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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과 그림

사랑은 우리가 살아가는 이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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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서로 사랑할 때 ..


민석은 가족들과 함께 서울 근교의 유원지를 다녀오던 길이었다.
어두운 진입로를 들어설 무렵, 차도 한쪽에 검은 물체가 길게 누워 있는 것이 보였다.
처음에는 도로에 흔히 방치된 거적 정도로 생각했지만, 예감이 심상치 않아 차를 세우고 가까이 가보니, 중년의 사내가 얼굴이 피투성이 된 채 신음하고 있었다.
사내는 움직이진 못했지만 의식은 남아 있었다. 뺑소니 사고였다.

"어서 차에 태워야겠어. 여보, 나 좀 도와주구려."
"빨리 경찰에 알리는 게 더 낫지 않겠어요?"

그의 아내가 겁에 질린 얼굴로 말했다.

"지금 그럴 시간이 없어. 그러다 이 사람 죽을지도 몰라. 어서 빨리 나 좀 도와줘."
아내의 도움을 받으며 민석은 사내를 차 뒷좌석에 태웠다.

"이 차에 다 탈 수 없으니까 당신이 아이들 데리고 여기서 좀 기다려야겠는데······.
택시나 버스도 없고 말야. 서둘러 다녀오리다. 우리도 언제 이런 일 당할지 모르지 않소?"

민석은 병원을 향해 차를 몰았다.
그의 아내는 아이들을 데리고 그곳에 남아 있었다.
캄캄한 거리 위로 칼날 같은 바람이 불어대고 있었다.
민석은 병원으로 가는 동안 해면처럼 풀어져 있는 사내를 몇 번이고 뒤돌아보았다.
다행히도 멀지 않은 곳에 병원이 있었다.
그러나 의사는 환자를 보더니 빨리 큰 병원으로 가라고 했다.

민석은 중심가의 큰 병원까지 다시 차를 몰았다. 사내는 응급실로 들어갔고, 민석은 병원 측에 사고 경위를 설명한 후 서둘러 아내와 아이들이 있는 곳으로 갔다.

이미 두 시간이 지난 뒤였다. 도착해보니 아무도 없었다. 몇 번을 소리쳐 불러 보았지만 웅성거리는 바람 소리뿐 아무런 대답도 들리지 않았다. 민석은 불길한 마음을 떨쳐버리려고 안간힘을 쓰며 집으로 향했다. 가는 도중 몇 번이고 집으로 전화를 했지만 아무도 전화를 받지 않았다.

민석이 집 근처에 도착했을 때 사이렌 소리를 내며 119 구조차가 골목을 빠져나가고 있었다. 골목 입구에서부터 아수라장으로 변한 동네의 모습이 그를 더욱 불안케 했다.
소방차의 호스가 폭포처럼 사납게 물을 뿜으며 불길을 잡고 있었다. 민석은 순간 가느다란 비명을 지르며 차에서 내렸다. 불이 난 곳은 바로 그가 살고 있는 빌라였던 것이다. 악마의 이빨처럼 날카롭게 깨어진 유리창은 연거푸 시거먼 연기를 뱉어냈다. 그리고 검은연기 사이로 얼굴을 감추고 있던 불길은 다른 곳으로 그 붉은 손을 뻗치고 있었다. 그는 안절부절못하고 불이 난 곳으로 뛰어갔다.
바로 그때 가까운 곳에서 그의 아내의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그를 보자 아내와 아이들은 울면서 그에게 달려왔다.

"처제하고 김 서방은?"
민석은 긴장된 표정으로 물었다. 그의 처제네가 바로 위층에 살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소현이도 무사하고 김 서방도 다 무사해요."
몹시 놀랐는지 그녀는 더듬더듬 말을 했다.
"그런데 어떻게 된 일이야? 내가 얼마나 걱정했는데."
"한 시간쯤 기다리다가 아무래도 당신이 늦어질 거 같아서 소현이에게 전화를 걸었어요. 그래서 소현이가 김 서방하고 자는 애까지 안고 차를 가지고 우리들을 데리러 나왔구요. 그런데 집에 도착해보니 이 지경이 된 거예요. 일층에서 가스가 폭발했대요."
"다른 사람들은 다 빠져나온 거야?"
"잘은 모르겠는데 아까 여러 명이 구급차에 실려갔어요. 어떡해요, 여보······."

그의 아내는 더 이상 말을 못 하고 엉엉 울었다.
불행 중 다행으로 사고 당시 빌라에 있던 사람들이 많지 않아 사상자는 적었다. 그 사고로 가스가 폭발한 102호에 살고 있던 부부가 사망했다.

다음날 아침 일찍 민석의 핸드폰이 울렸다.
"여보세요? 강민석 씨 핸드폰 맞지요?"
"네, 그런데요."
"어떻게 감사의 말씀을 드려야 할지 모르겠어요. 어제 선생님께서 목숨을 구해준 분이 제 남편이에요."
"아, 그러세요. 남편께서는 괜찮으신지요?"
"오늘 새벽에 의식이 돌아왔어요. 선생님 아니었으면 정말 큰일 날 뻔했어요. 이 은혜를 어떻게 다 갚아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별말씀을 다 하시네요. 살아 주신 것만으로도 이미 보답을 받은 거지요. 그렇지 않아도 걱정이 돼서 오후 쯤 병원에 가려던 참이 었는데······."

며칠 뒤, 사내를 치고 달아났던 범인들이 밝혀졌다. 범인들은 사내를 치고 나서 차에서 내리기까지 했는데, 순간적으로 마음을 바꿔 먹고 도망쳤던 모양이었다. 그러나 사고 당시에 의식이 남아 있던 사내가 아주 짧은 순간이었지만 자동차 번호를 보았던 것이다.
그것이 단서가 되어 범인들은 결국 덜미를 잡히고 말았다. 그러나 사내를 치고 달아난 범인들은 이미 이 세상 사람이 아니었다.
그들은 바로 민석이 사는 빌라에서 가스 폭발로 사망한 102호 부부였던 것이다. 뺑소니 사고가 난 곳은 민석의 집 쪽으로 들어가는 어두운 진입로로, 민석의 집에서 차로 15분도 안 되는 가까운 거리였다.

사람들은 다른 사람의 불행을 보고 마음 아파하기도 하며, 때로는 다른 이들의 불행을 통해 자신의 처지를 위로받기도 한다. 그러나 다른 사람의 불행을 외면할 때, 어쩌면 우리의 불행이 시작되고 있을지도 모른다. 기쁨과 슬픔의 몫은 인간 누구에게나 공평하기 때문이다. 세상이 아무리 비인간적이고 이기적으로 변해 간다 해도 사랑은 우리가 살아가는 이유다.

영화를 보거나 소설을 읽다 보면, 저런 우연이 정말 있을까 하고 사람들은 의문을 갖는다. 하지만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엔 생각보다 더 많은 우연이 있고, 생각보다 더 큰 사랑이 있다. 그 중에는 단순한 우연도 있지만 우연처럼 보이는 하늘의 섭리도 있다.
하늘의 섭리는 반딧불처럼 반짝거리며 어둠 속에 있는 이들을 인도하며 때로는 뾰족한 쇠사슬이 되어 악인의 손발을 꽁꽁 묶어버리기도 한다.

착하게 살아가는 이들의 아픔 속으로 기적은 기어이 다가온다. 그리고 사악한 이들의 마음속으로 단죄의 화살은 날아가 박힌다. 기적이나 단죄의 화살은 우연처럼 보이지만, 우연이 아니다. 그것은 분명 인간의 행복과 불행을 관여하는 하늘의 섭리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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