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략 36~38년 정도 지난, 아득한 나의 20대 초반.
그때는 통기타와 함께 낭만이란 말을 참 많이도 사용했었지요.
그 시절 저도 낭만이란 말을 아무데나 마구 같다 붙이면서 산이나 들이나 여기저기 싸돌아 다니는걸 무척 좋아 했습니다.
그리하여 어느 날,
거창하게 계획한 것이 나홀로 제주도 무전여행.
주 목적은 한라산 등반이었구요.
아마도 대략 일두일 정도의 여정으로 계획을 잡은 것 같습니다.
시기는 딱 이맘때 2월 중순 무렵이었네요.
대략 37~38년 전, 1980년쯤이 아닐까 합니다.
리얼 100%..
나 홀로 제주도 무전여행이랍시고 갔다가 한라산 폭설에 입산이 금지된 줄도 모르고 나홀로 올라 생고생한 이야기..
정말 지금 생각해도 아찔하고 무모한 등반이었지만 그래도 이렇게 되새김으로 되 돌아 본 20대..
그 나이에만 가능한 이야기.
지금부터 이야기는 그때 혼자 제주도 다녀와서 적어 놓은 메모장의 글을 그대로 옮겨 놓은 것입니다.
아마 요즘의 제주도와 비교하면 격세지감을 많이 느낄 것입니다.
그때 제주도 다녀 와서 적어 놓은 메모장식 일기
그땐 여행기를 이렇게 일기 형식으로 적던 버릇이 있었답니다.
아마도 그게 요즘 진보하여 '지구별에서 추억 만들기'가 된 것이 아닌가 하는..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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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의 봄은 아직 이르고 겨울은 약간 지나가는 기분이 드는 2월 중순 무렵.
약간의 경비로서 꿈꾸어 오던 한라산 등반길에 올랐다.
아직까지 산에 눈이 많이 있을 것을 예상하여 옷도 많이 입고 비상식량도 든든하게 준비했었다.
혼자 오르는 일정이라 위험과 고난을 각오하고 한편으로는 나의 인내와 용기를 시험하는 계기로 만들어 보기로 하였다.
거지같은 차림으로 오후 완행열차를 타고 부산에 가서 연안여객선 부두에 도착하였다.
등산복 차림으로 여객선부두에 어슬렁거리니 주위에서 의아하게 많이 쳐다보는 것 같다.
바람이 세차게 불어서 배가 떠날까하는 생각을 가지고 부두에 와 보니 역시나 태풍경보가 내려서 모든 여객선의 발이 묶여 있었다.
언제나 떠날까 하염없이 대합실에서 기다린다. 나 말고도 많은 사람이 발을 구르고 있다.
아무리 가다려도 배가 떠날 기미가 없어 할 수 없이 내일 떠나는 카페리호로 가기로 했다.
다음 날 부두에 가 보니 오늘도 카페리는 태풍경보로 가지 못한다고 한다.
인근에 있는 용두산 공원에 올라 하루종일 시간을 보낸다.
바람이 잦아 들기만 기다리며 예정에 없던 차질이 생겨 귀중한 경비가 엉뚱한 곳으로 많이 소비가 되어 걱정이 많이 된다.
다음 날 아침 일찍 일어나 아직도 바람이 세차게 불고 있는 부두로 향하였다.
제주행 손님들이 초초하게 기다리고 있었고 카페리호는 제주와 계속 통신중이었다.
안내방송을 통해 제주 연안에 지금 심한 폭풍으로 인하여 파고가 20m쯤 되어 출발이 곤란하니 기다려 달라고 한다.
제주로 가는 배 위에서 바라 본 부산항
그때 카페리호는 부산에서 저녁에 출발하여 제주나 서귀포에 다음날 아침에 도착하는 일정으로 되어 있는데 이날은 이틀동안 폭풍경보로
배가 출발하지 않아 다음날 아침에 출발 하였답니다.
그리하여 떠나는 배 위에서 부산항의 낮 풍경을 볼 수 있었구요.
07:30분 출발 예정이었던 배가 09시나 되어 출발하게 되었다.
