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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일기

우리나라 유일의 석굴사원인 골굴사와 선무도 공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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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유일의 석굴사원인 골굴사(骨窟寺)를 아이들을 데리고 다녀 왔습니다.

애들한테 절 구경은 별로일것 같고, 이곳에서 매일 오후 공연이 있는 선무도를 보여주면 좋아할 것 같아 들렸는데 생각대로 호응이 좋았답니다.

절 이름이 뼈 골(骨)자에 굴 굴(窟)자를 써서 골굴사인데 얼핏 보면 굴굴사나 골골사, 굴골사등으로 여겨져 조금 헷갈리게 사용이 되는 곳이기도 합니다.

 

대구에서 출발하여 먼저 도착한 곳은 골굴사에서 4km 정도 떨어져 있는 기림사.

기림사 도착하니 마침 공양시간이라 공양식으로 나온 식사와 과일 떡등으로 베부르게 식사를 하고 기림사 천천히 둘러보고 1시 반쯤 골굴사로 향했습니다. (기림사 소개는 : 이곳에)

 

골굴사는 국내 유일의 석굴사원이기도 하지만 역사도 꽤 깊습니다.

신라 불교문화가 융성하던 6세기 경인 지금부터 약 1,500여 년 전, 인도에서 온 광유성인(光有聖人)이 경주 함월산 자락 이곳에 골굴사와 기림사를 창건했다고 합니다.

그때 골굴사는 광유스님이 인도의 석굴사원을 벤치마킹하여 이곳에도 비슷한 석굴로 된 절을 지었는데 국내 유일이자 가장 오래된 석굴 절집이 된 곳입니다.

굴골사는 또한 원효대사가 입적한 곳으로 알려져 있기도 한 곳이라

 

이곳 골굴사는 석굴사원으로도 유명하지만 요즘은 그보다도 더 널리 알려진 것이 선무도(禪武道)입니다.

한국의 소림사라고 하는 선무도 총본산으로서 내국인과 외국인들한테 입소문으로 널리 퍼져 이곳에 와서 머물며 기예를 익혔는데 그 바람에 템플스테이라는 것이 이곳부터 생겨났다는 후문입니다.

 

일반적으로 불교 무술로 알려진 선무도는 불교의 전통 수행법으로 일찌기 우리나라가 외세의 침략을 받을때도 전국 각지의 승려들이 나서서 큰 역활을 하였는데 이는 사찰 내에서 익힌 수행 덕분이라 할 수 있습니다.

현재 이곳 골굴사에는 선무도를 가르키는 대학도 있습니다.

선무도에 대한 자세한 소개글 : 이곳

 

매일 오후 3시(월요일 제외)에 대적광전 앞에서 선무도 무술 시범이 열리는데 꽤 볼만 합니다.

비가 예보되어 있고 약간 쌀쌀한 날씨인데도 이날 오후 관람객은 약 100여명 정도나 되었답니다.

공연은 정확히 오후 3시에 시작이 되어 약 1시간 정도 진행 됩니다.

 

입장료, 주차료 : 없음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약 20여분 정도 걸어 올라가야 합니다.

입구부터 분위가 심상찮습니다.

 

 

먼저 이런 조형물이 손님을 맞이 하네요.

선무도 형상입니다.

 

 

일단 세명의 꼬맹이들 기념 사진 찍는데 중앙의 막내가 겁을 먹었습니다.

 

 

조금 더 올라가면 포대화상 옆에 개 한마리가 조각상으로 서 있는데...

이 개가 기림사에서는 아주 유명한 '동아'라는 보살견입니다.

 

일단 상 아래 붙여져 있는 '동아보살 공덕기'를 보면,

 

"동아는 내가 골굴사 주지로 부임한 1990년 겨울에 태어나 나에게 입양되었으며 겨울에 태어난 아이라 하여 동아(冬兒)라고 불렀다.

강아지 때부터 새벽예불을 대중들과 함께 했으며 모든 행이 예사롭지 않았다.

 

참선을 하고 탑돌이도 따라하며 기도객들을 안내했다. 보통 진도견들은 가축이나 산짐승을 해치는 습성이 변하지 않았지만 동아는 살생을 하지 않았다. KBS, MBC, SBS, 외국 TV 등에 여러 차례 방영되어 세간에 유명시를 타면서 선무도 대학 건립에 공덕을 지었으며 유럽에 까지 그의 강아지가 분양되었다.

 

만년에는 치매와 중품으로 거동이 불편하였으나 죽는 날 아침까지 새벽예불을 참석했다. 지난 음력 2월 15일 극락보전의 아미타부처님 봉불식을 하루 앞둔 3월 29일 오전에 마지막 모습을 남기고 그 나름의 생을 입적하기 위해 동아는 무거운 발걸음을 옮겨 절을 떠났다. 10여일이 지난 뒤 오륜탑 언덕 넘어 양지바른 곳에서 동아의 죽음을 거두었다.

