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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일기

석조유물의 보물창고 지리산 피아골의 연곡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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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은 계절에 참 민감하답니다.

봄에 좋은 곳이 있고 여름에 좋은 곳이 있고 그리고 지금 같은 가을에 좋은 곳이 있답니다.

이번 가을에 꼭 가 봐야지 하고 점찍어 둔 곳이 있어 다녀왔는데 지리산 피아골 아래 연곡사입니다.

 

연곡사(鷰谷寺)는 백제 성왕때 인도 스님인 연기조사가 창건한 절집입니다.

지리산의 명사찰인 화엄사 대원사 모두 이분의 작품이지유.

유구한 역사와 함께 고려조까지 선을 닦는 절(修禪道場)로 유명세를 떨치며 많은 문화재가 있었던 것으로 짐작을 할 수 있는데 임진왜란과 한국전쟁 때 소실되어 다시 새로 짓고 하면서 불에 타지 않는 석조물만 남았는데 이것만으로도 찬란한 석조 유물의 보물창고로 손색이 없는 곳입니다.

 

현재 연곡사의 국가 문화재로는 국보로 지정된 동 승탑과 북 승탑, 보물로 지정된 삼층석탑과 현각선사탑비, 동 승탑비, 소요대사탑이 있는데 이 중 국보인 동승탑과 북승탑은 그 다양하고 정교한 디테일에 보고 있으면 혼이 빠질 지경입니다.

 

전남 화순의 쌍봉사 철감국사 승탑과 함께 우리나라 승탑의 꽃 중의 꽃이라는 돌조각 작품.

(보기 : 이곳)

밀가루를 주물러 만든듯한 돌의 조각 작품을 보면서 요즘 새로운 기계들을 가지고도 과연 저런 작품을 만들 수 있을까 생각하게 되네요. 

자칫 손에 힘이 조금이라도 더 들어가 돌 조각 하나가 튀어 버리면 모든 것이 허사가 되어 다시 수많은 날들을 거쳐 만들었을 것인데....

 

연곡사 위치와 지도 : 이곳 

여행 일시 : 2022년 10월 29일

 

 

연곡사는 지리산 가을 단풍의 최고 명소인 피아골 입구 직전마을 못 미쳐 있습니다.

가는 날이 장날이라고 때마침 피아골 단풍축제가 시작이 되어(10. 29) 차량통제가 되는 바람에 평도마을에 차를 두고 걸어 올라갔답니다.

 

 

연곡사 찾아가는 길은 섬진강과 함께 합니다.

가을의 섬진강은 물빛이 더욱 반짝거린답니다.

구례 쪽에서 화개장터 한 코스 못 미친 곳에서 좌회전하면 피아골 방향입니다.

 

 

피아골 계곡으로 들어가면서 우측으로  보이는 황장산의 단풍 풍경.

아직 아래쪽에는 초록빛이 남아 있고 산 위에서 서서히 단풍이 내려오고 있네요.

 

 

피아골 단풍 축제로 평도마을에서 더 이상 진입을 못하게 막는 바람에 적당한 곳에 주차를 해야 하는데 주차자리가 없네요.

겨우 길가 남의 묵은 밭에 주차를 하는데 가장자리에 자리한 밭주인 비서 견공이 쳐다보는데..

스~윽 미소를 짓고 쳐다보니 그냥 허락을 해 주네유..^^

 

 

차량 통제를 하는 덕분에 단풍 가득한 피아골을 슬슬 걸어 올라가 봅니다.

온통 가을입니다.

 

 

 

 

 

연곡사 도착.

이곳저곳 국화 장식물들이 많네요.

 

 

일주문 지나 천왕문으로..

사바세상에서 부처님의 품 안으로 들어갑니다.

 

 

 

 

 

 

 

 

대개의 절집은 절마당으로 올라가는 계단이 절집의 대표 전각인 대웅전이나 대웅보전 또는 대적광전 등과 직선으로 마주 보지 않게 되어 있답니다.

