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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 이야기

20세기 최대 미스테리: 디아틀로프 패스 사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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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9년 1월 27일 러시아(구 소련) 우랄종합기술연구소(Ural Polytechnical Institute)의 산악전문탐험대 10명이 우랄산맥을 탐험하기 위하여 떠났는데 현지에 도착하여 이 중 한명은 몸이 좋지 않아 베이스캠프에 머물고 나머지 9명이 탐사 중 기상이 좋지 않아 임시로 2월 1일 임시캠프를 설치하는데....

암튼 20세기 최대의 미제사건, 또는 미스테리사건으로 많이 알려진 디아틀로프 패스 사건을 소개 합니다.



출처 : 아래 내용은 나무워키의 내용을 인용하고 웹의 사진을 구하여 짜집기한 내용들입니다.




우랄산맥의 오토르덴(Otorten)산으로 떠나는 이들의 모습 





1. 의문의 사건
1959년 2월 2일 우랄산맥을 등산하던 10명의 러시아 탐사대 중, 도중에 산행에서 빠진 1명을 제외한 나머지 9명 전부가 의문의 시체로 발견된 사건. 

참고로 디아틀로프는 탐사대장의 이름이다. 

1959년 1월, 이고르 디아틀로프(Igor Dyatlov)를 포함한 10명의 탐사대원들이 우랄 산맥을 종단하기 위해 산에 들어갔다가 9명이 사망한 채로 발견 된 사건인데 설명할 수 없는 의문점들이 많다. 


먼저 사망 당시 모두 옷을 벗고 있었고 텐트가 안에서 밖으로 찢겨져 있었다. 

이러한 정황으로 미루어보면 당시 대원들이 옷과 텐트를 버리고 도망가야 했을 정도로 매우 급박한 상황에 처해 있었음을 짐작할 수 있다. 또 사망한 대원들 중 일부는 자동차에 치인 것과 같은 강도의 충격을 받았고, 한명은 두개골에 금이 갈 정도의 부상을 입었지만 저항의 흔적이 없었으며, 피부색이 오렌지색으로 바뀌어 있었다. 


당시 대원들은 두 그룹으로 흩어져서 야영지를 이탈하였는데, 5명 그룹은 옷을 제대로 걸치지 않은 상태에서 저체온증으로 사망한 것으로 추정되며, 4명 그룹은 의문의 충격을 받고 사망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러한 점 때문에 미스터리로 남았다.


탐사대원들의 리더였던 이고르 디아틀로프의 이름을 따 '디아틀로프 패스 사고(Dyatlov Pass Incident)'라고 부른다. "Dyatlov"는 러시아어로 '쟈틀로프'라고 발음하는게 맞지만, 국내에서는 어째서인지 "딜라로프 패스 사고"라는 이름으로 더 많이 알려져 있다. 

2013년 6월에 이 사건을 다룬 영화 디아틀로프가 국내에서 개봉되었다. 영화는 이 사건의 미스터리를 조사하러 간 미국 대학생들의 이야기를 다룬 페이크 다큐형식이지만 사건에 대한 건 초반에만 비춰질 뿐 본 내용은 아무런 연관이 없다.





일행 중 Dubinina, Krivonishchenko, Thibeaux-Brignolles 및 Slobodin의 사고 전의 즐거운 모습들




2. 사건 개요 
1959년 1월 28일에 10명의 탐사대가 러시아 우랄 산맥을 거쳐 오토르덴(Otorten)산을 등반하고 2월 12일 베이스 캠프인 '비즈하이(Vizhai) 마을'로 복귀할 예정이었다. 그러나 등반 당일날 대원 중 한명인 유리 유딘(Yuri Yudin)이 열과 두통 증세를 보여 그를 제외한 9명이 등반을 개시하게 된다.


5일이 지난 뒤 산에 폭설이 몰아치자 남아있던 유딘이 걱정되는 마음에 탐사대에 무전을 보냈는데, 곧바로 탐사대장인 이고르 디아틀로프로부터 

"우리들은 임시 캠프를 치고 휴식 중이며 무사하다"라는 답신을 받는다. 

