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산시 사동에 있는 경산시립박물관에서 <흑백텔레비전 보던 그때 그 시절>展을 연다고 하여 이전부터 한번 가 봐야지 하였는데 마침 기회가 생겨 다녀 왔습니다.
다른 것은 몰라도 이전 시골집에서 큰 살림 장만으로 들여놓았던 네발 달린 흑백 TV가 꼭 한번 보고 싶더라구요.
뭐 대도시에서 열린 전시회도 아니고 큰 규모도 아니지만 그래도 30~40년의 시간을 거슬러 올라 내 유년의 시간을 되새김하기엔 충분하였습니다. 인근에 계시거나 대구 계시는 분들은 한번 들리셔서 추억으로 가는 시간여행을 하여 보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전시장 내부 조명이 조금 어두웠습니다. 전시물만이라도 더 밝게 하여두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후랫시를 사용 않고 찍은 사진들이라 보시게에 조금 갑갑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경산시립박물관 : http://museum.gbgs.go.kr/main/main.htm




영화 포스트. 아주 어린시절 면소재지에 들어 온 가설극장에 가기 위하여 재를 넘던 기억이 떠 오릅니다.

도민증과 구형 주민등록증

전기가 없던 시절. 시골에서는 부엌에서 불을 지펴 밥을 하거나 위와 같은 석유곤로를 사용하기도 하였지요. 뒤에 석유등은 저희 시골에서는 '호야'라는 이름으로 불렀는데 다른 곳에선 어떻게 불렀는지 모르겠습니다. 

요즘은 거의 자취를 감춘 성냥. 담배도 저 미니 성냥으로 딱 하며 불을 일으켜 피워야 제 맛이 났는데..


제 태어난 해인 무술년((戊戌年) 1958년 개띠 달력입니다. 원기소란 광고를 보니 그때 알약으로 먹던 원기소 맛이 입안에 맴도네요. 

시골에서 이 TV를 장만하고 날마다 닦던 어머니의 모습이 떠 오릅니다. 양 옆으로 미닫이가 있어 다 보고는 쫘르르 닫으면 되었습니다.

이건 앉은뱅이 TV.

그 시절 이정도 전축을 집에 두고 있으면 방구깨나 끼거나 음악 무지 좋아하는 경우가 아닐까 생각됩니다.

제 중,고 시절은 중대가리(?) 시절인데 이런 바리깡으로 밀곤 하였습니다. 중학교때 인근 이발소에 깍사가 아가씨였는데 고운 손으로 머리통을 잡고 바리깡으로 밀던 그 감촉이 아직 느껴 지고 있습니다.

오래 전 시골 전화기는 번호판이 없고 그냥 전화기 손잡이를 돌리면 면 소재지 우체국 교환수 박양이 받는데 어디 바꿔라 하면 연결하여 주곤 하였습니다.

소풍가서 저기 야외전축을 틀어 놓고 끼~뽈~러닝(Keep On Running)... 하며 막고고 추던 기억이 떠 오릅니다. 고고춤 다시 한번 추고 싶다면 아래 ▶ 클릭



똥은 유용한 거름이었습니다. 똥장군으로 지어다 나르거나 똥통으로 퍼다 날랐습니다.

뒤에 있는 도구가 나락(벼)를 말려서 쭉정이와 알갱이를 걸러내는 풍로(바람개비)입니다.

풍금. 중학교 2학년때 음악 선생님이 너무 예뻐서 첫 짝사랑의 대상이었습니다. 풍금을 아주 잘 탔습니다. 그때 여동생이 태어 났는데 그 음악 선생님의 이름을 아이 이름으로 하자고 엄마한테 떼 쓰던 기억이 떠 오릅니다. 불행이도 그 여동생은 돌 되기 전에 죽었습니다. 

외정시대 교과서와 상장이네요.

벤또.. 너무나 추억이 많은 .. 제 처는 집에 닭을 많이 키워 날이면 날마다 후라이를 얹어 다녔다는데 저는 기억에 반찬으로 콩자반이 가장 많이 떠 오릅니다.

제가 책가방을 들었던 기억은 국민학교 2학년 후반으로 기억 됩니다. 그때부터 외지 생활을 하였으니까요. 그 전에 시골에서 학교 다닐때는 책보따리라 하여 천으로 된 보자기에 싸서 어깨에 두르고 다녔습니다.

술을 일치감치 좋아하여 말소주 마신 추억이 떠 오릅니다. 그땐 소주도 됫병으로 팔곤 하였지요.