 

사중에서는 동아의 49재를 기부하고 매년 음력 2월 15일을 동아의 기제사일로 정했다. 모든 불자들은 그를 동아보살이라 불렀다. 다음 생은 꼭 사람으로 환생하여 골굴사에 출가하는 인과를 간절히 축원하는 바이다."

 

2010년 5월 16일 만들어진 주지였던 설적운 스님의 글입니다.

아랫쪽으로 동아보살의 자손 강아지가 제 손자들과 노는 사진이 올려져 있습니다.

 

 

 

 

대적광전으로 올라가는 길.

화정요라는 요사채 건물 돌담입니다.

담의 모퉁이 곡선이 아주 예쁘게 만들어져 있습니다.

담이의 느릿걸음땜에 엄마가 힘들어하는 모습이 사진에 보이네요.

 

 

맨 위에 보이는 건물이 대적광전입니다.

선무도 공연은 저 곳 마당에서 열리구요.

 

 

데적광전 옆으로는 암반에 굴을 만들어 조성한 골굴암.

응회암으로 된 바위들이라 굴로 조성하기는 쉬었지만 이 바위들이 풍화에는 약하여 세월을 이기지 못하고 지금은 많이 훼손되어 있습니다.

 

 

맨 위에 지붕을 씌워 만들어 둔 곳이 골굴사의 대표 볼거리라 할 수 있는 골굴암 마애여래좌상

보물로 지정이 되어 있습니다.

 

 

난간이 설치되어 있지만 가파르고 위험한 구간이 많아 나이든 분은 조심해야겠습니다.

저는 산악인(?) 둘째 지율이만 데리고 탐방을 했답니다.

꼬맹이라 난간 사이로 빠져 떨어지면 큰일나기 때문에 이동시에는 한손을 꼭 잡고 이끌었네요.

 

 

 

 

 

암반 구석구석 굴을 파고 불사를 해 두었는데 지금은 굴의 형태라기보담 움푹 파인 바위 아래같은 형태로 남아 있습니다.

 

 

아래에서 올려다보면 별것 아닌듯 하지만 위에서 내려다보면 아찔한 곳이 많습니다.

전체 석굴 갯수는 12개로서 모두 코스로 연결이 되어 있습니다.

 

 

나한굴. 부처님과 부처님의 제자들

 

 

 

 

 

약사굴에서 건강무탈을 기원하며 V 인증샷..  

 

 

골굴암에서 내려다보는 대적광전

선무도 관람을 위하여 양편으로 자리가 마련되어 있습니다.

아직 1시간여 남았기 때문에 자리가 여유가 있는데 막상 공연이 시작되면 양편 모두 꽉 찹니다.

 

 

맨 위에 자리한 골굴암의 주존불인 마애여래좌상

보물로 지정이 되어 있습니다.

높이 약 4m로 조성이 되어 있는데 무릅 아래와 대좌부분이 풍화로 손실이 되었습니다.

광배 일부와 어깨도 곳곳에 상처가 있네요.

 

 

지율이가 부처님께 삼배를 마치고 마지막으로 다시 반배 인사를 하고 있습니다.

자세가 약간 깍두기 폼...

 

 

지 엄마 스타일의 옷이라 ..

내려오는 길에 만난 아치형 석문 앞에서...

 

 

골굴암에서 제대로 남아 있는 석굴인 관음굴

지금은 제대로 된 석굴 형태로 남아 있는 건 이거 하나뿐입니다.

 

 

 

 

 

 

 

 

 

 

 

반대편 언덕위에 자리한 오륜탑.

스톤발란싱을 연상케 하는 탑이네요.

선무도 공연시 이곳에서 내려다보는 이들도 많습니다.

 

 

선무도 공연시간이 다가오자 사람들이 이곳저곳에서 모여 관람 준비를 합니다.

본당 처마 아래 의자들이 놓여져 있는데 저곳에 앉아도 됩니다.

사람들은 뭐 특별한 이들이 앉는 자리라 생각해서 모두 비워 두었는데...ㅎ

아래쪽 사진들은 제가 저곳에 앉아 관람하면서 찍은 사진들입니다.

 

 

 

 

 

대적광전의 부처님.

대적광전은 불사를 한지 그리 오래되지 않은듯 합니다만 암튼 이곳 골굴사의 중심법당이네요.

중심으로 석가불을 모시고 비로자나불과 아미타불이 호위를 하고 있습니다.

 

 

지율이가 아주 경건하게 삼배를 하고 있네요.

요즘은 두면예족(頭面禮足)까지도 한답니다.

 

 

드뎌 오후 3시.

선무도 공연 시작입니다.

 

 

오늘 가장 어린 관객

삼총사 꼬맹이 중 막내 '아인'이.

유모차 탑승 관람

 

 

말도 청산유수로 잘하는 고수 스님들.

 

 

우리나라보다 외국에 더 잘 알려져 있다는 골굴사

그리고 선무도.

 

 

처음 시범에 나온 이들은 모두 외국인들입니다.

