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에서 충남 서산지방은 제법 먼 길입니다.
가고 오는데 6시간 이상이 걸리고 여행 중에 느껴지는 회귀의 초초함이 더해져 그곳을 여행의 목적지로 잡아 여유를 가지고 둘러 보기엔 벅찬 코스가 아닐까 합니다. 목적은 때론 과정에 대한 집착을 툭 떨구어 낼때가 있는데 그 때.. 문득 그곳이 생각이 났습니다.
그리고 그곳에는 늘 언젠가 시간을 잡아 꼭 가고 싶은 절.. 개심사가 있습니다.
오래 못 보면 그리움이 더해지는 건 인지상정의 이치.. 그것이 사람이든 사물이든 마찬가지가 아닐까요?
마음 한 곳 그렇게 相思의 정을 가득 가지고 떠납니다.
코스는,
해미읍성 - 개심사 - 문수사 - 마애삼존불상 - 수덕사.. 로 하여 다섯곳의 여행지를 택하여 하룻만에 둘러 봤는데 불쑥 떠난 여행지라 사전에 충분히 그곳들을 알아보지 못하여 아는 만큼 보인다는 너무나 당연한 이치를 조금 벗어나 파란 하늘과 가을바람 같은 상큼한 바람결에만 캄탄사를 마구 쏫아내고 실상의 속살은 제대로 보지 못하고 왔다는 자책감이 들기도 합니다.
이런 연유로 내용에 대한 해설은 섯부른 제 글보다는 주로 인용하여 옮겨 온 글들로 대신할까 합니다. 이 점 이해 바랍니다.
새로움에 대한 마주침은 늘 설레임으로 먼저 합니다.
그런 설레임의 행복은 추억으로 바꿔어 다시 오랫동안 가슴 속 꽃밭에 심어지겠지요.
참 아름다운 여행이었습니다.
서산 여행지도
해미읍성입니다.
출입문에 수문장이 버티고 있네요.
해미면 읍내리에 있는 그리 크지 않는 조선시대 성입니다.
고창읍성, 낙안읍성과 함께 우리나라 삼대읍성이라 합니다.
요즘 영화 '명량'으로 화제가 되고 있는 충무공이 군관으로 근무한 곳이기도 하고 조선 후기에는 수많은 천주교 신자들이 이곳에 끌려와서 처형을 당한 순교지이기도 합니다.
그리하여 이번에 프란치스코 교황께서 한국을 방문 하실때 특별히 이곳 해미읍성이 방문지로 선택이 되었답니다.
지금 교황의 방문을 앞두고 읍성 내부 가꾸기에 조금 분주한 편입니다.
설명글 인용(한국 관광공사 소개글)
조선 시대의 대표적인 읍성이다. 읍성이란 읍을 둘러싸고 세운 평지성으로 해미읍성 외에 고창읍성, 낙안읍성 등이 유명하다. 해미읍성은 조선 성종 22년, 1491년에 완성한 석성이다. 둘레는 약 1.8km, 높이 5m, 총면적 198,348m²(6만여 평)의 거대한 성으로 동,남,서의 세 문루가 있다. 최근 복원 및 정화사업을 벌여 옛 모습을 되찾아 사적공원으로 조성되었으며, 조선말 천주교도들의 순교 성지로도 유명하다. 천주교 박해 당시 관아가 있던 해미읍성으로 충청도 각 지역에서 수많은 신자가 잡혀와 고문받고 죽음을 당했으며, 특히, 1866년 박해때에는 1천여 명이 이 곳에서 처형됐다고 한다. 성내 광장에는 대원군 집정 당시 체포된 천주교도들이 갇혀 있던 감옥터와 나뭇가지에 매달려 모진 고문을 당했던 노거수 회화나무가 서 있다. 바로 성문밖 도로변에는 회화나무에 매달려 고문을 받으면서도 굴하지 않은 신도들을 돌 위에 태질해 살해했던 자리개돌이 있어 천주교도들의 순례지가 되고 있다. 성벽 주위에는 탱자나무를 심어 적병을 막는데 이용하였다고 하나, 지금은 거의 찾아볼 수가 없다.
출입문 옆에는 산적을 찾는 방이 붙어 있네요.
얼굴을 보는 순간 뜨끔...
나와 흡사...ㅎ
방(榜)
지난달 스무여드렛날 오시경 가야산에서
장을 보고 가던 박첨지가 산적에게 고기한근 쌀 다섯되를 빼앗기는 일이 있었다.
