
클릭하면 크게 보여 집니다.
칠판에 가장 크게 제 이름이 적혀 있네요.
급장이라고 아마 그리한듯 합니다.
우측에 뻘쭘하게 서서 해설을 하는 이가 저..
건방지게 주머니에 손 찌르고 있는 넘이 저입니다.
급장마크가 명찰밑에 대롱대롱.
제 옆에 있는 친구는 전교회장인데 슬래시(빗금)표시 두개로 급장마크(일등병)와는 차이가 있었답니다.
좌측에 아주 성장이 더딘 친구가 있는데 지금은 죽었는지 살았는지....
이제 중학교로 넘어 갑니다.
중학교도 이전보다 더 규모가 초라해진듯합니다.
요즘도 중학교에서 거수경례를 하는지 모르겠는데 저때는 요즘 군대보다 더 빡센 중학교 생활이었습니다.
그때 제가 학교에서 가장 애착을 가졌던 도서관은 이제 없어지고 학교 급식식당으로 바꿔져 있네요.
중 3 미술부장 시절
선생님이 화가셨죠.
이 중 한두넘은 화가가 되어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건흥산 들머리 건계정 앞 구름다리.
그때로 아치형의 다리가 있었답니다.
작은 사진은 중 1때.
건계정에 그림 그리려 가서.
건계정은 그때 그 모습으로 그대로 있는데 세월은 이만큼 흘렀네요.
모두 다 어떻게 살고 있는지?
'넋두리' 카테고리의 다른 글
실외기 밑에서 태어난 비둘기, 어미 되어 날아가다. (10) | 2019.08.15 |
---|---|
오래 된 피아노, 동아원색세계대백과사전, 롯데파이오니아 전축 (16) | 2019.07.12 |
쓸모없어진 집 전화기 결국 해지 (6) | 2019.05.10 |
세상에서 가장 허망한 약속 .. 나중에 (8) | 2019.04.17 |
두견주(진달래 술) 담그는 법 (15) | 2019.04.10 |
입춘대길(立春大吉) - 새 봄 설계를 해야 할 시간 (10) | 2019.02.03 |
내 인생에서 가장 젊은 날은 바로 오늘 (8) | 2019.02.02 |
2019년 새해의 결심, 주량반감(酒量半減) (10) | 2019.01.09 |
결혼 기념일 - 60세에는 따라 나서다가 두들겨 맞고.. (14) | 2018.12.24 |
내 마음속에 바닷가 (12) | 2018.12.0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