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고 작은 山이 있고 그 산자락으로 들어가면 어김없이 절집이 나타난다.
가을 햇살에 요사채 지붕에 내려 앉은 낙엽이 반짝 빛나고, 하얀 고무신을 신은 공양주(供養主)보살이 종종 걸음으로 뒷뜰을 거쳐 지나간다. 계곡에서 불어 오는 약한 바람결에 절밥 내음이 느껴진다. 바람이 한켠으로 몰아 논 대웅전 앞 낙엽을 보고 있으니 가슴 속에서도 무엇인가 떨어지는 듯 허전하다.
부처님을 만나러 용연사(龍淵寺)에 갔는데 수능100일 기도를 위한 커다란 플래카드가 먼저 반긴다. 사월 초파일 등(燈)값과 함께 가장 벌이가 좋은 프로젝트임에는 틀림 없지만 이걸 대웅전 처마 밑이나 절집 입구에 떡하니 달아 둔 것은 너무 속 보인다. 우리나라 절집들이 대개가 그러하지만 유유한 사찰의 본디맛을 즐기는 이들한테는 너무나 거추장스러운 장면이다.
용연사는 그리 크지 않은 절이지만 조금 특별한 곳이다. 부처님의 진신사리(眞身舍利)를 모셔 논 적멸보궁(寂滅寶宮)이 있는 곳이다. 우리나라에는 적멸보궁이 8군데 밖에 없는데 5대 적멸보궁이라 하여 양산 통도사, 오대산 상원사, 설악산 봉정암, 태백산 정암사, 영월 법흥사가 있고 그 외 이곳 용연사와 경남 사천의 다솔사(多率寺), 선산 해평의 도리사(桃李寺)가 있다. 이 외 비공식적으로 김해 연화사 포교당에도 있단 소리는 들었지만.. 부처님의 진신사리를 모신 탑 앞에 참배를 위한 전각을 세운 법당을 각이나 전으로 이름짓지 않고 궁(宮)으로 한 것은 그만큼 최고 지위를 뜻함일 것이다.
용연사에도 가을로 짙어지고 있었다.
담벽을 타고 오르던 담쟁이는 지쳐서 고개를 숙이고 커다란 은행나무도 햇살을 받는 편으로 노랑색으로 옷을 갈아 입고 있다.
사람도 동물도 이파리도 구름도 하늘도 ..
모두 언젠가는 떠날 것이고 그렇게 기억을 지울 것이다.
그 다음은 어떻게 될까?
용연사 일주문인데 많이 낡았습니다. 한때의 영화로움은 뒤로하고 이제 현판은 부서져 있고 단청화공의 채색은 낡디 낡았습니다. 일주문이라는 것이 일심(一心)으로 부처님 법에 귀의하겠다는 서원(誓願)의 문인데 이렇게 무관심하게 관리가 되고 있네요. 주위에는 일주문과 전혀 경계도 없이 주차장으로 어수선하게 사용되고 있어 어쩌다 김여사의 후진돌격으로 언제 날벼락을 맞을지 모를 지경입니다.
극락전 앞 3층석탑의 기단 위에 쌓인 동전. 이중으로 되어 있는 기단 턱에 동전이 얹혀지면 소원이 이뤄 지는 것일까요?
극락전 옆 한단 높은 삼신각 뜰 끝 머리에 놓여 있는 아기 부처님과 탑들.. 누가 이렇게 하나 둘 가져다 놓았는지 무수히 많습니다.
돌담 턱 끝머리에 주~욱 놓여져 있는데 하나하나 천천히 살펴보는 재미가 쏠쏠 합니다.
출입금지 장소인 선방.
극락교(極樂橋). 부처님 계신 극락전을 가려면 극락교를 건너 천왕문을 지나고 계단이 놓여 있는 안양루를 지나 삼층석탑을 거쳐야 합니다.
적멸보궁의 입구인 금강계단(金剛階段)을 오르다 흡칫 하였습니다. 수많은 어머니들이 자녀의 수능 합격을 위하여 기도를 하고 있었습니다. 그러고 보니 수능이 10여일 조금 넘게 남았습니다. 뒷바라지로 수고한 어머님들이 다시 이곳에 와 부처님 전 자식의 영광을 빌고 있는 것입니다. 이 엄청난 장면에 위축이 되어 바로 뒷편에 있는 부처님의 진신(眞身)을 모신 사리탑은 차마 가 보지 못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