큰 배의 위용에 놀라면서 경찰의 소지품 검사를 대강 받고 배에 올랐다.
떠나는 배 위에서 보는 부산부두는 매우 인상적이었다.
배의 시설도 구경할 겸 대강 둘러 보았다. 맨 위엔 커피숖, 그 밑엔 식당, 3등객실, 2등 침실, 1등 침실등으로 내려 가면서 시설이 좋아지는 구조다.
객실에 들어와 잠을 잘려고 눈을 감으니 쿠션있는 배의 느릿한 율동이 잠을 재워주지 않는다.
아침도 걸러고 올라서인지 속도 별로 좋지 않다.
이어서 배는 사방이 망망한 수평선만이 있는 너른 바다에서 진행을 한다.
바람이 더 세차어지고 배의 율동이 한번씩 경련을 일으킨다.
거문도를 지나올 무렵부터는 정말 무시무시한 파도가 뱃전을 계속 때리고 있고 그때마다 큰 규모의 카페리도 경련을 일으킨다.
속이 메시꺼워 간판위로 나와보니 휘날려오는 물보라가 연기와 안개같은 가루가 되어 얼굴로 스친다.
짭짭할 바닷물의 감촉이 입술에 와 닿는다.
카페리호 배 위 같습니다.
아직까지는 파도가 그리 심한 것 같지 않네요.
근데 이렇게 못생기지는 않았는데 바람이 불어 그런지 얼굴이 완전 구겨져 있습니다.ㅎ
그땐 완전 장발 이었구요.
3등칸의 조그만 창문 밖으로는 배가 기울면서 한쪽에서는 하늘만 보이고 한쪽에서는 바다만 보인다.
정말 엄청난 바다다.
지긋지긋한 항해가 끝나간다.
배멀미의 숨가쁨과 고통을 참으면서 제주항에 도착한 시간은 20시 40분쯤..
아직도 흔들거리는 것 같은 다리의 촉감을 느끼며 육지에 발을 디뎠다.
무작정 걸었다.
지나가는 아줌마의 말귀가 영 어색하게 들리는 것이 여기가 제주도인가 하는 생각을 하게 한다.
몇 곳의 여인숙을 지나쳐 한 아담한 이층집에 여장을 푼다.
관광지라서 그런지 모두가 참 친절하다.
여인숙비는 제주 모든 곳이 1,000원으로 균일화되어 있어 산당히 감사하게 생각했다.
방안에서 버너로 밥 해 먹기가 뭐하고 하여 나가서 곰탕 한 그릇 사 먹고 일찍 잔다고 하는 시간이 11시가 넘었다.
아침 5시 반에 일어났다.
대강 정리를 하고 베낭을 메고 나섰다.
지도로 익혀 보아 둔 가까운 코스인 어리목코스와 영실코스를 택하기로 하였다.
제2횡단도로 가는 버스에 몸을 실었다.
약 30분 뒤, 눈 뎦힌 어리목코스 입구에 나를 내려준다.
갑자기 심한 불안감이 몰려 온다.
설마 눈이 이렇게 많이 내렸으랴 했는데 디디어 올라가니 정말 엄청나게 눈이 많이 내려있다.
발목이 빠지는 곳은 얕은 곳이고 무릅까지 푹푹 잠긴다.
순간적으로 위험하다는 생각을 하여 본다.
관리소나 등반초소에는 아직 일러서 그런지 아무도 없다.
뒤에 알아 보니 눈이 너무 많이 내려 어저께부터 입산금지령이 내려졌다고 한다.
그것도 모르고 길도 나지 않는 곳에 발자국을 만들며 올라가려니 무척이나 힘이 들었다.
조금 올라가니 휴게소와 함께 개울이 있었다.
아침식사를 대강 해 먹었다.
눈 녹은 물이 서서히 발목으로 스며들어 오는게 오싹한 느낌을 주었다.
쳐다보니 온통 밀림밖에 보이지 않는다.
다시 여장을 챙겨 바틸진 언덕길을 오른다.
어리목재는 상당히 오랫동안 진행이 되었으며 내가 걸어가는 울림에 의하여 가지 위의 눈이 떨어져 몸을 끼 얹는다.
