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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일기

경주 석굴암보다 100년 먼저 만들어진 군위 삼존석굴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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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에서 군위 남산리에 있는 제2석굴암으로 갈려면 팔공산에 새로 생긴 터널을 지나면 금방입니다.

하지만 그러면 너무 밋밋하구요.

한티재를 넘어가는 지그재그 산길로 엔진 소리를 크게 하여 오르다 보면 어디론가 한없는 동경의 세계로 다가가는 듯 덜뜬 기분이되어 여행지로 찾아가는 맛남을 더하게 된답니다.

 

팔공산을 자동차로 가장 높게 오를 수 있는 한티재는 고개 만당에 있지만 나무들로 가려서 조망이 탁 트이지 않은 아쉬움이 있는 곳입니다.

이곳에다 멋진 전망대를 하나 만들면 바쁘지 않는 이들은 터널을 지나지 않고 부러 이곳으로 넘어갈 것인데 말입니다.

고개를 넘어 엔진 브레이크로 뒷다리를 버티어 천천히 내려가면 주변에는 온통 사과밭입니다.

한여름 뜨거운 햇살에 낯이 데인 홍로가 이제 막 제대로 익어 붉게 달려 있는 모습이 여간 보기 좋은 게 아닙니다.

 

제2석굴암은  바닥에서 20m 높이, 높다란 절벽의 아래 부분의 자연 동굴에 만들어진 석굴사원입니다.

이곳 절벽의 동굴 속에는 신라 때 만들어진 부처님이 모셔져 있는데 이 석굴을 처음 발견한 시기는 1027년. 그러나 까맣게 무시하고 있다가 1962년 뒤늦게 국보로 지정이 되어 세상에 알려지게 되었고 경주 토함산에 있는 석굴암을 No1이라 쳐서 이곳을 제2 석굴암이라고 부른답니다.

잊어버린 형이 뒤늦게 나타나서 동생한테 형이라고 하는 꼴이 된 셈이지유.

 

 

하지만 이곳 팔공산의 제2석굴암 조성시기가 토함산 석굴보다 1세기 정도 앞서는 것으로 확인되어 옳게 제대로 표현하자믄 이곳이 제1석굴암이고 토함산 인공 석굴암이 제2석굴암이 되어야겠지요.

이곳 군위 석굴암 만든 뒤 이곳을 모태로 경주 석굴암을 만들었든 게 학계의 정설입니다.

아무튼 이곳의 공식 명칭은 군위 아미타여래삼존석굴(軍威 阿彌陀如來三尊 石窟)입니다.

우리나라 돌부처들의 명칭은 참 어렵게 표기하고 있지유. 그냥 삼부처굴 하면 되는데 말입니다.

 

석굴암 구경하고 조금 더 내려오면 전통문화마을이자 돌담으로 유명한 한밤마을이 있답니다.

한문으로 크다는 표현의 밤율자를 맞춰서 대율(大栗)리.

마을 내역을 알아보면 밤과는 전혀 무관합니다. 이곳은 부림홍씨(缶林洪氏)의 집성촌으로서 이전의 동네 이름이 대야(大夜)였는데 이게 별로 맘에 들지 않는다하여 야(夜)자와 음이 같은 율((栗)자로 바꾼것 뿐입니다.

동네는 그리 크지 않지만 조선시대 이 동네 교육열은 그 어느 곳보다도 막강하여 작은 동네에 서당이 15곳이나 있었다고 하네요.

한밤마을과 제2석굴암을 연계하여 천천히 둘러보면 대략 3시간 정도 잡으면 됩니다.

대구에서는 외식(?)하러 가는 곳이고, 시골 내음 맡으러 가는 곳이고, 잠시 힐링을 하러 가는 곳이랍니다.

 

 

경주 토함산에 있는 석굴암이나 이곳 군위의 제2석굴암이나 모두 바위 암(巖)이 아닌 석굴사원을 뜻하는 암(庵)자 입니다.

이 암자가 유명한 것은 그 안에 모셔져 있는 부처님 때문이구요.

이곳 군위 남산리에 있는 삼존석굴은 자연동굴로 되어있으면서 토함산 석굴암의 모태가 된 곳이라 더욱 더 의미있는 곳입니다.

 

 

한티재 넘어가는 길

팔공산 터널이 생기기 이전에는 이곳 한티재로 모두 넘어가야 했었는데 이제는 터널을 통해 금방 갈 수 있습니다만...

그래도 석굴암 구경으로 간다면 꼭 한티재를 넘어가면서 팔공산 운치를 느껴보는것이 좋을 것 같네요.

