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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일기

소백산 마구령 고갯길을 넘어 김삿갓을 만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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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말에 온통 비 소식이라 산행을 하지 못하고 차박여행으로 영월을 다녀왔답니다.

기상청 일기예보를 머릿속 컴퓨터로 분석을 해 보니 전국적인 호우 속에서도 영월은 그 난리를 딱 피하는 곳이더군요.

덕분에 이틀 동안 다니면서도 비를 맞지 않았습니다.

 

영월과 정선은 동강 여행으로 몇 번 다녀온 곳이지만 언제 가 봐도 새롭게 느껴지는 곳이랍니다.

대구에서 강원도 여행을 하면 괜스레 유럽 알프스 가는 것마냥 설레고 들뜨기조차 한답니다.

 

여행이란 게 목적지를 정하고 그곳에 도착하여 즐기는 여행도 좋지만 가며 오면서 창으로 지나가는 풍경을 보는 것도 제맛이지요. 이번 여행도 특별히 정해진 코스없이 대략의 목적지만 정하고 천천히 천천히... 쉬고, 보고, 놀고.. 슬로우 투어로 이틀을 보냈습니다. 차박지는 영월을 내려다보는 봉래산 별마로천문대였구요.

 

코스는 다음과 같습니다.

대구 - 중앙고속도로 - 풍기 IC - 순흥전통묵집에서 점심 식사 -  부석면 콩박물관 - 마구령 고개를 넘어서 - 마포천 따라 이동하다가 - 안국사에서 잠시 휴식 - 김삿갓 문학관 - 김삿갓 묘소 - 생가 올라가다가 되돌아 내려와서 - 별마로 천문대에서 1박 - 한반도 지형 전망대  - 대구로..

 

여행일시 : 2023년 7월 22~23일

사진이 조금 많아 두 번에 걸쳐 나눠 올립니다.

 

 

 

뜬금없이 김삿갓이 보고 싶어서 찾아간 영월.

풍류의 달인이라는 그가 요즘 세대에 살았다면 이 요상한 세파의 짓거리들을 보고 어떤 시를 지었을까요?

 

 

대구에서 강원도로 올라가면서 군데군데 쉬었던 곳들과 들린 곳들입니다.

 

 

순흥 지나며 묵밥 생각이 나서 순흥전통묵집에 들렸네요.

순흥은 묵밥으로 유명한 고장입니다.

오래전 소백산 가면서 이곳 들려 맛나게 먹은 추억이 있어..

부석사 가는 길목에 있습니다.

주차장이 널찍하고 손님들도 꽤 많습니다.

 

 

바깥에도 탁자가 많이 설치되어 있는데 머루가 주렁주렁 달려 있네요.

 

 

메뉴는 물어볼 필요도 없습니다.

묵밥 딱 한 가지.

 

 

 

 

 

예부터 경상도에서는 묵을 쳐 먹는다고 하지유.

메밀을 쳐서 만든 묵입니다. 놋그릇에 온기 있는 메밀묵이 가득 담겨 나오고 고슬고슬한 수수밥이 같이 나온답니다.

찬은 세 가지.

 

 

묵을그냥 먹어도 맛나고 밥을 말아먹어도 맛있습니다.

저는 밥을 말아 같이 먹는 걸 추천 드리구요.

 

 

특이한 것은 동네 참새떼들이 이곳에 거리낌 없이 드나든다는..

 

 

손님들이 흘린 밥알을 주워 먹다가 이제는 일부러 뿌려주는 이들이 있으니 짹짹이들이 그 맛을 들인 듯하네요.

밥알을 던져주지 않으면 머리 위를 날아다니며 시위를 하는 여유까지 부리네요.

 

 

묵밥 식사하고 믹스커피 한잔 하면서.... 

 

 

 

 

 

소백산 넘어가기 전 들린 부석면의 콩 박물관.

 

 

내부를 이리저리 둘러보면서 은근 걱정이 됩니다.

 

 

휴일인데도 방문자는 거의 없고.. 별로 의미 있는 볼거리도 없는 엄청난 규모의 전시관.

전기세에다 인근비 관리비 등등.. 모두 세금인데..ㅠ

세계 최초로 콩을 테마로 한 박물관이라고 하지만 관리한다고 자리 지키고 있는 직원과 눈 마주치기가 민망스럽네요.

지자체의 치적사업은 정말 신중해야겠습니다.

 

 

그 옆에 부속으로 만들어 둔 롤 슬라이드가 있는데 김여사와 그것 신나게 한번 타고 내려왔답니다.

 

 

소백산 능선이 보이네요.

소백산을 넘어가는 고개는 3곳이 있는데 죽령과 마구령 그리고 고치령이 있답니다.