 

 

 

 

 

묘기대행진 비슷한 공연이 이어질때마다 뜨거운 박수...

 

 

잠시 중간에 세분이 나와서 공연을 하는데...

중간에 '비나리'라는 제목의 노래를 개사하여 부르는데 정말 듣기 좋았네요. '비나리'는 요즘말로 '비나이다'라는 말

 

축원덕담으로 이어지는 비나리의 원곡 가사는 다음과 같습니다.

'이광수의 소리굿 비나리'앨범입니다.

 

상봉일경에 불복만재로다 만재수야
에헤에 사실지라도 늘여서 사대만 사십소사
나하 에헤에 무로다 봉오 에헤에~

 

나무시방정토 극락세계 삼십육만억 일십일만
구천오백 동명동호가 대자대비 아등도사(我等導師)로다
금상에도 여래신데 무량스님은 여래만 보살이로다
여래야 나하 에헤에 무로다 봉오 에헤에~

 

축원이 갑니다 덕담 갑니다 발원이 갑니다
건구건명(乾求乾命) 이 댁(宅) 가중(家中) 문전축원
고사덕담 지성정성으로 여쭙델랑
아무 댁 가중 아무 댁 동중 이러니 저러니
액설지설이 떠들지라도 건구건명
이 댁 가중에 드시거들랑 밤이면 불이나 밝으시구요
낮이면 물이나 맑아 밤이 되면 불이 밝고
낮이 되면 물 맑아 물 불은 상극(相剋)인데
이르사속경 고명같소 옥쟁반 금쟁반 순금쟁반에
진주를 굴린 듯 얼음위에도 백로같소
오동나무 상상가지 봉황같이 잘 살 제
건구건명 이 댁 가중 천금같은 아들 따님
성명삼자로 저 달만 그린 듯이 달과야
에헤에 사실지라도 늘여서 사대만 사십소사
나하 에헤에 무로다 봉오 에헤에~

 

건구건명에도 이 댁 가중 둘러 둘러 둘러보니
구궁기 명당터요 신궁기 복터로다
이 집도 좋소마는 이 집은 구옥(舊屋)이니
곡간에다가 제쳐놓고 와가(瓦家)성주를 이룩할 제
어떤 터에다 터를 잡나 자좌우향 남향편에
거북이 등에 터를 닦고 노적봉(露積峰)이 비쳤으니
거부장자가 날 자리 문필봉(文筆峰)이 비쳤으니
대대(代代) 문장(文章)이 날 자리 동자봉이 솟았으니
자손창성할 자리 일상봉이 비쳤으니
효자 충신 열부열녀 날 자리로구랴
도랑에 풀이 나면 하방초라는 풀이 나고
늙지않는 불로초와 죽지않는 불사약이
좌우에 생초(生草)하니 그런 터에 사람이 나면
성인군자가 날 자리로구랴 만복이라야
에헤에 사실지라도 늘여서 사대만 사십소사
나하 에헤에 무로다 봉오 에헤에~

 

이런 터에다 집을 질 제 안채는 목숨 수(壽)자
사랑채는 복 복(福)자 행랑채는 창성할 창(昌)자
수복창성으로다 집을 질 제 호박주초 산호기둥
금파도리에 밀화대문 주문주렴을 늘여놓고
황금으로다 보를 얹고 순금으로 석가래 걸고
백금으로다 부연 달고 천년 기와 만년 굴피를
보기 좋게도 이어놓고 자개로다가 마루를 깔고
백명주사로 벽을 바르니 잡귀 잡신은 원강천리(遠江千里)
대멸(大滅)해 무사태평이 이 아닌가 만재수야
에헤에 사실지라도 늘여서 사대만 사십소사
나하 에헤에 무로다 봉오 에헤에~

 

 

 

 

 

 

 

 

 

 

 

 

 

 

 

 

 

 

 

 

 

 

 

 

 

 

 

 

 

 

 

 

 

 

 

 

 

 

마지막으로 나온 인도요가의 달인급으로 보여지는 스님.

뒷편에 손으로 만지면서 보여주는 건 소원지입니다.

누구나 달 수 있는데 저도 한장 적어서 달아두고 왔네요. 본인의 맘에 따라 시주는 해도 되고 ...

 

 

 

 

 

양손가락 중 하나씩만 세워 물구나무 서기.

 

 

 

 

 

 

 

 

 

 

 

 

 

 

공연을 마치고 내려오는데 아까 공연을 멋지게 한 스님 한 분이 강아지를 한마리 안고 나와서 우리 아이들을 부릅니다.

이 강아지가 위에 소개된 동아보살견의 자손입니다.

 

 

 

 

 

아인이도 엉급결에 강아지와 키스해 버리고..

 

 

공연을 마치면 이렇게 포즈를 취하면서 기념사진에 응해 준답니다.

기림사와 골굴사, 한나절 천천히 구경도 하고 선무도 공연도 보고...

즐거운 경주 여행이었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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