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은 경주 변방의 동네 뒷산이지만 옛 역사가 숨어 있는 얕은 산 하나가 있어 찾아가 봤답니다.
이름은 경주의 소금강산.
널리 알려진 북한 금강산이 지금 이름을 가지기 훨씬 전부터 이곳은 금강산이란 이름을 가지고 있었던 곳이었는데 강점기시절 일본넘들이 강원도 금강산과 구분한다고 이곳 산 이름에다 '소(小)'자를 앞에 붙여버리는 바람에 천년이상 불려오던 금강산이란 이름이 소금강산으로 되어 버렸답니다.
현재의 북한 금강산의 옛 이름은 개골산이었지요.
이곳 경주의 소금강산 산행은 아주 쉽습니다.
등린이도 룰루랄라, 완전 동네 뒷산 개념이구요.
오늘 소금강산을 찾은 목적은 백률사 아래에 있는 사면불상을 보기 위함인데 그곳만 보고 가기에 아쉬워 산을 한 바퀴 둘러본 것이랍니다.
옛 신라 초기 이야기를 되새김하여 보는 뜻깊은 장소이기도 합니다.
산행지 : 소금강산
일 시 : 2024년 12월 1일
산행 코스 :
탈해왕릉 주차장 - 숭신전 - 표암재 - 탈해왕릉 - 광임대 - 마래삼존불좌상 - 옥고개 - 조망점 - (되돌아와서) - 소금강산 정상석 - 백률사 - 사면불상 - 주차장(원점회귀)
소요 시간 : 2시간 30분
같은 코스 따라 걷기 : 이곳
소금강산은 신라불교의 순교자 이차돈과 관련이 많은 백률사가 있는 곳입니다.
또 그 아래 한번 가 보고 싶던 사면불상이 있는데 이번에 제대로 보고 왔네요.
다녀온 코스인데 엄청 복잡하게 보입니다만 볼곳만 보고 온다면 아주 간단하게 다녀올 수 있는 곳입니다.
다녀온 코스 : 탈해왕릉 주차장 - 숭신전 - 표암재 - 탈해왕릉 - 광임대 - 마래삼존불좌상 - 옥고개 - 조망점 - (되돌아와서) - 소금강산 정상석 - 백률사 - 사면불상 - 주차장(원점회귀)
주차장 바로 앞에 있는 숭신전입니다.
석(昔)씨의 시조인 탈해왕을 모시는 사당입니다.
입구 홍살문에서 영녕문, 경엄문을 지나면 맨 안쪽에 숭신전이 있습니다.
숭신전을 나와서 탈해왕릉으로 가는 곳은 송림숲입니다.
경주 특유의 노거수 소나무들이 아주 보기 좋은 곳이구요.
탈해왕릉
이름은 석탈해이고 신라 4대 왕이기도 합니다.
군주의 칭호는 이사금이구요.
지금부터 2000년도 넘는 옛날이야기라 정확한 역사적인 사료는 없는 편이라고 보면 되겠네요.
표암재
뒤편의 바위가 표암입니다.
경주 이 씨의 시조인 알평의 발상지이며 신라 6 촌장이 모여서 신라 건국을 논의하던 곳입니다.
산 위에 유허비가 있는 전각과 광임대가 보이네요.
조금 후 저곳으로 먼저 올라가 봅니다.
등산로 입구.
깊숙하게 고개를 숙인 소나무 한그루가 인사를 하고 있네요.
등산로로 진입하기 전 좌측 언덕으로 올라갑니다. (화살표)
경주이 씨의 후손이 조상을 추모하는 유허비가 있는 건물을 지나고
조금 더 오르면 광임대가 있습니다.
경주 이씨 탄생지입니다.
광림대라고도 읽히구요.
경주이 씨 성을 가진 분들한테는 성지나 마찬가지인 곳입니다.
경주 이 씨는 우리나라에서 내로라하는 오래된 성씨인데 시조는 이알평입니다.
이분이 알에서 태어난 혁거세를 키워서 신라 초대 군주로 만들었구요.
