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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일기

타임머신을 타고 - 달성군 화원읍 천내리 고인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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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흔히 고인돌이라고 하면 밑에 판석을 세우고 위에 편편한 두껑돌을 얹어 놓을 것을 말하는데 이건 북방식이라 합니다. 주로 한강이북의 북한에서 많이 발견이 되고 있는 것입니다. 이것과 다르게 바닥에 작은 받힘돌을 놓고 그 위에 커다란 돌을 얹어 둔 것을 남방식 고인돌이라고 합니다. 시각적인 차이로 인하여 남방식 고인돌은 눈에 뜨이지 않기 때문에 논이나 밭, 기타 개천가에 있었다가도 후대 산업화의 과정에서 그냥 바위로 치부되어 포크레인에 밀려버린 경우가 많습니다.

 

 

북방식 고인돌(좌) 과 남방식 고인돌(우)

 

 

고인돌은 청동기시대의 유물로서 기원전 6~4세기경에 많이 조성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대략 지금부터 2,500년 전 이상의 아득한 옛날 이라 돌이 아니었다면 지금까지 그 형체가 남아 있을 수가 없을 것인데 온전히 제 모습으로 타임머신을 타고 온 것이 바로 고인돌인 것입니다. 현재 전 세계에는 약 6만기의 고인돌이 남아 있고 이 중 우리 한반도에 4만기가 있다고 하네요. 그리고 다시 그 중 2만5천기 정도가 남한에 있고 나머지는 북한에 있는 것입니다.

 

우리나라의 고인돌은 세계적으로도 그 문화재의 우수성을 입증받아 고창, 화순, 강화도의 고인돌이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이 되었습니다.  대구지역에도 한때는 약 3,000기의 고인돌이 존재했었다는 기록이 있다하나 급격한 산업화로 인하여 많이 사라지고 현재는 그 수가 아주 미미합니다. 이 중 오늘 소개하는 내 고장 달성군 화원의 고인돌은 현재까지 대구지역에서 발견된 가장 큰 고인돌이기도 합니다.

 

 

 

 

 

달성군 화원읍 천내리 515-1번지, 화장사(華藏寺) 경내와 바로 인근의 대구교도소 담장 밖에는 모두 8기의 고인돌이 있습니다. 화장사 경내에 3기가 있고 담장 밖 바깥에 4기가 있습니다. 이는 바로 교도소 철조망 울타리 옆입니다. 그리고 나머지 1기는 화장사의 담벼락에 결쳐져 있습니다. 이 중 경내의 칠성각 바로 옆에 있는 고인돌은 높이가 3m, 길이가 5m정도로서 대구지역에서 가장 큰 규모입니다.

 

화장사는 화원읍내의 중심지역에 자리한 사찰로서 1925년 보원거사(속명·김영옥)라는 분이 칠성바위가 있는 곳에 절을 지어라는 현몽을 꾸고 사찰을 지은 곳이라고 합니다. 화장(華藏)이란 연화장(蓮華藏)과 같은 말로서 연꽃세계라는 말이 되겠네요. 그리 연혁이 길지 않는 사찰이지만 도심속의 사찰로서는 너무나 조용하여 들려서 고인돌을 둘러 보기엔 그만인 곳입니다. 사찰을 창건한 보원거사의 사리탑은 교도소 담벽 아래에 있는 4기의 고인돌 속에 부도비가 있습니다.

 

이 사찰을 창건할 당시 이곳에 있던 거석들이 고인돌이라기 보담 신령스런 바위로 여겨져 옛부터 인근 주민들이 칠성바위라고 불렀다고 하는데 사찰 창건 후 이 곳이 도로계획이 생겨 절이 헐릴 위기에 처해졌는데 이 바위들이 고인돌로 밝혀져 문화재(대구시 기념물 13호)로 지정됨으로서 도로계획이 취소가 되었다고 합니다.

 

이 내용에 대하여 화장사와 고인돌에 대하여 전해 오는 이야기는 다음과 같습니다.

 

"달성군 화원읍에 김보원이라는 사람이 살고 있었는데 불경 뿐 만 아니라 한문과 지리에 능통했다고 한다. 그는 독실한 불자였으나 마을 주변에 절이 없어 안타깝게 여기던 중 부처님께 좋은 절터를 가르쳐 달라고 날마다 불공을 드렸지만, 3년 동안 불공을 드려도 허사였다. 그러던 중 어느날 꿈에 신령이 나타나서 돌 7개가 있는 곳을 가리키며 그 중 제일 끝에 있는 돌 주위에 절을 지으라고 일러주었다.