 

오늘 차를 타고 넘어가는 고개는 마구령.

마구령은 국가관리지방도로 되어 있지만 그냥 임도보다 못한 1차선 산길입니다.

김여사가 찍은 폰 영상으로 마구령 드라이브를 즐겨 보아요.

 

이 영상을 찍은 이유는 단 하나.

현재 이 구간에 터널 공사 중입니다.

터널이 완공되는 내년 봄쯤이면 이곳 마구령길은 차량 통행을 막는다고 하네요.

아마 그렇게 되면 이렇게 드라이브로 마구령 넘어가는 것도 추억이 될듯하여 찍어 봤습니다.

운전 스킬되고 어드벤처 억시로 즐긴다면 터널 완공되기 전에 차를 몰고 이곳 한번 넘어가 보는 것도 좋을 것 같습니다.

 

 

마구령 만댕이

소백능선을 타고 와서 늦은맥이 선달산으로 이어지는 대간길입니다.

그나마 크게 어렵지 않은 능선길이라 구간거리를 조금 길게 잡는 곳.

 

 

마구령 내려와서 남대리 마포천 개울 따라 서북쪽으로 감삿갓계곡을 목적지로 이동합니다.

소백산 능선이 그림처럼 보여 지구요.

 

 

안국사라는 절 구경을 하구요.

새로 지은 절집 같습니다.

 

 

사찰 전체 규모에 비해 대웅전이 조금 초라해 보이구요.

 

 

대신 앞쪽 조망은 끝빨납니다.

소백산을 다 가졌네요.

 

 

강원도는 강냉이가 한창입니다.

강냉이를 2모작하는 걸 이번에 처음 알았습니다.

 

 

 

 

 

비가 내린 지 며칠 지나서 그런지 물이 아주 깨끗합니다.

중간중간 물놀이 하는 이들이 많네요.

 

 

김삿갓 계곡 도착.

 

 

오늘 문 닫았나 할 정도로 한적한 김삿갓 문학관

 

 

문학관 마당 주차장 한켠에는 김삿갓과 어느 여성이 한 이불(?)을 걸치고 있는 듯한 형상인데 가운데 시가 적혀 있습니다.

제목은 정담(情談) 

적혀있는 내용은 다음과 같습니다.

 

누상상봉시목명(樓上相逢視目明) 유정무어사무정(有情無語似無情)

화무일어다정밀(花無一語多情密) 월불유장문심방(月不踰墻問深房)

 

다락 위에서 만나보니 눈이 아름답도다

정은 있어도 말이 없어 정이 없는 것만 같구나

꽃은 말이 없어도 꿀을 많이 간직하는 법

달은 담장을 넘지 않고도 깊은 방을 찾아올 수 있다오

 

근데 이 내용만 봐서는 무슨 말인지 쉽사리 짐작할 수 없는데 앞뒤의 내용을 모두 알고 나면 무척이나 재미있는 러브썸씽이 형성된답니다.

 

이 시의 전체 스토리는,

 

김삿갓이 금강산으로 가다가 강원도 양양 산골 마을의 어느 서당에서 신세를 질 때의 이야기입니다.

그 서당의 훈장에게는 홍련(紅蓮)이라는 십칠 팔세 되는 과년한 딸이 있었습니다.

김삿갓이 달밤에 잠이 오지 않아서 뒷동산 완월정(玩月亭)이란 정자에 올랐는데 그때 그 정자의 누각에 아리따운 여인의 모습이 비쳤습니다. 바로 홍련이었는데 그 모습이 너무 아름다워서 김삿갓은 위의 시 첫 줄에 나오는 두 구절을 읊었습니다.

 

누상상봉시목명(樓上相逢視目明) 유정무어사무정(有情無語似無情)

다락 위에서 만나보니 눈이 아름답도다. 정은 있어도 말이 없어 정이 없는 것만 같구나

 

그러자 홍련이 즉시 화답(和答)하고 정자를 내려가 총총히 집으로 향했습니다.

그 내용이 위에 적혀있는 두 번째 연의 시구요.

 

화무일어다정밀(花無一語多情密) 월불유장문심방(月不踰墻問深房)

꽃은 말이 없어도 꿀을 많이 간직하는 법. 달은 담장을 넘지 않고도 깊은 방을 찾아올 수 있다오

 

내용의 주고받음이 스토리가 어떻게 흘러갈지 대강 짐작이 되지유?

김삿갓은 처녀가 한시를 알아듣지 못하리라 생각하였는데, 즉시 화답까지 하는 데다 운율까지 정확하여 어디 하나 나무랄 데가 없는지라 한동안 뒤통수를 얻어맞은 듯이 서 있었습니다.

더구나 그 화답 내용이 매우 노골적인 유혹.

