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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과 그림

개한테 배우다 - 복효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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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네 똥개 한 마리가

우리집 마당에 와 똥을 싸놓곤 한다

오늘 마침 그 놈의 미주알이 막 벌어지는 순간에 나에게 들켜서

나는 신발 한 짝을 냅다 던졌다

보기 좋게 신발은 개를 벗어나

송글송글 몽오리를 키워가던 매화나무에 맞았다

애꿎은 매화 몽오리만 몇 개 떨어졌다

옆엣놈이 공책에 커다랗게 물건 하나를 그려놓고

선생 자지라고 써놓은 것을 보고 킥킥 웃었다가

폐타이어로 만든 쓰레빠로

괜한 나만 뺨을 맞은 국민학교 적이 생각나

볼 붉은 매화가 얼마나 아팠을까 안쓰러웠다

나도 모름지기 국가에서 월급 받는 선생이 되었는데

오늘 개한테 배운 셈이다

신발은 그렇게 쓰는 게 아니라고,

매화가 욕을 할 줄 안다면

저 개 같은 선생 자지라고 했을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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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효근  1962년 전북 남원 출생.
1991년 《시와시학》으로 등단. 시집 『당신이 슬플 때 나는 사랑한다』『버마재비 사랑』『새에 대한 반성문』『누우떼가 강을 건너는 법』『목련꽃 브라자』『마늘 촛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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