족보책으로 딱지를 접거나 멀쩡한 고무신을 가지고 나가 엿을 바꿔 먹곤 하여 디지게(?) 혼나곤 하였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제 고등학교 시절은 공부 좀 했던 시절인데 가정방문을 온 선생님이 하숙방에 놓인 재떨이와 한산도 담배를 보고 자기가 선생질 하면서 가장 놀랐다 하였습니다. 그만큼 순진하게 봐 왔던 저와 제 친구가 담배를 피우고 있었으니...

고 3 시절. 그 힘든 공부라는 업무에 엄청난 스트레스가 쌓여 주로 애용하였던 담배가 한산도와 청자.. 그때 배운 담배를 약 10여년 전에 끊었습니다.

우에서 좌로 읽어야 해독이 됩니다.

이 사진을 보니 정말 추억이 새롭습니다. 제 중학교 시절 .. 딱 이랬거등요.







영락없는 어린시절 시골 집 풍경입니다.



경상도에서는 부엌을 '정지'라 하였는데 위와 같이 거의 쪽문을 열면 큰방과 통하여 밥상을 바로 들이곤 하였습니다.









전시회 다른 부스에는 경산과 관련된 여러가지 전시를 하고 있었는데 이건 갓바위 부처님 모습입니다.

머리는 지나는 아이들이 한번씩 만지는지 광이 반들반들 하네요.

바닥에 유리를 깔고 유물을 전시해 둔 것이 특이하였습니다.







'퇴비 가져오기'나 '풀 베어오기'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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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1.08.16 15:22 신고 dasci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코찔찔이 시절 만화방에서 만화보면 주는 표를 나름 소중히 모아서 김일 아저씨 레스링 보려고 보물처럼 간직하였습니다... ^^
    텔레비전이 너무 귀했지만 그래도 주인집 아주머니는 만화영화만 나오면 저를 부르셔서 보게 해주셨는데 ..그 따스한 마음이 지금 ..
    이나이에도 남아 있습니다.그러다 월남에 기술자로 가셨던 큰 형님이 가져오신 외산 텔레비전으로 개구쟁이 어깨에 힘을 팍 주고 ^^
    친구 녀석들을 꼬봉으로 삼았던 기억이 나네요 ^^ 삭막한 요즘 이웃을 보면 살기는 힘이 들었지만 그 시절 훈훈한 정은 늘 그립습니다.

    • Favicon of http://duga.tistory.com BlogIcon 두가 2011.08.17 13:29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dasci님 그때는 유일하게 외도(?)를 할 수 있는 장소가 만화방이었던 것 같습니다.
      김일 레슬링이나 김기수선수가 권투 하는 거..
      그땐 주로 이런 종목이 유행이고 전 국민을 열광의 도가니로 몰아 넣었던것 같습니다.
      말씀대로 특히 김일 선수가 일본넘을 받아 넘기면
      얼마나 기분이 짜릿하였는지요.ㅎ
      그 시절 월남에서 TV 가져오셔서 보셨다면 아마
      그 동네에서는 완전 대장 노릇 하셔도 되셨을 것입니다.
      참으로 추억으로 가는 시간입니다..^^

  2. 2011.08.16 17:17 신고 하마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제 어린시절 아버지 께서 종로 광장시장에서 잡화상을 하셨습니다. TV나 전축,전화,야외전축등 위의 사진속에 있는 물건들이
    집에 거의 모두 있었는데 이제 다시보니 감회가 새롭습니다.^^ 그리고 아이들이 푸대자루에 담아온건 폐비닐 같습니다.
    저도 동네 쓰레기통 뒤져가며 비닐을 모아 학교에 낸적이 있습니다. 제일 많이 모아서 연필 한타스 탄 기억이 납니다. ㅎㅎ^^
    요즘 아이들은 저 시절의 문화를 모를테니 설명을 해줘도 고개를 갸우뚱하겠지요....
    점점 잊혀져가는 추억속의 물건, 기억들이 아쉽게 느껴집니다.

    • Favicon of http://duga.tistory.com BlogIcon 두가 2011.08.17 13:32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제가 한양에는 자주 올라가지 않지만
      이전에 한번씩 올라가면 꼭 가보는 것이
      청계천 옆에 잡동사니 모아서 파는 곳이어씁니다.
      그 곳을 둘러보고 있으면 시간 가는 줄도 모르고
      타임머신을 타고 있는 듯 신기하였는데
      지금 그곳은 어디로 가 버렸는지 모르겠습니다.
      하마님 말씀 듣고 다시 사진을 보니 폐비닐차가 있네요.
      역시 하마님.
      저는 시골에 오래 머물지 않아 잘 모르지만
      동생들 이야기로는 잔디씨도 가져가고
      쇠똥도 주워가고
      퇴비가 가져가고
      풀도 베이가고..
      등등을 하였답니다. 참 세상 많이도 변하였습니다..^^

  3. 2011.08.16 18:10 신고 Favicon of http://koreanpaperarts.blogspot.com/ BlogIcon 지인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하루종일 구상에 대해서 고민하다 아무것도 한 일 없이 저녁이 되어 맘이 싱숭생숭 했는데
    위의 사진들을 보니 머리에 맑은 피가 기운차게 돌고 도는 듯 합니다.
    그런데 너무 멀고 아직 운전이 서툴어서 찾아가기가 쉽지 않아 또 머리가 아프네요.

