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렇지만 아버지, 저는 지금 앞으로 서서히 제 자신의 삶의 방향이 바뀌리라는 것을 느끼고 있어요. 특히 오늘 할아버지께서 하신 다음과 같은 말씀에서 저는 문득 잠에서 깨어난 듯한 느낌을 받았어요.
"일생을 마친 다음에 남는 것은 우리가 모은 것이 아니라 우리가 남에게 준 것이다."
제라르 샨드리라는 사람이 한 이 말이 웬일인지 자꾸만 머리에 떠오른다고 할아버지께서는 말씀하셨어요. 그리고 할아버지께서는 이어,
"나는 자신의 공적이나 명성만을 모으기 위하여 살아온 셈이다. 너희들에게 대체 무엇을 준 게 있겠니?"
하고 말씀 하셨어요.
아버지, 저는 아직 어려 '일생을 마친 후에 남는 것'에 대해 생각하는 것은 우스운 일인지도 모르겠어요. 그렇지만 저는 작년 1월에 이 세상을 떠나려고 했던 인간입니다. 만일 그때 죽었더라면 대체 저는 무엇을 남기게 되었을까요?
할아버지께서는 이렇게 말씀 하셨어요.
"재미있는 일이야, 악착스레 모은 돈이나 재산은 그 누구의 마음에도 남아 있지 않지만 숨은 적선, 진실한 충고, 따스한 격려의 말 같은 것은 언제까지 남게 되니까 말이야."
위 내용은 지난번에 읽은 미우라 아야코 소설 빙점(氷点) 속편에 나오는 내용입니다.
'빙점'이라는 소설은 1964년 아사이신문 공모전에 당첨되어 화제가 된 책인데 책 마무리에 주인공이 비극적인 자살을 택하여 죽음을 맞는 내용으로 결말을 맺게 되는데 이 내용이 너무 안타깝다는 독자들의 열화와 같은 원망으로 다시 속편이 나와서 죽었던 주인공이 살아나서 용서라는 대 전제를 이어가는 내용입니다.
원작보다 속편은 늘 시시하고 재미없다는 통설을 깬 소설이기도 하구요.
..............................
암튼 이야기가 살짝 옆길로 새는듯 한데 제가 다시 정리한 내용은 이렇습니다.
"일생을 마친 다음에 남는 것은 모아둔 돈이 아니라 돌아댕기고 느끼고 깨닳는 것이다."
...............................
여행은 이삼일 다녀 왔습니다.
아지트를 마련 해 두고 이리저리 다니는 여행.
참 좁은 나라이지만 볼 것도 많고 느낄 것도 많은 우리나라...
아직은 여름이었지만,
곧 가을입니다.
여행지에 관한 설명 내용은 위키백과나 네이버사전, 기타 지자체홍보내용등을 그대로 인용한 것이 많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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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소수서원
소수서원(紹修書院)은 사적 제55호로 경상북도 영주시 순흥면 내죽리에 있는 서원이다. 한국 최초의 본격적 서원이며, 최초의 사액서원이다.
영풍군은 본디 영주, 풍기, 순흥 세 고을이 비슷한 규모로 솔밭처럼 나뉘어 오랜 역사를 이루어온 곳이다. 소수서원이 위치한 자리는 원래 숙수사라는 이름의 사찰터로, 서원 입구에는 현재까지 4m 높이의 당간지주가 남아있다.
중종 38년(1543년) 풍기군수(豊基郡守) 주세붕이 평소 자신이 흠모해 왔던 고려의 유학자 안향의 연고지인 이곳 풍기 땅에 부임한 것을 계기로 그의 향리에 안향의 사당을 세우고, 이듬해에는 사당 앞에 향교 건물을 옮겨다 재실을 마련하여 선비들의 배움터로 삼음으로써, 서원의 대체적인 골격이 이루어졌다.
서원의 시설을 정비한 주세붕은 주자(朱子)의 《백록동학규(白鹿洞學規)》를 채용해서 유생들에게 독서와 강학(講學)의 편의를 주었으며, 한양의 종갓집에서 안향의 영정을 이곳으로 옮겨와 봉안하고서 처음으로 이름을 백운동서당(白雲洞書堂)이라고 하였다가, 중종 40년(1545년)에 안축(安軸)과 안보(安補)의 영정도 함께 배향하면서 백운동서원(白雲洞書院)이라 부르게 되었다. 나아가 주세붕은 임백령이나 이언적 등의 도움을 받아 제향과 교육을 위한 재정 기반을 마련하고, 서책을 사들여 서원 문고를 조성하였으며, 주세붕 자신도 종종 서원에 들러 고을 선비들과 함께 성리학 강론에 직접 참여하기도 하였다.
주세붕이 처음 서원의 터를 닦은 뒤, 안향의 후손으로 경상감사로 부임한 안현은 경상도의 각 고을에 협조를 요청하여, 서원에서 일할 노비와 제수에 필요한 식량, 어염(魚鹽) 등을 확보하고, 서원의 관리와 운영을 위한 운영 규정을 정하여 서원의 원장 임명 문제와 원생의 정원수, 제향 절차 등을 상세하게 규정하였다. 이렇게 하여 백운동 서원이 보유한 전답 30결(9만 평)에 어장과 염분 및 보미(寶米)도 운영하게 되면서 서원은 토대를 굳히게 되었고, 조선 명종 5년(1550년) 이황이 풍기 군수로 부임해 와서는 서원의 격을 높이고자 송(宋) 시대의 예를 언급하며 국가에서 서원에 대한 합법적인 인정과 정책적인 지원을 해줄 것을 요청, 마침내 당시의 국왕이었던 명종은 친필로 「소수 서원(紹修書院)」이라는 편액(篇額)을 서원에 하사하고 아울러 사서오경과 《성리대전》등의 서적, 노비도 내렸다.
