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동에서 보낸 19번 국도여행 두번째 이야기입니다.
요즘 여행기가 조금 게을러져서 소소하게 와 닿는 봄 날 이야기들은 자꾸 빠져 나가고 허튼 겉소리만 남아지고 있습니다. 여행에서 느껴지는 순간 순간의 느낌은 가슴 속으로 깊게 와 닿곤 하지만 다시 또 현실의 일상으로 돌아와 버리니 그것들을 단어로 맞춰 내기가 벅찹니다. 사진속에서나마 제가 느끼는 봄 날 이야기가 어딘가 이곳저곳 숨어 있다가 생각하시어 천천히 찾아 내시면서 내려 보시길 바래 드립니다.
둘째날은,
의신마을 팬션에서 다시 계곡을 따라 내려와 쌍계사와 불일폭포를 들린 다음 십리벚꽃길로 화개장터까지 내려와 구례와 88고속도로를 경유하여 되돌아 왔습니다. 전날 비가 내려 아침에 안개가 끼어있고 보슬비가 부슬부슬 내리는 날씨였는데 점심무렵부터는 개였습니다. 어제와 마찬가지로 십리벚꽃길에는 온통 차로 밀려있었는데 그 바람에 오히려 천천히 이동을 하여 벚꽃 구경을 다시금 하게 되었습니다.
우리나라의 시즌여행은..
온통 사람들로 차들로 붐비는 것이 당연으로 변한지 오랜것 같습니다.
한 박자 한 타이밍 일찍 움직이고 일찍 빠져 나오는 것이 꽃철여행이나 단풍여행, 기타 시즌여행을 제대로 즐기는 가장 현명한 방법이라는 것을 강조하고 싶습니다.
의신마을 팬션에서 내려 오는 길에는 보슬비가 살푼 내리고 있습니다.
냇물은 어제 비로 인하여 조금 불어져 있습니다.
봄쫓과 연두가 참으로 잘 조화가 되어지는 자연풍경입니다.
쌍계사 들어가는 입구입니다.
9시쯤의 시간인데 벌써 사람들로 붐빕니다. 다리 건너 보이는 벚꽃터널이 하동10리벚꽃길입니다.
쌍계사
쌍계사 10층석탑인데 만든지 그리 오래되지 않았습니다.
오대산 월정사 탑과 비슷하게 만든것 같습니다.
신라말의 명승 진감선사탑비로서 국보로 지정되어 있습니다.
비석이 파손되어 있는 것을 철테로 감싸두고서 국보로 지정이 되어진걸 보니 참으로 대단한 것이라 생각이 되어 집니다.
설명글을 인용하여 봅니다.
통일신라 후기의 유명한 승려인 진감선사의 탑비이다.
진감선사(774∼850)는 불교 음악인 범패를 도입하여 널리 대중화시킨 인물로, 애장왕 5년(804)에 당나라에 유학하여 승려가 되었으며, 흥덕왕 5년(830)에 귀국하여 높은 도덕과 법력으로 당시 왕들의 우러름을 받다가 77세의 나이로 쌍계사에서 입적하였다.
비는 몸돌에 손상을 입긴 하였으나, 아래로는 거북받침돌을, 위로는 머릿돌을 고루 갖추고 있는 모습이다. 통일신라 후기의 탑비양식에 따라 거북받침돌은 머리가 용머리로 꾸며져 있으며, 등에는 6각의 무늬가 가득 채워져 있다. 등 중앙에는 비몸돌을 끼우도록 만든 비좌(碑座)가 큼지막하게 자리하고 있는데, 옆의 4면마다 구름무늬가 새겨져 있다.
직사각형의 몸돌은 여러 군데가 갈라져 있는 등 많이 손상된 상태이다. 머릿돌에는 구슬을 두고 다투는 용의 모습이 힘차게 표현되어 있고, 앞면 중앙에는 ‘해동고진감선사비’라는 비의 명칭이 새겨져 있다. 꼭대기에는 솟은 연꽃무늬위로 구슬모양의 머리장식이 놓여 있다. 진성여왕 원년(887)에 세워진 것으로, 진감선사가 도를 닦던 옥천사를 ‘쌍계사’로 이름을 고친 후에 이 비를 세웠다 한다. 당시의 대표적인 문인이었던 최치원이 비문을 짓고 글씨를 쓴 것으로 유명한데, 특히 붓의 자연스런 흐름을 살려 생동감 있게 표현한 글씨는 최치원의 명성을 다시금 되새기게 할 만큼 뛰어나다.
