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날 우리나라 한문 글씨체를 떠 올리면 두 사람이 생각이 나는데 한석봉과 추사입니다.
대개 나이 지긋한 분들이 한석봉을 처음 만난 것 국민학교 때..
그의 엄마가 떡장사 하면서 10년 기약으로 석봉이를 절공부를 시켰는데 3년 만에 자신만만 돌아온 석봉이.. 글쓰기와 떡 썰기를 하여 석봉이 완패..
그리하여 다시 절로 돌아가 정진 후 조선 최고의 명필이 되었다는 이야기..
석봉(石峯)은 호이고 원래 이름은 한호(韓濩)인데 국민학교 때부터 한석봉으로 배운 것이 귀에 박혀 아래 내용에서도 모두 한석봉으로 통일했습니다.
대개 한석봉의 글씨는 정자체이고 추사의 글씨는 아트스틱하다는 느낌.
추사의 서예는 당시 청나라에서도 존경을 받을 만큼 명필이었고 학문도 당대 최고의 석학이라 모르는 이가 없을 듯합니다.
한석봉은 천자문으로 유명하고 추사는 조선 팔도 이곳저곳 다니면서 글씨를 많이 남겼지요.
한석봉은 여타 다른 명성은 별로 없고 오직 글씨만 잘 썼는데 비해 추사는 글로벌하게 명성을 날렸답니다.
실학자로서도 명성을 얻었고 벼슬도 많이 했지요. 다면 나이 들어가면서 유배생활도 엄청 많이 했고요.
그중 제주도 유배 9년 동안에 완성된 것이 그 유명한 추사체.
그가 글을 얼마나 많이 썼냐면 평생 벼루 10개를 빵구멍을 냈다고 합니다.
조선 4대 명필 중 석봉 한호와 추사 김정희의 글씨를 비교해 볼 수 있는 옥산서원을 들려 봤네요.
조선 성리학의 최고봉인 퇴계 이황도 그를 지도한 스승이 있었는데 그중 회재(晦齋) 이언적(李彦迪)은 퇴계가 각별히 존경한 인물이었습니다.
동방5현이자 조선의 대표적인 유학자 이언적을 배향한 곳이 이곳 옥산서원이구요.

옥산서원 들어가는 입구의 노송 숲.
이곳에도 재선충이 침략을 했네요.
벌써 죽어가는 소나무들이 있습니다.
이런 유적지의 소나무들은 사전에 방재를 철저히 했으면 좋았을 텐데 아쉽습니다.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이 된 옥산서원.
소수서원(영주), 남계서원(함양), 도산서원(안동), 필암서원(장성), 도동서원(달성), 병산서원(안동), 무성서원(정읍), 돈암서원(논산)과 함께 9곳이 세계유산으로 지정이 되어 있답니다.
옥산서원은 회재 이언적의 사후 20년이 지난 1572년(선조)에 경주부윤 이제민이 사림의 뜻에 따라 회재가 은둔했던 곳을 서원 자리로 정하고, 그의 학덕을 추모하기 위한 사당을 세웠습니다.
2년 후인 1574년 경상도 관찰사 김계휘의 제청에 의해 선조로부터 ‘옥산서원’이라는 이름을 하사 받고 사액서원(왕이 인정하는 서원) 되었구요.

목백일홍이 아직도 진분홍 자태를 뽐내고 있네요.
창고와 관리사 건물이 앞쪽으로 보이는데 이곳에서 옥산서원은 좌측으로 돌아서 가야 됩니다.

서원 문 밖의 계곡에 있는 세심대.
퇴계가 쓴 글씨가 있습니다.

서원의 정문인 역락문(亦樂門)입니다.
편액은 조선의 명필 석봉 한호.. 우리가 흔히 아는 한석봉의 글씨이구요.

역락문을 들어서면 누각이 나옵니다.
그 사이에 이런 경계를 만들어 두었구요.
뭔가 깊은 의미가 있을 것 같은데 해석이 되지 않네요.

이층으로 된 누각 건물입니다.

누각으로 올라가는 통나무 계단인데 출입금지..
참 이게 안타깝습니다.
건물에 사람이 올라가서 건물이 무너질 지경이 아니면 허용을 했으면 하네요.
옛 건물들은 사람 발 때가 묻어야 되는데 그걸 막아 둔 곳이 너무 많습니다.

누각의 좁은 문을 지나 마당으로 들어서면 서원의 본채 역할을 하는 강당 건물 구인당(求仁堂)을 마주 보게 됩니다.
건물 처마 아래 아주 강렬한 느낌으로 쓰인 커다란 옥산서원(玉山書院)이란 편액이 보입니다.
거의 가운데 칸을 다 채운 커다란 크기의 편액이네요.
이 글씨가 추사 김정희의 작품입니다.
서원을 만들고 곧장 써서 매단 것이 아니고 1574년 선조가 이 서원을 사액한 후 266년이 지나 이 건물이 불에 타버려 새로 지어 만들면서 당시 임금인 헌종이 하사한 편액으로 추사가 쓴 것입니다.
편액 왼쪽에 작은 글씨로 쓴 萬曆甲戌賜額後二百六十年己亥失火改書 宣賜(만력갑술사액후260년기해실화개서 선사 )라는 글귀가 이 편액의 역사를 증명하고 있구요.
이 편액의 글씨를 쓸 때의 추사 나이가 54세..
제주도 유배 가기 직전입니다.
추사는 1840년부터 9년간 제주도 유배생활을 했지요.

