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가야국이란 나라에 대하여 얼마나 알고 있을까?

 

대강 알고있는 얕은 지식은 백제와 신라 사이에 낑긴 나라이고 그리 부각이 되지 않는 역사를 가지고 있고 연표와 연대가 불확실하고 뜬금없이 일본이 지네들 역사라고 가끔씩 우기는 나라... 역사시간에도 기억에 남을 정도로 공부한 것 같지가 않는 그런 정도였습니다.

조금 더 생각해 보니.. 김해에는 금관가야가 있고 고령 대가야가 있다는 정도..

 

그런 가야가 갑자기 제 머리속의 화두로 떠 오른 것은 어느책에서 읽은 임나일본부에 관한 내용입니다.

임나(任那)라는 것이 가야를 의미하고 일본 넘들이 이곳을 점령하여 일본부를 설치하였다는 내용인데 이건 가지고 이넘들이 우리나라를 35년간이나 식만통치한 걸 합리화시키는 방편으로 삼았는데 이게 참으로 안타까운게 이걸 극적으로 반박할 자료가 그리 많지 않다는 것입니다. 암튼 가야라는 나라의 역사는 우리의 옛 자료들 보다는 일본의 역서인 일본서기(日本書紀)에 도움을 많이 받는것 같습니다.



역사적인 논리로 가야를 파고들면 제 얕은 지식이 한계에 다달아 어렴풋이 알고 있는 가야에 대한 지식도 엉터리가 될 것 같이 이쯤 마무하고..


지난번 왕산 산행을 하면서(http://duga.tistory.com/2440) 산 초입에 있는 구형왕릉을 보고 이런저런 궁금한 것이 많이 생겼더랬습니다.

김해의 금관가야의 마지막 왕 구형왕릉이 왜 이곳 산청에 묻혀 있을까? 

자기 땅은 김해인데?


구형왕은 김해를 중심으로 한 금관가야의 마지막 왕이고 신라와의 싸움에 져서 신라에 흠수되었습니다.

물론 그 뒤 신라에서는 흡수한 가야의 왕실을 따스하게 보살폈는데 이에 구형왕의 아들 김무력이 여러 전선에서 맹 활약을 하였으며 김무력의 손자 김유신(구형왕의 증손자)이 신라의 명장이 되고 그의 여동생이 김춘추와 결혼하여 문무왕을 낳았으니 어찌보면 구형왕은 신라에 그 씨를 뿌린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다만 구형왕이 신라에 망하고 난 뒤의 행적이 전혀 기록되어 있지 않으니 이곳 산청에 있는 구형왕릉이 전(傳)구형왕릉이라고 하여 역사의 기록을 세세히 되살펴 봐야 할 것입니다.

암튼 역사에는 가야가 6개의 나라(지금은 7개의 나라로 제 정립되고 있음)로 나눠져 통치되고 있었고 전체 세력은 경상도 뿐만 아니고 지금의 충청도와 전라도를 아울러 넓게 퍼져 있었다고 하니 대단히 큰 세력 집단이 아닐 수 없습니다.


가야에서 가장 큰 맹주가 지금의 고령에 거점을 둔 대가야인데 김해에 거점을 둔 금관가야와 함께 가장 큰 세력을 가진 나라였던 것 같습니다. 고령 대가야는 서기 562년에 멸망하였다고 하는데 그 전 520년 정도 존속한 나라였다고 하니 조선의 500년 역사가 찬란하게 조명 되는데 비해 사료가 거의 전무하니 참으로 안타깝습니다.


대구에서 가까운 고령은 대갸야의 도읍지로서 한때 500년 역사의 중심이었는데 고령읍이란 명칭을 대갸야읍으로 바꾼 곳입니다.

이곳 대가야읍 주산자락 지산동에 가면 정말 놀라울 정도로 커다란 고분들이 많은데 전체 총 704기가 확인이 되었다고 하니 그 숫자가 엄청납니다.


저도 이곳에 올라가서야 고분이 정말 많다는 걸 보았는데 이런 엄청난 고분이 산 자락에 자리하고 있다는게 놀랍고 신기했습니다.

대개의 고분들은 이미 도굴에 의하여 거의 훼손이 되었는데도 그 뒤 새롭게 발굴조사를 하면서 엄청난 문화재가 발견되었습니다. 이때 발굴 된 것들은 고분군 아래 있는 박물관에 온전히 전시되고 있습니다.


