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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행 일기

소풍처럼 가벼운 산행, 함안 자양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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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안의 자양산은 해발 402m.

그곳 정상에는 통신 시설이 점령하여 그 옆의 봉우리에 정상석을 세워 두었는데 이곳은 겨우 해발 400m입니다.

산에는 온통 임도가 연결되어 있어 차로 올라서 10m만 걸어가면 정상이구요.

 

이런 재미없는 산을 오르는 이유는..

정상 조망이 아주 좋답니다.

북쪽으로 180˚ 뷰가 전개되고 남쪽으로도 마찬가지.

다만 동과 서는 능선이 막혀 조망이 트이지 않습니다.

 

산행은 조금 길게 할 수도 있고 가볍게 할수도 있는데 오늘 산행은 들머리를 갈전마을로 하여 소풍 같은 산행을 했네요.

마을에서 20여분 오르는 구간 제외하고는 아주 가벼운 산길.

하산하여 고려의 절의를 담은 고려동 유적지를 둘러보는 것도 의미가 있었습니다.

 

 

산행지 : 함안 자양산

일 시 : 2025년 4월 27일

산행 코스 :

갈전마을회관 - 도천마을 갈림길(능선) - 서나무고개 - 임도 사거리 정자 - 정상 - 임도 따라 하산 - 덕천정 - 수동마을 - 고려동유적지 - 마을회관(원점회귀)

소요 시간 : 3시간

 

같은 코스 따라 걷기 : 이곳 

 

 

 

알려진 산은 아니지만 나름 조망 명산에 속하는 산.

함안의 산인과 칠원면의 경계를 이루고 있는 산입니다.

인근에 입곡군립공원이 있구요.

 

 

자양산 등산지도

거창하게 그려져 있지만 사실 조금 단순한 등산코스입니다.

갈전마을에서 서나무고개까지 등산로이고 그 외에는 거의 임도라고 보면 되겠네요.

 

 

고려동 유적지가 있는 갈전마을.

비석뒤편에 마을회관이 가려져 보이지 않습니다.

 

 

갈전마을회관옆에 주차를 하고 산행 출발.

뒤로 보이는 능선 위까지 올라가는 게 오늘 가장 힘든 구간.(20여분)

이곳 자양산 산행은 이곳에서 우측으로 조금 떨어진 도천마을을 들머리로 많이 이용하는데 이곳보다 대략 1시간 정도 더 소요된다고 보면 되겠네요.

 

산행은 위 사진의 화살표 방향으로 주욱 따라 올라가면 됩니다.

 

 

회관 옆에 세워져 있는 산행 안내도.

건너편 칠원면에서 오르는 코스가 세 곳.

이곳 산인면에서 오르는 코스가 두 곳입니다.

모두 고만고만한 거리이고요.

 

 

마을회관에서 산 방향으로 난 도로를 끝까지 따라 올라와서 우측으로 보면 이런 계단이 보입니다.

들머리이구요.

 

 

산길을 따라 올라가면서 내려다본 갈전마을.

 

 

중간중간 이정표도 잘 세워져 있고 길도 지자체에서 잡풀들을 손질하여 깔끔합니다.

고맙다는 생각이..

 

 

소나무숲을 따라 올라가는 이 구간이 힐링 만점이네요.

숨을 크게 들이쉬고 내쉬고..

세상에서 들이킨 탁한 구역물들을 모두 뱉어 냅니다.

 

 

능선 도착.

우측으로 도천마을에서 올라오는 등산로입니다.

벤치와 나무데크가 마련되어 있네요.

 

 

좌측 능선으로 이동하면서부터 조망이 트입니다.

우측으로 보이는 산이 작대산과 천주산으로 짐작이 되는데 확실치는 않습니다.

 

사진을 클릭하면 크게 보이고 컴 화면 가득 큰 사진인 이곳 클릭하면 됩니다.

 

 

중앙 우측이 천주산으로 짐작이 됩니다.

 

 

아주 편안한 능선길을 걷고..

 

 

장정 500명이 매달려도 끄떡없을 것 같은 튼튼한 로프가 내리막길을 인도하고 있네요.

 

 

서나무고개.

차량으로 오를 수 있는 곳입니다.

이곳에서 화살표 방향 직진.

 

 

오동나무 꽃을 본 기억이 없네요.

오늘 처음 보는 것 같습니다.