약간 어긋나게 하거나 또는 각도를 달리하게 만들어 두고 있지유.

 

 

이곳 연곡사는 화엄사 말사로서 화엄사가 화엄종 사찰이니 본전은 석가불을 모신 대웅전이 아닌 비로자나불을 모신 대적광전입니다.

석가불이 눈앞에 보이는 부처님이라면 비로자나불은 변신의 귀재로서 모습을 달리하여 우리 곁에 있다고 생각하면 됩니다.

 

 

대적광전을 기준으로 넓게 본 연곡사 풍경

 클릭하면 크게 보여 집니다. 

 

 

조금 다르게 잡아 본 연곡사 풍경

 클릭하면 크게 보여 집니다. 

 

 

오늘 이곳을 찾은 목적은 2점의 국보와 4점의 국가 보물을 만나기 위해서..

경내에 있는 건 보물로 지정이 된 삼층석탑뿐이고 나머지는 절 뒷동산을 한 바퀴 빙 돌아야 합니다.

위에 보이는 사진이 그 입구이구요.

 

이곳에는 스님의 사리를 보관하는 승탑이 3기가 있는데 이 탑들의 역사를 보면 가장 먼저 통일신라 때 동승탑이 만들어지고 그 뒤 고려에서 다시 이걸 모방하여 북승탑을 만들었답니다.

그런 다음 조선시대 들어와 다시 이를 모방해 소요대사탑을 만들었구요.

한 장소에서 천년에 걸친 석공들의 모방과 창조에 관한 솜씨를 비교해서 볼 수 있는 곳입니다.

 

 

가장 먼저 만나는 동승탑비입니다.

고려시대 작품으로서 보물로 지정이 되어 있구요.

승탑비는 승탑과 짝을 지어서 만들게 되는데 불행히도 몸통 비석은 사라져 현재 받힘돌과 머릿돌만 남아 있습니다.

사진 중간에 짤막하게 시늉만 내어 논 것이 사라진 비의 몸통 자리입니다.

 

 

받힘돌은 머리에 뿔이 하나 달린 용 모양을 하고 생김은 거북 모양으로서 등에는 날개가 달려 있습니다.

이런 짐승을 상상 속 동물인 '연'이라고 한다네요.

머리는 잘린 것을 복구해 둔 듯 보입니다.

 

 

거북처럼 보이지만 등에 새겨진 날개가 뚜렷합니다.

 

 

두툼한 발이 인상적이네요.

 

 

머릿돌에는 용 다섯 마리가 뒤엉켜있다고 설명이 되어 있는데 용은 보이지 않고 엉켜 있는 구름만 보이네요. 맨 꼭대기에는 불꽃이 감싸고 있는 보주가 돋보입니다.

 

 

다음에 만나는 동승탑입니다.

승탑비와 같은 자리에 있는데 일부터 승탑을 뒤에 만난 건 가슴을 진정시킨 후 승탑을 만나기 위하여..

이 탑은 1962년에 국보로 지정이 되었습니다.

통일신라 후기 작품으로 알려져 있구요.

연곡사의 동쪽에 있다고 하여서 동승탑이라고 하는데 도선국사의 승탑(사리탑)으로 전해지기도 하나 확실치는 않다고 합니다. 연곡사에 있는 승탑 중에서 가장 아름답고 우아한 작품으로 알려져 있는데 누구의 사리탑인지는 모르겠지만 분명 대중의 존경을 많이 받는 스님은 분명할 것 같습니다. 그만큼 크나큰 내공으로 정교하게 만든 탑이네요.

 

 

지붕돌 가운데 작은 구멍이 보이나요?

종을 걸었던 자리라고 합니다.

옛날 천년 전 저곳에 저런 구멍은 뭘로 뚫었을까요?

지붕과 처마 밑의 홈은 석공의 내공을 짐작케 합니다.