 
다음날 김처사가 그 곳을 찾아가 보았더니 꿈 속에 말해준 7개의 바위가 모두 남쪽으로 향해 있었다. 그런데 그 7개의 바위 중 6개는 모두 거의 붙어 있고 남쪽 끝에 있는 돌만 홀로 떨어졌다. 그 돌은 다른 돌보다 유난히 커 보였으며 주변의 지리적 위치가 상당히 좋았다. 드디어 그는 이 자리에 절을 짓고 열심히 불공을 드리며 일생을 보냈다. 그가 숨을 거둘 때 유언하기를 “내가 죽거든 땅 속에 묻지 말고 화장한 뒤 몸을 살펴보라”고 했다. 그래서 가족들이 그렇게 했더니 오색 찬란한 7개의 사리가 나왔다. 우연인지 필연인지 사리의 수가 칠성바위의 수와 같아 사람들은 부처님의 절을 짓게 해주 주신 자비에 대해 열심히 노력한 기도의 결과라 생각하고 이름을 ‘화장사’라고 짓기에 이른다."

 

이 곳 화장사 인근의 고인돌 중 가장 큰 고인돌인 철성각 옆의 고인돌에는 희미하게나마 동심원(同心圓, Concentric circle)이 발견되어지고 있는데 자세히 보지 않으면 놓치기 쉽습니다. 이 고인돌에는 정확히 6개의 동심원이 있는데 이 중 5개는 육안으로 구분이 가능하다고 하네요. 이곳에 들리시면 이 동심원을 눈여겨 찾아 보는 것도 참으로 흥미로운 일일 것 같습니다. 참고로 동심원이란 태양숭배, 태양상징을 나타내는 원테두리 암각화입니다.

 

 

칠성각 옆 고인돌에 보여지는 동심원과 동심원의 위치(위 자료사진은 아래 자료글을 참고한 이하우님의 블로그에서 옮겨 온 것입니다.)

 

 

 

이 외 화장사 경내의 절 집 중 가장 큰 규모인 극락보전 옆 고인돌 상부에는 다산을 기원하거나 별자리를 표시한 성혈(性穴 또는 星穴)이 자국이 뚜렷하게 보여 집니다. 그 앞에는 절집에서 관리하는 조그만 동물 우리도 있으니 아득한 시대의 고인돌에 새겨진 셩혈자국과 함께 재미를 더 해 줍니다. 이 성혈은 칠성각 옆의 동심원을 찾는 것 보담 휠씬 쉬우니 아이들 교육에도 큰 도움이 될 것 같습니다.

 

화장사의 고인돌을 구경하다 보면 담벼락이 끼인 고인돌 1기가 참으로 의미를 가지고 보여지는데 절이란 의미에서는 이승과 저승의 경계선에 있는듯한 느낌이고 교도소와의 경계선으로 치면 자유와 구속이란 의미가 부여되어 한참이나 눈여겨 보게 됩니다.

 

그냥 눈여겨 보지 않으면 커다란 바위 덩어리로 보여지는 고인돌.

이곳 대구교도소가 곧 이전 할 것이라 하는데 그때쯤엔 이 고인돌 자리가 새로운 공원으로 조성되어 많은 이들이 타임머신을 타고 과거로 여행할 수 있는 알찬 장소가 되길 바래 봅니다.

 

 

다음은 제가 이곳 천내리의 고인돌에 대하여 여러가지 자료를 찾아 보던 중 가장 알차게 조사하여 정리를 한 다음 블로그 '선사미술연구'라는 블로그 제목을 가진 이하우님의 글을 옮겨 놓습니다. 참고로 하셨으면 합니다.

 

 

대구시 달성군 화원읍은 일찍이 화원유원지가 조성된 물 맑고 수려한 곳으로서, 대구근교의 위락지역으로 잘 알려진 곳이다. 화원읍 주변에는 여러 기의 입석과 고인돌이 남아 있는데, 그 중 대구 진천동 입석이 동북쪽 약 1.9km 떨어진 곳에 있고, 암각화가 조사된 천내리 인근의 상인동, 월성동, 진천동, 월암동 등지에도 8기의 고인돌과 3기의 입석이 있다. 또한 후기 구석기시대에 해당하는 유적이 최근 월성동에서 조사되기도 하였다.

 

유적주변에 대한 자연환경은 그 남쪽으로 비슬산의 북쪽 줄기에 해당하는 삼필봉 지맥이 닿아 있고, 남쪽 370m 거리에는 천내천이 흐르고 있다. 천내천은 흘러서 낙동강으로 합류하는 데, 그 합수지점이 북서쪽에 있다. 천내리 주변은 급속한 도시화로 인하여 옛 흔적은 찾아보기 어렵다. 유적 바로 앞은 저습지이고 그 동쪽에 화원교도소가 있다. 주변의 구릉지는 평탄화되어 민가가 들어섰다.