노랫말에 나오는 벽오동은 오동나무와 전혀 다른 나무라는 것도 그 노래를 알고 부르면서 알았답니다.

 

 

아주 편안한 임도길을 따라가면 되는데,

근데 송화가 벌써 뾰족뾰족 자라고 있습니다.

송홧가루 날리는 철이 되었네요.

 

 

임도 사거리 정자에 도착.

이곳에서도 마주 보이는 곳으로 직진.

 

 

주욱 임도를 따라 올라가다 보면..

 

 

앞에 순흥안씨 묘역을 안내하는 비가 보이는데 이곳에서 우측 산길로..

직진하는 임도를 따라 곧장 올라도 되는데 임도가 지겨워서 산길로 오르는 것입니다.

산길은 의외로 희미합니다만 바로 옆에 임도가 같이 따라 오르고 있어 길을 잃을 염려는 전혀 없네요.

 

 

자양산은 야생화 천국이네요.

오르는 길목 이곳저곳에 온통 야생화.

봄 산길에 핀 야생화 좋아하시는 분이 오시면 환호하실 듯.

 

 

좌측에 따라 오르는 임도와 나란히 오르는 산길.

길은 많이 희미합니다만 그냥저냥 오를만하고요.

 

 

앞쪽이 탁 트이고 활공장이 보이면 바로 정상.

 

 

산불 감시하는 분이 찍어준 사진.

일흔이 훨씬 지난 이 분과 세상이야기 산불 이야기 한참이나 나누다 보니 시간이 한참 흘렀네요.

 

 

북쪽으로 조망되는 파노라마.

좌측으로 의령의 자굴산과 한우산이 조망됩니다.

우측으로는 창녕의 화왕산과 영산의 영취산 함백산 능선이 조망되구요.

대략의 산들은 알아보겠는데 좌측으로 멀리 황매산이 보일 듯 말듯하고 지리산은 탁해서 보이지 않는 것이 아쉽습니다.

 

사진을 클릭하면 크게 보이고 컴 화면 가득 큰 사진인 이곳 클릭하면 됩니다.

 

 

아래쪽으로 산 깊숙이 집들이 자리 잡고 있는데..

 

 

이번 산청과 의성의 산불을 보면서 이런 곳에 집을 지을 때는 아주 신중해야겠다는 생각을 해 봅니다.

바람 부는 날 산불 발생 시는 이런 곳은 대책이 없네요.

 

 

자굴산과 한우산.

마주하고 있는 이 산들은 능선에 바람개비가 있어 거의 등대 역할을 하면서 한눈에 알아볼 수 있답니다.

 

 

희미한 화왕산과 그 앞으로 쌍교~구현산 능선과 영취산 능선이 조망됩니다.

남지읍이 희미하게 보이고 낙동강도 살짝 조망됩니다.

 

 

남쪽능선 파노라마입니다.

좌측이 창원방향이고 우측은 마산방향입니다.

 

사진을 클릭하면 크게 보이고 컴 화면 가득 큰 사진인 이곳 클릭하면 됩니다.

 

 

뒤편으로 무학산이 너머 다 보고 있네요.

 

 

뒤로 희미한 능선이 안테나가 있어 한눈에 알아볼 수 있는 불모산 능선.

 

뒤편이 광려산과 대산 능선

 

 

서북산과 진달래의 여항산 능선이 우측으로 보이네요.

 

 

조금 더 내려와서 다시 한번 더 파노라마 조망을 즐기고..

 

사진을 클릭하면 크게 보이고 컴 화면 가득 큰 사진인 이곳 클릭하면 됩니다.

 

 

육각정 정자에서 느긋하게 식사를 합니다.

 

 

왔던 산길로 가지 않고 우측 임도를 따라 내려갑니다.

 

 

임도 따라 내려가면서 올려다본 정상 능선.

 

 

당겨보니 활공장이 보이네요.

이곳 활공장은 특이하게도 양편 모두 사용한다고 합니다.

겨울에는 북쪽을 사용하고 여름에는 남쪽을 사용하고..

불어오는 바람을 계절에 맞게 이용하는 것이지요.

 

 

임도를 따라 주욱 내려오다가 좌측(화살표) 방향으로 내려갑니다.

 

 

숲길이 조금 이어지다가..

 

 

멋진 대숲으로 들어서게 됩니다.