자칫 돌조각 하나만 튕겨 버리면 전체를 다시 만들어야 하는데...

 

 

지붕 아래 기둥에는 극락조 가릉빈가(伽陵頻迦)의 모습이 새겨져 있는데 햇살이 비쳐 제대로 보이지 않습니다.

 

 

지붕 끝에는 잡상(雜像,여러가지 모양의 장식기와)을 얹었던 자리고 보이네요.

처음 보고 지붕이 훼손이 되었나 생각했는데 설명글을 보고 나니 이해가 됩니다.

 

 

맨 아래에는 구름과 용을 장식 조각하였고 그 위의 중대석에는 각각 모양이 다른 사자를 새겨 놓았습니다.

 

 

탑의 상층부에는 보주와 날개를 펼친 봉황 그리고 연꽃등이 조각되어 있는데 그 세밀함이 정말 놀랍습니다.

 

 

유홍준 교수의 책들을 거의  사 모아 두고 있는데 이번 여행 전 유홍준의 '국보순례'와 '나의문화유산답사기 산사 순례편'을 훑어보고 갔답니다. 도움이 많이 되었구요. 

 

 

동승탑을 한참이나 구경하다가 조금 더 위쪽에 있는 북승탑을 만나러 갑니다.

연곡사 들리는 분들 중 이곳 승탑을 둘러보는 이가 별로 없다는 게 아쉽네요.

 

 

돌계단길을 따라 약 2~3분 정도 오릅니다.

 

 

북승탑입니다.

이 역시 국보로 지정이 되어 있구요.

이곳에는 승탑비는 따로 없습니다.

 

 

동승탑은 울타리가 쳐져 있어 가까이 가지 못하는데 이곳 북승탑은 울타리가 없어 아주 가까이에서 디테일한 모습을 볼 수 있네요.

 

 

같은 탑인데 방향에 따라 조금 달라 보입니다.

이 탑은 네모난 바닥돌 위에 세워져 있는데 전체적은 구조는 팔각으로 되어 있습니다.

동승탑이 신라 때 작품이라면 북승탑은 그걸 모방하여 만든 고려 때 작품입니다.

따라서 동승탑과 모양이 비슷하다고 보면 될 것 같습니다.

 

 

연꽃무늬가 새겨진 단 위에는 둥근 테를 두르고 불교의 낙원에 산다는 극락조인 가릉빈가(伽陵頻迦)를 돋을새김해 두었습니다.

 

 

탑신에는 사천왕상이 새겨져 있구요.

이 모든 게 돋을새김으로 되어 있는데 정말 대단한 내공입니다.

위 사진 우측 편은 탑신의 문을 표현한 것입니다.

 

 

둥근기둥과 기단을 분리하여 보이게끔 만든 저 작은 구멍...

어떻게 뚫었을까요?

 

 

망치와 정..

그리고 석공의 지혜. 노력, 끈기, 솜씨... 

어느 것 하나라도 부족하면 도저히 만들어지지 않는 돌 작품입니다.

 

 

지붕돌의 디테일에서는 감동을 넘어 전율이 느껴집니다.

기와와 처마 끝 서까래 등을 정교한 솜씨로 만든 것도 놀랍지만 이게 이만큼 긴 시간 동안 잘 보존되어 있다는 게 참으로 다행입니다.

 

 

동탑과 마찬가지로 탑의 상층부는 보주를 감싸고 있는 장식물이 조각되어 있고 날개를 펼친 봉황의 모습이 보입니다.

 

 

하나의 돌조각을 이처럼 세밀하게 만들었다는 게 참으로 놀랍습니다.

 

 

북승탑이 있는 자리에는 승탑비는 따로 없습니다.

 

 

국보 두 점과 보물 한 점의 순례를 마치고 조금 더 내려갑니다.

 

 

소요대사탑비가 내려다 보입니다.