이번 정부에서 가야사에 대한 복원을 추진하고 있는데 온전한 가야의 역사가 되살아나길 기대하여 봅니다.




가야사 복원은 사실에 기초해야 된다는 생각을 해 봤습니다.

일본의 역사책인 일본서기나 우리나라의 고대 삼국유사 같은 것에 너무 집착하지 말고 대가야의 진실을 찾는 노력이 있었으면 합니다.



고령에 있는 대가야 박물관입니다.

입장료가 2000원이 있는데 그냥 대충 둘러 볼 것 같으면 들어갈 필요 없고 조금 찬찬히 시간을 내여 둘러 볼 곳입니다.



박물관 내부

재법 넓습니다.

전시물도 많구요.


위에 보이는 석탑은 몇 층 석탑일까요?


절에 가면 이런 옛 석탑들이 많은데 석탑의 층수는 어떻게 결정 할까요?

가장 흔한 힌트는 처마가 위로 올라간 것만 층수로 세면 되는데 위의 탑은 12층 석탑입니다.

아래는 기단이고 상부는 장식부분입니다.

대개 탑의 홀수로 되어 있는데 위 사진은 아마도 소실된것이 있을것으로 추정됩니다. 







대개 이런 박물관에 가면 입구에 사진 촬영금지라고 되어 있는데 이곳 고령대가야박물관도 어김없이 그런 표시가 있어 담당자를 불러 따졌습니다.


아주 전근대적인 사고방식.

외국에서는 유명 박물관에도 이미 사진촬영을 거의 허락하고 있는데 이런 구태가...

조목조목 설명을 하고 나서 박물관을 다 둘러보고 나오면서 보니..

그 입간판이 치워지고 없더군요.




고분에서 나온 진짜배기 금입니다.

18K인지 24K인지는 모르지만 ...

1500년 역사 전에 만들어진 금 귀걸이입니다.

옛날에는 귀에 구멍을 뚫지않고 귀 둘레로 걸어서 사용했다 합니다.



정말 정교하고 아름답습니다.

그 시절 어떤 기술로 이렇게 만들었을까요?



진짜입니다.

무려 1500년 전.. 

어느 공주가..

어느 왕비가..

어느 후궁이..

하고 있었던 그 패물입니다.



박물관에는 거의 진품 유물이 전시되고 있는데 간혹 이렇게 복원품이나 모조품이 전시된 것도 있습니다.

어떻게 구분하냐구요?

적어 놨습니다.

조그맣게..



박물관 구경을 마치고 바로 뒤에 있는 고분군으로 올라 가 봤습니다.

요새말로 깜놀입니다.

업창나게 많습니다.

확인된 고분이 700개가 넘는다고 하니 정말 놀랍습니다.










유물발굴과 함께 통신선매립공사를 하고 있어 뷰가 조금 어중간했습니다.









가장 유명한 44호 고분입니다.

많은 유물이 나온 곳이구요,

순장이란 말을 많이 들어 봤지만 그 구체적인 뜻을 몰랐는데 이번에 확실히 알았습니다.

왕이 죽으면 그를 따라 많은 사람들이 같이 묻혔는데 이를 순장이라 합니다.

이곳 무덤에서는 몇십명의 순장자가 나왔는데 그들은 대략 왕의 저승길에서 뒷바라지를 해 줄 사람들..

시중이나 음식, 이발, 의료,침구..등등..

이들 담당자들이 같이 묻혔는데 이들은 산채로 묻힌것이 아니고 살아있는 이들을 살해하여 같이 묻었다고 합니다.

어떻게 아냐구요?

순장된 사람들 대개가 두개골 뒷부분 함몰된 상처들이 있다고 하네요.




지산동 고분에서 내려다 본 고령.. 대가야읍입니다.






대가야읍에서 올려 다 본 고분군..


이곳 고령에는 놀다가 배가 고프면 갈치정식집을 찾으면 됩니다.

알려진 집이 두어곳 있는데 검색하면 금방..