광임대에는 경주이 씨 시조인 이알평이 하늘에서 내려와 목욕을 했다는 석혈이 있습니다.
광임대에서 나와서 내려가지 않고 곧장 산길로 가면 탈해왕릉에서 올라오는 산길과 만나게 됩니다.
이후 산길은 여러 갈래로 나눠지고 붙어지는데 대략의 감으로 올라가는 산길로 가면 정상에 도착하게 된답니다.
중간에 솔방울 시계도 만나게 되는데..
이건 짝퉁이고.
진짜 유명한 소금강산 솔방울시계는 이날 보지 못했답니다.
세상에 이런 일이에... 나온 시계인데 보고 온다는 걸 깜빡하고 되돌아와 버렸네요.
간간 이정목을 만나게 되는데 내가 원하는 목적지를 적어 둔 곳은 거의 없네요.
일단 정상 방향으로 이동합니다.
200m가 남았다고 표시하네요.
산은 늘 진실한 게...
어디로든지 올라가면 정상입니다.
정상 조금 못 미쳐서 만나는 마애삼존불.
풍화로 거의 마멸되어 확인이 어렵습니다.
더군다나 이곳 장소가 역광인 곳이라 더더욱 윤곽을 잡기가 쉽지 않네요.
그래도 뭔가 세분의 부처라는 것 만이라도 확인해 보고자 눈을 부릅뜨고 봤는데도 제 눈에는 부처님이 들어오지 않습니다.
바위 상단에 사각 구멍이 만들어져 있는 걸로 봐서는 옛날에는 구조물이 설치되었지 않나 생각도 해 봅니다.
이게 어디 부처님 얼굴이라고 할 수 있나유...ㅠ
애초 조각을 담당한 분이 2000년 뒤에 지구별 두가가 와서 본다는 걸 염두에 두지 않고 대충 정을 두드려 만들어 놨으니..
그 아래 바위를 나누려고 한 자국이 있는 곳에 누군가 동자승을 가득 채워놨네요.
아쉬움을 남기고 자리를 뜹니다.
조망이 트이는 곳이 전혀 없어 사진에 보이는 부부께 물어보니 가고 있는 방향으로 한참 가면 트이는 곳이 있다고 합니다.
부리나케 달리기를 하여 무지기산 지나고 옥고개 지나고 얕은 산 하나를 열심히 오르니..
요렇게 조망이 트이는 곳이 있네요.
벤치 두 개가 있어 시간만 있으면 멍.... 하기 좋은 곳입니다.
클릭하면 크게 보이고 컴 화면 가득은 이곳 클릭.
황성공원이 내려다 보입니다.
이곳만 경주처럼 보이고...
나머지는 낯선 경주처럼 보입니다.
건너편 구미산이 보이네요.
겨우 조망은 봤으니 다시 왔던 길을 되돌아갑니다.
원(願) 위의 원(願)...
소금강산의 공룡능선
큰 바위 다섯 개를 건너뛰면 공룡 끝.
높으나 낮으나 정상은 정상.
정상석은 대단히 큼지막합니다.
앞쪽 바위에 앉아서 사과를 깎아 드시고 있는 아줌니 두 분께 사진 한 장을 부탁드렸더니..
니가 해라..아니 니가해라.. 하고 서로 미루다가 한 아줌니가 폰을 들고 찍어 준 사진입니다.
'몬 찍읏으믄 우야꼬..'
하면서 폰을 되돌려 주네요.
햄버거 옆으로 지붕이 보이네요.
백률사입니다.
백률사.
삼국시대 고구려는 일찍이 불교를 받아들였지만 신라는 문을 꽁꽁 닫고 있었지요.
고구려가 불교를 국교로 공인한 지 150년이 지나도 신라는 여전히 불교를 승인하지 않았는데 신라에서 일찍이 불교를 섬기던 이차돈이 혼자 불교를 공인할 것을 주장하여 법흥왕의 명으로 그를 처형하게 되는데..
그의 목이 베어지는 순간 흰색 피고 솟구치고 그의 머리는 날아가 이곳 소금강산에 떨어졌다고 합니다.