바닥에는 야자매트가 깔려 있구요.

안내판에는 퇴계선생길이라고 되어 있네요.

 

퇴계선생의 사촌누나 남편되는(??) 이의 부친이 이곳에 살고 있었는데 퇴계가 남도 유랑을 할 때 그니를 만났다고 합니다.

그때 관련된 장소이구요.

 

 

덕천정이라고 편액이 걸려있는 집인데 내역은 소개되어 있지 않습니다.

 

 

수동마을로 내려가는데 맘에 드는 개인주택이 있네요.

설계비 꽤 들었겠다는 생각이..

 

 

개울 옆에 느티나무는 거의 분재급이네요.

보호수 지정 시급...

 

 

고려동 유적지를 둘러봅니다.

 

고려동 유적지는,

그 옛날 고려가 망하고 조선이 건국하자 그에 반하여 고려인으로서의 절의를 지키고자 벼슬을 버리고 이곳에 내려와 거처를 정하고 후손 대대로 살아온 장소입니다.

설명글에 의하면 "고려 말 성균관(成均館) 진사(進士) 이오(李午)가 고려가 망하고 조선이 들어서자 고려의 유민으로 절의를 지키기로 결심하고 백일홍이 만발한 이곳을 택해 거처를 정한 뒤 그 후손들이 살아온 장소이다."라고 되어 있는데 급 궁금증이 생기는 것은 성균관이란 곳이 조선시대에 생겨난 것이 아닌가???라는 궁금증..

 

설명글을 이어서 옮겨보면,

고려가 망하자 선생은 여러 현인들과 송도의 두문동에서 망복수의(罔僕守義)의 결의를 표명하고 남쪽으로 내려와 거처를 찾던 중, 산간벽지에 띠만이 우거진 숲 속에서 백일홍이 만발한 것을 보고 그 자리에 마을의 터전을 일궜다.

그 자리는 오늘날 자미단(紫微壇)으로 남아 있게 되었다.

 

이오는 끝까지 고려의 유민임을 나타내기 위해 은거지 주변에 담을 쌓아 밖은 조선의 영토라 할지라도 안은 고려 유민의 거주임을 명시하는 ‘고려동학(高麗洞壑)’이라는 표비를 세웠다.

여기서 ‘담안’ 또는 ‘장내’라는 마을이름이 유래되었다.

이오는 세상을 뜰 때까지 조선에 벼슬하지 않았다.

아들에게도 신왕조에 벼슬하지 말 것과 자신의 신주를 이곳을 떠나 딴 곳으로 옮기지 말도록 유언하였다.

 

또한 담 안에 주거를 만들고 우물을 파 전답을 개간하여 자급자족할 수 있는 후손들의 터를 만들었다.

선생의 유언을 받든 종손들은 19대 600년에 이르는 동안 이 곳을 떠나지 않았고 이에 고려동(高麗洞)이라는 이름으로 오늘까지 이어왔다.

현재 이 마을에는 30호의 후손들이 재령이씨(載寧李氏) 단성의 동족마을로 그 순수성을 지켜가고 있다.

 

일종의 고려 후손의 세거지인 셈인데 너무나 아쉬운 것은 이곳에 있던 건물들이 한국전쟁으로 거의 소실되고 현재 건물들은 그 이후에 재건된 것이라 합니다.

 

 

고려동 유적지 건물 안에는 인기척이라고는 전혀 없네요.

하지만 이곳저곳에 사람 손길이 가득 담긴 꽃단장은 아주 잘 되어 있습니다.

 

 

건물의 내역이나 역사를 물어보려고 모두 둘러봤는데 사람은 전혀 보이지 않습니다.

나중에 다른 문으로 나와서 조금 지나치니 문화해설사의 집이 보이는데 이미 김이 빠져 버렸네요.

 

 

 

 

 

고려시대 문살형태일까?

 

 

작약이 벌써 피다니..

 

 

상당히 규모가 넓습니다.

이 넓은 곳에 사람 그림자도 없다니..

모두 개방이 되어 있네요.

 

 

바깥으로 나오니 명물 배롱나무가 보입니다.

여름철 사진 명소로 알려져 있다고 합니다.

 

 

조금 더 걸어서 도착한 출발지이자 도착지인 마을회관.

그 앞에 조그만 저수지에 비친 나무 한그루의 반영이 예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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