'소수(紹修)'는 "이미 무너져버린 교학을 다시 이어 닦게 했다(旣廢之學 紹而修之)"는 데서 온 말이었다. 이것은 소위 사액서원의 시초였으며, 이로써 나라가 인정하는 사학(私學)이 되었다. 사액된 뒤 입학 정원도 10명에서 30명으로 늘어났으며, 또한 서원의 원생들이 배움에 충실하도록 이황은 서원에서의 학업 규칙도 정하여, 배움의 장으로서의 서원의 위치를 공고히 하는데 힘썼다. 당시 입학 자격은 초시에 합격했거나 학문에 정진하는 자들이었고, 학문에 정진하지 않고 과거 시험에만 한눈을 팔거나 미풍양속을 어기는 경우 곧바로 퇴원당했다.
소수서원에서 공부한 유생은 4천 명에 달했으며, 그 중에는 임진왜란 때에 경상우병사로 진주성에서 전사한 김성일, 선조 때의 좌의정이었던 정탁도 있었다. 1633년(인조 11)에는 주세붕을 추가로 배향하였다. 그 뒤 안향과 주자, 이원익, 허목 등이 추가로 배향되었다.
서원 경내로 들어서기 전 죽계천의 건너편에는 운치 있는 자태의 소나무에 둘러싸인 아담한 정자가 있다. 퇴계 이황 선생이 경자바위 윗부분에 터를 닦아 대를 쌓고 손수 소나무, 대나무, 잣나무를 심고 ‘취한대(翠寒臺)’라 이름 한 것을 본 받아 1986년에 신축한 건물이다.
‘취한대’란 이름은 푸른 연화산의 산 기운과 맑은 죽계천의 시원한 물빛에 취하여 시를 짓고 풍류를 즐긴다는 뜻에서 옛 시 송취한계(松翠寒溪)의 비취 ‘翠’와 차가울 ‘寒’자에서 따온 것이다.
취한대는 전면 3칸 측면 2칸의 건물로 기둥과 기둥사이는 출입하는 전면 중앙 칸을 제외하고 모두 난간으로 막았다.
죽계수를 굽어보며 홀로 앉은 취한대는 산뜻하고 깨끗한 풍취를 자아낸다.
소백산 남쪽 옛날 순흥 고을 /小白南墟古順興
죽계 찬 냇물 위에 흰 구름 드리웠네 / 竹溪寒瀉白雲層
인재 기르고 도를 밝힌 기풍 한없이 우뚝하고 / 生材衛道風何遠
사당 세워 현자를 높임은 우리나라 효시였네 / 立廟尊賢事豈曾
우러르고 사모하며 모여드는 저 인재들 / 景仰自多來俊碩
학문 닦는 것이 출세를 위함이 아니라네 / 藏修非爲慕騫騰
고인(古人) 볼 수 없어도 그 마음 상상되니 / 古人不見心猶見
차고 맑은 저 연못에 휘영청 밝은 달빛 / 月照方塘冷欲氷
- 백운동서원 생도들에게 [白雲洞書院示諸生〕
기유년 풍기군에 부임하여 퇴계 이황.
2. 부석사
한국 화엄종(華嚴宗)의 근본도량(根本道場)이다. 676년(신라 문무왕 16) 의상(義湘)이 왕명을 받들어 창건하고, 화엄의 대교(大敎)를 펴던 곳으로, 창건에 얽힌 의상과 선묘(善妙) 아가씨의 애틋한 사랑의 설화는 유명하다. 1016년(고려 현종 7)에 원융국사(圓融國師)가 무량수전(無量壽殿)을 중창하였고 1376년(우왕 2)에 원응국사(圓應國師)가 다시 중수하고, 이듬해 조사당(祖師堂)을 재건하였다. 그 후 여러 차례 중수와 개연(改椽)을 거쳐 1916년에는 무량수전을 해체 수리하였다.
경내에는 무량수전(국보 18)·조사당(국보 19)·소조여래좌상(塑造如來坐像:국보 45)·조사당 벽화(국보 46)·무량수전 앞 석등(국보 17) 등의 국보와 3층석탑·석조여래좌상·당간지주(幢竿支柱) 등의 보물, 원융국사비·불사리탑 등의 지방문화재를 비롯하여 삼성각(三聖閣)·취현암(醉玄庵)·범종루(梵鐘樓)·안양문(安養門)·응향각(凝香閣) 등 많은 문화재가 있으며 또 신라 때부터 쌓은 것으로 믿어지는 대석단(大石壇)이 있다.
의상은 제자가 3,000명이나 있었다고 하며 그 중에서 10대덕(十大德)이라 불리는 오진(悟眞)·지통(智通)·표훈(表訓)·진정(眞定)·진장(眞藏)·도융(道融)·양원(良圓)·상원(相源)·능인(能仁)·의적(義寂) 등은 모두 화엄을 현양(顯揚)시킨 승려들이었다.