그렇게 걸어 올라가니 해가 비치기 시작한다.
갑자기 모든 나무에 은빛이 감돌기 시작하는게 설화와 은빛의 장관이 세상의 모든 아름다움을 축소시켜 버린다.
어리목재에서 사제비동산으로 넘어가는 길목은 정말 충격적이었이다.
조그마한 고개 하나를 넘으니 갑자기 앞에 펼쳐지는 장관..
눈으로 새하얗게 뒤덮힌 평원.
한발 한발 무릅까지 빠져가며 헤쳐나가는 러셀이 너무 고역이고 힘들다.
한참 걷다가 뒤를 돌아다 보았다.
흡사 키 큰 설인이 걸어 간듯한 깊숙한 발자국.
다시 앞을 보며 걸음을 옮긴다.
용암 흘러내린 바위들이 온 산을 감싸있고 철쭉나무가 모두 눈 속에 잠겨있다.
발을 헛 디디니 허리 너머 빠져 버린다.
다시 용암 귀퉁이를 잡고 헤어 나온다.
약간 편편한 바위에 걸터 앉아 휴식을 취한다.
모든게 눈 속에 덮여서 등산로를 찾아 볼려니 어림이 가지 않는다.
만세동산을 지나니 이제 쭉쭉 곧은 한대림들이 들어 차 있다.
그리고 백록담의 모습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한다.
윗새오름부근에서는 바람에 의해 떠 밀려 온 골짜기의 눈 늪이 너무나 위험하였다.
몸 전체가 푹 빠져서 헤어나기가 매우 힘들었다.
빠지면 차근차근 천천히 눈 계단을 만들면서 올라왔다.
올려다 본 백록담
아마 이 사진은 백록담에서 영실기암쪽으로 내려 오면서 찍은 사진인듯 합니다.
눈길에 발자국이 나 있는 걸 보니..
이 밑에 있는 휴게소에서 약간 휴식을 취하였다.
그리고 다시 베낭을 메고 걸을을 옮긴다.
햇빛이 눈에 반사된 에너지가 강렬하게 시야를 자극시킨다.
백록담 밑의 벼랑길은 쇠줄을 매어 두었지만은 매우 위험하였다.
눈에 태양에 의한 자극을 받으면서 1,950m 백록담 정상을 오른 시각은 13시 30분이었다.
백록담 정상에 있던 등산 안내도
지금은 그때 올랐던 두 구간 모두 정상까지 오를 수 없게 되어 있습니다.
한국의 정상.
벡록담은 옛날 회산이 폭발하여 생긴 분화구이다.
분화구는 약간의 물이 얼어서 빙판이 되어 있었다.
너무 위험하여 내려가 보지는 못했다.
백록담 사진
이 모습은 지금이나 그때나 변함이 없는 것 같습니다.
고드름이 주렁주렁 달린 비브람과 장갑을 벗어놓고 찍어 줄 사람없는 사진을 애꿎게 경치를 배경으로 찍어 본다.
나무팻말이 세워져 있는데 눈을 털고 읽어보니 '분화구 출입금지' '제주도지사'라고 젹혀있다.
그리고 앞에 커다란 등산 안내판이 있어 뒷면에다 날카로운 칼로 내 이름을 새겨 본다.
신발도 참 허접합니다.
요즘은 고어텍스에 두툼한 양말에..
아마도 발이 눈에 젖어 잠시 벗은듯 한데 무척이나 발이 시려웠을것이라 짐작이 되네요.
다행히 날씨는 그리 많이는 춥지 않은듯 합니다.
정상에서 찍은 제 모습입니다.
뒤로 백록담이 배경으로 보여 집니다.
아마도 한 손으로 카메라를 꺼꾸로 들고 요즘말로 셀카로 찍은 것인데요.
여러장을 찍었는데 얼굴이 나온것이 별로 없었던 것으로 기억이 납니다.
갑자기 쏴 하고 ..
감정이 밀려온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높다는 이곳. 백록담.
목이 터져라 고함을 질러본다.