푸짐한 수입갈치(?)조림과 갈치찌개 그리고 인심좋게 한가득 공기밥이 제법 먹을만 하답니다.^^







댓글을 달아 주세요

  1. 2018.01.25 09:06 신고 Favicon of https://duga.tistory.com BlogIcon 쏭하아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댓글을 올리기 전에 망설여집니다.
    댓글을 다는 순간 제 역사지식이 전무 하다는 걸 드러나기 때문에 ^^
    고리칼 위에 "모조" 라고 희미하게 써있네요 ~^^
    나름 오랜 전 의료기기 영업시절 전국을 안 다닌 곳이 없을 정도라고 자부(?)를 했는데..
    오늘 두가님 글을 읽다가 보니 건성건성 다녔다는 생각이 듭니다.
    이 글을 올리기 전에 오류를 줄이시기 위해서 많은 자료도 찾아 보시고, 공부를 하신 티가 팍 팍 납니다..ㅎ
    그 덕분에 저도 오늘 가야에 대한 공부를 해 봅니다.
    금 귀고리를 한 동안 자세히 바라보니 정교하고 아름답기도 하지만,
    제 수준으로는 표현하기는 어렵지만 ...독창성 이랄까.. ?
    여하튼 미적감각이 매우 뛰어난 장인솜씨가 분명하다는 나름 결론을 내려 봅니다..ㅎ
    산행기에 이어 여행기에 더불어서 역사공부까지..
    지구별에 다양한 장르를 펼쳐주심에 감탄과 그 수고에 박수를 보내드립니다 ~~(^.^)

    • Favicon of https://duga.tistory.com BlogIcon 두가 2018.01.25 12:55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가야국이 하나가 아니고 여러개의 나라가 연합형태로 되어 있었고 그 중 대가야와 금관가야에 관한 내용이 많이 알려져 있었습니다.
      가야에 관심을 가지고 이곳에 가서 전문해설사와 한참을 묻고 이야기를 나누다보니 정말 가야라는 나라가 신비하다는 생각을 많이 하게 되었구요.
      말씀대로 가야사는 내려오는 정확한 자료가 없어 각 지자체별로 주관적인 해석을 하여 소개하는 경우가 많은데 그걸 걸러서 들어야 할 것 같습니다.
      이곳 박물관은다른 곳과는 달리 실제 고분에서 나온 유물들을 그대로 전시한것이 많아 1500년의 역사를 거슬러는 좋은 공부가 되었답니다..^^

  2. 2018.01.25 09:46 신고 하마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학창시절 백제문화와 더불어 찬란한 문화유산을 꽃피웠던곳이 가야국이라 들었던것같습니다.
    역사 바로잡기가 실시되고 있다고는 하나 일본과 중국의 역사가들의 놀음에 지금껏 휘둘리는게 아닌가 싶구요.
    우리나라 선조들의 손재주가 뛰어나 모든 세공품들이 엄청난 정교함을 자랑하고 있죠. 일부 기술들은 현재도
    재현하지 못한다고 하니 놀라울따름입니다.
    아직도 박물관이나 유적지에 가면 촬영금지라고 푯말을 볼수있습니다. 저도 이해가 되질않습니다. 카메라 후레쉬가
    문화재에 어떤영향을 끼치는지... 아니면 사진자체로 문화재의 가치가 훼손되는지... 나라유물의 보안사항인지..ㅋㅋ
    이건 잘못되었다고 저도 생각하구요. 오픈하여 사진을 찍든 포스팅을하든 얼마든지 만방에 알려야 되지 않나 싶습니다.
    덕분에 가야공부 잘했습니다. 날씨가 매우 춥습니다. 건강유의하시고 따뜻한 점심드세요.~~~;)

    • Favicon of https://duga.tistory.com BlogIcon 두가 2018.01.25 13:00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이곳을 다녀와서 가야국과 일본과의 관계에 대하여 나름대로 많이 공부를 하여 봤는데 머리속에 한없이 뭔가가 들어오기는 하는데 그걸 정리를 못하여 간략하게 정리하고 말았습니다.
      참으로 여러가지로 우리가 고대 역사에 대하여 오해를 많이 하고 있다는게 많다는 사실을 느꼈네요.
      산 능선에 700개가 넘는 고분이 자리하가 있다는게 정말 놀라웠습니다.
      아울러 전혀 관심밖이었던 대가야에 대하여 한발짝 다가선듯한 느낌이었구요.
      너무 아쉬운것은 가야사의 기록이 거의 없다는 것이구요.
      이게 어디선가 남아있을것 같은데 새로운 우리의 고대사가 탄생하기를 바래 봅니다..^^