이 밖에도 《송고승전(宋高僧傳)》에 그 이름이 보이는 범체(梵體)나 도신(道身)및 신림(神琳) 등도 의상의 훌륭한 제자였으며 의상 이후의 부석사와 관계된 고승으로는 혜철국사(惠哲國師)·무염국사(無染國師)·징효대사(澄曉大師)·원융국사·원응국사 등이 그 법통을 이었다.
가을빛이 조금씩 물어가고 있습니다.
안양루 올라가는 계단입구.
저는 부석사를 아주 좋아 합니다.
자주 가 본 곳이기도 하구요.
부석사에 들리면 늘 생각나는 것이 구품 만다라이고 아이들을 데리고 이곳에 들리면 꼭 설명 하는 것입니다.
이에 대한 설명글을 인용하여 보면,
부석사 대석단과 구품만다라(大石壇.九品曼茶羅)
막돌을 거침없이 쌓은 듯 하면서도 크고 작고 모나고 둥근 것들의 조화가 절묘하게 이루어진 대석단(大石壇)은 절로 감탄의 한숨을 쉬게 한다
대석단을 유심히 보면 잔돌들을 군데군데 오려 맞추어 서로 절묘하게 엇물려 힘을 받로록 했음을 알 수 있다.
불국사의 석축이 자연과 인공의 긴장미 넘치는 조화를 잘 보여준다면 부석사의 석축은 자연이 극대화될 때 얼마나 장엄해질 수 있는가를 보여주는 훌륭한 본보기이다.
자연스러우면서도 완벽하며 전체 높이 4.3m 길이 75m나 되는 거대한 석축이다. 석축은 안양루 아래에서 또 한번 만나게 되는데 안양루 아래의 대석단도 2단으로 높이 4m,쭉 뻗은 계단만도 25단이나 된다.
이 석축 자체만으로도 감탄할 만하거니와 석축이 가르는 큰 경계 셋이 다시 낮은 경계들로 갈라지면서 아홉 단을 이루는 데에는 그것이 바로 극락세계에 이르는 구품만다라를 이루고 있다고 풀이할 만큼 조화로운 경지를 보여준다'
사람에 따라서는 천왕문에 이르렀을 때까지가 하품, 천왕문에서 범종루까지가 중품, 범종루에서부터 안양루 누각 아래까지가 상품 영역이고, 안양루를 거쳐 무량수전 영역에 이르면 극락에 이른 것이라고 보기도 한다. 혹은 천왕문에서 범종루까지가 하품, 범종루를 지나 안양루까지가 중품, 안양루 아래에서 무량수전 단 아래까지가 상품이며 무량수전 안에 들어섰을 때에야 아미타여래가 주재하는 극락에 이른 것이라고 보기도 한다. 이는 모두 정토신앙을 기준으로 부석사를 해석한 것이다.
계단을 오르면서 마주하게 디는 대석단도 그러하거니와 이 구품을 지나 극락이 되는 무량수전 영역에 이르러서 이제 다 올라왔다는 안도와 함께 문득 뒤를 돌아보면 겹겹이 펼쳐지는 산자락들이 끝 간 데 없이 이어지며 모든 것이 발 아래에 있으니 그야말로 무념무상의 세계에 젖어들지 않을 수 없다.
부석사의 이런 배치에 대하여 일반적으로는 아미타불을 모신 곳으로『화엄경』에 나타나는 34품 8회 10지의 단계를 상징한다고 풀이 하기도 한다. 이를 풀어 설명하면 부석사에 이르기 전까지는 세 칸이고 첫 석축부터 층단을 올라가면서 차례로 10지를 이루어가는데 안양문 밑 석축 공간이 제 9지가 되며 가람의 마지막 단계인 무량수전 단은 제 10지로서
제 34품인 '입법계품 대자재천'이 되는 것이다. 괘불지주 바로 위 빈터에 있던 법당에 화엄종의 주존불인 비로자나불을 모셨다고 보면, 화엄의 세계 맨 위에는 아미타불이 계신 화엄경과도 들어맞는다. 이러한 해석으로 보면 부석사는 화엄경을 현실로 펼쳐 보인 화엄의 세계인 것이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 된 목조건축물이었다가 어느날 갑자기 안동 봉정사에 타이틀을 넘겨 준 No,2의 무량수전
3. 오전약수(吾田藥水)
경북 봉화군 물야면 오전리. 쑥밭약수로 불리우며 조선 성종때 부보상에 의해 발견되었다고 한다. 당시 전국최고의 약수로 선정되었다.
혀끝을 쏘는 듯한 청량감이 있는 탄산수이다. 함유성분은 1ℓ당 유리탄산 1.01㎎, 마그네슘 47.2㎎, 칼슘 44.8㎎, 철 30.0㎎, 염소 10.6㎎ 등이다. 조선시대에 전국 약수대회에서 1등 약수로 선정되었다고 전해지며, 위장병과 피부병 치료에 효험이 있다고 한다.
조선 중종 때 풍기군수를 지낸 주세붕(周世鵬)이 이 약수를 마시고 '마음의 병을 고치는 좋은 스승에 비길 만하다.'라고 칭송했다는 기록이 있다. 약수터 옆 바위에는 맑고 깨끗한 마음을 지니라는 뜻의 주세붕의 휘호가 남아 있다.