비문의 일부
대웅전의 부처님
보슬비가 내리는 가운데 홍매가 붉은 빛을 더하고 있습니다.
금당앞의 대웅전 안의 부처님과 탱화
부처님 뒤의 탱화가 보물로 지정된 쌍계사팔상전영산회상도인줄 알았는데 아니네요.
위 사진은클릭하면 크게 보여 집니다.
금당
금당에 대한 설명을 인용하여 놓습니다.
쌍계사 금당은 혜능조사의 두개골을 모신 특이한 전각인데, 바깥에 있어야 할 탑을 전각 안에 모신 것도 특이하다. 육조정상탑六祖頂相塔이 그것인데, 혜능을 흠모한 신라 스님 삼법三法의 이야기가 어려 있다.
혜능을 친견하는 것이 꿈이었던 스님은 입적 소식을 듣고 통탄한다. 문제는 혜능의 슬픔이 다분히 엽기적인 데 있었다. 혜능의 유골, 그 가운데 두개골을 다른 사람에게 뺏길지도 모른다고 생각에 더 슬퍼했던 것이다. 어떤 이유로든 혜능의 두개골은 신라로 가져와야 했다. 삼법이 그렇게 생각한 이유는 ‘육조단경’을 읽다가 ‘내가 입적하고 5,6년 후 동토에서 내 머리를 베어 가는 자가 있을 것’이라는 대목을 보았기 때문이었다. 삼법은 그 길로 당대의 권력자 김유신의 부인에게 달려가 당나라 체류비 2만 금을 얻어낸다.
삼법이 배를 타고 당나라로 들어간 것은 722년, 우리 불교역사에 최고의 기행이 벌어졌다. 마침내 소주 보림사 육조탑에서 혜능의 두개골을 탈취하는 데 성공했다. 믿거나 말거나지만 돌함에 봉안된 혜능의 두개골은 눈 내리는 지리산 계곡, 칡꽃이 핀 자리에 묻힌다. 삼법은 그 자리에 화개난야花開蘭若라는 암자를 지어 수행한다. 쌍계사의 중창자 진감국사 혜소는 삼법이 죽고 화개난야가 화재로 소실된 자리에 육조영당을 세우고, 육조영당은 금당으로 이름이 바뀐다.
쌍계사에서 불일폭포를 향해 오릅니다.
불일폭포는 쌍계사에서 2.4km 산 속에 있습니다.
약 1시간 정도 산길을 올라야 하는데 살풋 등산이라고 생각하면 될 것 같습니다.
불일폭포 오르는 길
불일폭포에 도착
정말 대단합니다.
동영상으로 감상
실제로 보면 엄청난 장관입니다.
불일폭포를 보고 돌아 나오면서폭포 가까이 있는 불일암의 멋진 의자에서 잠시 폼을 잡아 봤습니다.
돌아 내려 오면서 찍은 사진들입니다.
다시 쌍계사에 도착
하동10리 벚꽃길입니다.
쌍계사와 불일폭포를구경하고 내려오니 12시 경.
벌써부터 쌍계사에서 화계장터까지 차가 꽉 밀립니다.
덕분에 천천히 내려 가면서 차창 밖으로 10리벚꽃길을 제대로 감상 합니다.
어제 내린비로 꽃비가 같이 내려 더 운치가 있습니다.
아래는 차가 밀려 천천히 내려가면서 차창을 통해 바라 보이는 장면들을 촬영한 것입니다.
화계장터에서 구례를 통하여 대구로 되돌아 오는 길..
19번 국도의 남진방향. 구례에서 화계장터까지 차들이 밀려 있습니다. 오후 1시정도 되었는데 벌써 이 정도이니 이들은 언제 꽃 구경 하고 되돌아 갈지 난감합니다.
돌아 오면서 토지면에 있는 곡전재에 잠시 들렸습니다.
마당을 가로질러 흐르는 작은 물길이 이채롭습니다.
피었다가 금방 지는 벚꽃..
하동의 19번 국도여행에서 만난 꽃길은 참으로 멋지고 아름다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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