 

그날 밤 김삿갓은 치솟는 욕정을 이기지 못하고 홍련의 방문 앞에서 아래와 같은 시 한 수를 읊었습니다.

 

探花狂蝶半夜行(탐화광접반야행)

百花深處摠無情(백화심처총무정)

慾探紅蓮南浦去(욕탐홍련남포거)

洞庭秋波小舟警(동정추파소주경)

미친 나비꽃을 탐내 한밤에 찾아드니

깊은 곳에 숨은 꽃들은 다 무정하구나.

붉은 연꽃(홍련)을 따려고 남포에 갔더니

동정호 가을 물결에 조각배가 놀라네.

 

그러자 방 안에서 홍련이 기다렸다는 듯이 화답하였습니다.

 

今宵狂蝶花裡宿(금소광접화리숙)

明日忽飛向誰怨(명일홀비향수원)

오늘 밤 미친 나비가 꽃 속에서 자고

내일 홀연히 날아간들 누구에게 원망하리오.

 

김삿갓이 방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서자 홍련은 잠시 멈칫하였다가, 김병연(金炳淵) 선생님이시지요? 하고 물었습니다.

어찌 나를 아는가고 묻자, 아버지로 부터 들어서 처음 알게 되었고 풍문으로 자주 들어 평소에 흠모하고 있었답니다.

이윽고 김삿갓이 굶주린 매가 꿩을 덮치듯 홍련과 운우지정을 나눈 후에 홍련이 순결을 너무 쉽게 바치고 부끄러움이 없는 걸 보고 놀리려는 심산으로 불을 밝히고 지필묵을 꺼내어 '아무래도 처녀가 아닌 것 같다'는 뜻으로 아래와 같이 한 수 적었습니다.

 

毛深內闊 必有他人(모심내활 필유타인)

털이 깊고 속이 넓은 것을 보니 필시 다른 사람이 지나갔나 보구나.

 

이를 본 홍련이 발끈하여 즉시 붓을 잡아 일필휘지로 써 내려가는데,

 

溪邊楊柳不雨長(계변양유불우장)

後園黃栗不蜂坼(후원황율불봉탁)

시냇가 버들은 비가 오지 않아도 저절로 자라고,

뒷동산 밤송이는 벌이 없어도 저절로 터진다오.

 

된통으로 한 방 먹은 김삿갓이 다시 홍련을 얼르고 그날 밤늦도록 다시 정을 나누었답니다.

다음날 새벽 김삿갓은 홍련이 깨기 전에 그의 하얀 속치마에 작별 시를 써놓고 도망치듯 떠나버렸습니다.

 

昨夜狂蝶花裏宿(작야광접화리숙)

今朝忽飛向誰怨(금조홀비향수원)

어젯밤 미친 나비꽃 속에서 잤건만,

오늘 아침 훌쩍 날아가니 누굴 원망하리오.

 

 

요렇게 작달막하게 생긴 분이 김병연, 김립(金笠)이라고도 하는데 삿갓립(笠) 자를 써서 보통 김삿갓이라고 한답니다.

이분에 대한 재미있는 이야기와 詩는 무궁무진한데 그건 다음에 따로 소개하기로 하구요.

 

 

김삿갓이 타고 있는 말이 한눈에도 명마는 아닌듯 하지요?

이 그림에 맞는 시가 말 옆구리와 삿갓의 도포에 이어져 적혀 있답니다.

 

倦馬看山好 권마간산호

執鞭故不加 집편고불가

岩間재一路 암간재일로

煙處或三家 연처혹삼가

花色春來矣 화색춘래의

溪聲雨過耶 계성우과야

渾忘吾歸去 혼망오귀거

奴曰夕陽斜 노왈석양사

 

게으른 말을 타야 산 구경하기가 좋아서

채찍질 멈추고 천천히 가네.

바위 사이로 겨우 길 하나 있고

연기 나는 곳에 두세 집이 보이네.

꽃 색깔 고우니 봄이 왔음을 알겠고

시냇물 소리 크게 들리니 비가 왔나 보네.

멍하니 서서 돌아갈 생각도 잊었는데

해가 진다고 하인이 말하네.

 

첫 줄에 주마간산(走馬看山)을 倦馬看山(권마간산)으로 달리 표현한 게 정말 절묘하네요.

 

 

입장료 있습니다.(2,000원)

입구에 있는 포토존. 

 

 

김삿갓 문학관에는 김삿갓의 진짜 물품은 하나도 없습니다.

아마도 후대로 전해진 게 없는 것 같네요.

특히 그의 친필이 남아 있는 게 하나도 없다는 게 너무 아이러니하네요.