또한 부정한 여인이 이 물을 마시려 하자 맑게 흐르던 물이 문득 흙탕물로 변하고 물에서 뱀이 나왔다는 전설이 있다. 약수가 있는 계곡에는 무료 야영장이 설치되어 있고, 주변의 오전댐·선달산(1,234m)·옥석산(1,076m) 등의 풍광을 즐길 수 있어 여름철의 관광코스로 알려져 있다.
당시 풍기군수 신재 주세붕(周世鵬)는 이 약수를 마시고 "그 옛날 조선시대 부터 유명했던 오전약수는 지금도 많은 사람들의‘마음의 병을 고치는 좋은 스승'에 비길 만하다" 라고 칭송했다고 적은 글귀인 '맑고 깨끗한 마음을 지니라는 뜻의(人生不老 樂山樂水)'라는 주세붕의 친필 휘호.
4. 조선민화박물관
강원도 영월군 와석리에 1998년 착공하여 2000년 7월 29일 개관하였다. 부지면적 1만 2595㎡, 연건축면적 727㎡ 규모로, 목조 건축물에 전시동·관리동·휴게동·수장고 등이 있다. 《까치와 호랑이》 《어변성룡도》 《호렵도》 등 1,300여 점의 민화가 소장되어 있는데, 그 가운데 130여 점이 조선시대 민화이며, 50여 점의 고가구가 함께 전시되어 있다. 개관시간은 11월부터 2월까지 동절기에는 오전 10시~오후 5시이고, 3월부터 10월까지 하절기에는 오전 10시~오후 6시이다.
매년 학생민화그리기대회와 김삿갓축제가 열리는 9월에 전국민화공모전을 개최한다. '민화사랑 체험 코너'가 있어 견학생들이 그림본 위에 직접 민화를 그려볼 수 있고, 기념품 코너에서는 전시 중인 민화 60여 점이 수록된 민화 책자와 엽서, 현대 민화작가가 직접 그린 민화 등 다양한 민화 관련 상품을 판매한다.
전시관 앞 야외에는 200년 된 소나무와 250년 된 배롱나무 등 수백 점의 희귀 분재가 전시된 분재소공원이 꾸며져 있고, 통나무집에서는 단체나 가족 단위 숙박이 가능하며, 휴게소에서는 차와 식사를 할 수 있다. 주변에 김삿갓계곡을 비롯하여 장릉·청령포·선돌·영월고씨굴·김삿갓묘 등의 관광지가 있다.
찾아가려면 영월시외버스터미널에서 김삿갓 묘역행 마을버스를 타고 박물관 앞에서 하차하거나, 승용차로 가려면 영월 방면 38번 국도를 타고 영월읍내를 지나 영월고씨굴, 김삿갓 유적지를 지나면 박물관이 나온다.
이층에 있는 전시관 일부
위 사진은 클릭하면 크게 보여 집니다.
이방 옆칸에는 조선시대 애로티즘 민화 춘화를 전시한 곳이 있습니다.
1층의 민화 전시관 작품 중 하나
조선시대 온갖 용하다는 귀신을 한 곳에 모아 둔 민화입니다.
이곳에 빌면 거의 다 해결이 된다고 하니 다음에 들리면 다른 곳 말고 이곳에서...
밑에 돈 통이 있습니다.
이층 별도 전시관에는 조선시대 춘화와 일본 춘화등이 잔뜩 전시되어 있는데 미성년자는 입장불가
수천년이 지나도 하나도 변하지 않는 것이 있다면 남녀관계..
5. 김삿갓 생가
김삿갓과 관련된 유적은 강원도 남부와 충청북도 경계지대에 분산되어 있는데 남대천 (南大川)을 사이에 두고 북쪽 영월군 하동면 어둔리 선래골 (선락동)에는 집터가 있고, 근처 와석리 노루목에는 묘소가 있다. 그리고 냇물 건너 단양군 영춘면 접경에는 기념시비가 세워졌다. 최근 김삿갓에 대한 문학적, 역사적 관심이 높아지면서 이 지역을 찾는 등산객, 답사 여행객이 증가하여 대야리 - 인근 마대산(해발1,052m, 강원도,충북, 경북 3도의 접경을 이루는 산) - 김삿갓생가터 - 김삿갓묘역을 연결하는 등산로가 개발되고 있으며, 곰봉 (곰의 모양을 한 봉우리)도 탐방이 잦아지고 있다. 와석리는 10여 가구가 살고 있는 조촐한 오지 마을로서 옛 시골의 정취를 간직하고 있는 마을이다.
김삿갓 계곡은 김삿갓이 생전에 "무릉계"라 칭했을 만큼 빼어난 경치를 지녔다. 관광지로 지정되지 않았지만 오염이 안되고 보존이 잘 되어 청정지대임을 자랑한다. 인근 내리계곡의 크낙새와 법흥사 적별보궁 오르는 길의 딱따구리, 그외 동강과 서강이 기암을 돌아 흐르는 곳에 사는 수달, 수리부엉이, 비오리, 검독수리, 작은소쩍새, 올빼미, 황조롱이, 오리떼 등은 이 지역이 과연 있는 그대로의 생태박물관임을 입증한다. 영월군은 이 계곡과 내리계곡 등 인근의 계곡을 번갈아가며 휴식년제를 취하고 있으므로 확인 후 출발해야 한다.