그 뒤 법흥왕은 그의 용기 있는 행동에 감동하여 불교를 승인하게 되었고 이곳에 자추사라는 절을 세워 그의 명복을 빌었는데 그 절이 뒤에 백률사로 이름이 바꿨답니다.
종각에는 이차돈이 순교하는 장면을 조각하여 두었네요.
종을 만든 지는 그리 오래되지 않았습니다.
대웅전 안에 한번 들어가서 구경을 하려고 했는데 뭔 개인예불 행사 중이네요.
스님께서 염불을 외면서 북도 치고..
특이하게 보입니다.
묘보살이 째리 보고 있네요.
오늘의 하이라이트 백률사 아래 사면불 친견입니다.
주위를 돌면서 기도하는 분이 간간 계시네요.
주면이 되는 서쪽 불상입니다.
가운데 아미타부처님을 모시고 양쪽에 협시불을 바위와 별개로 조각을 하여 세워 두었네요.
가운데 본존불은 몸통은 바위를 이용하여 조각이 되어 있지만 머리는 따로 만들었는데 우리나라 최초의 형식이라고 합니다.
이곳 아미타부처님 앞에서 가장 많이 빌게 되는데...
아미타부처님은 극락정토를 관활하지유.
나무아미타불~
죽으믄 좋은데 보내 주이소... 이걸 비는 것입니다.
본존불의 머리.
옛날에는 그냥 얹어 두었을까? 아니면 뭘로 붙여 놓았을까?
이게 오늘 너무 궁금하네요.
시계방향으로 한 방향 더 돌아서,
북쪽입니다.
조각으로 보이는 미륵불 외에 좌측에 선각으로 조성된 관음보살이 있다고 하여 눈에 온 신경을 모아 보는데도..
위 원 안에 11면 6비.. 즉 16개의 얼굴과 6개의 팔을 가진 관음보살이 자리하고 있다는데 도저히 보이지 않습니다.
일종의 천수관음 형식으로 보이는데 이걸 오늘 제대로 한번 보려고 정신 똑바로 차리고 한참이나 봤는데도 아니 되네요.
불심부족으로 오늘 현세를 관장하는 관세음보살의 기운은 얻지 못하고 갑니다.
동쪽면입니다.
유일하게 앉아있는 부처님인데 저런 다리 형태를 결과부좌라고 하지요.
양반다리에서 발을 위로 끌어올린 것인데 이게 자세가 나오지 않는 분들이 간간 있습니다.
이 부처님은 한눈에 봐도 약사여래불입니다.
왜?
만병통치 약통을 들고 계시니..
유식하게는 보주라고 하지유.
반바퀴 돌아서 동쪽과 남쪽을 같이 보는 모습입니다.
남쪽면입니다.
상당히 육감적인 부처님 두 분이 보입니다.
이 부분이 참으로 기가 막히는데..
원래 보이는 부처님은 세분으로 삼존불이었다고 합니다.
현재 사진에 보이는 좌측에 부처님이 한 분 더 서 계셨구요.
근데 이걸...
일제 강점기에 일본넘들이 정으로 파서 떼어 갔다고 합니다.
그뿐만 아니고..
사진의 왼편 부처님도 머리가 없는데.
이 머리 부분도 정으로 파서 떼어 갔구요.
석가불의 얼굴이네요.
이걸 떼어가서 집에 보관하고 있는 그 일본넘의 집구석이 과연 잘 되고 있는지 궁금합니다.
사면불은 현재 나라의 보물로 지정이 되어 있는데 그 원래 모습이 간직이 되었다면 국보 중에서도 국보가 되어 있겠지요.
훼손이 많이 되기는 했지만 소금강산과 함께 옛 신라의 불교문화를 엿볼 수 있는 특별한 장소가 될 것 같습니다.
주차장으로 되돌아오는 길.
새로 지은듯한 굴불사가 길 옆에 있네요.
겨울에 피는 장미는..
다시 제자리에 돌아왔네요.
관광객으로 늘 번잡한 경주에서 오늘 가장 한적한 시간을 보냈습니다.
얕은 산이지만 깊은 울림이 있는 곳이었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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