이에 고하니 해미현민들은 각별히 조심하여 혼자 산길을 다니지 말 것이며
산적을 발견 한 자나 위와 같이 생긴 놈을 볼 경우
즉시 본영으로 신고하기 바란다.
신고자에게는 보리두말을 하사한다.
충청병마절도사
잔디가 참 곱게도 깔려 있는데 울책이 없어 누구나 쉽게 잔디밭을 거닐게 하여 둔 점이 딱 맘에 듭니다.
읍성 안에는 주막집도 있고...
오른편의 나무가 회화나무인데 충청남도 기념물 제172호로 지정되어 있습니다.수령이 약 300년 정도 되었는데 1790~1880년 사이 읍성의 옥사에 수감하고 있던 천주교 신자들을 이 나무에 매달아 고문했다고 합니다.
지붕에 매달린 박이 정겹습니다.
관광객을 위하여 직접 다듬이질 시연을 하는 할머니 두 분이계셨는데
더운 여름에 너무 고생이 많으시네요.
돗자리 만들기
오래 전 제 고향 시골집에도 이런 베틀이 있었는데..
참 추억이 아련합니다.
뒤에 날실을 감아 둔 커다란 나무판을 '도꾸마리'라고 한 기억이 있습니다.
인상이...ㅎ
조롱박이 주렁주렁~~
해미읍성은 낙안읍성과는 달리 성 안에 그리 많은 시설물은 없지만 나름 깨끗한 공원처럼 잘 관리가 되어 있어 가족들과 나들이 하기엔 아주 좋은 장소 같습니다.
해미읍성의 다음 코스는 개심사이지만 그 다음으로 들린 문수사를 해미읍성편에 곁들여 올립니다.
문수사는 조그만 절로서 먼 곳 대구에서 와서 부러 찾아 가 볼 정도의 유적지는 아닌것 같네요.
인용한 절의 개요는 다음과 같습니다.(두산백과 인용)
대한불교조계종 제7교구 본사인 수덕사의 말사이다. 누가 창건하였는지는 알 수 없고, 가람의 배치나 전하는 유물로 보아 고려시대에 창건된 것으로 보인다. 조선시대에 도둑들이 극락보전을 제외한 모든 전각을 불태웠다는 말이 전할 뿐 자세한 연혁은 전하지 않는다.
1994년 산신각을 세우고, 산신각 앞 낡은 요사를 새로 지어 오늘에 이른다. 현존하는 건물로는 극락보전과 심검당·수도당·춘정고 등이 있다. 이 중 극락보전은 고려 말에 지어져 임진왜란 이후 중창된 것으로, 충청남도 유형문화재 제13호로 지정되었다. 1973년 문화재관리국에서 조사할 때 금동아미타불상의 복장(腹藏)에서 발원문과 단수의(短袖衣)·쌀·보리 등 많은 유물이 출토되었다. 여기서 발견된 발원문에 따르면 이 극락보전은 1346년(고려 충목왕 2)에 조성되어 임진왜란 때 중건되었다. 3백여 명의 발원자 이름이 적혀 있어 주목된다. 함께 들어 있던 《구역인왕경(舊譯仁王經)》과 《의천속장경간기(義天續藏經刊記)》 등은 국문학사와 인쇄발달사를 연구하는 데 귀중한 자료가 된다.
극락보전 내부에는 금동삼세불좌상과 관세음보살상·십륙나한상이 모셔져 있고 나한상 사이에 보살상 4구가 있다. 불화로는 1892년(고종 29) 금호(錦湖)가 그린 삼세후불탱화, 1919년 몽화(夢華)가 그린 현왕탱화, 1998년 제작된 지장탱화·신중탱화가 있다. 1774년(영조 50)에 제작된 지왕시왕도는 현재 수덕사성보박물관에 전시되어 있다. 극락보전에는 이밖에 1892년에 제작된 현판과 1912년 쓰여진 〈문수사불량계기〉가 걸려 있다.
문수사 찾아 가는 지방도변 인근의 목축지
우리나라에서 가장넓은 목장인 서산한우목장이라고 하네요.
김종필씨가 맹글어 김종필 목장이라고 알려져 있구요..^^
문수사
절에 들어갈때부터 나올때까지 견보살이 짖어 대는데 너무 시끄럽네요.
절에 있는 개들은 거의 사람을 반기는 편이라 짖지 않는데 이곳은 아무래도 사람 왕래가 잦지 않으니 그런가 봅니다.
나오는 길에 다시 소떼들이 가득한 목축지를 만났는데 수 많은 새들이 모여 들었습니다.
하얀 백조가 품위도 없이 새똥을 뒤지고 있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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