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여행 일기

지금은 보기 힘든 목화밭 구경 - 남평문씨세거지

반응형

 

 


'목화밭'이란 제목의 노래가 있답니다.

 

우리 처음 만난 곳도 목화밭이라네

우리 처음 사랑한 곳도 목화밭이라네

밤하늘에 별을 보며 사랑을 약속하던 너

그 옛날 목화밭 목화밭

 

하사와 병장이란 듀엣이 부른 노래로서 7080은 모르는 사람이 없을 것입니다.

노래 가사에 목화밭이란 단어가 엄청나게 많이 나오지유.

 

지금 생각해도 왜 목화밭에서 만나고 목화밭에서 헤어졌는지 이해가 잘 안 가는 가사 내용이지만 암튼 요즘은 목화밭을 구경하기가 여간 힘든 게 아닌데 대구 인근에서는 화원휴양림 올라가는 길목에 있는 남평문씨세거지 앞에서 너른 목화밭을 구경할 수 있답니다.

이맘때가 목화송이가 피어서 아주 에쁠때이구요.

 

목화에서 뽑은 실의 원료를 면(綿), 영어로는 cotton(코튼)이라고 하는데 화학섬유가 나오기 전까지 세계인의 의복을 만드는 면사의 원소재이기도 합니다.

경상도에서는 미영이라고 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목화솜이 익기 전 밭에서 솜다래라고 하여 따 먹기고 했는데 달작했던 그 맛이 아직도 기억이 납니다.

 

 

남평문씨세거지 위치 : 보기

 

 

 

대구사람들은 이곳을 통상 문씨세거지, 남평문씨 세거지등으로 부르는데 정식 명칭은 남평문씨본리세거지(南平文氏本里世居地)입니다.

 

이곳 마을은 아주 특이한 점이 많습니다.

일단 상당히 큰 마을인데 9가구밖에 되지 않습니다.

딱 문씨들만 살고 있고 다른 외부인이 이사를 들어오거나 이곳에 집을 지을 수도 없습니다.

이곳은 무조건 장남들만 대물림하여 살고 있습니다.

말 그대로 조선 양반마을의 형식이 그대로 이어져 오고 있는 곳입니다.

 

 

문씨마을을 들리기 전 바로 옆에 있는 인흥서원 잠시 구경하구요.

이곳에는 조선시대 아이들의 교양필독서인 명심보감 목판이 보관되어 있습니다.

 

 

아직 나락(벼)을 베지 않는 누런 들판 저쪽으로 문씨세거지가 보이네요.

 

 

마을이 상당히 운치가 있고 둘러볼 곳도 많아 가벼운 나들이 장소로도 아주 좋은 곳입니다.

 

 

마을 입구에는 널찍한 주차장이 마련되어 있는데 그곳에 문익점의 동상이 마련되어 있지요.

문익점은 고려말 학자이지만 가장 유명한 것은 원나라 사신으로 가서 돌아올 때 목화씨를 붓뚜껑에 넣어서 가져온 것입니다.

이 시기에 원나라의 목화는 외부 반출 금지폼목으로 지정이 되어 있었다고 하는데...

원나라 입장에서 보면 밀수꾼이 되었네요.

다만 요즘 들어서 이런 내용들이 실제 역사적인 사실과 다르다는 연구도 많은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백제 시대 면 제품이 출토가 되었다는 기사도 본 적이 있구요.

 

이곳 문씨세거지는 문익점의 후손들이 모여 살고 있습니다.

참고로 문익점의 고향은 경남 산청군 단성이구요.

 

 

동상과 세거지 사이로 널찍한 목화밭이 조성되어 있습니다.

 

 

한창 목화솜이 피고 있네요.

 

 

 

 

 

요즘은 국내 면 제품 생산 시설이 거의 사라져 목화를 실로 만들기 위해 재배하는 곳은 거의 없는 것 같습니다.

 

 

이곳 문씨본리세거지는 원해 인흥사라는 절이 있던 곳입니다.

그래도 문씨인흥세거지라고도 하구요.

 

 

하얗게 피어나고 있는 목화솜

 

 

 

 

 

 

 

 

열매 같은 게 보이는데 저걸 다래라고 합니다.

다래가 익어 벌어지면서 안의 면모가 하얗게 튀어 나오구요.

