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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일기

보석같이 아름다운 절, 영주 부석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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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구려 백제보다 뒤늦게 불교를 받아 들인 신라는 이후 삼국을 통일하면서 더욱 불교가 번창하였는데 이때 탄생한 스타급 승려가 원효(元曉)와 의상(義湘)입니다.

이 시기 신라의 승려라는 직업은 요즘의 아이돌처럼 선망의 대상이었는데 아이돌 스타가 해외 공연을 꿈꾸듯이 그 시절에는 스님들이 당나라 유학 가는게 꿈이었습니다.

이 두사람도 의기투합하여 당나라로 유학을 가게 되었는데 요동 벌판에서 잠을 자다가 목이 말라(아마도 전날 객지 회포를 푸느라 과음을 하지 않았을까 추측..) 옆에 있던 바가지 물을 시원하게 마셨는데 그게 다음날 보니 해골 박재기..

 

이때 원효가 남긴 말이..

‘이 세상의 온갖 현상은 모두 마음에서 일어나며, 모든 법은 오직 인식일 뿐이다. 마음 밖에 법이 없는데, 어찌 따로 구할 필요가 있겠는가(三界唯心 萬法唯識 心外無法 胡用別求).’

즉,  '이 세상 모든 일은 마음 먹기에 달려 있다'는 '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입니다.

 

이런 깨닳음을 얻은 원효는 유학을 포기하고 되돌아 온 뒤,

서라벌 처녀들의 흠모의 대상으로 자리매김을 하였는데,

그때 원효가 일종의 파계(破戒)를 하고 만난 여성이 요석궁(瑤石宮)의 과부공주 요석공주였던 것입니다.

이 둘이 응응~하여 낳은 아이가 설총..

 

원효가 해골수을 마시고 깨닳음을 얻어 신라로 되돌아 간 사이 의상은 가던길을 계속 이어 당나라로 가다가 변방을 지키던 고구려 군사들한테 잡혀 스파이로 오인되어 고초를 겪다가 풀려난 뒤 신라로 되돌아 왔습니다.

그래도 당나라 유학의 꿈을 버리지 못한 의상은 그 뒤 마침 당나라로 돌아가는 배가 있어 얻어 타고 기어이 유학의 부푼 꿈을 이루게 되는데 거주지는 산동반도의 독실한 불교신자의 주택.

그 집 딸의 이름은 선묘.

 

선묘는 의상의 준수한 용모에 홀딱 반해 어느날 의상에게 사랑을 고백했는데, 당나라까지 유학와서 연애나 하고 있을 수 없는 의상의 입장으로서 이 청을 과감히 뿌리치고 그 집을 나와 수도 장안의 종남산에 있는 지상사란 절에 들어가 그곳에서 화엄경에 심취하게 되었습니다.

 

무려 20년동안 당나라에서 불교를 공부한 의상이 도를 터득하여 신라로 되돌아 오는데 그때까지 의상을 잊지 못하던 선묘가 의상의 도포를 지어놓고 만날날을 손꼽아 기다리고 있는데 의상은 배를 타고 신라로..

그 소식에 놀라 뛰어나간 선묘는 의상에게 법복을 던지며 바다로 뛰어 들었는데 그때 홀연히 용이 나타나 의상이 타고가는 배를 호위하며 신라까지 안전하게 인도했다고 하네요.

 

그 뒤 의상이 왕명으로 부석사를 창건하는데 다른 종파의 반대로 지지부진할때 다시 선묘가 용으로 변신하여 나타나 큰 돌을 들었다 놨다하여 반대파들이 겁을 먹게하여 절을 무사히 지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절 이름도 바위를 들었다 놨다고 하여 뜰부(浮)자, 돌석(石) 자로 부석사(浮石寺)가 되었답니다.

 

우리나라 어지간하게 유명한 절집들은 의상과 원효 자장과 도선스님등, 익히 알려진 스님들의 작품이 유난히 많습니다.

아마도 우리나라에 이들 덕망있는 스님들이 지은 절집만 하여도 수십, 수백개는 될 것 같습니다.

이들 유명스님들은 평소에 도 닦으랴, 책 읽으랴, 글 쓰랴... 무지 바쁜데 언제 그렇게 많은 절을 지었을까요?

아마도 유명 화가들이 조수를 들여 그림 거의 다 그려놓고 맨 밑에 싸인만 하는 식이 아니었을까 짐작을 하여 봅니다.

 

근데 이곳 부석사만은 학씰히 의상이 왕명을 받들어 공을 들여 세운 화엄사찰입니다.

저는 늘 이곳 부석사가 우리나라에서 가장 아름다운 절이라고 말합니다.

규모는 그리 크지 않는 절집이지만 주위 풍경도 좋고 절집에서 품어내는 사찰 향기가 참으로 좋은 곳입니다.

 

제 아이들이 어릴때부터 몇 번이나 이곳 부석사에 데리고 왔었답니다.

이곳에 데리고 와서 제가 아는 지식을 전해 주기도 하고 모르면 저도 공부를 하여 아이들한테 장황하게 설명을 하기도 하였답니다.

그 중 가장 중점을 두고 설명하는게 바로 '구품만다라'이구요.

또한 부석사에서 빠져서는 안되는 설명글이 '누하진입'입니다.