 

 

한티재를 기준으로 팔공산 남쪽 대구방향은 온통 식당이나 카페들이 성업중이라면 고개를 넘어가면 분위기가 급변 한답니다.

온전히 시골 분위기로 변하면서 초가을 사과인 홍로가 빨갛게 익어가고 있네요.

 

 

멀미마을 입구.

이름이 우스워서 마을까지 기어이 찾아 들어가 봤답니다.

외갓집같은 추억의 시골집들은 모두 사라지고 그니들의 자녀들이나 외지인들이 새로 지은 별장같은 집들로 멀미마을이 꾸며져 있었답니다.

 

 

길게 이어지는 가을 장마로 개울은 지난 여름의 찌꺼기들을 모조리 떠내려 보내고 있네요.

덕분에 가을 추석에는 맑은 내(川)를 볼 것 같아요.

 

 

제2석굴암으로 걸어들어가면 석굴사 앞에 양산서원이 있습니다.

아랫쪽에 있는 한밤마을의 부림홍씨 조상님들이 배향되어 있던 곳인데 흥선의 서원철폐로 헐리었다가 조선 말에 다시 지어진 곳입니다.

 

 

서원은 문이 굳게 닫혀있어 들어가보지는 못하고 빙  둘러서 담 너머로 구경 한 후.

 

 

둥치는 썩어서 넘어질것 같지만 아직도 잎을 온전히 띄우고 있는 보호수 왕버들 아래서 잠시 하늘을 보는데,

바로 머리 위 버드나무 가지에 커다란 벌집이 붙어 있네요.

얼릉 도피.. (도피중이라 벌집 사진 없습니다.)

 

 

시대가 변하고 편리를 더하면서 사라지는 것들이지만 그래도 한번 더 쳐다보게 되네요.

돌담, 스레트 지붕, 블록 벽돌, 양철 물받침....

추억이 또 다른 추억의 꼬리를 물고 이어지는데 말로 할 수는 없네요.

추억은 강물처럼 얼릉 지나가버려 홀로 새겨야 하나 봅니다.

 

 

제2석굴암이 있는 높다란 바위 절벽입니다.

저곳 아랫쪽 지상에서 20m지점의 높이에 자연 동굴이 있답니다.

 

 

석굴암 가는 길에는 아주 멋진 소나무 숲이 있고 그 주변에는 촌집으로 형성된 식당들이 많이 있답니다.

지금은 조금씩 모양이 변했지만 이삼십년전에는 완전 촌집들이었답니다.

그곳 툇방에서 얼큰한 수제비나 칼국수등을 먹고 있으면 참 분위가 좋았답니다.

 

 

삼존석굴사의 마당을 지나 석굴암으로 가다보면 작은 연못이 나오고 건너편 앙증맞은 석불이 숲 그늘에서 마주보고 있답니다. 연못 안에는 동전 투호를 할 수 있게 해 두었는데 옆에 기다란 뜰채가 하나 있네요.

아마도 동전 수거용이 아닐까 생각을 하면서...

 

 

다시 조금 더 들어가면 좌측으로 커다란 비로자나좌불을 만나게 됩니다.

지방문화재로 지정이 되어 있습니다.

제2석굴암의 삼존불이 7세기 작품인데 이 부처님은 9세기 작품입니다.

제가 부처님의 자세인 가부좌를 하고 있으면 참 편안하여 식당에 가서도 의자위에서 가부좌를 틀고 앉아서 먹는 편인데 이런 자세가 도저히 되지 않는 분도 많더이다.

손가락을 저런 모양으로 하는걸 지권인이나 보제인이라고 하는 수인 방법입니다. 깨닳음을 얻어서 중생을 구제한다는 의미를 가진다고 보면 될 것 같습니다.

 

 

절벽 가운데 자연동굴로 형성된 석굴암

1962년에 이곳의 가치를 높이 평가받아 국보로 지정이 되었습니다.

 

 

석굴암으로 올라가는 계단인데 막아두고 있습니다.

훼손이 어쩌구 보호가 어쩌구 하면서 올라가서 친견을 하지 못하게 이곳 삼존석굴사 주지의 권한으로 막아 두었는데 이건 참으로 잘못되었다고 생각합니다.

앞쪽의 단을 조금 더 넓게 만들고 올라가고 내려오는 계단도 더 쉽사리 접근을 할 수 있게해서 누구나 부처님을 가까이 할 수 있어야 하는데 무슨 금덩어리를 보관해 둔 것도 아니고..