* 우리나라 최고의 풍류시인 김삿갓에 대하여 *
김삿갓의 본명은 병연(炳淵), 호는 난고(蘭皐)이다. 1807년(순조7년)3월 13일 경기도 양주군 회동면에서 출생한 김삿갓은 6세 때 조부 김익순이 선천부사로 있다가 홍경래 난을 진압하지 못하고 오히려 투항한 것과 관련하여 폐족을 당한 후 황해도 곡산, 경기도 가평, 광주, 강원도 평창등을 전전하다 영월 삼옥리(三玉里)에 정착하여 화전을 일구며 살게 되었다.
조부의 행적을 모르고 자랐던 선생은 20세 때 영월동헌에서 열리는 백일장에서 “홍경래난 때, 순절한 가산 군수 정공의 충절을 찬양하고, 항복한 김익순을 규탄하라.”(論鄭嘉山忠節死 嘆金益淳罪通于天)는 시험 제목의 향시(鄕試)에서 장원을 했다. 이 소식을 들은 어머니로부터 김익순이 조부라는 것을 알게 되자 조상을 욕되게 하여 하늘을 쳐다 볼 수 없다고 삿갓을 쓰고 방랑생활을 하며 벼슬길을 포기하였다. 김삿갓은 57세로 객사할 때까지 전국 각지를 떠돌아 다니면서 방랑 걸식하였다. 지친 몸으로 말년에 들른 곳이 전라남도 화순군 동복면 구암리였는데, 그곳 명소 "적벽(赤 璧)"에 매료되어 다른 곳으로 가지 않고 이 곳에서 생을 마감하였다. 훗날 그의 차남이 영월 고향 땅으로 이장하여 이곳 김삿갓묘에 안치하였다.
김삿갓 묘
간혹 절을 하는 사람들이 보여 집니다.
김삿갓 문집
김삿갓이 어느 서당을 방문하여 문전박대를 당하고 내 지른 시인데 참으로 한자유회가 대단한 것입니다.
書堂乃早知 (서당내조지) 서당을 일찍부터 알고 와 보니
房中皆尊物 (방중개존물) 방안에는 모두 귀한 물건들일세
生徒諸未十 (생도제미십) 학생은 전부 열명도 채 안되고
先生來不謁 (선생내불알) 훈장은 와서 만나주지도 않네
이와 비슷하게 인터넷으로 나도는 요즘 시가 있는데 그냥 재미로 보시구요.
受學始撥年 수학시발년
받을 수, 배울 학, 비로소 시, 필 발, 해 년
배움을 시작할 때인데
存那齬廉耐 존나어렴내
있을 존, 어찌 나, 어긋날 어, 청렴할 렴, 참을 내
어찌 어긋난채로 가만히 참을 수 있는 가
謎紛芥索紀 미분개색기
수수께끼 미, 어지러울 분, 티끌 개, 찾을 색, 실마 리 기
어려운 문제라도 티끌만한 실마리를 찾는다면
豈産足艱來 개산족간내
즐길 개, 낳을 산, 족할 족, 어려울 간, 올 내
어려움이 와도 즐겁고 만족한다
김삿갓과 관련된 유적은 강원도 남부와 충청북도 경계지대에 분산되어 있는데 남대천 (南大川)을 사이에 두고 북쪽 영월군 하동면 어둔리 선래골 (선락동)에는 집터가 있고, 근처 와석리 노루목에는 묘소가 있다. 그리고 냇물 건너 단양군 영춘면 접경에는 기념시비가 세워졌다. 최근 김삿갓에 대한 문학적, 역사적 관심이 높아지면서 이 지역을 찾는 등산객, 답사 여행객이 증가하여 대야리 - 인근 마대산(해발1,052m, 강원도,충북, 경북 3도의 접경을 이루는 산) - 김삿갓생가터 - 김삿갓묘역을 연결하는 등산로가 개발되고 있으며, 곰봉 (곰의 모양을 한 봉우리)도 탐방이 잦아지고 있다. 와석리는 10여 가구가 살고 있는 조촐한 오지 마을로서 옛 시골의 정취를 간직하고 있는 마을이다.
김삿갓 계곡은 김삿갓이 생전에 "무릉계"라 칭했을 만큼 빼어난 경치를 지녔다. 관광지로 지정되지 않았지만 오염이 안되고 보존이 잘 되어 청정지대임을 자랑한다. 인근 내리계곡의 크낙새와 법흥사 적별보궁 오르는 길의 딱따구리, 그외 동강과 서강이 기암을 돌아 흐르는 곳에 사는 수달, 수리부엉이, 비오리, 검독수리, 작은소쩍새, 올빼미, 황조롱이, 오리떼 등은 이 지역이 과연 있는 그대로의 생태박물관임을 입증한다. 영월군은 이 계곡과 내리계곡 등 인근의 계곡을 번갈아가며 휴식년제를 취하고 있으므로 확인 후 출발해야 한다.