두가지 내용에 대한 설명글은 생략합니다. 이 글을 보시는 분들께 부석사의 사진을 보신 죄(?)로 두가지 내용에 대한 풀이를 숙제로 내어 드립니다.

 

부석사를 이 세상에 가장 많이 알린 사람은 유홍준교수입니다.

그가 집필한 나의 문화유산답사기 중 2권을 추천합니다.

그리고 유교수의 스승이었던 최순우가 지은 그 유명한 '무량수전 배흘림기둥에 기대서서'도 추천합니다.

 

은행잎이 노랗게 물든 시기에 부석사를 찾았는데 사람들이 너무 많이 붐빕니다.

아마도 아랫동네에서 사과축제를 하고 있어 그러한가 봅니다.

흡사 시장통같은 부석사 경내..

지난 추억도 되담고 고뇌의 뿌리를 끄집어내어 사색도 하려던 생각은 애시당초 포기 했습니다.

 

다음에..

흰눈이 내릴때나,

추억을 더욱 승화시켜 내 온전한 가슴 속 기둥이 흔들거릴때

그 때 다시 찾아 와야겠네요.

그때는 적막과 고요속에서 하얀 낮달만 지키고 있어 날 반겨주길 바래요.

 

 

 

 

 

세상이 너무 맑아졌다는 사실.

차가 많이 다니는 도로변에 사과가 주렁주렁.

이곳 풍기사과도 맛나기로 유명하답니다.

차창 밖으로 손만 내밀면 쉽사리 닿는데..

아무도, 누구도..

그렇게 하지 않는 세상이 되었네요.

 

 

부석사 올라가는 길에는 노란 은행잎과 단풍잎으로 곱게 치장이 되어 있습니다.

부석사의 운치는 이곳부터 시작이지요.

 

 

 

 

 

이전에는 올가는 길목 옆으로 온통 사과밭이었는데 많이 없어졌답니다.

 

 

 

 

 

추억 만들기

 

 

 

 

 

 

 

 

 

 

 

 

 

 

삼국시대 절집들이 거의 평지가람인데 비해 이곳 부석사는 내리 쏠리는 언덕을 잘 이용하여 조성되었습니다.

범종각, 안양루, 무량수전으로 이어지는 길..

 

 

 

 

 

 

 

 

 

 

 

 

 

 

 

 

 

무량수전,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목조건물...이었다가 안동의 봉정사한테 타이틀을 넘겨주었지만 그래도 최고(古)로 알고 있는 사람들이 많은 부석사의 가장 유명한 건물입니다.

아랫쪽에 소개한 조사당 건물과 함께 목조건물로서는 아주 오래된 것인데 고려 공민왕때 작품으로 되어 있습니다.

앞에 보이는 석등은 그보다 더 오래된 통일신라 작품이구요.

무량수전과 석등, 그리고 뒷편 산으로 약간 올라가서 만나는 조사당은 보물보다 격이 높은 국보로 지정이 되어 있습니다.

 

 

단청이 되어 있지 않는것처럼 보이나 원래는 단청을 했는데 세월이 지나 벗겨졌다고 합니다.

 

 

석등을 가늠쇠로 하여 무량수전 글자 넣기가 유행입니다.

이걸 제대로 만들면 행운이 온다나 어쩐다나..

누군가 지어낸 이야기가 분명한데 믿고 싶네요.

 

 

뒷편 조사당으로 올라가는 길

 

 

국보로 지정된 조사당

이 건물도 무량수전과 비교될만큼 오래된 건물입니다.

건물내에는 국보로 지정된 벽화가 있었는데 지금은 따로 보관하고 있습니다.

그 앞에는 쌩뚱맞게 뭔 철망이 하나 설치되어 있는데 정말 보기 싫은 모습입니다.

이 철망 안에는 의상대사가 사용하고 있던 지팡이를 꽂아 두었더니 싹이나서 나무가 되었다는 전설따라 삼천리..의 풀처럼 생긴 나무가 한그루 자라고 있는데 이 나무 이파리를 뜯어 삶아 먹으면 아들을 낳는다는 이야기가 전해져 싸그리 뜯어가는 바람에 나무가 고사할 지경이라 이런 모습을 하고 있다네요.

지금은 여아 선호시대라 철망 벗겨도 살아서 버틸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나무 이름이 뭔지 모르겠네요.

옛날 스님이나 도인들은 지팡이를 뿌리쪽을 아래로 사용했는지 뭔... 지팡이 꽂아 놓아 나무가 된 것은 왜 그리 많은지..

 

 

선묘당에 있는 선묘아씨의 상입니다.

용과 함께 그려져 있네요.

 

 

왁자지끌한 부석사 구경을 마치고 내려오는 길.

때깔좋은 사과 낱개로 사서 한 잎 와작.. 깨물어 봅니다.

사과는 역시 가을 부사가 최고..

 

사람들이 너무 붐벼 부석사 구경을 마음껏 하지 못했는데 다음을 기약합니다.

오늘은 야단법석의 부석사를 추억으로 만들고 왔습니다.

 

 

유홍준 교수의 책으로 채워진 한 칸..

아는만큼 보인다..라는 말을 늘 되새깁니다.

유홍준교수가 오래 전 가르켜 준 말이네요.

그가 쓴 문화유산답사기를 즐겨 읽는답니다.

요즘 서울편 9권이 나왔던데 그것도 장만해서 서울 나들이 예비공부 좀 해야 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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