눈물이 흘러 내린다.
몸이 갑자기 추워진다. 바람이 일기 시작한다.
서둘러 하산을 시작한다.
그때 다녀와서 그린 한라산 등반 지도입니다.
김정호의 대동여지도 비슷하게 그렸는데 아마도 그때는 지도 구하기도 쉽지 않은 시절이 아니었나 생각이 됩니다.
위에 그러논 코스들은 지금은 모두 달라져 있습니다.
어리목이나 영실코스 모두 정상 등반은 불가능하게 바꿔져 있습니다.
내리막길은 더 힘든 것 같다.
장국목에서 영실기암까지는 코스가 너무 눈에 뒤덮여있어 찾을 수가 없다.
오백나한은 매우 굉장하였으나 그리 거대한 것은 아니었다.
영실휴게소에 오니 경찰관이 앞을 막는다.
어디서 오느냐고 물었다.
아마 입산금지 내린 산에서 내려오니 의아했던 모양이다.
영실휴게소에서 도로까지는 포장은 되어 있었으나 상당히 멀었다.
다시 조그만 버스를 타고 서귀포로 향하였다.
버스 차장의 말투가 제주임을 실감나게 만든다.
"중문 내리셔.."
"오~라!"
"도~우!"
차가 밀감밭과 평원사이를 지나 서귀포로 향해 가는 길은 정말 인상적이었다.
바다가 그림처럼 보여지고 바위섬이 그 중간에 점 찍혀 있는 ..
가장 싼 여인숙을 골라 어슬렁거리다가 어느 구석진 곳에서 짐을 풀었다.
코 잔등이 빨개지는 것을 느낄 수 있다.
눈에 타서 얼굴이 완전 까맣게 변해 버렸다.
아득히 멀어지는 파도소리를 들어며 잠자리에 들었다.
앳딘 산적처럼 생겼지요.ㅎ
다음날부터 제주도 투어를 했는데 정말 열심히 걸어 다녔습니다.
무거운 베낭을 메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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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으로 한라산 등반 여행기입니다.
이 후 제주도 이곳저곳을 돌아 다닌 여행기가 계속 이어지고 있으나 모두 고생만 잔뜩 한 내용들이구요.ㅎ
암튼 제주도에 몇 일 더 머물며 이곳 저곳을 순전히 발품으로 걸어다니며 구경하다가 배삯이 달랑달랑 할 무렵.
추자도를 거쳐 목포로 가는 낚싯배를 얻어타고(정말 추워서 고생 무지 하였음) 14시간 통통 거리며 목표에 도착.
목포에서는 같이 내린 나랑 비슷하게 생긴 젊은 사람과 500원씩 분담하여 여인숙에 자는데 칸막이가 베니어판.. 온갖 잡음을 들어가며 하룻밤 자고 그 이틑날..
대전가는 완행열차 타고 올라가서
다시 대구로...
이렇게 제주도 여행이 막이 내려 졌답니다.
무전여행이라 하여 돈 일전땡푼도 없이 나서는 것은 아니고 최소경비를 계산하여 그것에 맞게 절약하며 다니는 것이 그때 유행하였던 무전여행인데,
지금 제 기억으로는 그때 제주도 여행 경비로 19,000원 정도를 가지고 갔었지 않나 기억이 납니다.
세월이 많이 흘러 그 뒤 제주도 여행을 간간 해 보고 한라산도 몇 번 올랐지만
그때 그 추억은 영원히 잊을 수가 없네요.
20대 초반,
겨울철에 멋모르고 오른 한라산이 입산금지로 아무도 없이 제 혼자 덩그러니 올랐으니 어찌보면 참으로 귀한 경험이자 짜릿한 추억입니다.
다시는 그런 무모한 행동을 할 일이 없겠지만
살아 가면서 막상 내 앞에는 나로서는 처음 겪는 무모한 일들이 다가 올 수도 있겠지요.
그런 날에,
과거의 무모한 한라산 도전이 되새김되어 다시금 나를 지켜주리라 생각해 봅니다.
가장 최근의 한라산 산행기 : http://duga.tistory.com/20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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