* 우리나라 최고의 풍류시인 김삿갓에 대하여 *
김삿갓의 본명은 병연(炳淵), 호는 난고(蘭皐)이다. 1807년(순조7년)3월 13일 경기도 양주군 회동면에서 출생한 김삿갓은 6세 때 조부 김익순이 선천부사로 있다가 홍경래 난을 진압하지 못하고 오히려 투항한 것과 관련하여 폐족을 당한 후 황해도 곡산, 경기도 가평, 광주, 강원도 평창등을 전전하다 영월 삼옥리(三玉里)에 정착하여 화전을 일구며 살게 되었다.
조부의 행적을 모르고 자랐던 선생은 20세 때 영월동헌에서 열리는 백일장에서 “홍경래난 때, 순절한 가산 군수 정공의 충절을 찬양하고, 항복한 김익순을 규탄하라.”(論鄭嘉山忠節死 嘆金益淳罪通于天)는 시험 제목의 향시(鄕試)에서 장원을 했다. 이 소식을 들은 어머니로부터 김익순이 조부라는 것을 알게 되자 조상을 욕되게 하여 하늘을 쳐다 볼 수 없다고 삿갓을 쓰고 방랑생활을 하며 벼슬길을 포기하였다. 김삿갓은 57세로 객사할 때까지 전국 각지를 떠돌아 다니면서 방랑 걸식하였다. 지친 몸으로 말년에 들른 곳이 전라남도 화순군 동복면 구암리였는데, 그곳 명소 "적벽(赤 璧)"에 매료되어 다른 곳으로 가지 않고 이 곳에서 생을 마감하였다. 훗날 그의 차남이 영월 고향 땅으로 이장하여 이곳 김삿갓묘에 안치하였다.
6. 정선 아라리촌
정선읍 애산리 일원 10,503평 부지에 조선시대 정선의 주거문화를 재현한 아라리촌이 있습니다. 전통와가와 굴피집, 너와집, 저릅집, 돌집, 귀틀집의 전통가옥 6동과 주막ㆍ저잣거리등이 조성되어 있으며, 지금은 보기 드문 물레방아와 통방아, 연자방아, 서낭당, 농기구공방, 방앗간 등의 시설도 볼 수 있습니다. 또한 박지원의 소설로 양반전을 소개하는 조형물이 설치된 양반전 거리가 설치되어 있습니다.
양반전 거리
작자 : 연암 박지원
시대적 배경 : 18세기
지역적 배경 : 강원도 정선
사상적 배경 : 실사구시의 비판정신
주제와 성격 : 양반의 무능력과 부패상을 폭로하고, 동시에 관리들의 횡포를 풍자와 해학(웃음)으로 고발함
양반전 줄거리
옛날 강원도 정선 땅에 가난한 양반이 살았다. 그는 현명하고 정직한데다 책읽기를 즐겨서 신임군수들조차 방문할 만큼 인격이 높았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경제적 능력이 떨어져서 관가의 곡식을 빌려 연명했는데 어느덧 그 환곡이 1,000여 섬에 이를 지경이었다. 그러던 중 지방의 관아를 순시하던 관찰사에게 발각되어 마침내 감옥에 갇힐 운명에 처한다.
이때 이웃에 살던 부자 상민이 그 빚을 대신 갚아주고 양반의 신분을 사게 되었다. 이윽고 이를 안 군수가 직접 증인이 되어 양반문서를 만들어 주겠다고 하였다. 그러나 첫 번째로 작성한 문건에서는 양반이 되면 지켜야 할 온갖 형식적 조목들은 나열함으로써 부자 상민을 낙담시켰다. 그리하여 부자 상민의 요청에 따라 작성된 2차 문건에서는 양반이 누릴 수 있는 여러 특혜들을 적어나갔다. 하지만 이 문건을 지켜보고 있던 부자 상민은 양반이 도둑놈이나 다름없는 것이냐며 양반이 되기를 포기했고, 그 이후로는 죽을때까지 양반이라는 말을 입에 담지 않았다고 한다.
아리리촌은 제법 널찍한 공원으로서 내부에는 여러가지 옛 주거지가 조성되어 있고 양반전거리가 형성되어 있습니다.
입장료는 다시 정선에서 사용가능한 아리랑상품권으로 돌려 준다는 점입니다. 기발한 아이디어라는 생각이 드네요.
http://www.jsimc.or.kr/sub/sub05_6.asp
7. 동박골
곤드레나물의 고향 정선, 정선에서도 곤드레나물밥의 원조로 알려져 있는 <동박골식당>이다. 이 식당의 곤드레나물밥은 지글지글 달궈진 돌솥에 한가득 담겨 나오는게 특징이다. 콩나물 밥을 먹는 방법과 같이 양념장을 넣고 슥슥 비벼 먹으면 된다. 간장 양념장과 함께 고추장과 막장이 함께 나와 취향에 따라 간을 맞춰 비벼 먹는게 요령이다.
에디형님께서 추천해 주신 동박골 식당
곤드레정식 전문점입니다.
가격도 저렴. 돌솥곤드레정식이 9,000원. 푸짐하고 나물도 다양하게 나옵니다.
추천해 주신대로 정말 맛난 곳입니다.
곤드레막걸리도 아주 짱..!!
