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넋두리

여성시대 양희은씨의 목소리로 듣는 아들 결혼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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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달도 더 지난 이야기입니다.

 

아들 결혼하는데 뭐 기념으로 해 줄 게 없을까 하다가 제 맘을 적은 글을 라디오 아침방송인 여성시대(남성시대)에 보냈답니다.

결혼에 맞춰 방송을 해주면 녹음이라도 해서 들려줄까 하고..

결혼 앞두고 제 나름 몇 가지 이벤트를 만들었는데 대개 다 완성이 되었지만 방송국에 보낸 사연만은 연락이 없어 까마득하게 잊어버리고 있었는데 그저께 문자가 왔네요.

선물 수령 어쩌구.. 하면서..

 

이걸 제가 인터넷으로 10월 2일 접수를 시켰는데 그 뒷날 바로 방송을 해 버린 것입니다.

아이 결혼이 10월 19일라 채택이 된다면 아마 그때쯤 방송하겠지, 그리고 방송한다면 연락이라도 오겠지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네요. 

그것도 모르고 생각 없이 지내다가 뜻밖에 방송이 되었다는 내용과 선물 보내 준다는 소식을 들으니 기분 무지 좋습니다.

 

아이에 대한 아비의 생각이랄까, 그냥 제 마음을 담은 글이라 이곳에 소개해도 그리 부끄럽지는 않을 것 같습니다.

제가 적어 둔 원고에서 두어 단락 빠지고 방송이 되었는데 보낸 원고와 함께 제가 존경하는 양희은 씨의 목소리로 들려지는 방송 내용을 같이 해 봅니다.

 

 

 

 

 

 

아래는 제가 보낸 내용이구요.^^

 

 

안녕하세요?

저는 탈도 많고 말도 많은 58년생 개띠 아버지입니다.

결혼을 앞둔 자식 앞에 그동안 아들과 같이 지내면서 늘 부족하고 못난 아비였는데 막상 목전에 닥친 결혼식 날짜를 헤아려 보니 더욱 미안하고 초조해져 뭔가 해 줄 게 없을까 고민하다가 이렇게나마 아버지의 마음을 열어 봅니다.

 

1985년 12월 24일.

크리스마스를 앞둔 이브 날이라 길거리에는 캐롤이 넘치고 거리는 활기로 가득했답니다.

분만 예정일을 벌써 일주일이나 넘기고 있는 아내는 아침에 진통끼가 약간 있다 하여 저도 회사를 나와 택시를 타고 병원으로 달려 입원을 하였습니다.

첫애를 개인병원에서 낳으면서 그때 경험으로 이불 보따리를 잔뜩 가져갔는데 이곳은 종합병원이라 그게 필요 없다며 집에 가져다 놓으라고 합니다.

 

택시를 타고 집에 되돌아와 이불을 던져놓고 다시 택시를 타러 나오는데 누군가 부릅니다.

 

"어이, 경계장!! (그때 제 직책) 어딜 가?"

 

돌아보니 길가 포장마차에 회사 부서 상관분들이 앉아 소주잔을 기울이고 있습니다.

회사 바로 앞에 집을 구해 있던 관계로 회사 동료나 윗분들하고 자주 드나드는 포장마차입니다.

그날 모두 연말 보너스가 나온 날이라 분위기가 상당히 업되어 있었구요.

 

"예, 집사람이 애 낳는다고 병원 입원해 있어 가는 중입니다."

 

"에이.. 일로 와. 애 그거 쉽게 안 나온다."

 

두어 번 사양하다가 포장마차로 들어갔습니다.

벌써 일주일이나 예정일이 늦어져 저도 애가 금방 나오지 않을 것이라 생각했구요.

그렇게 주거니 받거니 술타령하다가 새벽에 정신이 조금 들어 가 봐야지 하며 택시를 타고 병원에 도착하니 이미 애를 낳았네요.

문 앞에서는 간호사 두 분이 찬송가를 불러주고 있었습니다.

병원이 가톨릭 계열이었구요.

혼자 고생한 아내는 저를 보더니, 눈물을 주르르...

휴대폰도 없고 연락처도 없던 시절이었네요.

혼자 고생한 아내한테 너무 미안하고 애한테도 죄스러워 그날부터 담배를 끊은게 지금까지 이어져 오고 있습니다.

 

애를 낳기 전 철학관에서 집안 돌림자 붙여 이름을 하나 지어 두었는데 그걸 버리고 복(福) 자를 붙여 이름을 돌림자 규자에 '규복'이라 지었답니다.

좋은 날 복 받아 태어났다고..

 

그렇게 크리스마스 새벽에 태어난 아이가 벌써 35살.

튼튼하고 건실한 청년이 되어 이번 달 19일 결혼을 하게 되었습니다.

울산 모 회사에 근무하며 주로 해외 근무를 하는데 그동안 여친을 사귈 기회가 없어 간혹 집에 오면 빨리 결혼을 독촉하는데 그땐 늘 이야기합니다.

 

"자꾸 그러면 외국 여자애 델꼬 옵니데이."

 

"헐~~"

 

국내에 들어와 머무는 시기에는 주변 분들과 합작하여 선을 보라고 몇 번이나 떠밀어도 전혀 내키지 않더니 작년 어느 날,

뭔 맘이 있었는지 제 누나 지인분이 소개하는 미팅 자리에 덜렁 나가더니 저녁까지 들어오지를 않습니다.