그러나 그 다음 날부터 갑자기 연락이 두절되었으며, 결국 하산 날짜인 2월 12일에도 그들은 돌아오지 않았다. 이후 수색대를 파견해서 찾아본 결과 임시캠프로 추정된 장소에서 1.5km 정도 떨어진 지점에서 5명이 발견되었고, 악천후로 인해 조사를 미루다가 봄이 찾아온 5월 4일 조금 더 먼 인근 계곡에서 4명이 차례차례 발견되며 전원 사망한 9명의 시신이 나오게 되었다.


발견된 시체들은 전부 수상한 점 투성이로 죽어 있었다. 옷에서는 높은 수치의 방사능이 검출됐고, 전나무도 불에 타있었다. 찢어진 텐트는 밖이 아닌 안에서 찢었다고 볼 수 있는 상황. 죽은 사람들 중 다섯명은 공포에 질린 표정으로 속옷만 입은 채 죽어 있었다고 한다. 러시아 정부에서는 조난 사고라고 발표했지만 의문의 상황들이 여러가지 추측을 남기면서 결국 원인을 모르는 미해결사건으로 남게 되었다.



 

이들이 찍은 마지막 사진, 기상악화로 임시캠프를 차린 Kholat Syakhl산에서의 사진




3. 알려진 의문점들 
먼저 처음 발견된 다섯명의 대원들은 그 강추위 속에서도 속옷만 입고 하나같이 공포에 질린 표정으로 얼어 죽어 있었다. 또한 나중에 발견된 4명 중 한명은 자동차 사고에 맞먹는 물리적인 충격으로 두개골 골절, 두명은 가슴뼈 골절이 확인되었으며, 그리고 여성대원인 루드밀라는 혀가 반듯하게 잘려나가 있었다. 거기다 모두들 오랜지색으로 피부가 착색되어 있었고 옷에선 높은 방사능 수치가 검출되었다고 한다.


이 사건을 두고 미국인 칼럼니스트 마크 모르포드(Mark Morford)는 독초에 취해 환각에 빠져 그랬을 것이라는 추측을 내놓았으며 그 증거로 캠프 주변에 자라고 있는 많은 독초들과 추위를 이겨내려고 불을 피워 독초들을 태운 흔적을 제시하였다. 그러나 나중에 발견된 대원들이 몸을 보호하기 위해 먼저 죽은 사람의 옷을 입었다는 반론이 나와 이 주장은 무시되었다.


또 원주민의 공격 때문이라는 의견도 나왔지만, 원주민이 공성병기라도 사용하지 않는 이상 일부 시신이 교통사고에 버금갈 큰 충격을 받은 것을 설명할 방법이 없어서 역시 무시되었다. 거기다 구조 작업에 참여한 대부분의 스키어들이 지역 원주민들이었는데 이들을 적대하는 원주민들이 이들을 구출하는 데 앞장섰다는 점 때문에 설득력이 떨어진다.


미국 과학분석가 브라이언 더닝은 사망원인이 눈사태이며 급하게 탈출하느라 대원들이 텐트를 찢었을 것이라고 주장했지만 탐사대가 있던 임시 베이스는 지형이 완만해서 눈사태의 위험도 없었고, 그 위급한 상황에 불을 왜 피웠는지 설명이 안 돼서 역시 묻혔다.


마지막으로는 그 탐사대 일원 중 발열 증세를 보여 도중 하차해 결국 유일하게 살아남은 한명인 유리 유딘의 증언이 있는데, 그는 이게 다 당시 소련 정부가 비밀리에 실험한 군사 무기 때문이라고 주장하며 정부에 재수사를 요청했지만 1950년대의 냉전시대에는 택도 없는 일이며 결국 묵살되고 말았다. 하지만 그는 코로 보드카라도 마신건지 2000년대 들어서 가진 인터뷰에서는 군사무기라는 생각이 안 든다는 말을 하고 있다.


나중에 밝혀지길 소련 정부는 이 사건에 대한 수사기록 원본의 일부를 고의로 훼손하고 나머지는 철저히 비밀리에 보관했으며, 복사본들은 전부 다 처리했다고 한다. 당시 수사를 지휘했던 경찰 간부 레이 이바노는 이 사건이 도저히 합리적으로는 설명이 안 된다며 UFO의 짓일지도 모른다고 에둘러 말하기도 했다.