크게 찍었습니다.
전문가들이 이 글씨에 대하여 여러가지 멋진 평을 하여 나도 그렇네 하고 보긴 하지만 솔직히 속으로는 피카소의 그림처럼 그렇게 잘 쓴 글씨로는 인정이 되지 않네요.
참고로 이 글씨에 대하여,
유홍준 전 문화재청장께서는 '전서의 굳센 맛을 살려내 이른바 ‘솜으로 감싼 쇳덩이’ ‘송곳으로 철판을 꿰뚫는 힘으로 쓴 글씨’라고 이야기되는 추사체의 힘이 그대로 느껴진다”고 표현했습니다.
(유 교수의 이 표현은 그의 저서 완당평전에 나오는데 제 방에는 유홍준의 저서는 거의 다 있답니다.)

본채인 구인당(求仁堂)에 올라서 본 풍경입니다.
이곳은 신발만 벗으면 누구든지 올라갈 수 있구요.
사진으로는 희미하지만 바깥쪽 추사의 편액 안쪽 마루 위에 또 하나의 옥산서원 편액이 보입니다.

조금 밝게..

바깥쪽보다 크기가 조금 적은데 이것이 처음에 나라에서 내린 글씨로 된 오리지널 편액입니다.
글씨는 아계(鵝溪) 이산해(李山海)가 썼습니다.
토정비결 작가 이지함의 조카이기도 한 이산해는 영의정까지 지냈는데 6세 때부터 붓글씨를 배워 명필가로도 유명한 인물입니다.
편액의 왼쪽에 작은 글씨로 舊額摹揭(구액모게)라고 적혀 있는데 옛날 편액 글씨를 베껴 써 만들어 걸었다는 내용입니다.
이게 뭔 뜻이냐믄 이 서원이 한번 불에 탔는데 그때 편액이 불에 소실은 되었지만 글씨가 대충 남아 있어 그걸 본떠 새로 썼거나 아니면 편액으로 만든 글씨가 어디에 남아있어 다시 써 만들었다는 내용이구요.
에피소드가 전해지는데...
선조가 옥산서원 사액을 하면서 현판 글씨를 누가 쓰면 좋을까 회의를 했는데 참석자 대부분이 대략 당대 명필인 한석봉을 짐작하고 그쪽으로 자연스레 낙첨이 될 것이라 생각했는데 그 회의 최고참인 영의정 이산해가 뜬금없이 자기가 적겠다고 하여 누가 말릴 수도 없는 자리라 그가 편액을 쓰게 되었다고 합니다.
바깥의 추사 편액도 왕명의 사액으로 내린 것이고 이것도 선조 왕명의 사액 현판인데 한 서원에 이렇게 두 번이나 왕명의 사액 현판이 걸린 경우는 이곳이 유일하답니다.

본채 건물 이름인 구인당의 현판은 한석봉의 글씨

한석봉의 주특기인 천자문 글씨체와 비슷합니다.

해립재(偕立齋)라고 쓰인 편액
구인당에 있는 온돌방인데 유생들의 공부방 같습니다.
이것도 한석봉의 글씨.
이 외에도 구인당에는 여러 가지 내용을 담은 편액들이 많이 걸려 있는데 이것들에 대한 자세한 내용은 제가 확인을 하지 못했답니다.
그냥 사진으로만 구경..




해립재 맞은편의 방에 걸려있는 양진재(兩進齋) 편액.
한석봉의 글씨이구요.




구인당 편액 구경을 마치고 나가려는데 옛날 유생들의 기숙사였던 민구재와 암수재 건물에서 가훈 써주기와 다도 예절을 체험하는
행사를 하고 있네요.
빼꿈 들여다보니 들어오라고 합니다.
가훈 하나 써 준다길래,
"산처럼 살자"라고 써 달라고 했네요.

그동안 이곳 저곳 다니면서 같은 내용으로 글씨를 몇 점 얻었는데 아직 맘에 드는 게 없어 액자는 만들지 않고 있답니다.
우측 두 번째가 이번에 얻어 온 글씨입니다.
이렇게 같은 내용으로 글씨 동냥을 한지 10년이 넘었네요.
가훈이라기보담 제 삶의 지향점이라고 생각하는 글귀...
산처럼 살자.

가을이네요.

정말 가을이네요.

되돌아 나오면서 본 무변루(無邊樓)
올라가지도 못하게 해 둔 누각 무변루의 글씨도 역시 한석봉이 쓴 것입니다.

글씨를 조금 크게 당겨 봤네요.
천자문 글씨체와 비슷한 전형적인 석봉체입니다.
무변루라는 이 당호 이름은 아름다운 경치를 뜻하는 무변풍월(無邊風月)에서 따온 것이라 하네요.
옆의 조그맣게 쓰여 있는 글씨가 더 의미가 있는데..
靡欠靡餘 罔終罔始
光歟霽歟 遊于太虛
(모자람도 남음도 없고, 끝도 시작도 없다.
빛이여, 맑음이여 태허에 노닐도다)
라는 의미입니다.
이것은 선조 때 영의정을 지낸 학자 소재 노수신(盧守愼)이 나중에 따로 추가하여 새긴 것인데 무변루 이름의 의미에 관한 주석 글을 단 것입니다.
노수신은 이언적보다 나이가 한참 적으나 을사사화라는 같은 사건으로 19년간 유배생활을 했는데 아무래도 동질감이 대단하겠지요.

오늘 이곳 온 목적은 한석봉과 추사의 글씨를 보기 위함이라 그 외 풍경은 겉핥기로 대강 보고 나옵니다.


담장이 예쁘다는 생각을 하며 한쪽 구석을 보니..

똥장군..!!
네가 왜 여기에??



주차장까지는 대략 100여 m.
빛깔은 초록이지만 그 사이로 따라오는 바람은 가을이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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