    여담 하나,
    오래 전에 한 미국인 선교사를 만난 적이 있는데 사진 한 장을 보여 주었습니다.
    똥장군을 등에 짊어지고 가는 농군을 뒤에서 찍은 사진인데 그 선교사의 아버지가 찍은 사진이라고 하더군요.
    아버지가 한국전에 참여한 군인이라고 했어요.
    그 사진을 내게 달라고 했더니 얼마나 소중하게 간직하든지 절대 안 주려고 하더라고요.ㅋㅋ

    두가님, 정말 좋은 자료 사진입니다.
    잘 보았습니다
    제 블로그에 모셔 갈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요?
    인형 만들때 중요한 자료가 될텐데요.

    • Favicon of http://duga.tistory.com BlogIcon 두가 2011.08.17 13:38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지인님 피곤함을 잠시나마 풀게 되셨다니 정말 고마운 말씀입니다.
      그 똥장군 사진 만약에 습득을 하셨다면 정말
      굉장한 사진이 되었을 것입니다.ㅎ
      그때 시골에 가을 추수하고 보리 심기전에
      똥을 퍼다가 논에 뿌리곤 하였습니다.
      제가 시골 생활에서 가장 견디기 어려운 것이
      파리떼와 손으로 아무것이나 만지는 것
      두가지인데 이 똥거름이 마르면 손으로 흙과 비비곤 ...

      퍼가기는 메일을 알려 주시면 곧 바로 파일화하여 보내 드리겠습니다. 비밀글로 적어 두시면 되겠습니다..^^

    • Favicon of http://www.blogger.com/ BlogIcon 지인 2011.08.18 12:55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아침에 누가 불러서 급히 나가느라고 미처 댓글을 다 달지 못하고 나갔습니다.
      나누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제 메일 주소는
      giein05@gmail.com 입니다.

      좋은 것은 잘 나누려고 하는데 별로 좋지 않은 것은 잘 안 나누려고 하더라고요.
      두가님, 잘 쓸께요.

    • Favicon of http://duga.tistory.com BlogIcon 두가 2011.08.18 13:50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예,, 지인님.
      바로 메일로 보내 드렸습니다.^^

  4. 2011.08.16 18:15 신고 gosukgo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필리핀이나 태국을 부러워하든 시절이였지요.애초에 라디오도 귀하든 시절이였으니
    사진을 보는 오늘은 그때 그 시절로 돌아간 듯한 옛 추억을 떠올리면서 동심으로 돌아가 마음이 편안하고 행복한 기분입니다.
    향수를 자극하는 그때 그 시절 우리는 미래의 꿈과 희망이 있었습니다.
    없는 생활 속에서도 잃지 않았던 여유와 웃음, 나눔의 사랑 등을 새삼 돌아보게 합니다.
    사진에관한 이바구(스토리)는 너무많으나 그 옛날 앞집에살든 순남이가 서울 오빠집에 갔다가
    한달만에 와서 가게에가서 콩나물 계세요. ~ ~세요하면 서울말 인줄 알았습니다.
    그 순남이가 보고싶네요!!!!

    • Favicon of http://duga.tistory.com BlogIcon 두가 2011.08.17 13:42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시골 처마밑에 달아 논 스피커라는 것이 있는데
      이곳에서 종일 라디오를 방송하곤 하였습니다.
      김삿갓 북한 방랑기를 할 무렵이 되면
      논에 나가셨던 어른들이 돌아와 점심을 준비하는 시간이었습니다.
      김삿갓 방랑기의 오프닝 음악이 아직도 귀에 쟁쟁합니다.
      정말 선생님 말씀대로 그때는 순수가 있었고
      모두를 생각하는 이웃들이 있었습니다.
      순남이 여사님도 할머니가 되어
      지금쯤 손자손녀 앉혀놓고
      내가 말이야 그때 서울말 쓴다고 ...하며 신나게 이야기 풀고 계실것 같습니다.
      간간 뒷집 잘 생기셨던 석 총각님은 지금 뭘 하실까 생각하면서요..^^