2월 26일 수색대에 의하여 발견된 텐트. 내부에서 바깥으로 찢겨져 있고 심하게 손상이 되어 있음.





텐트에서 1.5km 떨어진 불탄 소나무 아래에서 속옷만 입고 있는 Krivonischenko 및 Doroshenko의 시신 발견  





텐트에서 발견된 카메라 필름을 현상하니 마지막에 이런 사진이 찍혀 있었다는데..




4. 사실 
루드밀라의 시신에서 왜 혀가 사라졌느냐는 의문에는 구강 안에 존재하는 박테리아에 의한 분해작용으로 설명된다. 특히 계곡의 시신들은 거의 석 달이나 지난 5월 4일 발견되었기 때문에 이 같은 부패작용으로 설명할 수 있다고. 하지만 이것도 완벽한 설명은 안 되는 게 다른 시신들의 혀는 멀쩡하다는 게 문제다. 계곡에서 발견된 시신들의 물리적인 상처는 계곡에서 추락하면서 생긴 것으로 추정하고 있으나, 정작 그 낙차가 깊고 가파르지 않아 이런 손상이 어렵다는 의견도 있다.


또한 시신의 피부가 착색되는 것은 무슨 특이한 현상이 아닌 사후에 시신에 일어날 수 있는 정상적인 반응이고, 방사선 수치가 높게 검출된 것도 무책임한 황색 저널리즘의 결과이며, 당시 소련과 세계 여러 곳에서 실시되었던 핵무기 실험으로 인한 방사능 낙진 현상 탓에 소량의 방사능이 널리 퍼져 있던 것은 드문 일이 아니라고 한다. 또한 방사능이 검출된 옷은 단 2명의 것이었는데, 그 둘 모두 방사능 물질과 관련된 곳의 직원이었기 때문에 옷에서 방사능이 나오는 건 이상한 것이 아니다.


탐사대원들의 머리가 백발화했다는 내용도 떠도는데 이것은 사실이 아니며 검시관의 보고서엔 그들의 머리가 모두 자연 색상 그대로라고 기록되어 있다.


또한 소련 당국의 태도인데 실제로는 이 사건의 파일은 기밀로 분류된 적이 없다고 한다. 당시 소련 정부가 해당 사건 현장을 출입금지 지역으로 선정한 것은 아마추어 스키 그룹에 한해서였으며 이는 동일한 사고 발생 재발을 방지하고자 한 시도였고 3년동안만 금지구역이 되었다고 한다.


최근에는 초저주파 불가청음의 영향 때문이었을 거라는 가설이 제기되기도 했다. 들리지 않는다 해도 청각기관을 자극하기는 마찬가지라 초저주파 불가청 대역에 지속적으로 노출되면 사람은 무의식적으로 공포심을 자극받게 된다는 주장. 주로 해일, 지진 등 자연 재해나 천둥 번개와 같은 기상 현상에는 반드시 포함되어 있으며, 동물들이 재해 발생 전에 미리 대피를 하는 이유로 알려져 있다. 


즉, 멀리서의 눈사태나 숲 속의 소리가 인프라사운드를 발생시켜 지각하지 못하는 무의식적 공포가 자극되었고 예민한 일원 한 두명이 패닉에 빠지면서 텐트를 부수고 도망쳐 결국 다른 일행들까지 전부 얼어죽게 만들었을 거라는 가설이다. 


그런데 문제는 디아틀로프 팀들의 행동 이전에 이 불가청 대역에 의한 공포심 유발 주장 자체가 무리가 있다는 것. 저주파에 의한 심적 동요는 실험적으로 관찰되곤 하지만 하룻밤 정도로 아홉 명이 한꺼번에 미쳐버렸다는 건 설득력이 매우 떨어진다.



2009년 사건 50주기를 맞이하여 동료 9명의 무덤을 찾아온 유일한 생존자 유리 유딘은 이런 말을 남겼다.


"If I had a chance to ask God just one question,

 it would be, 'What really happened to my friends that night?'" 


"내가 하나님에게 질문을 할 기회가 단 한번이라도 주어진다면, 

그날 밤에 도대체 내 친구들에게 무슨 일이 생긴 것인가? 라는 것을 꼭 묻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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