8. 정선시장
(정선 아리랑시장)
80년대 초까지만 해도 13만명 가까운 인구와 인근광산의 활기로 비교 적 큰 상권이 형성되기도 했으나 산업화에 따른 농촌 인구의 급속한 감소로 점차 쇠퇴하여 가고 있다. 정선장은 농촌에서 재배한 각 종 채소 외 고추,도라지,감자,마늘 등의 농산물이 주종을 이루며 대부분 농가에서 직접 재배한 것을 소매하기 때문에 신선한 상품을 싼 값으 로 구매할 수 있다.
인근에는 정선의 특산품인 황기를 비롯한 당귀, 천궁 등 약재류를 판매하는 약초 시장이 형성되어 있어 관광객 들이 많이 찾고 있다. 99년부터 정선 5일장 열차가 운행되며, 많은 관광객이 찾고 있다. 연계 관광상품(버스투어, 창극공연)을 이용할 수 있다. 현재 상가주택건물형의 중형시장으로 장날은 매월 2일, 7일 및 주말장이다.
9. 동강
동강은 남한강 수계에 속하며 정선, 평창 일대 깊은 골짜기를 흘러내린 물들이 정선읍내에 이르면 조양강이라 부르고, 이 조양강에 동남천 물줄기가 합해지는 정선읍 남쪽 가수리부터 영월에 이르기까지의 51km 구간을 '동강'이라 부른다. 산자락을 굽이굽이 헤집고 흘러내리는 동강은 마치 뱀이 기어가는 듯한 사행천(巳行川)을 이루고 있으며, 전 구간에 걸쳐 깎아지른 듯한 절벽지형을 이루고 있다.
유역은 4억 5000만 년 전에 융기되어 형성된 석회암층 지역으로, 약 2억 년 전에 단층운동과 습곡운동의 영향으로 현재의 지형이 형성되었고, 현재도 하천운동으로 인한 퇴적작용과 침식작용 등이 계속 진행되고 있다. 또 동강 유역에는 지표운동과 지하수·석회수의 용식작용 등으로 인해 많은 동굴이 형성되었는데, 2002년 현재까지 보고된 동굴만도 256개나 된다. 그 가운데 백룡동굴(白龍洞窟)은 천연기념물 206호로 지정되어 있다.
생태계 역시 잘 보존되어 수달, 어름치·쉬리·버들치, 원앙·황조롱이·솔부엉이·소쩍새·비오리·흰꼬리독수리, 총채날개나방(미기록종)·노란누에나방, 동강할미꽃(미기록종)·백부자·꼬리겨우살이 등 미기록종을 포함해 많은 천연기념물·희귀동식물이 서식하는 생태계의 보고로 알려져 있다.
동강은 너무나 아름다운 강..
한반도 모양의 풍경을 강변에서 본 모습입니다.
위 사진은 클릭하면 크게 보여 집니다.
10. 스카이워크
정선의 뷰 포인트로 꼽히는 병방치가 있다. 정선 군청에서 차로 10여 분이면 닿는다. 병방치, 병방산(861m) 전망대로 알려진 명소다. 이웃한 영월의 선암마을과 함께 한반도 지형을 볼 수 있어 인기다. 지금이야 차에 몸을 싣고 올라와 가뿐하게 물줄기에 감탄하면 되지만 옛날 산아래 귤암마을 사람들은 정선읍을 오가기 위해 두발로 굽이굽이 산자락을 오르내렸다. 그러다 이곳 북실리에 닿으면 한반도 지형을 만든 물줄기를 보며 땀을 식혔으리라. 1978년 도로가 생기기 전까지는 걸어 다니며 생필품을 옮겼단다.
산골 사람들의 온갖 애환을 품은 병방산 전망대는 21세기 들어 스카이워크(Sky Walk)라는 이름으로 다시 태어났다. 말 그대로 하늘을 걷는 듯한 기분을 맛볼 수 있다. 병방산 전망대에 투명한 U자형 조망대를 만들었다. 다리 아래로 천길 낭떠러지가 펼쳐지고 휘몰아치는 동강 줄기는 한 손에 잡힐 것 만 같다. 2년 전만 해도 무료였던 이곳은 지금 성인 5000원, 청소년 3000원의 관람료가 생겼다. 이른 아침이 아니고서는 이곳까지 차량을 가져올 수 없다. 정선버스터미널과 스카이워크 사이에 아리힐스 셔틀버스 승차장이 있다. 이곳에 주차를 하고 셔틀버스를 타야 한다. 아리힐스에서 스카이워크와 함께 짚와이어를 즐길 수 있다.
동강에서 올려다 본 스카이워크
스카이워크에서 내려다 본 동강. 한반도 모양이라 하는데...
이전에는 덧신을 신고 들어 갔던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요즘은 그냥..
무서버... 덜덜덜~~
11. 강원도 찰옥수수
꿀감자 꿀수박 꿀포도 꿀북숭아 ... 단맛을 내는 과일에는 모두 꿀이라는 글자가 안들어가믄 맛이 없는 것으로 생각이 되는데 이곳 강원도에서 판매하는 옥수수는 모두 찰...이라는 글자 삽입.