 

 

김삿갓의 시 중에서 단 두자로 만든 시로서 많이 알려져 있는 시입니다.

 

是是非非非是是

是非非是非非是

是非非是是非非

是是非非是是非

옳은 것을 옳다 하고 그른 것을 그르다 함이 꼭 옳은 것은 아니며,

그른 것을 옳다 하고 옳은 것을 그르다 함이 옳지 않은 것도 아니다.

그른 것을 옳다 하고 옳은 것을 그르다 한다는 이것이 그른 것이 아니고,

옳다는 것을 옳다 하고 그른 것을 그르다고 함이 도리어 이것이 그른 것을 옳다 함이다.

 

쉬운 듯하면서도 난해 하네요.

오케바리 언더스탠드??

 

 

김삿갓 닮은 수석 전시도 같이 하고 있네요.

 

 

김삿갓이 산골의 가난한 농부 집에 하룻밤을 묵었습니다.

가진 것 없는 주인의 저녁 끼니는 멀건 죽. 죽 밖에 대접할 것이 없어 미안해하는 주인에게 답례로 지어 준 시 한 수.

 

四脚松盤粥一器 天光雲影共排徊  사각송반죽일기 천광운영공배회

主人莫道無顔色 吾愛靑山倒水來   주인막도무안색 오애청산도수래

네 다리 소반 위에 멀건 죽 한 그릇. 하늘에 뜬 구름 그림자가 그 속에서 함께 떠도네.

주인이여, 면목이 없다고 말하지 마오. 물속에 비치는 청산을 내 좋아한다오. 

 

 

1939년 이응수 선생이 전국을 다니며 수집한 김삿갓의 시 170여 편이 수록된 시집.

 

 

문학관 인근에 있는 김삿갓 묘소도 들려 봤답니다.

이전에도 한번 들렸었는데(보기) 그때와 달라진 건 없습니다.

 

 

묘소 아래는 소공원으로 꾸며져 있는데 김삿갓의 두상 조각이 있고 손에는 천도복숭아를 들고 있답니다.

이곳 두상 앞에 적혀 있는 시 제목은 '환갑'

 

이 시도 참 재미있답니다.

김삿갓이 어느 회갑연 잔치집에서 한잔 얻어 마시고 시 한수를 읊는데,

 

彼坐老人不似人 (피좌노인불사인)  저기 앉은 저 노인은 사람 같지 않고

膝下七子諸盜賊 (슬하칠자제도적) 그 일곱 아들은 모두 도둑놈이로구나.

 

여기까지 읊자 사람들이 술렁대기 시작하였습니다.

환갑을 맞은 어르신을 사람 같지 않다고 대뜸 욕부터 하면서 그 아들들을 모조리 도둑놈이라고 했으니 잔칫집에 모인 사람들은 당장 노발대발했답니다.

그때 김삿갓이 또 시를 읊었답니다.

 

何日何時降神仙 (하일하시강신선)  어느 날 어느 시에 하늘에서 내려온 신선인고?

竊取天桃奉養親 (절취천도봉양친)  자식들이 천도복숭아를 훔쳐다가 잘 봉양하였구나.

 

잔치의 주인공은 사람 같지 않고 하늘에서 내려온 신선이고 그 아들들은 무병장수를 의미하는 하늘의 천도복숭아를 훔쳐와서 아버지께 대접하였으니 이보다 더한 축시가 어디 있을까?

마지막 줄을 읽은 잔칫집 사람들은 김삿갓에게 배가 터지도록 음식을 내어 주었다는.... 

 

 

김삿갓 묘소 들어가는 입구에 있는 작은 사당.

그 옆에는 쇠종이 달려 있습니다.

누구나 칠 수 있게 하였구요.

 

 

김삿갓 묘소

앞의 비석에는 詩仙蘭皐金炳淵之墓(시선난고김병연지묘)라고 적혀 있구요.

 

 

 

 

 

묘소 앞 계곡에는 아주 맑은 물이 흐르는데 김여사와 둘이 발을 담그고 한참 앉아 놀았네요.

 

 

묘소에서 대략 2km 정도 떨어진 마대산 자락에는 김삿갓의 생가가 있는데 김여사와 그곳으로 올라갑니다.

 

 

계곡이 너무 맑고 깨끗하구요.

 

 

근데 산모기가 엄청납니다.

생모기를 잡아다가 제 팔에 놔두고 물어라고 사정해도 달아나는 체질인 나와 주변에 모기 한 마리도 없어 보이는데 집에 와서 보면 모기에 잔뜩 물려 있는 김여사와..

모기에 물리면 거의 흉터가 되어 버리는 김여사 체질을 도저히 무시할 수 없어 보고 싶은 김삿갓 생가를 500m를 앞두고 되돌아 내려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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