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꾼들 용어에는 일반적인 뜻과 약간 다르게 사용하는 것들이 있는데, 예를 들면..
'알바'라는 것이 있습니다. 아르바이트의 준말인데 용돈벌이를 뜻하는 말이지요. 근데 산에서 사용하는 이 말은 '길을 잘못들어 되돌아 오다.'라는 뜻으로 쎄빠지게 갔던 길을 다시 돌아 나와 힘만 빼고 용만 쓴 것을 나타내는 말입니다.
'알탕'이란 말도 있습니다. 여름 계곡 어슥한 곳에서 홀라당 벗고 물속에서 신선놀음을 즐기는 것인데 이건 아주 금지되어 있는데도 가끔 일탈하는 이가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악센트를 잔뜩 넣어 '깨쓰(가스)'라는 것이 있는데 이건 운치있고 멋진 단어인 운무(雲霧)를 일컷는 말입니다. 이걸 가지고 산꾼용 문장을 만들면 '깨쓰가 차서 이번 산행 조져놨따.'라고 표현 합니다. 말하자면 안개나 운무로 조망이 전혀 없는 답답한 산행을 했다는 뜻이 됩니다.
모처럼 맘 먹고 장거리로 뛴 쉰움산이 그 '깨쓰' 때문에 조망 꽝이 되어버린 산행이었습니다. 중부지방의 끝장마로 생긴 수증기가 산중에 가득하여 건너편 산자락도 보이지 않는 막막하고 답답한 풍경이었습니다. 하지만 5부능선 아래로는 간간 햇살이 내리고 조망이 살아있어 무릉계곡의 산수화는 제대로 만끽한 하루가 되었으니 이 정도로 만족하여야 할까 봅니다.
쉰움산은 강원도 삼척에 소재하며 백두대간길인 두타산 청옥산 능선상에서 반뼘정도 살짝 비켜 있는 산으로 정상에 우물이 50개나 있다하여 붙여진 이름입니다. 정상석에는 오십개의 우물이란 뜻으로 유식하게 '五十井'(오십정)이라고 되어 있습니다. 두타,청옥산이 명산으로는 이름이 있으나 조망은 별로인 반면 쉰움산은 그야말로 산수화 일색으로 아마 우리나라 산 중에서 동양화의 풍경을 가장 멋지게 갖추고 있는 곳이 아닐까 합니다.
산행은 쉰움산 아래 천은사에서 시작하여 쉰움산을 거치고 두타산 30여분 못 미치는 곳에 있는 두타산성 갈림길에서 무릉계곡으로 하산하는 코스를 택하였는데 산행시간은 넉넉히 6시간 정도 잡으면 될 것 같습니다. 후덥지근한 날씨로 땀깨나 흘렸지만 위낙에 산수풍경이 뛰어난 곳이라 오히려 마음은 솔향으로 가득 채워진듯 초록빛 하루가 된 곳입니다.
두타산, 청옥산, 쉰움산 산행지도 - 하루 산행길을 빨강색 포인트로 표시해 보았다. (천은사 - 쉰움산 - 무릉계곡 코스)
천은사 풍경. 이전에는 경내를 지나가야 되지만 절 좌측으로 우회로를 만들어 두어 바로 올라도 된다.
'깨쓰가 차지 않았다면'.. 주변에 정말 멋진 풍광이 조망 되는데 아쉽다. 쉰움산도 계룡산 못지않게 기도처로 유명한데 위 바위 밑도 기도자리이다.
쉰움산 오름길에 있는 샘터.. 누가 가져다 놓았을까? 요강처럼 생긴 커다란 스텐 밥그릇으로 물을 떠 먹게 한 그니는...
쉰움산 정상
옆으로는 천길 낭떠러지이고 안개로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 날씨만 좋으면 미국 그랜드캐년 저리가라 할 정도의 멋진 계곡 풍경이 조망되는 곳인데..
웅덩이로 파인 곳이 오십개가 아니라 오백개는 될 듯..
맑은 날이었다면 물빛이 파랗게 물들었을텐데...