  3. 2018.01.25 11:59 신고 창파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이시간이 지나면 홀랑 까먹을 지식이지만...
    어쨌든 꽤나 유식해지는 기분입니다.
    구형왕이 김무력을 낳고 아무거시가 문무왕을 낳고.....ㅎ
    임나일본부 이야기도 요즘에 들어서야 조금 관심있게 듣는 편이고
    예전에야 어디 귀담어 듣던 이야기가 아니니 관심박에 이야기였던 것 같습니다.
    이제 저도 조금씩 나이들어 감에 사물이나 근대사 이야기도 예전과 달리 관심을 갖게 되는 것 같습니다.
    예전에는 책을 한권보아도 대강줄거리만 훑어가며 훌딱 읽어 버렸는데
    이제는 상황묘사라든가 모르는 단어가 나오면 사전과 옥편을 찾어보면서 천천히 읽는 버릇이 생겼습니다.
    박물관에서 사진 촬영금지 이야기에 저도 공감이 가는 대목입니다.
    예전 생각으로 웬만한 촬영은 금지라고 할줄 알었는데 국립중앙박물관을 가니 촬영이 가능하다고.....
    이제는 군에 대한 시설도 많이 개방된것을 느낄수 있는 세상인데 말입니다.
    예전에는 무슨부대 개방행사를 가면 어느곳은 찍지마라..
    어떤 비행기나 군함은 찍지마라 하였는데
    이제는 아주 특수한 분야를 빼고는 촬영을 허락하더군요....
    고령이면 저에게는 아주 쉽게 가볼만한 거리인 것 같습니다.
    언제 날자를 잡아서 저도 대가야 박물관 구경을 해야 되겠습니다..........^^

    • Favicon of https://duga.tistory.com BlogIcon 두가 2018.01.25 13:06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위에 하마님께서도 지적을 하였는데 아주 오래전에는 카메라 후랫쉬에서 뭔 물질이 나온다하면서 전시품이 손상이 되니 어쩌니 하다가 요즘은 주위사람들한테 민폐가 된다며 사진을 못찍게 하는데 참으로 전 근대적인 사고가 아닐수 없습니다.
      오래전 아들 근무하던 최전방에 가서 바로 눈앞에 보이는 북녁땅을 사진으로 못찍게 하여 그냥 돌아 왔는데 그 뒤 보니 인터넷에 그곳에서 찍은사진들이 많이 돌아 다니더군요.
      요즘은 사진기 아니더라도 폰으로도 얼마든지 멋진 사진 찍을 수 있으니 어디에도촬영금지라고 적어 둔 것은 유명무실한 이야기가된 듯 합니다.
      이곳 고령박물관도 아마 저와 이야기 나눈 뒤로 그 간판을 치웠으니 앞으로는 사진촬영금지라는 표시는 안 할듯 합니다.
      역사라는 것을 조금 알고 그 역사에 현장에가서 확인을 해 보면 정말 여러가지로 많은 것을 느끼게 되는데 이번 고령 대가야 유물을 보면서 그런 느낌을 받았습니다.
      근데 아직도 궁금한 것은 김해의 금관가야 마지막 왕 구형왕이 왜 대가야땅인 산청 왕산자락에 가서 묻혀 있을까 하는 것입니다.ㅎ