밤에 들어 온 아들 앞에 아내와 저는 앉아서 아들의 입을 쳐다보며 마른침을 삼키는데...

 

"아(여자애), 괜찮데요."

 

툭 하니 이렇게 한마디만 던지고는 제 방에 들어 가 버립니다.

아내와 저는 속으로 쾌재를 불렀네요.

이제야 일이 조금 풀리나보다 하구요.

 

다음에 이야기를 들으니 만나 이야기하고 식사하고 서로 맘이 조금 있어 다음을 약속하고 집에까지 바래다주려니 여자 쪽에서 자꾸 우리 집 방향으로 차를 인도하더랍니다. 알고 보니 우리집 바로 앞 아파트..

사돈 되실 분과 지척입니다.

인연이란 게 그렇게 시작이 되었습니다.

그렇게나 선봐서 결혼하기 싫다던 아들이 어느 날부터 연인을 만들어 알콩달콩 데이트하고 다정하게 지내는 걸 보니 참 세상의 인연은 따로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답니다.

 

이렇게 둘이 사귀는 가운데 기이한 일이 또 일어났답니다.

저희가 아파트 수십 년 살면서 한 번도 있지 않았던 일인데 어느 날 비둘기가 실외기 밑에 날아와 알을 두 개 낳은 것입니다.

6월 중순인데 처음에는 여름 에어컨 가동을 앞두고 있어 아내는 쓸어 버리자고 하였습니다.

근데 차마 그럴 수 없더군요.

집안의 경사를 앞두고 이렇게 찾아와 알을 놓은 비둘기 가족을 그렇게 할 수 없었답니다.

 

기이한 일은 이게 아니었습니다.

정말 신기하게도 똑같은 일이 예비 사돈댁에도 일어난 것입니다.

그 집에서도 실외기 밑에 비둘기가 알을 낳았답니다.

그분들도 이런 걸 처음 겪는다고 하구요.

 

그렇게 두 집 다 한더위 7월이 되어도 에어컨을 켜지 못하고 지내다가 7월 말쯤 두 집 다 새끼비둘기들이 성체가 되어 날아갔답니다.

하루하루 창문을 조심스레 열고 비둘기들이 커 가는 모습을 쳐다보는 게 너무 신기했답니다.

비록 냄새도 나고 소리도 시끄러웠지만 아내와 저는 여름 한더위에 그 모습을 조심스럽게 지켜봤구요.

두 번째 새끼가 날갯짓을 하며 날아갔다가 창틀에 다시 돌아와 앉아 우리를 쳐다볼 때는 눈물이 왈칵 났답니다.

이렇게 양 사돈댁에서 같은 비둘기 가족을 키웠던 일이 우연인지 인연인지 정말 특별한 일이라고 서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우리 집 아들이 사귀는, 곧 며느리가 될 아이를 지금 우리는 이름을 부릅니다.

'수진아'.. 하구요.

앞으로 결혼하면 호칭을 어떻게 불러야 할지 모르겠습니다만 가끔은 딸처럼 이름을 불러 주고 싶습니다.

너무 착하고 얼굴도 예쁘지만 마음이 더 곱습니다.

 

우리 집 아들도 직장 생활을 착실히 하여 자력으로 결혼을 하고 집을 구할 능력을 만들어 두었답니다.

아마도 이런 점을 사돈댁에서도 크게 칭찬을 한 것 같습니다.

어릴 때 개구쟁이 짓도 많이 하고 가끔은 작은 일탈들을 하여 걱정을 하기도 하였지만 되돌아보니 모두가 아주 사소한 것들이었네요.

 

아들은 몇 달 전부터 우리 집에 뭘 자꾸 택배를 통하여 사들여 줍니다.

주로 고기나 과일, 우리가 쓸 생활용품 등이네요.

말을 하지 않아도 압니다.

결혼하면 이렇게 잘 챙기지 못할 수도 있다는 걸 이해 하라고 ..

 

알지요.

너무 잘 압니다.

요즘은 아들을 결혼시키면 남이 된다고 하는데 저희 부부도 현실적으로 그걸 받아들인답니다.

그런 것들 아무 필요 없습니다.

지들끼리 잘 살고 행복하면 되니까요.

 

비둘기가 알을 낳고 알이 새끼로 부화하여 커 간 그렇게 더웠던 여름날,

어미는 알을 품고 있으면서 먹이도 먹지 않고, 물도 먹지 않고 온전히 알만 품고 있었답니다.

그게 보름도 넘은 듯 합니다.

 

그리고 알이 부화가 되어 비둘기 새끼가 태어나고 젓을 먹여 키우고 벌레를 물어다 주고..

그렇게 부모 노릇을 다 한 비둘기는 새끼들이 어미가 되어 훨훨 날아가는 그 순간을 위하여 아낌없이 자기의 모든 걸 희생하였습니다.

그리고 거기까지.

 

저희도 이제 다시 한 가정이 되는 두 사람한테 오직 둘이 행복하게 건강하게 잘 살기만을 바랄 뿐입니다.

못난 부모를 만나 여러 가지로 부족한 곳에서 건강하고 무탈하게 성장하여 다시 한 가정을 이루는 규복이.

그리고 새로움으로 만나는 우리의 소중한 가족, 수진이.

온 마음으로 축원을 그려 그들의 품 안으로 날려 보냅니다.

 

너희 둘을 아낌없이 사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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