쉰음산에서 두어시간 가까이 오르면 두타산으로 오르는 길과 무릉계곡으로 내려가는 갈림길을 만난다. 이곳에서 무릉계곡까지는 두어시간 가량 내려가야 한다.
산에서 만난 친구들 - 꽃순이와..
다람쥐君..
연인인듯한 잠자리 커플..
그리고, 29세 柳양..
하산길에 우연히 만나 길 동무가 되어둔 '미스柳'는 딸과 동갑으로 혼자 산행을 즐긴다고 한다. 제대로 가정교육을 받은 듯 말 맵시도 예쁘고 예의도 발라 하산길에서 즐거운 동행이 되었다. 버들柳를 사용한다는데 우리나라 성씨중에 '유'씨는 다소 혼동스러운 점이 있어 이렇게 버들류字를 쓴다고 이야기를 해 줘야 제대로 알 수가 있다. 두가의 성氏인 慶도 고려시대 중국에서 들어 온 성이고 柳도 그 시절 중국에서 건너온 성씨로 알고 있다.
위 사진은 점심식사 후 미스柳가 발견한.. 암봉에다 억척스레 뿌리를 내리고 있는 수백년은 됨직한 나무를 신기한듯 폰카에 저장하고 있다.
나무들의 손짓, 분명 뭔가를 이야기 하려고 하는데..
춤을 추는 것 같기도 하고..
발레의 몸짓 같기도 하고..
그리고 겨울 북풍을 이겨내기 위하여 한쪽으로 가지를 향한 저 처절한 생존 본능은...
내려 갈수록 약간씩 조망이 트인다.
12번 부딫쳐 떨어진다고 12폭포. 정식으로는 '산성12폭포' 이곳부터의 하산길은 주위의 절경이 위낙에 빼어나 그저 감탄사 연발이다.
얹혀있는 거북바위
기암괴석과 노송. 그리고 멀리 건너다 보이는 천애의 절벽. 참으로 이만큼 멋진 풍경을 볼 수가 있는 곳이 우리나라에 얼마나 될까.
산성 12폭포에서 조금 더 내려가면 아주 높은 벼랑으로 이뤄진 커다란 암반이 있는데 이곳에 앉아 쳐다보는 건너편 풍경이 그야말로 멋지다.
바로 아래로는 문지방산성이 내려다 보이고 계곡 건너편으로 관음암과 폭포가 기가 막히게 조화된다. 암자 왼쪽편 위에도 폭포줄기가 있는 걸 발견한 미스柳가 탄성을 지른다.
문지방 산성터에 있는 백곰바위.
다 내려와서 해가 조금 남길래 다시 올라가 본 용추폭포길.
용추폭포 가기 전 만난 쌍폭포. 양쪽에서 폭포가 V자 형으로 동시에 흘러 내리는데 한쪽만 보인다.
용추폭포. 이런 소에 들어가서 물놀이 하지 말라고 해도 꼭 들어가 사고를 치는 이가 있다. 그런 어리버리를 위하여 비치한 튜브가 경관을 아주 버려놓고 있다.
다시 되돌아 내려와 잠시 들린 삼화사.
무릉계곡
물놀이 하기엔 최고장소인 무릉반석
무릉계곡 6km를 용(해)오름길이라고 하는데 위와 같은 검은 띠가 물길 속으로 계속 이어져 있는 것이 이채롭다.
무릉반석 아랫쪽에서 어떤 청춘이 호기를 부린다고 미끄럼을 타고 내리는데 그만 통제불능상태가 되어 물 엄청먹고 죽다 살아난 표정을 감추려고 노력하는 모습이 눈에 띄였다.
무릉반석의 아랫쪽에 새겨진 음각의 글씨들.. 무릉도원이 따로 없는듯한 이 졀경속에서 그 옛날 풍류를 즐기던 이들이 그냥 지나치지 못하였나 보다.
무릉반석의 전체 바위 크기가 대략 1,500평 정도. 김기습, 양사언등의 글씨가 새겨져 있고 그 옆으로 금란정이라는 정자가 날렵하게 세워져 있다.
올 여름 엄청 붐빌듯한 무릉계곡을 뒤로 하고.. by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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