  4. 2018.01.26 04:34 신고 에디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저도 가야에 대해선 핵교 댕길 때 책에서 발굴품 몇개 본 게 다이고 김유신 관련 얘기 정도? 뿐인데
    저야 그렇다 치고 요즘 학생들은 국사나 역사쪽 비중이 점 점 축소 되어 간다는데 그 전에 재정리 좀 해야겄습니다.
    저도 예외는 아니지만 일본이나 중국같은 주변국가의 역사는 좀 아는 척 하믄서 정작 울 고대 역사에 대해선 무식하니...ㅜㅜ
    또 그나마 알고 있던 지식도 아주 어릴 적 역사책이나 주위에서 주워 들은 게 전부이니 부끄럽습니다.
    요즘엔 그나마 영상을 통 해 편하게 보고 듣고는 있지만 어떤 대목에선 감독이나 연출자의 성향에 의해 오도되는 것도 있고...
    암튼 학자분들께서 욕 좀 보셔야 아니 애 좀 쓰셔야 될 것 같습니다.
    울 나라 여기저기에서 <촬영금지>라고 써 붙인 것들은 아마 첨에는 딴 나라가 하니께 따라 했을텐데.....
    보안장치나 시설이 노출될깨비 그런 경우도 있고 또 전엔 카메라 후래쉬가 번쩍! 번쩍! 허니께 여러가지 문제가 생겼을지도 모르나
    한편으론 이 것까정 해제시키믄 관리 감독하시는 분들 또 일자리 걱정도 되고.....ㅎ
    전에 일본 큐슈지방에 천수각을 돌아 가며 구경하는 프로그램에 쫒아 간 적이 있었는데
    거기에도 당연히 사진 찍지말라는 경고가 붙어 있었으나 관리하는 분(죄 다 여성이었음)께 사진 좀 찍자니께
    자기 보는데선 얼마던지 찍으라 하여 아주 편히 찍고 온 적이 있는데 이런거이 바로 조그만 것 같지만 아주 큰 차이의 배려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 Favicon of https://duga.tistory.com BlogIcon 두가 2018.01.27 09:03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가야문화와 역사가 기록으로 남아 있는게 없어 각 지자체가 나름대로 자의적인 해석으로 역사를 읽고 있다는 생각을 많이 합니다.
      고령가면 대가야가 최고이고 김해가면 금관가야가 최고...
      암튼 요즘 초등학교에서는 고대의 역사를 삼국이 아닌 사국시대로 배우고있다고는 하는데 이곳 가야의 역사는 정말 학자들이 조금 더 연구하고 발굴하여 통일되게 정립이 되었으면 합니다.
      에데형님 말씀대로 역사의 비중이 줄어드는데 따른 아쉬움에 저도 동감합니다.
      역사도 그렇고 교양이나 인성교육을 어릴때부터 조금 더 집중시켰으면 하는 바램이 늘 있습니다.
      아이들이 나쁜짓을 하고도 나쁜짓인지조차도 의식을 못하고 있는 경우가 있는것 같구요.
      사진촬영을 불가하게 만든 전근대적인 사고와 같은 것들은 우리주위에 아주 많이 존재하는데 하나하나 모두 업성져야 할 것 같습니다..^^


  5. 2018.01.30 21:02 신고 마천루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고령의 대가야는 6가야의 맹주였고 제철산업이 발달해서 국제무역을 했다 합니다
    지금으로치면 반도체처럼 최첨단 산업이라 하겠습니다 합천야로에가면 제철유적이있습니다
    대가야토기는 두드리면 쇠소리가 날정도로 강한면을 보이고 있는데........
    대야성(합천)의 길목이고 백제편을 들다가 신라에 의해 멸망했습니다

    • Favicon of https://duga.tistory.com BlogIcon 두가 2018.01.31 13:17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대가야와 금관가야가 가장 뚜렷히 가야시대를이끌었는데 철기문화는 아무래도 금관가야가 더 융성했던것 같습니다.
      지금의 김해지방인데 김해라는 도시의 한문도 쇠금자가 들어가는 것과 무관하지 않은듯 합니다.
      철기문화의 발달로 각종무기류를 만들러 신라와 왜인들을 꼼짝 못하게 했다고 합니다.
      더 복잡하게 파고들면 임나일본부의 설명까지도 가능하구요.
      이와 대비하여 대가야는 지금의 고령지방을 중심으로 퍼져있었는데 토기나 금세공, 악기등 예술성있는 문화가 많이 발달하지 않았나 생각됩니다.
      금관가야가 신라에 투항했다면 대가야는 신라에 끝까지 싸워 패전하였구요.
      저도 가야에 대하여 요즘 관심을 많이 가지고 있는데 좋은 말씀 해주셔서 고맙습니다..^^

  6. 2018.01.31 22:36 신고 마천루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저는 인터넷을 하면서 옛두가님의 홈페이지자료를보고 오랬동안 인터넷의 순기능과 많은 즐거움 느꼈는데 어느날 두가님이 홈페이지를 닫았을때 많은 아쉬움을 느꼈습니다 그뒤에 어느날 지구별에서....를 다시 만났을때 얼마나 기뻤는지.....
    저는 서양화가 이봉수이고 대구에 살고있고 고령이 고향입니다 어렸을때 어른들이 밭을 개간하다가 토기같은것이 나오면 재수없다고 깨어버리는 것을 많이 보았습니다 그리고 도굴꾼들이 많은 문화재를 도굴하여 유출하였고 호암미술관의 가야금관도 고령에서 출토되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시장근처의 당간지주를보면 규모가 꾀큰 사찰이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대가야는 경주처럼 들이 넓지않고 협소함으로 더큰 나라로 되지않았다고 개인적으로 생각합니다