 

천내리 주민에 의하면 1970년대 중반까지 주변으로 200여기 이상의 고인돌이 있었다고 한다. 하지만 1980년대에 와서 이곳이 대구시로 편입되면서 대부분 없어지고, 지금은 천내리의 고인돌 8기만 그 자리를 지키고 있다. 천내리 고인돌은 현재 대구시기념물 제13호로 지정, 보호되고 있으며, 8기중 3기는 화장사 경내에 있고 나머지 5기는 화장사 담과 담 밖의 대구교도소 외곽에 있다.

 

고인돌은 주민들에 의해 칠성바위로 불리면서 신성시되어 왔다고 한다. 화장사 또한 사찰을 가로질러 도로가 들어설 예정이었으나, 고인돌의 보존을 위해 그것이 취소되면서 고인돌에 갖는 애정은 남다르다.

 

모두 일렬로 배치된 크고 작은 고인돌은 북동-남서향의 불규칙한 간격으로 늘어서 있다. 8기의 비정형 고인돌 중에서 ①호 고인돌은 분명하지 않은 시기에 옮겨진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①~③호 고인돌은 화장사 경내에 있고 ④호 고인돌은 담에 걸쳐져있다. ⑤~⑧호 고인돌은 화장사 담 밖에 있는데, 암각화는 화장사 경내 ③호 고인돌에서 조사되었다.

 

③호 고인돌은 8기의 고인돌 중 최대 크기로서 가로․세로․높이 433×206×226cm의 규모이다. 암각화의 내용은 모두 6점의 동심원암각화가 새겨져 있으나, 그중 1점은 불명확한 형태이고 확실한 것은 5점이다.

 

암각화가 있는 ③호 고인돌(그림 1, 2, 3)은 사찰경내의 원통전 좌 후방에 있다. 북동-남서의 장축에 폭이 좁은 비정형의 바위로서, 그림은 N 125° 동남향의 편평한 수직암면에 제작되어 있다. 8기의 고인돌 중 ③호 고인돌 외에 ①호 고인돌 위에도 바위구멍 2개가 있으나, 그 밖에 달리 인공적 흔적은 발견되지 않는다.

 

암각화는 표 1과 같이 조사된다. 여기에서 A~D의 그림은 그 형상이 분명하게 나타나고 있으나, E는 풍화로 하여 희미해졌다. F는 동심원으로 보이는 것이긴 하지만, 후대에 쪼아낸 것과 같은 생경한 흔적이 있어서 형태면에서 완전하지 못하다. 그림의 크기는 지름 6.8~8.2cm 정도로, 국내 동심원암각화 중 가장 작은 것이다. 형태면에서는 중심부의 작은 바위구멍을 축으로 하여 각각 3중 동심원으로 이루어져 있다. 그러나 그 중 한 점은 중심부 작은 바위구멍이 없는 4중 동심원이다. 새김선의 깊이는 1~3mm정도의 얕은 새김이다.

 

동심원암각화는 앞으로 10°가량 기울어진 경사면에 있어서 아침나절 잠깐 햇빛이 비칠 뿐, 하루 중 대부분은 음영 속에 있다. 동심원의 높이는 사람의 눈높이보다 약간 아래에 있으며, 각 동심원이 자리 잡고 있는 위치에서 특별히 연상되는 사항은 없다.

 

 

 

 

 

 

 

 

 교도소 담 밑에 있는 고인돌 4기입니다.

사진으로는 1기는 가려서 보이지 않네요.

바로 앞에 보이는 부도탑는 화장사를 창건한 보원거사의 부도탑입니다.

교소도의 철조망과 감시탑이 보여집니다.

 

 

 

 교도소 담장 아래의 고인돌

이곳에서는 4기의 고인돌이 모두 보여 집니다.

그리고 앞쪽으로 화장사가 보여 집니다.

 

 

 

화장사 담벼락에 결쳐져 있는 고인돌

 

 

 

화장사 안쪽에서 본 담벼락의 고인돌

 

 

 

 

 

 

 

 

극락보전 옆의 고인돌

 

 

 

상부에 뚜렷히 관찰되는 성혈

사진 우측에 약간 큰 규모의 성혈 하나와 좌측에 2개가 보여 집니다.

청동기시대 그 아득한 옛날 누군가 이 돌에 이런 구멍을 내고 있었다는 상상을 하니 ...

 

 

 

종무소 앞에 있는 고인돌

온통 능소화 이파리로 뒤 뎦여 있습니다.

 

 

 

 

 

 

 

칠성각 옆의 대구에서 가장 큰 규모의 고인돌

 

 

 

 이 고인돌의 우측 측면에 동심원이 발견되어지고 있습니다.

 

 

 

 화장사 극락보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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