 

 

그래서 함참 아래에서 멀찌감치 올려다 봐야 합니다.

휴대폰으로 사진을 찍어면 아주 조그맣게 나오구요.

카메라로 당겨서 본 삼존석불이 있는 석굴암의 내부 모습입니다.

원형에 가까운 자연석굴안에 가운데 본존불이 아미타불과 오른편에 대세지보살(사진의 좌측)과 좌측에 관음보살(사진 우측)이 호위하고 있습니다. 보통 이런 쓰리콤비을 아미타삼존불이라고 하구요.

 

 

 

 

 

삼존석굴 앞에는 멋진 모전석탑이 하나 세워져 있습니다.

모전이란 탑을 벽돌형식으로 쌓은 것을 말하는데 돌로 쌓으면 모전석탑, 벽돌로 쌓으면 모전전탑이라고 하지유.

이곳 모전석탑은 원래 3층석탑으로 되어 있었으나 탑 위에 한그루 자라던 소나무가 태풍으로 탑과 함께 무너져 현재는 단층으로 복원되어 있습니다.

지방문화재로 등록이 되어 있구요.

 

 

 

 

 

모전석탑의 디테일.

경상도 말로 아구가 딱딱 맞게 잘도 맞춰 놓았네요.

 

 

모전석탑, 그리고 삼존석굴과 함께하는 석굴사의 비로전입니다.

절터만 남아있던 이곳에 새로 조성한 불전입니다.

대웅전 역활을 하고 있구요.

 

 

 

 

 

다시 한번 삼존석굴을 뒤돌아 보니 불자가 오셔서 부처님께 기원을 드리고 있네요.

부처님께 빈다고 해결되는것은 아니지만 내 마을을 다잡는 것이니 원에 가까이 할 수는 있겠지요.

 

 

되돌아 나오는 길.

일을 끝낸 노인분들이 절마당에서 소일을 하고 있네요.

노인분들 일자리창출이란 거창한 제목으로 제 시골 모친께서도 한나절 동네 공원 쓰레기 줍네하고 다니시는데 월급을 받는다고 하십니다. 모친은 연세가 많아 그 무리들의 반장이라는 직책을 맡고 계시다네요.

(제가 시골에 가면 윤흥길의 소설 완장이 생각 나 밑에 델꼬있는 할매들 너그릅께 다스리라고 충고를 한답니다.)

 

 

김여사가 이 열매를 산사라고 하는데 꽃사과가 풍년입니다.

 

 

아직 점심때가 일러서 한밤마을 돌담 구경이나 하자며 들렸답니다.

느긋하게 천천히...

 

 

 

 

 

돌담에는어떤 꽃이 피어도 다 어울립니다.

 

 

권세있었던 집이 두어채 있구요.

13대째를 이어오는 남천고택이 유명합니다.

 

 

오래 전 제가 회사 초급 관리자로 있을때 절 아껴주었던 팀장급 상사분이 즐겨 불렀던 노래가 방주연의 꽃과 나비..

세월 지나 제 15번곡쯤 되었답니다.

 

모진 바람 불어오고 휘몰아쳐도

그대는 나를 지켜주는 태양의 사나이

가진 것이 없다지만 순정은 있어...

 

 

 

 

 

이곳이 한밤마을 센트럴파크입니다.

대율리 대청으로 불리는 일종의 경로당입니다.

근간에 해체보수했다고 하는데 정말 아쉬운건 대청마루에 올라가지 못하게 해 두었다는 것입니다.

마루바닥이 병든 환자처럼 허옇게 떠 있습니다.

마루는 발때가 묻어야 되는데...

 

 

 

 

 

골목을 빠져 나가는 할매들을 보면서 김여사가 한마디 참견 합니다.

어깨에 메지 말고 구루마에 실고가면 되는거 아잉가?

 

 

한밤(대율)마을 표시석

 

 

 

 

 

 

 

 

솟을대문이 쓰러질듯 위태롭습니다.

마당에서 텃밭을 가꾸는 아주머니께 사연을 물으니..

안쪽 재실이 태풍으로 쓰러져 방치하다보니 이렇게 되었다고 하네요.

아쉽네요.

문간이라도 살리지..

 

 

석굴암 구경하고 한밤마을 둘러봐도 한나절이면 충분 합니다.

인근에 시골 정취를 가득 품은 맛난 가게들이 많아 느긋하게 식사와 차를 마셔도 되구요. 

대구에서는 소중한 나들이 장소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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