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안이 고요하다.
김 여사는 業으로 나가 있고
소파에서 에이케이쥐 헤드폰으로 리바이벌 '양들의 침묵'을 찐한 여운으로 감상한 후,
간단 안주 작업하여 막걸리 한 병 마시니
시간이 4시가 지난다.
김 여사 오기 전
점수따기용 분리수거와 쓰레기 버리기 작업을 시작한다.
한 묶음 안고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려가는데
21층 안주인을 만났다.
안녕하세요?
우리 집 남편은 이런 일 절대 안 하는데 참 자상하세요.
마스크 위로 보이는 눈망울이 왠지 놀리는듯 하다.
분리수거는 착하게 한다.
병마개는 돌려 뽑아 쇳조각 버리는 곳으로
스티로폼 겉면의 종이는 깨끗하게 떼어낸다.
라면도 스프 봉지는 쓰레기로 처리한다.
다시 빽 고 홈.
근데..ㅠㅠ
아파트 1층 입구 현관문 비밀번호가 생각이 나지 않는다.
10년 넘게 드나든 門
아무리 생각해도 마지막 번호 8이라는 숫자밖에 떠 오르지 않는다.
아득해진다.
며칠간 과음을 한 탓일까?
한참 기다리니 8층 8살 꼬맹이가 들어간다.
얼릉 따라 들어간다.
집에 도착하니
어째.... 또,
집 비번이 생각나지 않는다.
아이 결혼 날짜가 비번인데
맞게 눌러도 문이 열리지 않는다.
이 번호 저 번호 내가 아는 번호를 모두 조합해서 눌러본다.
드뎌 삼진아웃에 걸렸다.
3분 기다려야 한다.
계단에 앉는다.
머리가 빙빙 돈다.
혼돈이 온다.
치매인가?
기억이 나지 않는 건 건망증
기억이 사라지는 건 치매.
딸애한테 전화를 한다.
우리 집 비번이 뭐야?
갑자기 생각이 나지 않네.
헐, 아빠!
그냥 손가락 가는 버릇대로 눌러 들어 온 내 집.
생각이 나지 않다니...
6자리 숫자를 4자리로 하여 눌러 댔으니.
나이를 티 내지 않으려고 온갖 용을 쓰는데
어느덧 세월은 나를 앞서 달린다.
오늘도 술 가득하여
숙제를 풀고 있다.
우리 집 비번과, 가족들의 전화번호와, 아는 이들의 이름과, 그 노래를 부른 가수와, 그곳에 있는 산과, 엄마의 이름과, 시골집 주소와, 머릿속에 남아 있는 싯귀와...
그리고
아주 오래전,
비밀의 열쇠를 나눠 가지며
울고불고했던 추억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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