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응형
행여 지리산에 오시려거든
천왕봉 일출을 보러 오시라
삼대째 내리 적선한 사람만 볼 수 있으니
아무나 오시지 마시고
노고단 구름 바다에 빠지려면
원추리 꽃무리에 흑심을 품지 않는
이슬의 눈으로 오시라
행여 반야봉 저녁 노을을 품으려면
여인의 둔부를 스치는 바람으로 오고
피아골의 단풍을 만나려면
먼저 온몸이 달아 오른 절정으로 오시라
굳이 지리산에 오려거든
불일폭포의 물 방망이를 맞으러
벌 받는 아이처럼 등짝 시퍼렇게 오고
벽소령의 눈 시린 달빛을 받으려면
뼈마저 부스러지는 회한으로 오시라
그래도 지리산에 오려거든
세석평전의 철쭉꽃 길을 따라
온몸 불사르는 혁명의 이름으로 오고
최후의 처녀림 칠선계곡에는
아무 죄도 없는 나무꾼으로만 오시라
진실로 진실로 지리산에 오려거든
섬진강 푸른 산그림자 속으로
백사장의 모래알 처럼 겸허하게 오고
연하봉의 벼랑과 고사목을 보려면
툭하면 자살을 꿈꾸는 이만 반성하러 오시라
그러나 굳이 지리산에 오고 싶다면
언제 어느 곳이든 아무렇게나 오시라
그대는 나날이 변덕스럽지만
지리산은 변하면서도 언제나 첫마음이니
행여 견딜만 하다면 제발 오지 마시라
반응형
'글과 그림' 카테고리의 다른 글
지 살자고 하는 짓 - 하종오 (0) | 2007.12.29 |
---|---|
겨울바다 - 김남조 (0) | 2007.12.13 |
사진 보다 더 사진 같은 그림 - 극사실주의 화가 작품 시리즈 로베르토 베르나르디(Roberto Bernardi) (0) | 2007.12.04 |
사진 보다 더 사진 같은 그림 - 극사실주의 화가 작품 시리즈 라파엘라 스펜스(Raphaella Spence) (0) | 2007.12.03 |
헤매이던 大地(대지)의 사람은 - 신동집(申瞳集) (0) | 2007.12.01 |
샤갈의 마을에 내리는 눈 - 김춘수(金春洙) (0) | 2007.11.07 |
오매 단풍 들것네 .. 김영랑(金永郞) (0) | 2007.09.23 |
< 달,포도,잎사귀 > - 장만영 (0) | 2007.09.06 |
심은 버들 - 만해 한용운(卍海 : 韓龍雲) (0) | 2007.09.05 |
희망을 파는 국밥집 (0) | 2007.08.1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