  5. 2011.08.16 19:51 신고 창파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오래된 옛 사진들을 보면 혹시라도 제 얼굴이 찍히지 않었을가 하는
    생각에 조금은 유심히 보고 있습니다.
    어릴때 꾀죄죄 한 모습으로 살은 것 같고 또 카메라 앞에 자주(미군 아저씨)
    모델이 되였던 기억도 있으니 그런 생각도 들지요...
    그런데 쫘르르 문 닫히는 콘솔형 TV 화면을 보고 있으려니
    갑자기 일본 영화 "링" 이 생각이 납니다...ㅋㅋ
    물론 주인공은 머리 산발한 여자가 아니고 지구별의 주인장 모습이지만...
    그리고 저의 동내에서는 등을 남포불이라고 하던 기억과
    유리 덮개를 호야 라고 하였는데 정확 하지는 않습니다.
    가끔 호야를 딲다가 깨먹고 혼이 난 적이 몇번 있습니다.
    바쁜 탓에 며칠만에 덧글을 쓰다보니 오늘도 두서 없이 횡설수설을 하고 있습니다.

    • Favicon of http://duga.tistory.com BlogIcon 두가 2011.08.17 13:46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형님 많이 바쁘셨던가 봅니다.
      그렇지 않아도 2차 휴가를 동남아로 떠나셨나 하고
      궁금해 하고 있었습니다.
      여름 더위에 아무리 바쁘시더라도
      맛난 것 많이 드시고 건강 유의 하시길 바랍니다.
      지난 시절로 만약에 되 돌아 갈 수만 있다면..
      하는 생각을 간간 하게 되는데
      위와 같은 시절로 다시한번 되돌아 갈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생각하여 봅니다.
      전 제가 너댓살때 호롱불 빛에서 아버지가
      가갸거겨를 가르쳐 주시던 그때로 한번 돌아가 보고 싶습니다.
      저희 시골에서는 저런 남폿불을 통채로 호야라고 했는데
      형님 말씀 듣고 보니 바깥 유리창만 이야기하는 걸 그렇게 불렀나 봅니다..^^

  6. 2011.08.17 12:54 신고 곶감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와~~몇십년전으로 되돌아간 느낌입니다. 그때 저랬습니다. ㅎ 그당시 저희 집에도 티브와 전화가 있어서 저녁때면 동네 사람들 다 모여 여로를 봤던 기억이 절로 납니다. 그리고 전화오면 누구 집에 전화 심부럼 하러 쫓아 다니던 기억도...ㅋ

    • Favicon of http://duga.tistory.com BlogIcon 두가 2011.08.17 13:47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와.. 곶감님
      그 시절 댁에 TV와 전화기가 있었다면
      대단하였습니다.
      보통시골에서는 한동네 한 두집 정도가 그런 사치를 하고 있었고
      전화가 오면 기달려라 하고
      부리나케 뛰어가서 연략을 하곤 하였던것 같습니다.
      그리운 시절 입니다..^^

  7. 2011.08.17 22:21 신고 에디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허허~ 이거 또 옛날 생각에 막걸리 마시게 생겼습니다.
    금성사 테레비, UN 팔각성냥, 후지카 곤로, 기계충 바리깡, 산요 포타블전축, 서울사이다, SC콜라, 싱가 미싱, 이명래 고약, 뇌신.......ㅎㅎ

    요번에 칭구들과 휴가 가서 옛날 얘기 할때 등장한게 하나 있는데 그게 뭐냐면 바로 '삼립 크림빵'입니다. 요즘 마트에서도 덕용포장으로 팔고 있는것 같은데 맛을보니 전혀 아니올시다! 입니다. 지금도 생각나는게 아버지께서 늦게 퇴근 하시면 꼭 삼립크림빵을 하나 사오시는데 저희 삼남매 주려고 사오신게 아니고 강쥐(이름은 빅꾸)주려 사오시곤 했습니다. 그땐 크림이 아니.. 빠다가 얼마나 많은지 빵을 누르면 가장자리로 삐져나온 빠다를 서로 먹으려고....에휴! 그때가 그립습니다.

    • Favicon of http://duga.tistory.com BlogIcon 두가 2011.08.18 13:48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크림빵은 에디님 말씀대로 요즘 마트에서 파는 건
      맛이 이전의 맛이 아니고 뭔가 2%정도가 부족합니다.
      저는 오래 전 삼양라면 처음 나올때 그 맛을 잊지 못하고 있습니다.
      지금도 마트같은데서 간혹 그때 맛이라며
      나오는 삼양라면이 있는데 맛이 전혀 아닙니다.
      방학 맞아 시골가서 엄마가 끓여 주시던 그 삼양라면의 맛이
      아직도 입안에 그대로 남아 있는데
      세월은 이만큼 지나 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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