 

 

우리는 어릴 때 이걸 그냥 다래솜이라고 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문익점이 원나라에서 되돌아오면서 이런 붓뚜껑에 목화씨를 숨겨 왔다고 하는데..

 

 

목화밭 둘러보고 문씨 세거지에 있는 명소 세 곳을 잠시 둘러봅니다.

처음 들린 곳은 곡선이 돋보이는 광거당입니다.

동네 문중의 자제들이 공부했던 장소.

 

 

대문옆에 모과가 구유속에 담겨 있네요.

모과향이 짙습니다.

 

 

자주 와 본 곳이지만 늘 봐도 멋진 고택입니다.

안쪽에 광거당이란 편액이 걸여있고 누마루에는 수석노태지관(壽石老苔池館)이라고 쓰여 있네요.

글씨체는 누가 봐도 추사의 필체입니다.

대강의 풀이를 하면 이 집은 수석과 오래된 이끼, 그리고 조그만 연못으로 되어 있다 이런 의미 같습니다.

 

 

 

 

 

집을 두어 바퀴 빙빙 돌면서 이곳저곳 기웃거려 봅니다.

 

 

광거당을 나와 골목을 이곳 저곳 둘러보는데...

이곳 외에도 우리나라 여러 곳 옛 조선시대 양반집들을 둘러보면 왜 그리 담장을 높게 만들었는지....

절대 안을 들어다 볼 수 없습니다.

왜 그리 폐쇄적이었을까요?

 

 

이 마을에서 그나마 안면이 있는 이름.

문희갑 전 시장의 집입니다.

민선 1기 시장으로 95년부터 7년 동안 대구 시장을 역임하였습니다.

이곳 세거지가 고향인데다 어릴 때부터 주변 자연환경에 동화되고 어른들한테 그렇게 교육을 받은 덕분에 대구시가 지금처럼 초록 도시가 되는데 가장 큰 공을 세운 분입니다.

대구수목원도 이 분의 작품이지요.

 

 

마을의 온기 덕분인지 아직도 장미가 싱싱합니다.

 

 

이 골목은 전국에서 가장 유명한 골목.

초여름이면 카메라 메고 사진 찍는 자칭타칭 작가분들은 모두 한 번은 다녀 가는 곳.

능소화 때문입니다.

 

 

전국에서 가장 유명한 능소화나무.

 

 

골목 안에서 바깥으로 본 풍경입니다.

지금은 골목 바깥쪽에 겹찔레꽃만 입을 잔뜩 푸르게 하고 있네요.

 

 

다음으로 들린 곳은 수백당.

대략 200년 정도 된 집으로서 이곳 전체를 수봉정사라고 합니다.

손님맞이나 마을 모임장소로 사용이 된 곳이라 합니다.

 

 

대문 빗장.

 

 

 

 

 

수봉정사에는 인수문고가 있는데 여간해서 구경하기 힘든 내부를 둘러보게 되었습니다.

설명도 주욱 들었는데 남평 문씨가 100년에 걸쳐 모은 고서들을 보관하고 있는 곳입니다.

국내 최고의 문중 문고이기도 하구요.

 

 

현재 약 2만 권의 고서와 책판 약 600여 점이 보관되어 있다고 합니다.

 

 

해인사 가서 팔만대장경은 근처도 못하게 하여 멀리서 봤는데 이곳에서는 코 앞으로 바짝 붙여서 옛 책판을 구경해 봤습니다.

 

 

다시 목화밭으로..

인근 유치원 꼬맹이들이 휴일인데도 나들이를 왔네요.

 

 

 

 

 

문익점 마냥 나도 몰래 솜 송이를 두어 점 따서 주머니에 넣고 왔습니다.

안의 씨앗을 빼서 내년에 화분에다 한번 심어 볼 생각입니다.

 

 

 

 

 

 

 

 

 

 

 

 

 

 

문익점  선생의 동상.

 

 

문씨세거지 둘러보고 인근에 있는 마비정도 잠시 들렸네요.

익히 알고 있는 벽화 전문 이재도 작가가 오래된 벽화 작품을 보충 손질을 하고 있네요.

옆에 계신 분은 이곳 해설사님.

이런저런 이야기 나누다 시계를 보니 어차....

 

 

.

반응형


Calendar
«   2025/02   »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Recent Comments
Visits
Today
Yesterda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