12. 정암사
태백산 정암사는 신라 선덕여왕(善德女王)때 고승 자장율사가 당나라 산서성에 있는 청량산 운제사에서 문수보살을 친견하고 석가세존(釋迦世尊)의 정골사리(頂骨舍利), 치아(齒牙), 불가사(佛迦裟), 패엽경(貝葉經) 등을 전수하여 귀국, 동왕 14년에 금탑, 은탑, 수마노탑을 쌓고 그 중 수마노탑에 부처님의 진신사리와 유물을 봉안 후 건립하였다고 한다. 사찰 내에서는 도 지정문화재 자료 32호인 적멸보궁을 비롯하여, 범종각, 육화정사, 요사채, 삼성각, 자장각 등이 있으며 국가지정 문화재 보물 제410호인 수마노탑, 천연기념물 제73호 열목어 시식지 등의 문화재가 소장되어 있는 고찰이다.
* 5대 적멸보궁 - 오대산 상원사, 양산 통도사, 영월 법흥사, 설악산봉정암, 정선 정암사
* 수마노탑 (보물 제410호)
정암사의 가장 높은 곳, 적멸보궁 뒤쪽으로 급경사를 이룬 산비탈에 축대를 쌓아 만든 대지 위에 서 있다. 자장율사가 당나라에서 돌아올 때, 가지고 온 마노석으로 만든 탑이라 하여 마노탑이라고 한다. 전체 높이가 9m에 이르는 7층 모전석탑으로 탑 전체가 길이 30~40cm, 두께 5~7cm 크기의 회색 마노석으로 정교하게 쌓아져 언뜻 보면 벽돌을 쌓아 올린 듯하다.
적멸보궁
수마노탑
탑은 꼭 흙벽돌처럼 생긴 돌로 된 벽돌을 이용하여 쌓았는데 위 사진과 같이 바깥으로 한칸씩 나오게 쌓는것은 어떤 기술일까? 궁금..
본드로 붙인것은 아닐테고...
13. 만항재
만항재(晩項-, Manhangjae)는 강원도 정선군 고한읍 고한리와 태백시 혈동 사이에 있는 고개다. 높이는 해발 1,330m이다. 대한민국에서 차량을 이용해 갈 수 있는 가장 높은 고개이기도 하다.
지방도 제414호선을 이용해 정선과 태백 사이를 이동할 때 이 고개를 넘어가게 된다. 고려 말 또는 조선 초기 경기도 개풍군 광덕면에 위치한 광덕산 서쪽 기슭에 위치한 두문동에서 살던 주민 일부가 정선으로 옮겨와 살면서 고려에 대한 충절을 지켰던 사람들이 고향에 돌아갈 날만을 기다리며 이 곳에서 가장 높은 곳인 만항에서 소원을 빌었다고 해서 '망향'이라고 불리다가 후에 '망항'으로 바뀌었다고 한다.
‘산상(山上)의 화원’이라는 별칭을 갖고 있는 만항재는 다양한 토종 야생화들이 울창한 숲 아래 고개를 내밀어 구름 속을 걷듯 황홀한 느낌을 선물한다.
만항재(1,330m)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한 포장도로로 알려져 있다. 태백시와 영월군 상동읍, 정선군 고한읍을 잇는 고개로, 위쪽의 함백산 줄기와 만나 제법 너른 공간을 가지고 있다. 쭉쭉 뻗은 침엽수림 아래 자리한 만항소공원과 구불구불 이어지는 도로의 정상 부근에 숲이 펼쳐져 드라이브를 즐기는 여행자들이 즐겨 찾는 곳이다.
만항재에는 요즘 야생화 천국
14. 그리고, 고선계곡
태백산(1,567m)에서 발원한 계류가 20km에 걸쳐 흐른다. 발원하는 계곡 중 가장 길어 물줄기가 장장 100리나 되는 원시림 계곡으로, 수량이 풍부하고 각종 민물고기도 많이 서식하고 있어 가족과 함께 물놀이를 즐기기에 좋다. 또, 주변에는 기암괴석과 절벽, 숲 등이 천혜의 자연 그대로 보존되어 있고, 계곡물은 거울처럼 맑아 주위의 수려한 산세가 물에 비치면서 한번 더 생생히 살아날 정도이다. 고선계곡은 이처럼 태고의 신비를 간직하고 있어 공해에 찌든 현대인들에게 여름철 피서지로 그만이다. 그래서 한번 다녀간 많은 사람들이 매년 이 곳을 찾고 있다.
구마계곡으로 더 잘 알려진 이 곳은, 풍수지리설에 의하면 9필의 말이 한 기둥에 매여 있는 구마일주의 명당이 있다고 하는데 아직 이 명당을 찾은 이는 아무도 없다고 한다. 구마계곡이라는 이름도 거기에서 유래되었으며, 마방, 죽통골, 굴레골과 같이 말과 관련된 지명들이 곳곳에 남아 전해지기도 한다. 계곡 내에 민박이 가능한 곳이 5~6개소 되며, 텐트를 칠 수 있는 야영지도 여러 곳이다. 바쁜 일상을 잠시 접어두고 맑은 물과 좋은 산세, 푸른 자연과 벗하며 무더운 여름을 보낼 수 있는 조용한 피서 휴가지로 백리장천(百里長川) 깊은 계곡, 이만한 곳이 없을 듯하다.
위 사진들은 모두 차단기 윗쪽 풍경들입니다.
아무나 들어 갈 수 없는 곳이라 더욱 맑고 아름다운 곳이기도 합니다.
아래는 고선계곡 최고 깊숙한 곳에 자리한 구마일주 산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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