 

 

이 탑은 소요대사의 사리를 모신 탑비입니다.

한눈에 봐도 동승탑과 북승탑을 커닝하여 만들었다는 느낌이 듭니다.

 

 

국보로 지정된 북승탑과 동승탑은 탑의 주인공이 불명한 반면에 이 탑은 탑신의 한 면에 소요대사지탑 순치육년 경인(逍遙大師之塔 順治六年 庚寅)’이라는 글귀가 새겨져 있어서 탑의 주인공이 분명하고 연대까지 알 수 있게 된 것입니다.

조선 효종 원년인 1650년 작품입니다.

 

 

다른 탑과 비슷하게 기단에는 연꽃무늬가 새겨져 있고 각이 있는 돌조각은 대개 8각으로 되어 있네요.

 

 

지붕은 꽃 장식으로 화려하게 되어있고 역시 4마리의 봉황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한단 아래에는 다른 스님들의 승탑(사리탑)들이 4기 세워져 있습니다.

 

 

깊어가는 가을과 함께 이곳저곳이 단풍으로 가득.

 

 

절 뒤편을 한 바퀴 돌고 다시 절 쪽으로 내려갑니다.

 

 

곧장 마주치는 의병장 고광순 순절비입니다.

1895년 을미사변 때 좌도의병대장으로 활약을 한 인물입니다.

지리산 일대에서 활약하다가 일제에 의하여 이곳 연곡사에서 전사하였습니다.

 

 

 

 

 

고광순 순절비 바로 아래에 있는 현각선사탑비.

앞면 머릿돌 가운데 현각 선사 비명(玄覺 禪師 碑銘)이라고 적혀 있어 이 역시 비석 주인공이 분명한 탑비입니다.

근데 울타리와 비의 자세가 어긋나 있어 사진 찍기가 애매하네요.

왜 이렇게 어긋난 자세를 취하게 했을까? 

분명 이유가 있을 것인데 짐작이 되지 않습니다.

고려의 승려 현각선사를 기리기 위한 탑인데 아쉽게도 비의 몸통은 사라지고 현재 받힘돌과 머릿돌만 남아 있습니다.

 

 

머릿돌에는 여러 마리의 용이 얽혀 있는 모습이 조각되어 있습니다.

좌측에 구멍이 뻥 뚫려 있는 건 몸통 비석 안으로 스며든 빗물이 빠져나오는 역할을 하는 구멍입니다.

 

 

몸통은 거북 모양을 하고 있지만 머리는 수염이 달린 용 모양입니다.

여의주를 물고 있는데 눈이 부리부리하여 겁나는 표정입니다.

 

 

 

 

 

절의 뒤편을 한 바퀴 돌았네요.

다시 대적광전 뜰 마당에서 잠시 쉬었다가...

 

 

절 이곳저곳을 둘러봅니다.

임진란과 6.25 두 번의 전란으로 소실되는 아픔이 있었지만 그래도 우리의 귀중한 석조문화재가 남아 있으니 아쉬움이 덜한 곳입니다.

 

 

연곡사에서 마지막으로 만나는 삼층석탑. 보물로 지정이 되어 있습니다.

그동안 절이 몇 번의 중창건을 거치는 바람에 자세가 많이 변형이 되었지만 이곳에 삼층 석탑이 있었다는 건 오래전에는 금당, 즉 절의 본당이 이곳 앞에 있었다는 의미가 되네요.

우리나라 석조 보물 중 석탑은 흔하디 흔한 것인 데다 국보 승탑에 워낙 혼이 빠져 석탑은 대강 둘러봅니다.

 

 

한나절 머문 절 구경을 마무리하고 되돌아 나옵니다.

 

 

국향 가득한 경내를 나오려니 아쉬움이 드네요.

 

 

오늘은 저녁엔 네번째 손주의 백일 축하 모임이 있답니다.

지리산 피아골 자락에 작은 소망지를 붙이고 집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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