    • Favicon of https://duga.tistory.com BlogIcon 두가 2018.02.01 12:43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이봉수화백님 정말 반갑습니다.
      저도 대구에 거주하고 있고 윗글에 언급하신 합천이 고향입니다.
      지지리도 벽촌산골이었는데 지금은 힐링시대라 상전벽해가 된 곳이기도 하구요.
      결혼하고 승용차가 없을때 시골에 내려 갈려면 서부정류장에서 버스를 타고 고령터미널을 거치게 되는데 그때 자잘한 것들을 함지에 담아 이고 차창가로 다니면 장사하던 아주머니들의 시선이 아직도 떠 오릅니다.
      대가야의 도읍지 고령의 지산동 고분에 올라가보고 많이 놀랐습니다.
      밑에서 올려다 볼때는 그렇게 많은 줄 몰랐는데 700개가 넘는 고분이 자리하고 있다는게..
      말씀하신 가야금관은 정말 귀중한 유물입니다.
      전세계적으로 고대 금관이 발견된것이 10개 정도라 하는데 그 중 우리나라것이 7개라합니다.
      그 중 가야의 금관이 있구요.
      혹시 이화백님의 작품을 제대로감상 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진다면 한달음에 달려 가겠습니다..
      이곳 블로그에서도 얼마든지 소개해 드리구요..^^

  7. 2018.02.01 17:23 신고 마천루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제글에 답글주셔서 감사드립니다
    개인적으로 4월3일부터 4월8일까지대구문화예술회관에서 13회 개인전을 개최할 예정인데 두가님을 초대할 기회를 주시면
    저에겐 영광입니다
    개인전개최전에 정리되는대로 제가 자료를 보내서 블로그에 올려주시면 더욱 고맙겠 습니다
    이 봉 수 李 鳳 洙
    1953 경북 고령읍 출생/대구예술대학교 서양화과 졸업
    개인전 12회 (1993-2018 서울. 대구. 포항)/대한민국미술대전 심사위원/
    대한민국미술대전 운영위원 /대한민국미술대전 초대작가
    수상경력
    대구광역시 달서구 구정유공표창장 수상/사단법인 한국전업미술가협회 공로상 수상
    대한민국미술대전 입상 5회/ 신라미술대전 서양화부문 최고상./목우회 특선 2회
    대표전시경력
    한국전업미술가협회 창립기념전 (1999 서울시립미술관)
    대구-밀라노미술전 (2000. 2002 대구문화예술회관)
    우리시대 삶과 해학전 (2003 세종문화회관 미술관)
    대한민국회화제 (2001~2018 세종문화회관 미술관)
    동방의 빛깔전 (목우회-중국유화학회 합동전. 세종문화회관 전시실)
    남부지역 7개 시, 도, 미술단체교류전 (광주비엔나레전시관)
    EAST MEETS WEST A Dialogue (Courthouse Galleries(2003V.A USA)
    재현과 구현전 (대구문화예술회관)
    HumanitasⅣan Invitational Exhibition (George Mason University Gallery)
    한중미술교류전 (대구문화예술회관)
    2009 INVITATION OF EAST MEETS WEST (art6 Gallery)
    한국미술전 (2001-2013)
    KPAM대한민국미술제 (예술의전당 한가람미술관)
    한국미술협회 제24대임원초대전(한국미술관)
    현재
    한국미술협회 조형예술연구 이사/한국전업미술가협회 대구광역시 지회 고문
    한국전업미술가협회 대구광역시 지회장역임/대구미술대전. 신라미술대전. 경북미술대전 초대작가 41249 대구광역시 동구 동부로 28길 29, 1층 8호 (신천동 동구상가아파트)
    Mobile. 010-9501-9569

    • Favicon of https://duga.tistory.com BlogIcon 두가 2018.02.02 13:19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이봉수 화백님
      지난 전시회나 경력자료들 잘 읽어보았습니다.
      다음에 대구에서 열리는 개인전 기회되면 꼭 찾아 뵙겠습니다.
      그 전에 혹시 지난 전시회 작품이나 소장 파일이 있으시면 보내 주시면 성의껏 소개하면서 올려 드리겠습니다.

      제 메일은
      eogusrud@hanmail.net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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